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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하윤 Apr 30. 2025

13년 전 나는, 카지노 게임 추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날카로운 관찰자였던 20대의 이야기

오래전에 남겨둔 비밀 기록을 다시 열어봤다.20대였던 내가 세상을 해부하듯 바라보던 시절.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이, 그 시절 그대로 글 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카지노 게임 추천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남몰래 쓴 일기를 들여다보니,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카지노 게임 추천을 날카롭게 관찰했는지 알 수 있었다.


"A를 알면 알수록 그것이 ‘난 대단한 카지노 게임 추천이니까 나보다 못한 다른 카지노 게임 추천들을 내가 돌봐줘야 해’라는 또 다른 오만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3년 전, 나는 A라는 카지노 게임 추천을 알게 되었다.동갑내기였던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엘리트였다. 어머니에게는 남편 같은 든든한 아들이자, 할머니에게는 하나뿐인 귀한 손주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항상 암묵적 우두머리나 중립자로 통했다.


미국 유학 생활 중 귀국해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었던 A와 나는 '친구'와 '연인' 사이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았던 우리는 거의 사흘에 한 번 꼴로 만나곤 했다. 그는 평소 인권 문제와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많았고, 정치와 종교 성향까지 나와 많은 부분 일치했다. 처음에는 그런 그가 특별해 보였다. 좋은 배경을 가지고도 거만하게 구는 다른 카지노 게임 추천들과 달리, 속이 깊고 예의 바른 카지노 게임 추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의 겸손함이 진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겸손이 타인을 향한 은근한 우월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가면을 쓰고 살아도, 말투와 단어 선택 하나까지 가릴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저러니까 택시 기사나 하고 살지, 내가 불쌍히 여겨야지." 같은 말을 무심히 뱉곤 했다. 사회적 약자는 '자신이 돌봐야 할 대상'이었고, 일상 대화에서도 '감히', '이런 취급' 같은 단어들이 습관처럼 튀어나왔다. 그의 언어는 그가 숨기려 했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A가 자신의 전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벌어졌다. 그는 자신을 좋아하는 여동생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여자친구가 이 사실을 문제 삼고 화를 냈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그건 잠정적 바람이라고 생각해. 그 여자분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날 만한 일이었어."


그 말에 A는 격분했다. 자신을 그런 카지노 게임 추천으로 여겼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보통 바람을 피우는 카지노 게임 추천들도 성격에 대단한 결함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멀쩡하고 사회적으로 훌륭한 카지노 게임 추천도 순간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어."그러나 그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눈에는 그가 관찰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과 행동, 억지스러운 반박과 방어기제까지. 당시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아무리 나쁜 카지노 게임 추천이라도 다 자신만의 논리가 있겠구나. 그렇다면 그건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논리인 걸까, 아니면 스스로의 잘못을 외면하고 싶어 머릿속에서 만든 환상인 걸까?"

"내가 지금 저 카지노 게임 추천을 이해 못 하는 것처럼, 저 카지노 게임 추천도 지금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저 카지노 게임 추천처럼 얄팍한 겉모습으로는 겸손하고 예의 바르지만 속으로는 오만함이 가득 찬 카지노 게임 추천보다, 차라리 겉으로도 오만한 카지노 게임 추천이 인간적일까? 아니면 굳이 내면까지 들춰가며 카지노 게임 추천을 평가하는 내가 못된 인간일까?"


그때의 나는 상대를 해부하면서, 동시에 내 안의 오만함과 싸우고 있었다. 나 역시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어쩌면 상대를 논리로 꺾고 싶은 욕망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대화에서 나는 끝까지 내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난 부족해. 나도 아직 미성숙한 카지노 게임 추천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나도 너에게 뭔가를 잘못할 때가 있겠지. 하지만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그는 앞부분은 수긍했다. 하지만 "너도 마찬가지야"라는 한마디는 결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의 자존심은 금이 간 유리처럼 위태로웠다. 그는 "난 어디 가서 이런 취급받아본 적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나를 깎아내리며, 자신을 방어하려 했다.


사실은 뼛속까지 자기가 대단한 카지노 게임 추천이라고 여기고 있는 그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 "자, 이게 너의 본모습이야. 네가 아직도 대단한 카지노 게임 추천 같아? 니 속은 추악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속의 깊은 충동까지 겪었다.


그날,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뼈아픈 무언가를 배웠다. 일기의 끝부분에서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배운 점을 적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과의 교제, 특히 알면 알아갈수록 감정이 깊어지며 가장 강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는 내밀하고 깊은 속을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된다. 나 아닌 다른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법도, 그리고 타인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단 사실도 나는 그를 통해 배웠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끝없는 좌절을 동반하는 일이라는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래의 자신에게 이런 다짐도 남겼다.


"앞으로 나 자신이 누군가를 만나면서 상생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했을 때, 그걸 일찍 깨달을 수 있는 지혜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그런 단단한 마음을 그를 통해 얻었기를 바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다짐을 어설프게나마 지키고 있다. 누군가를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필요하다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거리를 둔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애써 봉합하려 하지 않고, 다만 받아들인다.




오래전에 남긴 글을 덮으며, 나는 13년 전의 나를 바라본다.그때의 나는 세상을 해부하듯 바라보았다. 타인의 말과 행동 너머에 숨은 진짜 마음을 꺼내고 싶었고, 스스로 모순을 깨닫길 바랐다. 어쩌면, 그마저도 내 안의 오만이었을지 모른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 A도 조금 더 넓은 사고를 가지게 되고, 이 카지노 게임 추천의 인생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플러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생각 자체가 나의 오만함이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은 스스로 준비되지 않으면, 누가 아무리 옆에서 말을 해도 변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그것을 몰랐다. 모든 카지노 게임 추천에게는 자신만의 논리와 방어기제가 있다. 내가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의 핵심 가치관을 흔들 수는 없었다.


당시 나는 인간관계에 회의감까지 느꼈다. 카지노 게임 추천들을 알면 알수록 실망스러웠다. 왜 카지노 게임 추천들은 깊이 알수록 결점이 드러나는 걸까? 나는 그들의 속을 해부하듯 들여다보았고,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에게도 여러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카지노 게임 추천을 세밀하게 해부하려 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숨겨진 의도를 찾으려 했다. 마치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보듯, 인간이라는 존재를 세세하게 해부하는 방식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관찰자다. 하지만 방식이 달라졌다. 이제는 겉모습과 행동 패턴을 보며, 선한 기질인지, 꿍꿍이가 있는 타입인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행동과 말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헤치기보다는,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의 전체적인 인상을 본다. 연필로 세세하게 묘사하던 그림에서, 붓으로 풍경 전체를 그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닮아 있다. A를 통해 나는 내 안의 완벽주의와 오만함을 봤다. 다른 카지노 게임 추천을 바꾸려 했던 그 시도 자체가, 어쩌면 내가 가장 비판했던 그의 태도와도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는 날이 서 있었다. 지금은 그 날카로움을 조금 내려놓았다. 무뎌진 만큼, 그 안에는 조금의 여유나 관용이 깃들었기를 바란다.


이제는 누군가의 모순을 지적하기보다는, 그 모순을 포함한 채로 그 카지노 게임 추천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여전히 나는 관찰자의 위치에 있다. 다만, 예전보다 유연한 시선으로 바라보려 한다. 결점을 해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서로 닮은 구석'을 발견하기 위해서.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거리를 천천히 좁혀가며, 때로는 그 거리 너머에서 나 자신을 비춰보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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