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긴 한데...... - 늘 반만 합니다.

2025-05-02T15:42:22Z

솔직히 말해서, 나는 꾸준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꾸준한 사람을 보면 괜히 마음이 두근거리고 ‘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나는 생각만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꾸준하게 아주 성실하게, 생각만. 그런데 요즘 부쩍 나를 자극하는 게 있다. 바로 매일 식단을 기록하는 사람들

내가 하면 안전운전, 남이 하면 교통방해 -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2025-05-02T05:06:12Z

여기 나의 작은 이중잣대가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진짜 가끔, 그러니까 꽤 자주 이 잣대가 고개를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 앞차가 느리게 간다. 깜빡이도 없이 속도를 줄인다.그러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 제발 좀 가. 뭐 하자는 거야 지금?” 그리고 한 템포 늦게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핸들을 부여잡고 억지로 인내라는 것을 시도한다. 하

호텔 조식에 대하여 - 왜 나는 볶음밥에 집착하는가

2025-05-01T14:12:45Z

여행을 가면 꼭 하는 일이 있다. 호텔 조식을 먹는 것. 아무리 늦게 잤어도, 얼굴이 퉁퉁 부어도 아침 9시 전에 일어나서 식당으로 달려간다. 조식은 시간과의 싸움이니까. 슬리퍼를 끌고 호텔 식당에 들어서면 세상 온갖 음식들이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통 안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나를 유혹한다. 베이컨, 소시지, 스크램블에그, 과일, 빵, 도가니탕.....

늦은 밤, 사냥꾼이 나타났다 - 사냥이 끝난 자리에 평온만 남았다

2025-05-01T00:57:31Z

결혼하고 나서 알게 됐다. 사랑은 족집게를 들고 다가오는 것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는 걸. 어느 날 소파에 누워 TV에 빠져들고 있는데 눈앞으로 작은 금속 족집게 하나가 스윽 나타났다. “움직이지 마.” 아내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수염 하나가 처형당했다. “아! 아프잖아!” 나는 비명을 질렀지만 아내는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루마무 도루마무 - 너무 자주 눌리는 리셋 버튼

2025-05-01T00:36:02Z

대학교에 다니는 건 학생만이 아니다. 교직원도 다닌다. 캠퍼스를 걷고 강의 시간표를 외우고 계절마다 반복되는 행정 일정에 맞춰 루틴처럼 하루를 살아간다. 익숙한 일, 익숙한 얼굴, 익숙한 업무. 그 익숙함이 겨우 몸에 붙을 즈음 ‘인사발령’이라는 이름의 리셋 버튼이 눌린다. 그리고 나는 또 신입이 된다. 이름표는 그대로인데 책상도, 파일도, 단축키도

한 조각만 맛보고 전부를 오해했다 - 플립(2010)

2025-04-29T10:02:46Z

" A painting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 A cow by itself is just A cow. A meadow by itself is just grass, flower. And the sun picking through the trees, is just a beam of light.

그릇이 안 빠질 때 - 그릇 하나쯤은 버려도 된다, 아니 두 개는

2025-04-23T09:34:03Z

하루의 시작이든 끝이든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나는 종종 아무것도 아닌 그릇 하나에 지친다. 쌓여 있는 그릇들. 설거지를 하려고 손을 뻗었는데 꼭 그럴 때마다 그릇들이 서로 딱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포개진 채로 끼어 있는 그릇 두 개. 미끄럽고 단단하게 맞물려서 아무리 힘을 줘도 헛돈다. “왜 이렇게 안 빠져......” 작게 내뱉은 그 말에 그날의

까마귀는 그냥 울었을 뿐인데 - 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2025-04-23T01:37:12Z

남산을 걷다 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마음이 풀릴 때가 있다. 따뜻한 햇살 살랑거리는 바람 나뭇잎 사이로 흘러나오는 새소리. 참새든, 박새든, 무슨 새인지 몰라도 그 소리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특별히 뭔가 하지 않아도 그냥 들리는 소리 하나로 하루가 달라진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내와 나란히 걷던 중 아내가 불쑥 말했다. “근데 까마귀 울

우리 뭐 먹을까? -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2025-04-19T21:47:56Z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건생각보다 훨씬 많은 걸 공유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같은 냄새를 맡고같은 온도를 느끼고입안에서 퍼지는 같은 맛을 함께 느낀다. 한 끼를 같이 먹는다는 건 그 순간만큼은 같은 자리에 머물겠다는 뜻이다. 말이 없어도 마음이 닿는 방식이다. 함께 산다는 건아주 많은 것들을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그중에서도 ‘오늘 뭐 먹을까’는하루

버터는 발랐고 이제 굽기만 하면 돼 - 아메리칸 쉐프(2014)

2025-04-19T04:52:58Z

“I get to touch people’s lives with what I do. And I love it.”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출근은 전투, 회의는 곡예, 마감은 늘 전쟁 아침마다 밥 대신 현실을 씹어 먹는 기분으로 “이건 그냥 돈 벌기 위한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를 버텼다. ‘꿈이 뭐냐’는 질문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 손바닥보다는 선글라스가 좋긴 하지

2025-04-18T00:24:19Z

운전석 옆 조수석에 앉은 아내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강했던 거다. 그런데 그 손바닥이 너무 작았다. 햇살은 활짝 열린 창문을 타고 고집스럽게 얼굴을 비췄고 아내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떻게든 가려보려 했다. “다 가려지지 않네…” 얼굴 반쯤 찡그린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웃음을

높은 마음 - 9와 숫자들

2025-04-17T01:56:47Z

“높은 마음으로 살아야지 낮은 몸에 갇혀있대도 평범함에 짓눌린 일상이 사실은 나의 일생이라면” 이 노래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이상하게 가슴이 콕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나를 향해 내 하루를 향해 누군가가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특별하지도 눈부시지도 않은 하루지만 그 하루를 나름의 의미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나는 대학교에서

엘레베이터 안에서 - 커피 대신 아침 인사로 깨는 아침

2025-04-14T22:44:26Z

아침 출근길 손에는 커피, 어깨엔 가방 지각할까봐 급한 미음으로 아내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열리자 이미 안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가방을 멘 채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아이는 우리가 타는 걸 보자마자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놀라서 아이를 바라봤다. 아직 말도 제대로 섞기 전인 하

나는 몇 살일까? - 숫자만큼 자라지 못한 마음

2025-04-14T02:28:31Z

올해 일정을 짜기 위해 달력을 보다 말고 문득 멍해졌다. 숫자로는 분명 ‘어른’인데 마음은 아직 거기까지 못 따라온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책임질 일이 늘고 후배도 생기고 회의에서는 내 의견이 ‘결정’이 되곤 한다. 문서상으론 어엿한 어른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밤늦게 배달 음식을 고를 때나 출근 후에 괜히 친구에게 “회사 진짜 싫다”는 메시지를 보

감자꽃이 들려준 묵묵한 삶의 방식 - 잠깐 피지만 오래 남는

2025-04-13T02:36:37Z

감자꽃을 본 건 작년 여름이었다. 주말농장을 시작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심었던 씨감자에서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피었다. 하얗고 보랏빛이 섞인 앙증맞고 예쁜 꽃 솔직히 말하면 감자에 꽃이 핀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먹을거리에서 꽃을 기대한 적이 없던 나는 그 작은 꽃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아, 이렇게까지 예쁠 일이야?” 그저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

버터부터 발라야 인생이 굴러간다 - 줄리 앤 줄리아(2009)

2025-04-12T11:32:43Z

“You are the butter to my bread, the breath to my life.” 버터는 참 신기한 재료다. 그냥 먹기엔 느끼하고 너무 많이 쓰면 텁텁하다. 하지만 빵 위에 적당히 녹여 발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딱딱하고 거친 바게트도 그 위에 버터 한 조각이 녹아들면 놀랍게도 부드럽고 고소한 한 끼가 된다. 영화 [줄

비슷하지만 또 다릅니다 - 인덕션 vs 하이라이트

2025-04-11T20:53:09Z

인덕션과 하이라이트는 모양이 비슷하다. 검은 유리판 위에 동그란 표시, 터치식 버튼, 조용한 작동음 하지만 막상 써보면 전혀 다르다. 하이라이트는 열을 낸다. 천천히, 은근히 뜨겁게 인덕션은 자성을 이용해 조리도구 자체를 달군다. 더 빠르고, 더 뜨겁게 둘 다 냄비에 물을 끓일 수 있지만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처음 이 둘을 헷갈렸다. 그

우리 꽤 괜찮은 팀인 것 같아 - 그런데 설거지는 누가 할래?

2025-04-11T06:09:19Z

신혼이 되면 생기는 것들. 안 보던 장르의 넷플릭스 시리즈 양말이 뒤집힌 채 돌아오는 세탁물 그리고 하나 더 집 안에 작은 팀 하나가 생긴다. 정식 팀명은 없다. 구호도 유니폼도 없다 하지만 이 팀은 꽤나 성실하게 움직인다. 누군가 밥을 하면 다른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고 둘 다 귀찮으면, 침묵의 합의로 배달을 시킨다. 한

둘리분식 떡볶이 - 소울푸드에 관해서

2025-04-10T00:37:40Z

소울푸드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냥 좋아하는 음식을 뜻하는 줄 알았다. 속이 허하거나 기분이 꺼질 때 무심코 찾게 되는 그런 음식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니 그 단어의 뿌리는 훨씬 더 깊었다. 소울푸드는 미국 남부에서 노예 제도를 겪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어렵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공동체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만

알아도 모른 척 - 1년 중 딱 하루, 속아주는 날

2025-04-09T00:49:23Z

캠퍼스를 걷다 보면 가끔 현실감이 흐려질 때가 있다.특히 매년 4월 1일그날만 되면 풍경이 살짝 비틀어진다. 누가 봐도 대학생인 친구들이 제각각 교복을 입고 다니며강의실 앞에서 우스운 공지를 붙이기도 하고고등학생인 척 연기를 하기도 한다. 모두가 알면서 속는만우절의 장난이다. 나는 대학교에서 일한다.여러 부서를 거쳐 일하며 수많은 학기를 보냈고이제는

기억의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