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예술가로서의 무료 카지노 게임가를 읽고
소개, 오스카 와일드의 2인극
이 책은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 <나인틴스 센추리지에 연재한 두 편의 대화를 1891년 무료 카지노 게임론집에 묶은 책입니다. 각 목차는 오스카 와일드 특유의 장난끼가 드러나 있습니다.1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중요함, 2부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함입니다.이 글은 길버트와 어니스트라는 가상의 인물이 하룻밤 동안 나누는 대화 형식을 빌려,"무료 카지노 게임은 그 자체로 예술이자, 무료 카지노 게임가야말로 완전한 예술가라는 담대한 선언을 펼칩니다.
여기서 길버트라는 인물은 화려한 수사와 독설, 촌철살인을 쉴 새 없이 내뿜으며 대화를 지배합니다. 그리스 무료 카지노 게임학을 시작으로 하여 빅토리아 시대의 저널리즘까지 종횡무진하며 인용하는 모습은 오스카 와일드 본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지점에서 길버트라는 인물은 오스카 와일드의 자의식, 미학, 위트를 증폭시킨 페르소나 정도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어니스트라는 인물은 요약과 의심, 반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길버트의 장광설을 끊어낸 다음 "정말 그 말이 맞나?", "성실함은 필요하지 않겠냐?" 같은 대중의 입장에 선 상식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독자들의 의구심을 대신 표현하며, 내용 정리를 담당하는 스토리 라인 안전벨트 같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사실 어니스트(earnest)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성실하고 진지한 화법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렇게 길버트는 오스카 와일드의 미학을 대변하고 때로는 일부러 길버트에게 과장을 얹고 어니스트에게 반론을 맡겨 입장을 유동적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고로, 이 책은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가 직접 진술하는 게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가 배후에서 조종하는 2인극 정도로 보면 좋습니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무료 카지노 게임은 창조보다 더 창조적이다.
"최고의 무료 카지노 게임은 창조보다 더 창조적" 이라는 선언은 '칼이 방패보다 더 방어적'이라고 우기는 격이지만, 길버트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는 베토벤 열정 소나타를 연주하는 루빈슈타인을 예로 들며, 이미 완성된 악보를 통해 전혀 다른 음악을 건져 올리는 피아니스트의 순간을 무료 카지노 게임적 창조로 치켜세웁니다. 그러니까, 무료 카지노 게임가란 "작품의 빈틈이나 여백을 냅다 확장해 또 하나의 지도를 그려내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기서 "예술가로서의 무료 카지노 게임가는 "해설자는 2차 저작자일 뿐"이라는 통념에 시원하게 가래침을 뱉습니다.
이 부분을 간략학요약하자면, 조각가는 대리석을 고른다면, 무료 카지노 게임가는 그 조각상 위에 벚꽃을 피워놓는 것입니다.
(2) 무료 카지노 게임 정신이 열어 놓는 사색하는 삶
길버트가 좋아하는 그리스 어 한 토막, 'bios theoretikos' 즉 "사색적 삶"은 19세기 영국식 새벽알림 배송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행동(doing)이 아니라, 존재(being), 더 나아가 끊임없이 되어가기(becoming)에 목적을 둔 삶을 누차 강조합니다. 그 이유는 "약간의 성실함은 위험, 과도한 성실함은 치명적"이라며, 세상일을 삽에 흙 퍼올리듯 쉴 새 없이 하는 건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결론인 것입니다. 와일드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은 '게으른 독서'가 아니라 '정교한 자기수리 공정'입니다. 자신의 감각과 사고를 무쇠처럼 단련해 어떤 시대, 어떤 작품에도 생각의 높은 탑에서 고개를 빼곱 내밀 수 있게 만드는 내적인 체육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세상이 뭐라고 재촉해도, 와일드는 소파에 드러누워 '지금은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라 부추깁니다. 그리고 이런 반항이야 말로 뇌의 운동이 되는 셈입니다.
(3) 아름다움의 해석 가능성은 무한하다.
예술작품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거기에 넣을 수 있고, 자신이 보기를 선택한 것은 무엇이든 거기에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림 한 점, 소나타 한 악장이란 완성형 오답노트가 아니라, 빈 슬롯이 가득한 레고 판인 것입니다. 이 말은 "정답은 작가가 알려준다" 식의 감상법을 한 순간에 폐교시켜버립니다. 작품을 둘러싼 수많은 '잘못된 읽기'가 어쩌면 '새로운 읽기'가 될 수 있다는 개안인 것입니다. 고로 관객과 독자는 감상자에서 공동 제작자로 승격됩니다.
결국 미술관이든 서재든, 작품 앞에 서면 안내 팜플릿 대신 포스트잇을 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껏 덕지덕지 붙여도 괜찮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라는 이름이 모두 책임져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포인트를 짚고 나면 <예술가로서의 무료 카지노 게임가가 말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은 곧 창작이다. 창작은 곧 사색이다. 그리고 사색은 끝임없는 변주다." 통념이 가벼운 슬랩스틱을 날리고, 독자를 돌연 '공저자'의 자리로 끌어올리는 이 세 가지 포인트가 이 책의 재미를 끌어올리는 힘입니다.
사실 이 책은 상당히 가볍지만 담겨져 있는 지식의 무게는 묵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나면,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따라옵니다. 어쩌면 이런 책이 가장 좋은 책일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이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품절되서 그런 듯합니다. 가격이야 올리는 사람 마음이니까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필사를 하고 싶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책을 들춰보는 걸 추천합니다. 재미있고 나름 있어보이는 문장들을 수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이 책의 내용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짧게 요약했습니다.
해 질 녘, 그린파크가 내려다보이는 피카딜리의 호사스러운 서재에 두 청년. 길버트와 어니스트가 마주 앉아 있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쇼팽을 막 끝낸 길버트가 담배를 찾으며 한담을 꺼내자, 소파에 기댄 어니스트는 책장에서 막 집어든 회고록을 비웃는다. "기억할 만한 일도 없는 사람들이 쓴 자서전이 왜 인기인지 모르겠어." 그의 조롱에 길버트는 루소와 벤베누토 젤리니를 예로 들며, "자아주의야말로 문학의 매혹이지.*"라고 맞받아친다. 순식간에 루소의 고백, 피프스의 일기, 셀리니의 살인과 조각상을 줄줄이 소환하며, 서재는 과거와 현재다 뒤섞인 장광설의 무대로 변한다.
(* '자아주의야말로 문학의 매혹이지' 라는 말은 문학의 감동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진실에서 온다는 뜻입니다. 작가가 자기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낼 때, 그것이 고백이든 자찬이든 심지어 수치든 그 안에야말로 진정한 문학적 매력이 깃든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들이 루소의 고백록, 피프스의 일기, 셀리나의 살인과 조각상입니다. 고로, 자아주의란 작가가 자기 내면, 경험, 감정, 실수 등을 중심으로 글을 구성한 것입니다.)
논의는 곧 음악으로 옮겨집니다. 길버트가 "음악은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창조한다." 라고 하자, 어니스트는 "무료 카지노 게임이 무슨 소용이냐"며 날을 세웁니다. 길버트는 "어떤 일을 행하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역설하며, 무료 카지노 게임이야말로 곡브 노동이자 예술가에게 필수적인 창조 행위임을 강조합니다. 이어서 "누구든 역사를 만들 수 있지만, 위대한 사람만 역사를 쓴다."라는 선언과 함께 행동을 상상력 부족의 피난처라 비웃습니다.
어니스트는 "고대에는 무료 카지노 게임가가 없었다."고 우기자, 길버트의 열강이 시작됩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롱기누스,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줄줄이 호출하며, "그리스인들은 본디 무료 카지노 게임가 민족"이라 단언합니다. 비극, 서사, 조형예술을 막론하고 그들이 남긴 분석적 전통이 오늘의 비학을 떠받친다는 논증으로 1부를 마무리합니다. 이 대목에서 길버트는 "무료 카지노 게임 없는 창작은 없다."며 예술가가 삶을 찰나적 완성으로 끌어올릴 때 필요한 선택과 생략의 감각, 즉 무료 카지노 게임 정신을 창조 능력의 핵심으로 끌어 올립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2부에서 두 인물은 윤리와 미학 문제로 맞붙습니다. 어니스트가 무료 카지노 게임가의 미덕으로 성실과 공정, 이성을 들이밀자 길버트는 "약간의 성실은 위험하고 과도한 성실은 치명적*"이라 일갈합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bios theoretikos'(관조적 삶)을 끌여와 행동(doing)이 아니라 존재(being), 더 나아가 되어가기(becoming)에 목적을 둔 삶"이야 말로 무료 카지노 게임 정신열어주는 이상이라 역설합니다. 세상 일에 매몰되는 대신 "생각의 높은 탑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정신적 거리를 확보하라는 주장입니다.
(*약간의 성실은 위험하고 과도한 성실은 치명적,이 말은 성실이라는 미덕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역설합니다. 성실이 때로는 자기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고 상상력과 사유를 검열하는 사회적 강박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과잉 성실은 창의성과 유연함을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무료 카지노 게임나 사유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정형화, 순응, 억압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실천, 행동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실천만을 유일한 가치로 치켜세우는 사회적 강박에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가 살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는 성실과 근면, 자기희생이 모든 삶의 미덕처럼 여겨졌기에 와일드는 이에 저항한 것입니다. 고로 이 말은 '행동하지 말자.'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이냐'로 해석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존재 또한고정된 것이 아닌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향해 '되어가는 상태'이므로 사유하고 관찰하고 해석하며 자기를 갱신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대화는 다시 창조와 무료 카지노 게임의 우열 논쟁으로 돌아갑니다. 어니스트는 "그래도 창조력이 더 높지 않아?" 라고 묻자, 길버트는 "최고의 무료 카지노 게임은 창조보다 더 창조적"이라고 쐐기를 박습니다. 그는 예술작품을 "누구든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거기에 넣을 수 있고, 보기를 선택한 것은 무엇이든 그 안에서 볼 수 있는 그릇"이라 비유합니다. 여기서 무료 카지노 게임가는 그 그릇을 활용해 원작에 없던 새 작품을 낳는 존재로 규정합니다.
밤이 깊어지자 현대 예술과 잡지 저널리즘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길버트는 "현대 창작품도 그저 그런 재능이 그저 그런 재능을 칭찬하는 광경"이라며 무료 카지노 게임가의 교양 부족을 개탄하고, 어니스트는 "그래도 몽상가인 당신이 현실을 지나치게 뒤집는다"고 받아칩니다. 긴 논쟁 끝에 커튼 사이로 빛이 바뀝니다. 길버트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몽상가는 달빛으로 길을 찾고, 세상보다 먼저 새벽을 본다.*"고 읆조립니다. 피카딜리 거리는 은빛 안개에 잠기고, 두 사람은 "잠들기엔 늦었다."며 코번트가든으로 장미를 보러 나섭니다. 사색과 담배, 논쟁으로 가득했던 밤은 이렇게 끝나고, 독자는 이 긴 대화를 통해 무료 카지노 게임이 창조와 사색이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체험한 채로 서재의 문을 함께 나서게 됩니다.
(*몽상가는 달빛으로 길을 찾고, 세상보다 먼저 새벽을 본다. 이 문장도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몽상가는 달빛으로 길을 찾고' 여기서몽상가는 캄캄한 밤(현실과 상식)에서도 상상력(달빛)으로 방향을 잡는 사람으로 묘사하여,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감지해 나아가는 예술가와 사상가의 면모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보다 먼저 새벽을 본다.' 이 부분은누구보다 먼저새벽(새로운 관점과 미래)을 목격하지만, 이로 인해 고독과 오해, 선구자의 고통을 떠안는 역설적 운명을 시사합니다. )
아 그것보다 벌써 일요일 5시 52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