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리 이별에는 이유가 없다

2025-04-01T12:18:32Z

“제주도 다시는 안 올 것 같더니.” 선영이 렌터카에 올라타며 물었다. 뒷 트렁크에 짐을 싣고 선영의 옆자리에 탄 희주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했다. “몇 년 전 일을 얘기하는 거니.” “하긴, 벌써 4년 전 일이다.” 선영이 운전을 시작하고 제주 도심을 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안도로가 나왔고 희주는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창문을 살짝 열었다. 오

12. 그 밤.

2025-03-28T09:58:01Z

지니. 그 이름이 희주의 귀에 박히는 순간부터 더이상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표정도 지어지지 않는데 이제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지니가 인사를 하며 뭐라고 희주에게 몇 마디를 건넸지만 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희주는 지금 자신이 고장 난 로봇 같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무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 지

11. 아무 것도 아닌 말, 아무 것도 아닌 행동

2025-03-28T03:14:19Z

[너 오늘 무섭게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모니터만 노려보고 있는 희주를 향해 선영이 사내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희주는 그 메시지창도 클릭하지 않은 채 계속 일만 할 뿐이었다. 아무런 잡생각도 들지 않게 새벽에 보았던 것 따위는 다 잊어버릴 만큼 희주는 일을 해야 했다. [지니 :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보고싶

10. 지니

2025-03-21T10:56:15Z

적응되지 않는 설레는 날들이 계속 흘렀다. 카지노 게임 출근을 하고 재헌은 낮에 알아서 자기 일을 보고, 저녁을 차려 놓으면 희주가 퇴근 후 같이 저녁을 먹고 술 한잔을 하는 날들이었다. 같이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하는 등 밖에서 돈을 쓸 일이 있으면 카지노 게임 무조건 자기 카드를 내밀고 계산했다. 서울에 있는 동안 재헌은 목수 일을 하지 못했고, 공방만 정리되면

09. 육지라이프

2025-03-18T13:26:27Z

“나 서울 좀 가야겠는데.” 어느새 12월 한 겨울을 앞 둔 어느 날, 재헌이 희주에게 전화했다. 그리고는 대뜸, 서울에 올라오겠다는 말을 했다. “서울에? 놀러?” “예전에 서울에서 아는 형이랑 같이 하던 공방이 있는데, 그걸 좀 처분해야해서 서울에 얼마간 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공방? 그런 게 있었어?” “그래. 니네 집 몇 평이냐? 나 잘 공

08. 육지와 바다

2025-03-14T10:55:22Z

카지노 게임가 잠 못 들던 밤과 달리 그 날 이후 두사람의 관계는 장거리 연애를 하는 여느 커플과 같았다. 재헌은 일을 하러 가기 전 카지노 게임에게 연락이 잘 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메시지가 오는 시간은 주로 새벽이었고, 밤 늦게나 일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가끔은 다음날 연락이 올 때도 있었지만 재헌은 주말에도 거의 일했고 쉬는 날이 별로 없었기에 희

07.폭풍우 치는 밤에

2025-03-11T11:06:38Z

희주는 낯선 제주시 시외버스 터미널을 둘러보았다. 항상 공항에서 위미리 쪽으로 직행했으니 제주시 중심 시가지에 온 건 처음이었다. 희주는 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재헌을 기다렸다. 제주시는 관광지라기보다는 일반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육지와 별반 다를 거 없는 그런 식당 많은 골목. 20분쯤 기다리자 골목 저 너머에서 재헌이 걸어왔다. 머리와 온

06. 메밀꽃 필 무렵

2025-03-07T12:19:15Z

[메밀꽃 폈는데.] 희주가 그 메시지를 본 건 다행히 3분기 보고서를 다 작성하고 난 후였다. 4시까지 달라는 팀장의 말에 핸드폰도 뒤집어 놓고 PC카톡도 끄고 보고서에 집중하길 잘했다. 중간에 봤었다면 아마도 희주는 보고서 완성을 못했을 수도 있었다. 팀장에게 보고서를 메일로 보냈다는 말을 한 후 희주는 핸드폰을 들고 1층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아이스

05. 읽지않음 1

2025-03-04T09:41:15Z

[오늘 저녁은 파티 참석하려고. 일 끝나면 와.] 희주는 재헌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거울을 봤다. 제대로 잠을 못 잔 것 치고는 얼굴이 꽤 괜찮았다. ‘진짜 하다니! 이희주, 미쳤어.' 희주는 왠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달라보이는 것 같았다. 어제 밤 재헌과의 시간은 희주에게 새로운 경험이었고, 자극이었다. 그런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 것도 처음이었고

불행을 파는 가게 - 어떤 불행이 필요하신가요?

2025-03-03T02:31:45Z

당신은 불행을 파는 가게를 본 적이 있나요? 불행을 파는 가게라니, 마치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길 어딘가에 다 깨진 조명을 깜빡이면서 사람들을 불행으로 끌어 당길 것만 같은 이름이죠. 하지만 아니예요. 불행을 파는 가게는 밤에는 문을 열지 않는답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열지 않아요. 따스한 햇살이 가득 내리쬐는 한낮에 어느 골목 길을 산책하듯 걷

04. 우연한 타이밍

2025-03-04T09:17:22Z

희주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한번 쯤은 만들었을 신용카드 회사를 다녔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나와 모두가 아는 대기업까지 한번에 취직한 희주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 엄친딸의 길을 걸어왔다. 본인은 전혀 모범생도 아니고 엄친딸도 아닌 그저 회사의 노예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날도 출근하자마자 회의가 연달아 두 번이 있었고, 길어진 회의에 점심 시간도

03. 막걸리 잔 속 귀걸이

2025-02-26T00:38:30Z

전 남친과 헤어진 후 서울에서는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제주에서는 머리를 대기만 하면 잠들었다. 기절하듯 잠들었던 희주는 아침 9시가 되어서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고, 그런 희주를 보며 맞은 편 침대에서 정민이 화장을 하며 물었다. “언니, 조식 드실래요? 여기 조식 커피랑 토스트, 알아서 해먹는 거더라고요.” “아, 조식.. 네, 같이 나가요.” 아직

02. 제주에 울러 온 미친.

2025-02-21T10:13:26Z

재헌은 제주에 사는 목수였다. 아니, 원래는 서울에 살았다고 했다. 제주에 내려온 지는 5년 정도 되었고 가끔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숲을 다니면서 쓸만한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본다고 했다. 낫을 들고 다닌 건 워낙 그 지대가 풀이 우거지게 자라서 다니기 불편해서 들고 다니는 거라고 했지만, 희주는 여전히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계속 흘겨보았다. 정

01. 제주에 사는 미친 놈

2025-02-19T04:20:07Z

“여기서 떨어져 죽으면 시체 찾는데 며칠은 걸리겠네.” 손수건으로 목덜미의 땀들을 훔쳐내며 희주가 중얼거렸다. 때마침 바람이 살랑 불어와 목덜미를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머리에 한껏 오른 열을 식혀주는 바람을 맞으며 희주는 아무도 없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2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제주도를 찾은 6월 초 여름, 희주는 올레길로 향했다. 스페인 산

요즘 내가 연예인이 부러운 이유 -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2025-02-11T13:35:05Z

새해를 맞아 세운 목표 중 하나가 '책 좀 읽자' 였다. 작년에는 정말 책을 너무 읽지 않아서 취미삼아 가끔 글을 씁니다, 라는 말을 하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나조차도 책을 읽지 않는데 책을 쓰고 싶다는 게 부끄러웠다)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평소 좋아하던 분들의 추천 책 리스트를 보고 몇권의 책을 샀다. 운이 좋게도 25년 들어 처음으로 읽은 책이 정말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10 - 다시 행운을 파는 남자

2025-01-19T01:47:05Z

#다시 행운을 파는 남자 두 사람의 모습이 더 이상 안보이자 행운을 파는 남자는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여전히 두 사람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입가에 쿠키 부스러기가 붙어있는 모습이 참 안어울린다고 행운을 파는 남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 떠나지 않겠다, 남자는 결심했다. 사람들은 다시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9 - 행운의 맛

2025-01-18T23:00:01Z

#행운의 맛 얼마나 된 기억인지 알 수도 없었다. 몇십년이 흘렀는지 몇백년이 흘렀는지 여자는 집을 나온 이후부터 시간을 세지 않았다. 여전히 지갑에서는 돈이 끊임없이 나왔고, 불행 외에는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여자는 존재하고 있었다. “너 그거 당장 돌려놓고 이리 와!” 멍이 든 여자의 찢어지는 목소리에 여자는 살짝 귀를 막았다. 불행한 것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8 - 음식을 먹지 않는 아이

2025-01-12T04:15:04Z

#음식을 먹지 않는 아이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손가락에는 반지를 목에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치고 태어났다. 온 몸을 감싸 안은 비단부터 보석으로 만들어진 침대까지 모두 여자의 것이었다. 여자의 부모는 이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었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여자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질 수 있었고 먹고 싶은 것은 뭐든지 먹을 수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7 - 방해꾼

2025-01-11T23:00:32Z

#방해꾼 “저기요 …” 낯선 방해꾼의 목소리에 불행을 사는 여자가 날카롭게 돌아보았다. 행운을 파는 남자도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목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앞에는 멍이 든 여자의 손을 잡고 왔던 더러운 아이가 서있었다. 멍이 든 여자가 처음 돈을 받아간 이후 아이는 잠시 깨끗해졌었는데, 어느새 다시 더러운

행운을 파는 남자, 불행을 사는 여자_06 - 불행을 파는 사람들

2024-11-10T15:27:04Z

#불행을 파는 사람들 그 날 이후 한 번 불행을 팔았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치 대결이라도 하듯 불행을 모아서 여자에게 불행을 팔고 돈을 받아갔다. 한꺼번에 많이 모아서 오는 사람도 있었고, 매일매일 조금씩 불행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후 베이커리 학원을 다니던 여자는 가게를 오픈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재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