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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주 Mar 06. 2025

홈 스윗 스윗 홈

즐거운 나의 집

고향에서 내가 기억하는 집은 네 곳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집과 두 달가량 살았던 집은 제외한 것이기에 사는 동안 5번의 이사를 한 셈이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와 타향살이를 하며 나는 8번의 이사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지금 사는 집 이전에 살았던 곳들을 나는 집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곳들은 그저 방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돈과 가방 하나만 들고 올라왔던 서울에서 내가 처음으로 지낸 곳은 아는 언니의 집이었다. 정확히는 친구가 아는 언니의 집. 역에서 내려 15분가량 걸어가면 나오는 언니의 집은 반지하 투룸이었다. 작은 부엌과 계단 위에 있는 욕실. 내게 주어진 방은 넓었지만 겨울에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10리터짜리 제습기를 돌려놓고 외출카지노 게임 사이트 돌아오면 늘 물통이 가득 차 있었다. 언니는 집으로 오는 골목길에서 술 취한 남자가 시비를 걸어 장우산을 휘두르고 도망친 적이 있다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깜짝 놀랄 정도로 싼 가격의 집이긴 카지노 게임 사이트.


겨울이 오기 전 나는 회사 근처로 이사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 서울 최고 번화가의 지하철 역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그 집, 아니 그 방은 커다란 건물 2층에 있었다. 내 키보다 조금 더 길고 내 어깨너비보다 조금 더 넓은 침대 위에는 기다란 봉이 세로로 달려 있었다. 빨래를 널기 위한 용도였다. 침대와 비슷한 폭의 책상 밑에는 작은 냉장고가, 위에는 선반이, 양 옆에는 사물함이 달려 있었다. 그곳에는 내 방 말고도 십여 개의 방이 있었으며 우리는 아주 작은 화장실 겸 샤워실 두 개를 같이 썼다. 공용 주방에서는 중국산 김치와 쌀이 무한으로 제공됐다. 창문이 없는 내 방의 월세는 33만 원이었고, 사람들은 그곳을 고시원이라고 불렀다.


고시원에서 11개월을 지낸 나는 약간의 목돈을 모아 작은 원룸으로 이사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상할 정도로 큰 샤워부스가 방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은 그곳은 예전에 여인숙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텔이라고 하기엔 위치가 시장 한복판의 3층이라 눈에 전혀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 성범죄자가 많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동네였지만, 나 혼자서 세탁기와 냉장고를 쓸 수 있었고, 물가도 쌌다. 온전히 내 힘으로 이사를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자랑스레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어떻게 말도 없이 이사를 했냐며 부모님이 부랴부랴 상경하셨지만 세 사람이 들어오자 그곳은 꽉 차 버렸다. 엄마는 아주 슬픈 표정으로 시무룩하게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걸 어떻게 방이라고 할 수 있냐고. 엄마에게는 방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집이었는데. 그 후로 나는 집을 집이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나는 고만고만한 방으로 계속 이사를 다녔다. 좀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잦은 이직으로 출퇴근 거리가 자꾸 변했기 때문이다. 이사를 자주 할수록 그만큼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알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카지노 게임 사이트 강북에서 강남으로, 강남에서 성남으로, 성남에서 강서로, 그리고 다시 성남으로 옮겨 다녔다. 공간은 조금씩 넓어지고 세간도 늘었지만 그에 비례해 보증금도 월세도 쭉쭉 늘었다. 내가 지금 집 직전에 살았던 곳은 소위 말하는 반전세로, 내가 처음 살았던 원룸에 비해 월세는 두 배였고 보증금은 스무 배도 넘었다. 심지어 역세권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엄마도 아빠도 이곳을 좋아하셨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보다 두 배는 더 넓었기 때문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시 집을 집이라 부를 수 있게 됐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석 달쯤 지나 나는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 해에는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어떻게 감당하고 또 해치웠는지, 선명한 기억에도 불구하고 잘 실감이 안 난다.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아빠가 아셨으면 정말로 자랑스러워하셨을 텐데, 하는 마음에 조금은 슬펐다. 이 집은 진짜 집이기 때문이다. 오롯한, 나의 집. 대신 엄마가 코를 잔뜩 높이고 다니시긴 했으니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아빠몫까지 합해 코가 지붕을 뚫었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집을 정리카지노 게임 사이트. 이른 봄맞이 대청소라 해도 좋을 것이다. 좁아진 집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해 모든 물건을 아무 데나 쑤셔 넣고 쌓아놓고 살던 것이 화근이었다. 집을 창고라고 불러야 할 수준이 되었기에 나는 큰맘 먹고 모든 것을 다 새로이 정리카지노 게임 사이트. 가구를 옮겨대느라 팔과 다리에는 근육통이 생겼고 입가도 부르텄다. 거진 일주일이 걸려 정리가 거의 끝났다. 이제는 식탁에서 뭔가를 먹을 수 있다.


몇 달 후면 이 집으로 온 지도 2년이 된다. 예전에 이사를 하던 타이밍에 맞춰서 뭔가 싫증이 났던 걸까. 혹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변화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이 바뀌기 위해서는 환경의 변화가 필수라고 하니 나를 바꾸기 위해 일단 집을 바꿔버린 것일 수도 있다. 결심만으로 사람은 변할 수 없다. 삼일에 한 번씩 작심을 하며 연명해 가는 나 같은 이는 더 그러하다. 변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지만 가끔은 죽고 싶을 때가 있게 마련이다. 혹은 때때로, 혹은 자주.


매일,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향상심만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 무엇을 하든 동기부여가 좀처럼 되지 않는 내가 변화를 추구한다는 건 아직까지는 살고 싶다는 좋은 지표가 된다. 쓸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발걸음을 옮긴다. 때로는 뒷걸음을 치기도 하지만 나의 시선이 앞을 향하고 있는 한은 괜찮다.


날이 흐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집에 들어오면 된다. 집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는 동안 세상은 일시 정지하고 흐려진 나의 눈은 다시 또렷해진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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