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벌구이와 워닝트랙

2025-04-26T09:50:52Z

초벌구이와 워닝트랙 / 무릎 아홉시 뉴스 앞에서 베개도 없이 잠든 아빠의 얼굴 마음껏 마음을 드러낼 수 없을 땐 노곤함이 두드러기처럼 올라오는구나 “아빠, 방에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빠는 텔레비전을 등지고 나는 거실 불을 끈다 그러면 아빠는 더 다정하게 거실을 껴안으시고 갓 나온 오늘의 사건들이 아빠

다 나을 것 같은 봄날

2025-04-27T07:24:39Z

다 나을 것 같은 봄날 / 무릎 물을 엎지른 조카가 베란다로 부리나케 뛰어간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햇님한테 마르려고" 베란다 창살 그림자를 피해 젖은 옷소매를 꽃가지처럼 내어 놓는 조카 저릴 법도 한데 끝끝내 버티고 있다 나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왼팔을 가만히 들어본다

첫사랑이 누구냐고 묻는 첫사랑에게 - 과거여, 못 찾겠다 꾀꼬리

2025-04-12T13:55:11Z

첫사랑이 누구냐고 묻는 첫사랑에게 / 무릎 오래되지 않은 조카들과 숨바꼭질을 한다 붙박이장 속에서 무릎을 안은 채 숨어있으면 가족들이 영 입지 않던 옷들이 나를 한번 더 숨겨준다 축 처져 저려 있을 옷들의 소매를 하나씩 하나씩 다독이는 밤 답답했지 답답했지 너의 어둠이 우주였지 포켓에 얼굴을 묻으면 몇 년 전의 계절 냄새들. 그럴 때 나는 내 마음

[알림] 계속 연재해도 될까요? - 혹, 제 노숙일지를 기다려주시는 분이 계신가요?

2025-04-03T04:31:00Z

안녕하세요. 지난날의 노숙에 대해 쓰는 것에 대해 처음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다만 기억해 내고, 쓰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기도 하는군요. 혹 이 에세이를 눈여겨서 읽어주시거나, 연재를 기다려주시는 독자분이 있으실까요? (혹, 있으시다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 한 분이라도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연재를 계속 이어나가겠지만,

아르마딜로 - 응급한 마음은 왜 전염이 되나

2025-03-30T00:49:22Z

아르마딜로 / 무릎 응급실 옆에 두 평 남짓한 공용화장실이 있다 진료 전 용변이 급한 환자나 흐르는 피에 우물쭈물한 자 쉴 여력도 없이 삶을 잇는 소방관을 위한 간이터 오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여자에겐 적어도 두 딸이 있었구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언니가 토끼눈이 된 동생 머리를 헐떡이는 제 품으로 거두며 웅크린

노숙아니고 반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길거리에서는 차마 못 자는 쫄보

2025-04-10T08:02:11Z

[네 번째 이야기 갈무리] "돈도 아끼고 잘됐지 뭐, 그래. 괜찮다."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실패 속에서 위안을 찾는 것, 좌절 뒤에 좌절을 줄 세우지 않는 것. 남들 다 하는 의식을 치르지 않아도 달리 먹은 마음으로 몇백 미리의 개운함을 홀로 충당할 수 있는 것. 정말 정말 길었던 노숙 1일 차가 지나고, 노숙 2일 차가 시작되었다. [다섯 번째 이야

명문 고시원

2025-03-21T15:01:15Z

명문 고시원 / 무릎 이삿짐은 내일에나 도착할 것이다 불 끈 방 하루 중 가장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침대를 찾아 스며드는 나만의 첫날 밤 누운 나무와 누워있는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접촉이 미지근한 밤 이불이 없을 때 몸을 어떻게 뒤척여야 할지 베개가 없을 땐 고개를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몇 번이고 그러다가 넘어지는

불효미수 실패 - 홀로서기를 위한 노숙

2025-03-31T00:34:46Z

[세 번째 이야기 갈무리] 노선도 모르는 이 버스를 탄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뒤늦게 핸드폰으로 내 위치를 스캔했다. 그리고 인근의 찜질방을 검색했다. '이쯤이면 되겠구나.' 하차벨을 눌렀다. 내리는 사람은 나 한 명. 그런 한 명을 위해서도 귀 기울여주는 마음이, 실제가 지천에 있다. 오늘 만난 그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는 나를 대신해 내가 죽

오징어 횟집

2025-03-13T13:53:38Z

오징어 횟집 / 무릎 손님이라곤 우리 테이블 하나뿐이다 종종 떨어뜨린 뻘건 초장들로 식탁이 매울 때쯤 대학 동기들은 스끼다시로 놓인 새우처럼 배를 굽혀가며 웃는다 오늘의 주인공은 취직기념으로 몇 차 째 계산을 하고 있고 나만 이곳에서 혼자 갯벌이다 파도는 갯벌 아래로 들어가는 법을 모른다 그들은 그저 적시듯 나를 위로한다. 이따금의 빈도로 “나 먼저

내 죽음을 협박처럼 내놓던 일 - 잘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죽지 않는 삶이 필요한 거야.

2025-03-31T00:34:46Z

[두 번째 이야기 갈무리] 사람들이 어디로 가냐고 물어봤다. 아무렇게나 손짓을 하며 버스를 타고 갈 거라고 했다. 내 몸을 여러 번 바꿔 온갖 방향으로 서보아도, 불안과 안정이 팽팽한 점유율로 나를 둘러쌌다. 노숙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세 번째 이야기] 노숙이라 했지만, 길거리에서 날을 꼬박 새우는 건 어쩐지 무서웠다. (이렇게 겁이

노숙 1일 차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 "저는 도박중독자임을 시인합니다."

2025-03-31T00:34:46Z

[첫 번째 이야기 갈무리] 새벽인지 초저녁인지 분간하기 힘들법한 푸른빛이 하늘에 맴돌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든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망해버린 내 인생. 살짝 쌀쌀한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나는 이제 온전한 혼자가 되어있었다. 비겁한 도망의 시작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암묵적인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다. 누나네 집에서 나와 30

[프롤로그] 여기 한 명의 도박중독자가 있습니다 - 도박은 주체 하나만 망가지는 일이 아니다.

2025-03-31T00:34:46Z

지난주 토요일.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께 고질적인 도박의 재발과, 가혹한 빚의 굴레를 밝혔다. 사과드리려 했는데, 도박으로 인한 내 괴물적 습성이 너무 두드러져서 내 모든 말이 통보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 죄송해요. 미안해요. 근데 저도 도저히 저를 모르겠어요. 살려주세요. 살고 싶었어요. 잘하고 싶었어요. 자꾸 생각이 나요. 제가 둘이에요. 어

길고양이가 있는 곳엔 길사람도 있다는 것. - 노숙일기 _ 마포/공덕(1)

2025-03-31T00:35:26Z

경의선 숲길, 공덕에서 홍대 방면으로 걷다 보면 계절에 상관없이 풀 숲에 숨어 반짝이는 눈을 굴리는 생명체를 여럿 느낄 수 있다. 나는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아서 매일매일 길에 노출되어 있던 노숙자였지. 꽃샘추위 감돌던 3월에 집에서 나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마음으로 나온 것이다. 내 눈앞에서, 수화기 건너편에서 무너지고 울부짖던 가족들의 모습이

[구걸] 2년 만에 돌아와서 씁니다. - 이제는 죽겠다는 말을 그만하고 싶어서.

2025-03-31T00:35:26Z

안녕하세요. 무릎입니다. 2년 만에 브런치에 글을 씁니다. 일단 부끄럽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7번째 버전의 유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죽지는 못했습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큰 크기를 특정하여 사과를 드립니다. 저는 약 5년간 너무도 부끄러운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구차로 얼룩져있는 문장들이 뒤에 줄줄이 기다립니다.

뱀 - 선망과 혐오

2025-03-31T00:35:26Z

<뱀> 내 목에 긴 뱀을 둘렀던 날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담이 올 것처럼 목 주변에 긴장감이 스며든다. 처음 뱀을 둘렀을 때 나는 "으으" 하면서도 괜찮았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두를 수도 없는 뱀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몰랐던 공포는 알아버려서 혐오가 되는구나. 여럿이 모여 술을 진탕 먹고 나면 뱀처럼 주사를

엉망 스포일러 - 양들의 침묵

2024-08-25T09:03:16Z

[엉망 스포일러] * 스포일러지만 엉망 스포일러라서 끝까지 읽어도 무해함. * 영화 내용과 관련이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봤다는 영화를 나 혼자만 안 본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아바타]는 저에게 척척한 재질의 파랑뿐인 영화고요. [명량]은 저에게 있어 해구처럼 깊이 묻힌 영화입니다. 유명하지만 아직 보지 않은 영화가 수두룩 한 건

곧 봬요 :*)

2023-09-08T00:18:02Z

2월 1일부터 다시 용기내어 글을 써보려합니다.

초록과 초록이 부딪히면 (안부)

2024-12-08T21:48:57Z

우리의 마음이나 상상 안에 반드시 있을 초록들이 이제, 선명을 준비하겠다 싶습니다. 잊어주실 법도 한데, 있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규칙적인 게으름이나 간헐적인 등장을 이제는 부끄러워하겠습니다. 우리 더 선명해져요. 그래서 쨍쨍한 초록을 들고 건배라도 합시다. 초록과 초록이 부딪히면 꽃이 피는 소리가 날 거예요

우주와 지구와 나무

2023-01-28T05:31:23Z

우주를 자꾸 긁어보는 지구를 좋아한다. 그런 지구를 자꾸 따라하는 나무도 좋아하고. 그러고 보면 온통 큰 둘레들 안으려고 해도 안을 수 없는 무수들 그러니 안겨야지. 고맙다고 해야지. 덕분에라고 해야지. 그러고 나면, 내 옆에 당신이 있다. 우주라고, 지구라고, 나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당신이. 나의 아득을 덮어주는 가득이 되어줘서 고마

문득 예찬 - 문득, 행복하다고 느낄 때

2025-03-31T00:35:10Z

문득, 행복하다고 느낄 때 나는 문득이라는 단어가 예뻐서 몇 번을 읊어보게 된다. 자꾸 다독이게 된다. 문득은 느 리 게 발음하면 가만하지만 기민하게 내 옆에 와있다 숙련된 팔베개의 느낌을 품고. 문득은 빠르게 발음하면 툭 하고, 두텁게 내 옆에 와있다. 쌍디귿처럼 단단한 받침을 이고서. 문득, 행복하다고 느낄 때 문득을 여러 번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