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코끼리바지를 입는다

2025-05-15T02:51:17Z

명동에 무신사 스탠다드가 들어선 건 작년 즈음이었다. 몇 번 들러보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무언가를 사본 기억은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유리문을 지나 곧장 계단을 올랐다. 2층, 남성복 코너가 목적지였다. 1층에도 괜찮은 물건들이 많았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점심시간에 짬을 내 방문했다는 생각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

1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다

2025-05-14T03:23:20Z

작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쳤다. 나는 가끔, 아니 자주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 첫 번째 독서 직후엔 감상이 뾰족하게 남지만, 시간이 흐르면 윤곽이 희미해지고, 오래지 않아 모든 내용을 망각해 버린다.. 1년 만에 같은 책을 열자 작년과 똑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 이런 좋은 문장이 있었지. 이걸 왜 잊고 살았을까? 이번에는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삼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2025-05-13T06:07:37Z

“삼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죠?” 10년 뒤의 어느 날, 나의 조카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나는 어떤 얼굴로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어쩌면, 지금의 나조차 여전히 가슴 어딘가 품고 있는 오래된 물음일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체력을 길러라.” 좋은 정신

버핏이 은퇴 선언에서 강조한 세 가지

2025-05-11T23:00:09Z

“나는 미래 세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빨리 부자가 되려 하지 마라. 그보다 중요한 건 정직하게,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며 가치를 만드는 삶이다.” 2025년, 94세의 워런 버핏이 자신의 마지막 연례 주주총회에서 깊게 울림을 남겼다. 오랜 시간 ‘성공’이라는 단어와 함께 쌓아온 명성. 그러나 그의 마지막 무대는 돈이나 수익이 아닌, 살아온 방식에 대

봄의 끝에서

2025-05-11T00:00:06Z

새벽부터 비가 왔나 보다. 촉촉히 젖은 도로 위로 흙냄새가 스며오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땅과 공기가 뒤섞인 차분한 냄새가 폐 깊숙이 내려앉았다. 아침 공기는 여전히 차고, 기온은 5월 답지 않게 선선하다. 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쌀쌀하다. 하지만 그 낯선 서늘함 속에서 오히려 봄이 더 오래 머물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반갑다. 이렇게 봄이 길어지다니,

‘내가 못하는 일’ 리스트 만들기

2025-05-13T02:45:15Z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에 옆에 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나는 저 포비(카페)의 빨간 의자에 앉아서 햇볕을 받으며 일하면 참 행복할 것 같아.”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조금 고민해 보니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회사마다 규정이 다르니까.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정말 간절한 것일지도 모를

강릉으로 이사하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2025-05-09T00:48:32Z

한때 나는 바다를 보며 살고 싶었다. 수십 년을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온 터라, 넘실대는 물결과 탁 트인 수평선을 상상하는 일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결혼을 하고 산골을 벗어나 서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 이후에도 그 마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사는 곳의 마운틴뷰도 꽤 훌륭하지만, 힘겨울 때 바다로 달려가 부서지는 파

천장에 물이 새던 날

2025-05-08T00:11:04Z

회사에서 업무에 몰두하던 중, 아내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평소라면 내가 일하는 시간에는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갑작스러운 알림이 울리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가슴이 조금 내려앉았다. “우리 집 거실 천장에 곰팡이가 생겼어요.” 잠시 머릿속이 하애졌다. 요 며칠 비가 와서 습기가 찾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누군가 “왓 이즈 유어 드림?”을 묻는다면?

2025-05-06T23:00:07Z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왓이즈유어드림>이라는 채널을 즐겨 본다. 350만 팔로워와 함께하는 유명한 채널이니,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많겠다.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이 채널의 주인이자 사회자인 사이먼 스큅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불특정한 행인에게 다짜고짜 묻는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과 바람을 꺼낸다.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

어제와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은 이유

2025-05-05T23:00:06Z

나의 가까운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어제 먹은 메뉴를 오늘 먹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건 흔히 말하는 반찬투정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특정 반찬이 싫은 게 아니라, 그저 똑같은 음식을 연이어 먹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걸 투정쯤으로 여겼다. 하루 만에 무엇인가에 질려버리는 예민한 성격, 혹은 무언가를 한 번 맛봄으로써 그 맛의 윤곽을 분명히

밤에 침대에서 차가운 공기와

2025-05-04T23:00:08Z

지난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빛인지 가로등 불빛인지 모를 희미한 빛이 유난히 더 밝은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눈을 감고 살짝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어렴풋이 감도는 시멘트 냄새와 이따금씩 들려오는 버스 엔진 소리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바깥 기온은 14도, 실내 온도는 22도, 습도는 30퍼센트 남짓. 봄이라기엔 다소 서늘했던 밤이었다.

허영심은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2025-05-04T01:39:27Z

허영심이라는 건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남의 시선에 빛나고 싶은 욕망, 그것들을 꼭 억눌러야만 하는 걸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허영을 느낀다는 건 결국 아직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라고. 그것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갈망하는 갈증 같은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는 척하지만, 어쩌면

삶의 의미를 찾는 무상함에 대하여

2025-05-02T23:50:36Z

“내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종종 여유 시간이 생기면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삶의 틈에서 내가 얼마나 내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 또 어떤 눈으로 이 삶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가끔 그 질문에 방황한다. 한때 나는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서툴렀다. 그 의미라는 것을

노는 게 제일 좋아(일의 종말)

2025-05-02T00:22:39Z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은 인간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연설을 직접 본 것은 아니니 섣불리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그의 논리는 분명했다. 머지않아 AI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면 인간은 더는 생계를 위한 노동에 얽매이지 않게 되고, 삶의 의미는 노동이 아닌 즐거움, 놀이 같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죽을 만큼 힘들게 살아야 하는 이유

2025-05-01T00:22:42Z

지난 2024년 3월, 나는 이렇게 일하다 죽을 수도 있겠는 생각이 들었다. 낮과 밤의 경계조차 잊은 채 일에 몰두하고,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어 몸을 혹사시켰다. 아무리 잠을 자도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고, 눈을 떠도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피로가 스며들었다. 특히 몸이 버티질 못했다. 어지럼증이 잦았고 다리가 자주 풀렸다. 겨우

모든 일은 운삼기칠

2025-04-29T23:00:07Z

다시 회사가 바빠졌다. 최근 수주한 프로젝트의 마감 일정이 정해지고, 본격적으로 업무에 돌입했다. 나는 서둘러 머릿속을 정리했다. 해야 할 일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작업 스케줄을 촘촘히 짰다. 우리 파트 일이 아닌 것도, 일손이 부족해 보이면 자연스럽게 도왔다. 나는 일의 시작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처음 방향을 잡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계신가요?

2025-04-29T00:19:35Z

20대의 나는 한 가지 물음을 안고 살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일까?’ 가슴이 뛸 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어서, 무작정 많은 아르바이트에 도전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일을 겪어봐도 설레는 경험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란 무엇인지, 나는 대체 무슨 일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러다 30대가 되어 우연히 코딩을 접했다. 코딩은 꼭 퍼

잘 모를 땐 재부팅

2025-04-27T23:00:07Z

아침에 출근해서 노트북을 열어보니 마우스 포인터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USB 접촉 불량인가 싶어 수신기를 다른 포트에 연결해 보고, 포트 타입도 바꿔가며 연결을 시도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그 와중에 이번엔 키보드마저 먹통이 되었다. 마우스와 키보드 유틸리티는 잘 열렸고, 시스템 도우미도 기기가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귀신에 홀린 건 아닌가 의심이

나의 하루를 기념일로 만드는 일

2025-04-27T01:07:41Z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조용히 오늘 하루를 펼쳐본다. 어젯밤 마음먹었던 계획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그 결심을 오늘 얼마나 지켜냈는지 되짚는 시간이다. 그러면 하루가 마치 한 장의 필름처럼 펼쳐지는데, 어떤 날은 잊히지 않을 풍경처럼 선명하게 다가오고, 또 어떤 날은 무채색으로 흐릿하게, 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낸 것 같은 아쉬움이 밀려오기도 한

세상이 원망스러운 건, 그릇이 작기 때문이다

2025-04-25T23:00:05Z

"사는 게 참 힘들고, 재미도 없어. 왜 사는지 모르겠어"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면 마음이 짙은 회색으로 변해 무겁게 가라앉는다. 아침에 눈을 떠 출근 준비를 하는 것조차 버겁고, 하루 종일 무언가에 집중하려 애를 써 보지만, 모든 것이 덧없이 느껴져 무력감만 깊어진다. 손에 잡히지 않은 일에 애써 집중해 본들 머리는 멍하고 눈은 흐리멍덩하다. '이럴 바

오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