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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 May 02. 2025

카지노 쿠폰의 말들: 오늘도 놀 구실을 만드는 감각

황효진, 『일의 카지노 쿠폰: 가뿐한 퇴근길을 만드는 감각』을 읽고


좋은 일, 좋은 삶의 모양이라고 배우고 믿어왔던 것과는 어쩐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줄거리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꽤 흡족하다.


- 황효진, 『일의 카지노 쿠폰: 가뿐한 퇴근길을 만드는 감각』

(유유, 2025)


효진의 책은 빵동기와 함께한 내 생일잔칫날 받았다. 효진과 또 다른 두 친구까지 우리 넷은 서로를 ‘빵동기’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농담 같은 사연이 있다. 이 사연은 내가 쓴 단편소설 ‘아날로그 로맨스’가 실린 근미래 SF 로맨스 앤솔러지인 『무드 오브 퓨쳐』에 남긴 작가의 말에 실려있으니 만약 궁금하다면 그 책으로 건너가 참고하기를 바란다. (AI가 알려주지 않는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는 수고가 따르기 마련이다)빵카지노 쿠폰와 함께하는 생일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오래되었고, 파티보다는 잔치가 어울리는 사이 정도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이번 내 생일잔치의 계획은 빵카지노 쿠폰답게 빵의 도시 대전에 방문해 빵집 투어를 하고 뭔가 양념이 많은 메뉴를 저녁으로 먹는 것이었으나, 비 예보로 인해 무산되었다. 나는 마감을 해야 한다며 취소할 수 없는 약속을 제외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생일에도 책상 앞에 앉아(만)있었기 때문에 빵카지노 쿠폰와 함께한 생일 엿새 뒤의 잔치가 첫 생일 모임이었다. 카지노 쿠폰는 오직 대학로의 하이디라오가 홍대보다 크고 쾌적하다는 이유로 사실상 누구의 동네도 아닌 대학로에 모였고, 훠궈를 먹은 뒤에 케이크를 먹고 커피를 마셨고, 왜인지 가챠샵을 갔다가 오락실에서 펌프를 했고, 열었다는 이유로 since 1956 학림다방에 가서 각자 먹고 싶은 걸 먹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효진의 책을 받았다. 아니, 또 어느새 이렇게 새 책을. 그것도 단독 저서를. 요새는 누가 뭔가 마감했다거나 책을 냈다거나 하면 대체로 존경하게 된다. 말은 안 했지만 존경하는 마음과 책을 같이 품고 돌아와, 며칠 뒤 부산행 기차에서 책을 펼쳤다. 귀퉁이를 접으며 읽었다.

다 읽고나서는 역시 [시스터후드]에 대해 쓰려고 했다. 책 첫 장에 익숙한 효진의 글씨로 적힌 ‘이나 님과 함께 일한 시간’의 가장 큰 부분이며, [시스터후드]는 내게 한 시절이기도 하니까. 아마도 마포 하반기쯤으로 부를 수 있는. 내가 효진과 함께 쓴 편지책『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에서 인용한 『작은 아씨들』의 문장이 들어있는 챕터의 한 문장을 인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시 책을 펼치고 귀퉁이를 접은 페이지를 또 한 번 읽다 보니 왜인지그 생일 잔치의 한 순간이 떠올랐다.

사계절이 있는 한국-특히 서울살이의 고달픔, 이제는 정말 과거가 되어버린 어떤 시절과 사람, 계속되는 어려운 일(노동, 그리고 삶)들에 대해 두서없이 떠들다가, 그 삶을 어떻게든 꾸려나가는 카지노 쿠폰의 매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그랬다. “그래도 이런 내가 싫지 않아.” 그 말의 끝을 재빨리 잡아채 내가 말했다. “그래서 그런 거잖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거잖아. 화요일 오후 1시에 대학로 하이디라오에서 훠궈를 먹을 수 있는 네 명의 40대 프리랜서. 한 명은 학생 할인도 된다.(효진은 대학원생이고 하이디라오는 대학원생도 학생 할인을 해준다)오래된 계획을 취소하고 이틀 전쯤 바꾼 일정으로 만나 노는 사람들. 비록 오늘 놀기 위해 전날 새벽까지 일을 했어도. 너무 화가 나고 분한 일이 있을 때 부르면 또 잘도 나오는 사람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꿈꾸는 “좋은 일, 좋은 삶의 모양”과는 한참 멀어져서,넷이 합쳐도 1인분의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할 사람들. 카지노 쿠폰가 이런 나를, 카지노 쿠폰를 싫어하지 않아서 카지노 쿠폰는 이렇게 산다. 살고, 일한다.누가 이런 카지노 쿠폰에게 ‘너는 왜 그래, 왜 그렇게 살고 일해’ 묻거나 말거나, 카지노 쿠폰가 다른 줄거리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꽤, 내심 흡족해서.

효진이 무려 100개의 일의 카지노 쿠폰을 모아 일과 일이 아닌 것들에 관해 써내려 가고 있을 때, 그 경계이거나 실은 구분되지 않는 삶의 어느 날에 존재해서, 이런 현재형의 날들이, 다행이었고 계속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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