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가. 자신과 같은 4등급 인간인 점례가 1등급 신랑과 결혼을 한다니. 자신처럼 명문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아는 점례의 최종학력도 그냥 여상을 졸업한 것뿐이다. 점례는 자신과 한동네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물론 중학교 다닐 때부터 점례는 똑똑했다. 중학교 때 거의 반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점례는 공부를 잘했다. 하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여자상업고등학교를 갔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게 벌써 거의 10여년전 일이다. 세희는 그 사이에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자동차 전문잡지사에 취재기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은행에 갔다가 우연히 거기서 근무하는 점례를 만난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종종 점례의 소식을 들었다. 이따금씩 점례를 만나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자신은 명문대생이고, 중학교 동창인 점례의 삶은 뻔히 보였다. 여상을 졸업하고 뭐 얼마나 잘 될 것인가. 더구나 세희는 대학입학과 동시에 학과 수업 받으랴, 여기저기 미팅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녀가 소개받은 남자들은 대부분 나름 사회에서 소시민으로 성공한 3등급 인간들이었다. 졸업한 선배나 동기들의 연이 닿아서 소개의 소개로 이어진 인연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공무원도 있었고, 안정된 대기업에 취직해서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진 사람들도 있었다. 미팅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중에 가장 등급이 높은 사람은 2등급 인간이었는데, 그는 목이 짧고 뚱뚱한 남자였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건물에서 매달 은행이자 빼고 한 5천만원 나와요.”
자랑하듯이 금니까지 보이면서 미소짓던 남자는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얘기할때마다 습관적으로 흔들어서 철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왜 말할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종의 틱 장애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할아버지는 어느 지역의 유지였는데, 할머니만 3명이라면서 제사가 일년에 12번이라고, 자신이 집안의 종손이니 그런 것은 감안하고 시집을 와야 한다며 은근슬쩍 세희에게 아이를 잘 낳게 생겼다고 말하면서 음흉한 웃음을 담아 명함까지 건네기도 했다. 물론 세희는 집에 오자마자 명함을 찢어서 휴지통에 집어 던졌다. 자신은 그렇게 치열하게 1등급 남자를 찾아서 헤메였고 몸부림을 쳤는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점례가 1등급 남자를 만났다니. 세상에 이런 아이러니도 없었다. 세희의 기억이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갔다.
점례는 중학교 시절부터 참 똘똘하고 착한 아이였다. 몇 마디를 건네고 나니, 과거로 돌아간 듯이 둘은 2시간 넘게 수다를 떨었다. 그간 각자 다른 길을 살아온 그녀들은 서로 할 말이 많았다. 사실 점례와의 먼저 연락을 끊은 것은 세희였다. 명문대학에 입학한 세희는 점례와는 이제 서로 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같은 4등급이지만, 자신은 더 높은 등급의 남자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신이 4등급 인간을 만나면 실패한 인생이고, 자신이 보기에 점례는 같은 4등급 남자를 만나기만 해도 성공한 인생일 터였다. 사회에서 학벌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라고 세희는 항상 되뇌이곤했다. 자신의 미래가 하늘을 향해서 완전히 열린 창이라면, 점례의 미래는 시작부터 두터운 유리창에 가로막혀 있었다.
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친구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점례를 이렇게 우연히 만났는데, 그 점례가 자신의 평생 로망인 1등급 인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고 하니 세희는 인생을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인생이란 수천 페이지 책자에 아직 자신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단락이나, 아직 읽지 못한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것인지 세희는 답답함을 느꼈다.
점례와의 조우 덕분에 세희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생생하게 머리속에 그려졌다. 사회에서 성공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던가. 매일같이 새벽 6시 알람소리에 깨서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졸면서 버스를 타고 나가서 새벽부터 학원 수업을 듣고, 공부한 것을 중간중간 수업이 없는 시간에 복습하고 그 무더웠던 여름에 백 명도 넘게 가득찬 교실에서 선풍기 하나로 엉덩이에 난 땀띠를 버티지 않았던가. 그렇게 힘들게 재수까지 하면서 그녀는 결국 그렇게 원하던 명문 스카이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 선생님들은 공부를 잘하면 신랑의 얼굴이 바뀐다고 경쟁을 부추겼고 그건 현실에서 대다수 맞는 말이었다. 선배나 주변을 봐도 그랬다. 4등급의 친구들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3등급이나 2등급을 만나곤 했다. 아무리 못해도 4등급 남자들과 만났다. 같은 4등급끼리 만나면 주변에서들 정말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잘 만나도 2등급이 최고였다. 점례처럼 1등급 남자와 결혼하는 케이스는 처음 보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중학교 절친인 점례가 1등급 남자와 결혼을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너무 쓰린 이야기였다. 1등급 남자라니. 요즘 길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남자다. 외국산 자동차 신규 론칭 쇼의 취재차 들린 반얀트리 호텔 수영장 같은 곳에서 가끔 마주치기는 한다. 누구나 태어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에 새겨야 하는 등급 표시 문신은 모든 사람들의 어깨와 발다닥에 입체감이 느껴지는 양각으로 검고 두껍게 레이저 문신을 통해서 마치 도장을 찍듯이 한 방에 새겨진다. 어린시절의 언젠가 수영장에서 놀다가 어깨에 5라고 새겨진 남자아이와 튜브를 가지고 놀고 있는데, 엄마가 와서는 세희를 낚아채듯이 안고는 귀에 조용히 한 마디를 했는데 그 말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고 선명하다.
“앞으로 절대 4가 아닌 5나 6 같은 아이들과 놀면 안 돼.”
“엄마, 그럼 2나 3은 괜찮아요?”
“그럼 당연하지 앞으로 놀 때는 4도 좋지만 될수 있는 한 2나 3하고만 놀아요.”
그 이후로 세희는 아이들과 놀 때는 꼭 중간에 서로의 등급을 한 번씩 물어보곤 했다. 물론 사는 구역이 왠만한 등급별로 나뉘어져 있어서 4등급 인간들이 사는 곳에는 대다수 4등급 인간들만 거주했다. 물론 여름에 웃통까지 벗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럴때 보면 그들의 어깨에는 7 또는 8 같은숫자들이 쓰여 있었다. 물론 자신이 편견일 수도 있었다. 아주 가끔은 어깨에 1이라 2라고 쓰인 노인들이 일하는 경우도 보았다. 물론 노인들의 사연을 들어야 알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은 등급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힘든 일을 많이 한다.
점례의 신랑이 어떤 식으로 1등급이 되었는지 어떤 분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눈 앞의 점례는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얘기를 하고 있다. 점례의 자리 옆에는 샤넬 백이 놓여 있다. 남자친구가 선물해 준 것 일터였다. 세희가 아는 한, 점례네 집안은 저런 명품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 안 본 사이에 어디 로또라도 맞지 않았다면 말이다. 점례가 핸드백에서 꽃무늬 사각봉투를 하나 꺼내서 건넸다.
“이게 뭐야?”
“청첩장, 다음 달에 결혼하거든. 직장 동료들 주려고 가지고 온 것인데. 넌 안 와도 돼. 그냥 친구니까 알려는 줘야지.”
세희는 너무 부러워서 자신의 손 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꼈지만, 마음을 다 잡으면서 얘써 참았다. 장소가 궁금해서 청첩장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서울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이었다. 꽃 값만 1억인가. 세희는 호텔 결혼식 같은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어서 액수 같은 것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청첩장 뒷 면에는 신랑과 신부의 전신사진도 나와 있는데, 거기엔 멋지게 턱시도 같은 복장을 차려입은 남자도 서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어... 어떻게 만난 거니?”
“세희야, 내 신랑, 너도 아는 남자 일텐데?”
“뭐? 내가 안다고?” 그 말에 청첩장을 다시 보니 ‘신랑 정찬주’라는 단어가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세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아는 1등급 인간은 없었다.
“찬주라고... 왜 있잖아. 중학교 2학년때 우리 남여공학이었잖아. 너 좋다고 쫓아다녔던 찬주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세희는 다시 청첩장에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정찬주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덩치는 크고 공부는 좀 잘 했던 찬주라는 아이가 생각났다. 키는 컸는데 비쩍 마른 아이였다. 설마 사진속에 아이가 찬주라고? 안경을 고쳐쓰고 다시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어릴 적 얼굴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처럼 찬주도 같은 4등급이다. 같은 등급끼리 중학교를 다니게 해 두어서 동창이라면 다 같은 등급이이다. 정찬주는 4등급인데 무슨 1등급이야? 세희는 아무리 생각해도 점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사진을 찬찬히 뜯어보니 어릴 적보다 키는 더 크고 세련된 모습으로 정장처럼 턱시도를 입고 있는 청첩장 속 찬주가 드디어 기억이 날 듯 했다.
“찬주가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 받고 왔잖아. 표정을 보니까 세희, 너 기억 안 나는구나, 난 너한테 고마워. 왜, 기억 안 나니? 우리 세 명이 같은 반일 때 말이야. 찬주가 너랑 같이 짝하고 싶어 했는데 네가 거절해서 결국 나랑 짝이 되었잖아. 사실 난 찬주를 좋아하고 있었거든.”
“그랬구나, 귀뜸이라도 좀 해 주지 그랬어.” 세희 입에서 맘에도 없는 말이 나왔다.
“뭐 어릴 적의 지나가는 마음이라고 생각했지. 왜 첫사랑은 안 이어진다고들 말하잖아.”
“참 너희도 멋지네, 아니 1카지노 가입 쿠폰은 무조건 유전으로만 받는 것 아니었어? 그것도 신기하네.”
세희는 찬주가 어떻게 1등급 인간으로 국가의 인증을 받은 것인지, 그게 더 궁금했다. 점례가 찬주와 결혼한다는 것은 그렇게 그녀에게 큰 뉴스는 아니었다. 점례가 1등급 남자와 결혼한다는 것이 세희에게 더 관심이었고, 그건 어떻게 4등급인 찬주가 1등급으로 올라갔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어, 나도 그렇게 알았는데 워낙 반도체 설계 쪽의 인재가 희귀하다 보니 국가에서 특별히 초청을 했나 봐. 1카지노 가입 쿠폰으로 국가에서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안 그러면 찬주는 미국에서 대학교수하고 있는 게 훨씬 낫지. 1카지노 가입 쿠폰 준다고 하니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보장해 주니까. 너도 알다시피 결혼식장도 아파트도 다 그 대기업 연구소에서 공짜로 해 주는 거야. 아이들 낳으면 1카지노 가입 쿠폰만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도 다 공짜고, 아이들 대학까지 학비 지원도 다 해준다고 하더라. 그 호텔도 대기업 것이라서.
우리가 돈이 어딛니. 재벌 출신의 1카지노 가입 쿠폰도 아니고. 찬주가 그때 내 얼굴이 떠올랐데. 결국 귀국을 결정했다고 하더라. 귀국해서는 제일 먼저 나한테 연락했지.”
세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점례가 무슨 축하연에서 폭죽 터트리듯이 말을 '다다다' 하고 쏟아내는데, 마치 자신이 사 놓은 복권을 점례에게 주었는데 그것이 1등에 당첨된 듯한 황망함이 목에 차 올라오는 듯 했다. 생선을 먹은 것도 아닌데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찬주에게 좀 잘해주는 것인데. 입안이 텁텁해지고,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커피보다 물잔에 손이 갔다. 시원한 물을 마시니 속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머. 미안, 나 약속이 있다는 것 깜빡했네.”
세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집으로 와서 몇 날 며칠을 두문불출하고 생각에 사로 잡혔다. 점례의 모습과 찬주의 성공, 그리고 자신의 현실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엉킨 실타래처럼 그녀를 괴롭혔다.
점례가 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을 터였다. 아니 반드시 해내고 싶었다. 세희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했다. 책상에 차분히 앉아서 핸드폰까지 꺼내놓고 주변 지인들에게 1등급 지인들이 있는지 체크를 시작했다. 종이를 꺼내놓고 빨간 펜을 들어서 지우고 메모하고 전화하고 또 메모하고 그렇게 회사와 집만 오가면서 1등급 인간찾기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최선을 경주했다. 그렇게 매일 전화하고 목록을 정리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드디어 그녀의 삶에 서광에 비취기 시작했다. 인맥의 인맥을 넘어서 소개해 달라고 조르고 설득하기를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마른 수건 짜듯이 탈탈 턴 결과, 어학연수 1년 동안 룸메이트로 지냈던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서 자신의 외삼촌 조카, 즉 사촌오빠가 지금 한국에 있는데, 자신도 구체적으로 등급을 모르지만 그 집 재산으로 보면 꽤나 높은 등급일 거라고 하면서 소개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일전에 미국 어학연수 당시에 미국에 놀러온 사촌오빠에게 세희의 사진을 우연히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딱 자신의 스타일이라고 그렇게 맘에 들어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세희가 어학공부에만 집중하겠다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세희도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20대 초반일 때의 일이었다.
“사촌 오빠가 우리가 찍은 사진을 옆에서 봤는데, 네가 딱 맘에 든다고 하더라. 물론 사촌오빠도 아직 결혼 안했어.”
‘ 몇 카지노 가입 쿠폰인데? ‘라고 좀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친구가 자세히 모른다고 했으니 더 캐물을 수는 없었다. 카지노 가입 쿠폰제라는 것이 사회 민감한 문제라서 함부로 먼저 오픈하면 개인정보보호에 걸리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걸 물어보는 것은 마치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당신의 재산이 얼마나 돼요’ 아니면 ‘당신의 생활력이 어떻게 되나요’ 하고 물어보는 것과 같아서 엄청난 실례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간 미팅 자리였다. 말이 미팅이지 이제는 ‘선’이라고 표현해야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왜 이렇게 빠른지, 벌써 30대 초반이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카페 입구에서 택시기사에게 내려달라고 말했다. 택시가 널찍한 도로를 따라서 카페 안쪽으로 더 진입할 수도 있지만 굳이 카페 안쪽까지 택시를 타고 가고 싶지 않았다. 카페 입구에서 안쪽 본관까지는 길게 산책로가 펼쳐져 있었다.
산 밑에 위치한 카페 본관은 지상과는 약간 단차가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주차장과 잔디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널찍한 계단 양 쪽으로 차량을 4대씩이나 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평일 오전이라서 카페 본관 입구 쪽 주차장에는 차가 딱 두 대 밖에 없었다. 하긴 사람들이 다 카페 외부와 잔디밭이 있는 아래쪽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할 생각을 하지, 이렇게 본관 안쪽까지는 차를 가지고 올라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카페 본관 바로 아래 주차칸에 서 있는 자동차가 한 대가 세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차는 람보르기니였다. 운전석쪽 문이 수직으로 올라가 있어서 눈에 안 띌래야 안 뛸 수가 없었다. 세희는 카페를 향해서 올라가면서도 그 자동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세희의 직업 자체가 자동차 전문 잡지사의 취재기자가 아니던가. 세희는 자동차에 대해서 웬만한 남자들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매일 새로운 차량에 대한 정보들을 매일 다루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눈 앞에 보이는 차는 그냥 람보르기니도 아니고 한정판 스페셜 모델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차량 가격이 떠올랐다. 시가 8억. 무엇보다도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팔지도 않는다는 브랜드다. 차량 양쪽의 도어는 람보르기니 특유의 시저도어다. 마치 문의 뒤쪽이 하늘을 향해서 수직으로 열리는 모양이 가위 날의 움직임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운전석에 앉아 있던 노랑머리의 염색을 한 남자는 선명하게 '1'이라고 쓰인 숫자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혹시 저 남자가 아닐까.’
남자 가슴에 쓰인 숫자를 보자 세희의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지는 것 같았다. 일부러 천천히 계단을 향해서 걸었다. 자동차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그녀가 자동차 잡지의 기자로 근무하는 것은 자신이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아마 다른 자동차였으면, 그냥 오늘 선 보는 것에 집중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 앞에 보이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얼티밋은 지난달에 그녀가 취재한 바로 그 차였다. 전 세계 600대만 있으며, 한국에는 단 7대밖에 없다. 그중에 한 대를 지난달에 그녀가 취재했는데 그때의 아벤타도르 얼티밋은 금색이었다.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자동차 색상은 코발트빛깔이다. 지난달에 본 화려한 금색보다 코발트 색상 지금 눈앞에 있는 차가 더 멋지게 보였다. 탄소섬유로 만들어서 차체 무게는 겨우 1,300kg 밖에 안 되고, 검은 바퀴 안쪽으로 붉다 못해 벌겋게 보이는 휠 안쪽의 프레임은 람보르기니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감춰진 화려함이다.
계단을 지나치면서 그녀의 시선이 다시 한번 운전석의 남자를 향했다. 남자의 체구는 날씬하고 키는 크지 않지만 탄탄한 몸매를 가진 것 같았다. 1등급 남자들도 여타 사람들처럼 어깨와 발바닥에 각인이 새겨져 있을 터였다.
태어날때부터 강제로 국가에 의해서 새겨지는 카지노 가입 쿠폰 각인은 암호화된 바코드까지 붙어 있어서 사실상 원천적으로 위조 자체가 불가능하다. 단, 특별한 경우 국가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든지 하는 경우 윗 카지노 가입 쿠폰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시술은 가능하다. 아마 점례의 신랑이 그런 케이스일 것이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데 세희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왼손이 핸드백을 매고 있는 어깨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옷 위에서 마치 그 등급이 새겨진 입체 각인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만졌다. 여느 사람들처럼 세희의 어깨에도 등급을 나타내는 문신이 'GRADE 4'라고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서로 만나면서 알아보기로 약속한 물건을 꺼낼 시간이었다. 현관 유리문을 열면서 세희는 핸드백에서 부채를 꺼냈고, 책을 들고 있는 남자가 멀리서 손을 드는 모습을 보았다. 세희는 내심 카페 안에 자신이 만나는 남자가 없기를 바랐다. 카페 안에 만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저 밖에서 람보르기니를 타고 있는 남자가 오늘 자신이 만나는 상대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런 행운이 쉽게 찾아 올리가 없었다.
앞에 앉은 남자는 소도둑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덩치는 산만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금테안경을 쓰고 있었다. 세희는 이미 미국 친구에게 얘기를 들어서 단번에 알아보았다. 살짝 곱슬머리에 얼굴에 난 곰보자국들, 큰 덩치, 벌어진 앞니의 틈. 딱 절친의 설명은 정확했다. 사촌오빠는 딱 보면 촌사람처럼 생겼어. 직접 만나보면 알 거야. 호호호. 친구의 말이 다시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뭐, 드시겠어요?”
남자가 세희를 보고 실실 웃었다.
“전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 마실게요.”
남자가 맘에 들면 달콤한 캐러멜카페라테를 마실 생각이었지만, 빠른 시선으로 남자의 전신을 스캔해 본 결과는 대단히 실망이었다. 일단 남자의 셔츠에는 4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그건 자신과 같은 4등급이란 뜻이다. 등급제 시행 이후에 등급을 속이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물론 숫자가 표시된 옷을 입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8등급 남자가 4등급인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자신도 같은 4등급이라고 속이고 결혼했다고 혼인 자체가 무효처리 되기도 했다. 수영장도 갔다고 했는데 살색 실리콘을 정교하게 위조해서 왼쪽 어깨에 붙였다고 하니 그것을 방송으로 보도한 앵커들도 할 말이 없다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숫자가 있는 셔츠를 입을 때는 왠만하면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자신의 등급에 맞는 숫자를 선택해서 입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고 있다. 물론 다들 결혼이나 비즈니스가 아닌 경우는 대부분 ‘1’이나 ’ 2’를 많이들 선호한다. 그냥 평소에 ‘1’과 ‘2’가 적힌 티셔츠나 여타 가방 같은 것을 입거나 들고 다니는 것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으니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이런 결혼을 전제한 미팅이나 ‘선’ 자리는 다르다. 아예 등급표시가 없이 나오거나 등급을 연상시킬 때는 반드시 자신의 등급을 표시하고 나와야 오해의 소지가 서로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 간혹 자존감이 아주 높은 남자들은 일일이 여자에게 설명하기 싫어서 아예 이처럼 등급을 표시하는 티셔츠를 입고 나오기도 한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난 이미 8등급이니 알아서 해라. 여자가 예쁘면 다 아니냐. 뭘 또 따지냐는 식이다. 하긴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 중에는 아예 9등급 연예인임을 당당히 알리면서 대중들에게 인기몰이를 하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뭐야, 칫, 높은 카지노 가입 쿠폰일거라고 하더니 그럼 그렇지. 나랑 같은 4카지노 가입 쿠폰이네.’
세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자신과 같은 4등급의 남자다. 하긴 뭐 자신도 4등급인데 무슨 이제와서 상대 남자가 자신보다 등급이 높기를 바라는 자신 스스로가 속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점례만 만나지 않았어도 어떻게 보면 평온할 수 있는 삶이었다. 소도둑처럼 생긴 4등급 남자는 아까부터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마의 땀을 연신 닦아내고 있었다.
“세희 씨는 취미가 뭐예요?”
“저는 영화 보고 음악 듣고 하는 것 좋아한답니다. 좀 정적이죠?”
“와, 저도 영화 좋아해요. 음악도 좋아하고요.”
세희는 바로 앞에 앉은 남자가 자신을 맘에 들어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여기서 남자의 손은 자신을 향해서 뻗어 있으니 자신만 손을 뻗으면 맞장구가 쳐질 터였다. 어느 TV CF에서 나온 말이 기억났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했던가. 아니, 그건 CF일 뿐이다. 진짜 순간의 선택은 평생의 운명을 바꾼다. 세희의 결정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 뒤에 막 자리를 잡고 앉은 람보르기니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앞의 4등급 남자가 아까부터 농담을 하고 있는데 세희는 마치 분신술을 하듯이 자신의 의식 한 조각을 떼내서 아까 입구에서 본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앞에 앉은 남자와 얘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모든 의식은 카페 밖 운전석에 있던 남자에게 가 있었다. 왜 밖에만 있지? 안에는 들어오지 않나. 그렇게 그녀의 머릿속 한 군데의 생각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람보르기니 1등급 남자는 조금 전 카페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남자는 현관에서 몸을 돌려 호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들고 차량을 향해서 살짝 눌렀다. 삐빅 하는 자동차 잠금소리가 카페 안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는 남자는 바로 주문데스크를 향했다.
세희는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와 얘기를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람보르기니 남자의 모든 행동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멀티태스킹 행동이었다. 여자의 멀티태스킹 능력은 남자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원시시대부터 이런 능력으로 생존을 거듭해 오면서 진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세희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감탄했다. 앞의 남자는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람보르기니 남자는 주문 데스크로 가서 카페라테와 시폰 케이크 하나를 시켰고, 진동벨을 받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벨이 울리자 양손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가서 그걸 마시고 있었다. 람보르기니 남자가 선택한 자리는 창가 쪽 자리였는데, 안쪽에 앉은 세희 입장에서는 동시에 두 남자가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 자신의 앞에 앉은 남자의 뒷자리에 람보르기니 남자가 앉아 주는 바람에 운 좋게도 세희는 한 자리에서 두 남자의 모습을 다 볼 수가 있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미팅을 하고 있던 남자가 일어서자 세희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 거의 사팔뜨기가 될 뻔했던 자신의 시야를 집중해서 서너 테이블 건너 맞은 편의 람보르기니 곱슬머리 남자에게 집중할 수가 있었다. 머리에 노란색으로 염색한 것은 맘에 들지 않았지만 뭐 어떠랴. 그 금발 곱슬머리 남자는 가슴에 1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당당하게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투명한 커피 테이블 위에는 람보르기니 문양의 키링과 스마트키가 놓여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다 보이게 놔 두면 안되는데. 혹시 자신이 미팅을 하는 사이에 다른 여자들이 와서 말이라도 걸지 않을까. 세희는 괜한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먼저 찜한 보물인데 혹시라도 다른 누군가 눈독이라도 들이면 짜증이 확 올라올 것 같았다.
역시 슈퍼부자들은 다르구나. 1등급이란 말은 슈퍼부자이거나 천재급 인재이거나 딱 두 가지밖에 없다. 슈퍼부자이면서 천재는 거의 못 본 것 같았다. 회사를 일으켜 세워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국가에서 용인하는 것은 2등급 까지다. 그러니 현대사회에서 1등급을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1등급 남자를 만나기도 힘든데, 이런 절호의 찬스가 어디 있나. 더구나, 아까부터 1등급 람보르기니 남자도 자신 쪽을 향해서 시선을 힐끔거리면서 이따금씩 시선이 마주치곤 했다. 세희는 대학시절 많은 남자를 사귀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습성에 대해서 터득했다. 남자들은 관심이 없으면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람보르기니 남자가 계속해서 이쪽을 힐끔거리면서 쳐다보는 행동은 세희의 미모를 보는 것이 분명했다. 하여튼 남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날씬하고 건강한 여자를 좋아한다. 요즘 나잇살이 붙으면서 20대만큼의 상큼 발랄함은 빠졌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관록의 맛이 남아있었다. 사회도 좀 알고, 적당히 거친 농담도 잘 피해 갈 줄 알았다. 그 시선에 매번 마주치는 것은 헤프게 보일 것이고, 너무 시선을 피하면 자신이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앞에 앉은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따금씩만 창가의 남자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당연하게도 세희는 절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했다. 저렇게 관심을 보인다면 조금 자신이 과감하게 결정해도 되지 않을까.
남자들이 항상 말을 먼저 걸고 사귀는 것은 구태의연하다. 요즘에는 여자들이 걸크러시 같은 기운으로 먼저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데이트 신청도 한다. 슈퍼 컴퓨터같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상대를 파악했고 본능보다 빠른 계산이 끝났다. 계산은 빠르게 그리고 결정은 더 빠르게. 그녀가 핸드백에서 동그란 파운데이션 쿠션을 꺼내서 양 볼에 톡톡 쳤다. 그녀의 결정이 끝났다는 의미였다. 그리곤 립스틱도 다시 한번 발랐다. 립스틱과 파운데이션을 핸드백에 다시 넣었다. 람보르기니 엑셀에 하이힐을 대고 밟으면 어떤 소리가 날까. 그때 화장실에 갔던 남자가 웃으면서 나타났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장소 옮겨서 어디 식사라도 할까요?”
세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서면서 남자의 말에 답했다.
“아뇨, 죄송합니다. 제가 웬만하면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요. 그쪽은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서로 시간낭비인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려고요.”
세희의 입에서 급해서 말라버린 쉿소리 같은 것이 올라왔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은 탓이다. 이 남자와 실랑이를 하다가 람보르기니 남자를 놓치고 나면 정말 후회가 될 것 같았다.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자신의 목소리가 창가쪽까지 최대한 넘어가지 않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창가쪽에 앉은 람보르기니 남자는 자세도 바꾸지 않고 핸드폰에 시선을 콕 박아두고 있었다.
세희는 말하면서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화라도 내면 괜히 너무 오늘 미팅을 주선해 줄 친구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상대 남자는 전혀 그런 표정 같지는 않다.
“아, 세희 씨 생각은 그렇군요. 아쉽네요. 저는 맘에 들었지만, 이것도 운명이겠지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남자는 쿨하게 반응했다. 남자가 의자 옆에 걸쳐 둔 캐쥬얼 양복 상의를 걸치고는 그녀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남자와 악수를 했다. 남자의 손은 크고 거칠고 따스했다. 남자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뭔가를 찾는 듯한 행동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세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뭘 잃어버린 것도 아닌 것 같은 데, 꾸물적거리지 말고 빨리 좀 나가지. 앞에 있는 남자가 나가면 자신은 람보르기니 남자에게 가서 대시를 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인사를 하면 좀 이상할 것이다. 스스로 일단 소도둑을 닮은 4등급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나가면 자리를 바로 창가 쪽의 남자 쪽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그녀는 최대한 인내하면서 자신의 눈앞의 남자를 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녀 시선의 초점은 남자의 얼굴에서 살짝 옆으로 보이는 람보르기니 남자를 향했다. 그 남자는 편안하게 의자 뒤에 등을 기댄 채로 핸드폰을 살펴보고 있었다. 사이사이 문자도 하는 모양이 마치 SNS나 메시지를 친구들과 주고받고 있는 듯 보였다. 남자의 양 볼에 살짝 보조개도 파여 있었다. 1등급 남자답게 취미생활은 골프일 것이다. 해외 나가면 요트로 산호초 사이를 스킨스쿠버 복장으로 누비고 다닐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피부는 까무잡잡하고 어디 골프나 요트를 타고 다니는 듯한 고급스러운 리넨바지에 하얀 양말과 랜드로버 스타일의 구두는 고급져 보였다.
한동안 양복 상의와 바지 주머니를 툭툭 치면서 뭔가를 찾던 4등급 남자는 뭐가 생각 난 듯이 머리를 한번 짚더니만 바로 목례를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저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세희 씨 오늘 너무 반가웠습니다.”
4등급 남자가 일어서니 세희의 생각보다 키가 컸다. 조금전에는 창가의 남자에게 신경을 쓰느라 자세히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세희도 남자가 일어서자 따라 서서 목례를 했다.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세희는 남자가 나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서너 테이블 정도 떨어진 곳에 앞에서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는 1등급 남자를 쳐다보았다. 1등급 남자는 여전히 다리를 꼬고 앉아서 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은 핸드폰에 여전히 가 있고, 사이사이 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자리로 가서 뭐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까부터 봤는데 그쪽이 맘에 들어요. 이건 너무 통속적이다. 좀 더 임팩트가 있는 단어이면 좋겠는데. 자동차에 대한 얘기는 어떤가. 람보르기니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가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단순한 속도감이 아니다. 운전자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는 스포츠카. 충돌사고가 나면 산산조각이 나는 차가 바로 람보르기니다. 충격을 사람에게 가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 도심에서 백 킬로 이상 달리던 호날두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멀쩡하게 걸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차는 산산조각이 나서 폐차되었다. 리미티드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
핸드백을 챙겨 어깨에 메고 커피까지 들었다. 아예 옆으로 가서 앉아 그리고 대화를 해 보는 거지 뭐. 점례, 그년만 뭐 남자 잘 만나서 대박나라는 법이 어딛어. 나 보다 몸매가 좋기를 해. 미모가 예쁘기를 해. 어디서 닭털 뽑다가 나온 년 같이 맨날 머리는 부스스하게 하고 다니기만 하던 년이. 세희는 드디어 마음을 굳혔다. 그녀의 손이 샤넬 백을 향했다. 그걸 짚어서 막 일어나려고 하는데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커피숍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네, 사장님, 전 여기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남자는 얼른 테이블 위에 있는 자동차 스마트키를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쟁반을 통째로 들고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에 반납했다. 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세희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를 따라잡으려고 그녀도 서둘러서 쟁반을 반납했다. 그리고 남자가 문을 열고 나가는데 현관문 밖 주차장 람보르기니 앞에 조금 전 자신이 미팅했던 4등급 남자가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1등급 남자가 전화를 하고 있던 4등급 남자를 보면서 목례를 하고는 자동차 키를 두 손으로 건넸다. 방금 미팅을 마친 4등급의 소도둑 남자는 키를 받더니만 문을 열었다. 자동차 운전석 문 뒤쪽이 하늘로 올라갔다. 운전석에 4등급 소도국 남자가 앉자 서서히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리곤 운전석 창문이 서서히 내려갔다. 4등급 남자가 창문 턱에 왼팔꿈치를 기댄채로 고개를 내밀었다. 긴장한 표정으로 아직 차 앞에 서 있는 1 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남자에게 한마디 했다.
“고생했어요. 김 과장님. 그럼 차에 이상은 없는 거죠?”
“네, 정기검진도 이상 없습니다. 대표님, 참 이 티셔츠 감사해요.”
람보르기니에 앉은 남자는 대답 대신 엄지를 들어 보였고, 창문이 닫히더니만 차는 순간 엄청난 배기음을 부응하고 남기고는 카페 밖으로 떠나갔다. 부웅하는 특유의 발진소리를 남기고 주차장에서 멀어졌다. 세희는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뭔지 머리속이 엉켰다. 해석이 안되고 있었다. 4등급 티셔츠는 뭐고, 람보르기니는 뭔지 이해가 안되었다. 숫자 1이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방금 나간 자동차가 사라질때까지 구십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는 뭔지 이해가 안되었다. 자신의 전화기가 울렸다. 미팅을 주선해 준 친구였다.
“가시나야, 우리 사촌오빠가 얼마나 큰 사업하는 사람인데 니도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다야.”
전화가 끊겼지만 세희는 람보르기니가 사라진 자리에서 숫자 '1'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통화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한동안 입을 떡하니 벌리고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네, 팀장님, 고객님 차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현장점검 마쳤으니까 오후에는 반차내고 좀 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