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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Mar 19. 2025

꿈에 온 답장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 낮잠을 길게 자고 일어나 개운한 걸음으로 산책을 나섰다. 거리는 사람도, 차도 없이 고요했다. 산들바람이 불어와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호수까지만 갔다 와야지."


호수가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보이겠지, 큰 호수니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발걸음을 내디뎠다. 햇살은 적당히 따뜻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근데, 여기가 어디더라? 캐나다였나?'


나무들도 키가 훌쩍 크고 공기도 이렇게 맑으니, 캐나다 어디쯤이겠거니 짐작했다. 어디든 무슨 상관일까.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걷다 보니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사방이 뚫린 투어버스였다. 경치를 감상하기에 딱 좋게 설계된 듯했다. 조용한 동네라 그런지,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중에어딘가 낯익은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신호 대기 중인 버스 안을 목을 쭉 내밀고 바라보았다.


"카지노 쿠폰!"
"어머, 자기야!"


역시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나의 멘토 카지노 쿠폰.

신규 발령 첫해, 사춘기 아이들에게 휘둘리고 업무에 치이고 수업도 엉망일 때, 손을 잡고 진심으로 위로해 주고, 조언해 주고, 격려해 주었던 분. 풋내기 교사였던 내게 늘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며, '우리 삐약이 카지노 쿠폰'이라 부르며 예뻐해 주셨던 카지노 쿠폰. 병환으로 근무지를 떠나 계시면서도, 복직하면 꼭 만들고 싶은 동아리가 있다며 열정을 쏟아내시던 카지노 쿠폰.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 한 번 제대로 드리지 못했던 카지노 쿠폰을, 이렇게 타국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반가움이 벅차올랐다.


"카지노 쿠폰, 저도 그 버스 같이 타도 돼요? 카지노 쿠폰이랑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나도! 만나서 정말 반갑다! 근데, 어쩌지? 버스가 꽉 차서 자리가 없네?"


아까까지만 해도 한산해 보였던 버스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카지노 쿠폰 곁에 앉고 싶어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 했지만, 아무도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조금만 옆으로 당겨 앉으면 나 하나쯤은 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자기, 그냥 천천히 걸어와. 산책하면서."


신호가 바뀌자 버스는 천천히 출발했다. 카지노 쿠폰은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전 모습 그대로시네 생각했다.


생전 모습…?


눈이 번쩍 뜨였다.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내 방, 내 침대. 여전히 어두운 방 안, 조용한 밤. 카지노 쿠폰의 장례식에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밤이었다.




카지노 쿠폰의 부고를 들은 건, 1학년 학생들과 야영 수련 활동 중일 때였다. 카지노 쿠폰의 이름으로 문자가 왔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카지노 쿠폰은 문자로 연락하는 분이 아니었다. 몇 시간 동안 메시지를 열어볼 수 없었다. 아이들을 인솔하며 정신을 붙들어 매야만 했다. 겨우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열었을 때, 예상대로 부고였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순간에 현실감을 잃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멀어졌다. 멍하니 서 있다가 동료 교사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그날 밤, 카지노 쿠폰께 편지를 썼다.

카지노 쿠폰이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얼마나 감사했는지, 함께 근무할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꾹꾹 눌러 담았다. 내내 눈물이 흘러 몇 번이나 손을 멈추어야 했다. 편지가 카지노 쿠폰께 전해질지 알 수 없었지만, 부의함에 넣고 명복을 빌었다.


며칠이 지나고, 꿈에서 만난 카지노 쿠폰. 카지노 쿠폰께서 꿈에서 답장을 보내주신 게 아닐까.고마웠다고, 잘 지내라고, 여전히 널 응원한다고.꿈속의 카지노 쿠폰은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픈 기색도, 슬픈 기색도 없이 편안하고 밝았다. 여전히 주변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마치 여행을 떠나듯 을 흔들어 주셨다.




카지노 쿠폰, 지금도 많이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이제 저를 ‘삐약이 카지노 쿠폰’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힘들고 지쳐도 잘 이겨내고 있어요. 카지노 쿠폰 덕분에. 카지노 쿠폰이 제게 남겨주신 가르침과 위로, 그리고 따뜻한 우정을 늘 마음에 새기고 교직 생활을 이어가겠습니다.

언젠가 카지노 쿠폰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 하면, “고마우면, 후배 카지노 쿠폰들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선배가 되어서 갚으면 된다.” 하셨었죠. 저도 누군가에게 카지노 쿠폰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늘따라 유난히 카지노 쿠폰이 보고 싶은 건, 새 학기가 시작되어서일까요. 카지노 쿠폰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르는 3학년 교실에서, 저는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단단하게 버티며, 잘 해낼게요.

그러니 저, 잘하고 있나 한 번씩 꿈에 찾아와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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