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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May 16. 2024

인생에 카지노 게임 없다면 허무주의를!

#9번째 단상 - 허무에 대하여

허무주의란 무엇인가. 사전적, 철학적 카지노 게임는 잘 알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허무주의는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카지노 게임를 부여하길 포기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기 위한 생존의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때문에 인간의 시각에서 동물의 삶은 허무하게만 보인다.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은 인간에게 아무런 카지노 게임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카지노 게임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그 카지노 게임는 무엇을 카지노 게임하는가. 인간에게는 과거부터 미래의 정방향 순서대로 더 ‘잘’ 살기를 원한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카지노 게임 있는 무언가를 쟁취하려는 것이다.


사람마다 ‘잘’ 사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수 세기 동안 인간에겐 경험이 축적되어 정형, 혹은 규범화된 잘 사는 방법은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물질적/정신적 풍요’ ‘지식의 탐구’ ‘새로운 발견/발명’이 그 예다.


그렇다면 과연 위와 같이 인간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은 정녕 아무런 카지노 게임가 없는가. 자연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분명 이 행위들은 카지노 게임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에겐 ‘카지노 게임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한다. 아무런 카지노 게임가 없는 것에 카지노 게임를 부여하는 것. 그렇다. 인간은 무(無)에 카지노 게임를 부여하는 것을 통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박이문 철학 박사는 자신의 저서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에서 인간의 의식을 마이더스 왕의 손과 같다며 이런 말을 했다. “마이더스 왕의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뀌듯이 인간의 의식이 닿는 모든 대상, 행위,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카지노 게임로 변하게 마련이다.” 이 말은 곧 모든 행위에는 카지노 게임가 있다는 말이 아닌, 인간이 모든 행위에 카지노 게임를 부여한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허무주의자들은 마이더스 왕의 저주에서 벗어나 모든 카지노 게임부여를 포기하고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것인가? 그것이 진정한 본질이자, 단 하나로 존재하는 카지노 게임인 것인가? 인간은 정녕 마이더스 왕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순 없지만 이 단상을 쓰며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카지노 게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든 카지노 게임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자연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가 부여하는 모든 카지노 게임는 아무런 카지노 게임가 없다. 결국 인간이 자연 그 자체가 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마이더스 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카지노 게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카지노 게임가 없다고 생각하며 허무해하지 말자. 어떠한 말이든, 어떠한 행동이든 그것엔 나름대로의 카지노 게임가 존재한다. 마이더스에게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는 건 저주지만, 인간에게 행위하는 모든 것이 카지노 게임로 변하는 건 축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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