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위해 넌 뭘 해주냐고

2025-04-27T08:45:29Z

- 2020년 방영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이제야 역주행한다. 등장인물의 에피소드에서 오래된 추억을 살금살금 꺼내서 속으로 키득키득 홀로 웃던 중 대사 하나가 가슴에 내려앉아 쿵쾅거린다. "널 위해 넌 뭘 해주냐고" 의사인 이익준은 홀로 아들(우주)을 키우는 아빠인데, 우주가 아픈 어느 날 밤 병원에서 응급콜을 받는다. 병원으로 가야

내편이 아니어도 괜찮아 - 그냥 내 말을 끝까지 들어봐

2025-04-10T02:57:49Z

- 중2를 지나 고등학생이 된 첫째를 보면 이제 사춘기를 지났을까, 하는 희망을 품다가도 굴곡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면 같이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요즘은 심리건강을 위해 많이들 상담을 받던데. 우리도 해볼까?" 하니 '아빠, 오늘은 그만 내 방에서...' 하는 눈빛을 보낸다. 거실에 있던 둘째가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의

내가 받은 유산

2025-04-07T08:44:09Z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나 외에 한 명의 자식이 더 있다.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른다. 형은 운동선수였다. 어려서부터 합숙생활을 했기에, 나는 집에 홀로 있을 때가 잦았다. 학장시절 교과서만 읽었던 나는 안경 쓴 샌님이 되었고, 단체생활 속에서 서후배 관계가 돈독했던 형은 마당발이 되었다. 자라면서 마주 앉아 하나의 주제를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기억

떠난 부모를 기억하는 - 우리만의 방식

2025-03-26T00:18:31Z

아침 기온이 16도가 되던 봄날, 주말이라 늦잠이란 사치를 부리고서 흐느적거리며 브런치를 먹겠다며 외출을 한다. 시험준비로 마음이 바쁜 첫째는 집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겠다고 했고, 둘째와 우리 부부는 카페로 향했다. 볕이 잘 드는 창이 선명하게 보이는, 그늘진 곳에 자리 잡고 스테이크, 피자, 리조토를 주문했다. 먹는 내내 김치를 떠올렸지만 하나도

나무 아래 앉아 - 그대를 떠올리다

2025-03-24T00:55:52Z

구산면 심리, 버스 종점을 앞둔 동산에 증조와 조부모의 묘가 있다. 도로가 있어 굽어진 길에 내려 10분도 채 오르지 않아도 꼭대기가 닿는다. 게다가 해안가로부터 경사를 갖고 솟아있기에 먼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가만히 서 있으면 겹겹이 쌓인 마음속 그물을 뻥 뚫어버린다. 고향에 올 때면 잠깐 부모님 댁에만 머물렀던 나는, 지난 명절에서야 모처럼 형과 둘이

나는 내 엄마가 좋다

2025-03-19T00:49:52Z

찬바람 사이로 봄날의 햇살이 빼꼼 내리던 토요일 오후, 아침을 굶어가며 한껏 주말의 여유를 즐기던 가족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을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의 메뉴는 지난번 둘째랑 둘이서 돈가스 가게에서 나만 맛있게 먹었던 마제소바였다. 우동면에 톡톡 다진 돼지고기, 대파, 부추, 김가루 그리고 계란노른자가

공부해서 얻는 건 - 졸업장이 아니다

2025-03-17T06:02:57Z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았을 때다. 어머니가 "공부하고 싶다."라고 하셨다. '지금에서 무슨 공부일까?' 어머니가 어렸을 때 교육의 기회는 드물었다. 집안에서 첫째나 둘째까지만 진학을 하거나 아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기 태반이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학교에 갔고 선생님은 학비를 가져오라며 집으로 돌려

너와 함께여서 좋았다. - 그곳이 응급실이라도.

2025-03-24T06:48:59Z

지난 명절이었다. 서울역에는 여행가방을 지닌 이들이 줄을 지었다.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을 많이 간다고들 하던데, 여전히 고향으로 향하는 모양이다. 마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3시간이 지나 마산역에 도착하니, 자식을 마중 나온 어르신들이 활짝 핀 미소로 팔을 벌리고 있었다. 오래전 나의 부모님도 저기 계셨는데...... 급히 빠져나와 부모님이 계신

어머니의 최애는 무엇?

2025-03-10T00:00:11Z

전화기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고요하다. 일상의 안부를 묻고 나면 말 안 듣는 남(의)편 이야기로 이어져야 하는데, 오늘은 급히 통화를 마무리하려 한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어색해진 나는 "별일 없으시죠? 아프신데도 없고?" 하고 묻는다. 여기에 '별일 있지! 그게 뭐냐 하면...' 이렇게 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저 내 마음

마흔에 독립하다

2025-03-05T01:50:45Z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마산에서 살았다. 동네를 벗어날 기회가 없던 나는 대학은 꼭 서울에서 다니고 싶었다. 형편을 생각하면 가까운 국립대학을 가야 했으나, 꾸역꾸역 마산을 떠나기로 다짐했다. 부산과 대구에도 국립대가 있지만, 난생처음 독립을 하려면 좀 더 먼 서울이 그럴싸했다. 다행히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고 부모님의 시

마지막 잔을 채워라

2025-03-03T22:47:22Z

"술 마셨는데, 저는 안 취했어요. 술은 마셨는데, 정신은 말짱해요. 제가 한 말을 또 하지는 않잖아요.""응? 너 아까부터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어."신입생 환영회를 다녀와서 늦은 밤 어머니와 나눈 말이다. 당시 나의 혀는 꼬였고 했던 말을 또 하는 주사를 부렸지만,지금까지도 이 대화를 기억하는 것으로 보아정신이 말짱했음은 분명하

내 가족은 누구인가?

2025-02-26T02:14:04Z

oo 가족 여러분! 고생 많았습니다. 긴 연휴 동안은 업무를 잊고 재충전하세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합니다. 명절 잘 보내시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봅시다. 회사 대표가 추석을 앞둔 월례회의에서 한 말이다. 언뜻 직원의 고충을 헤아리고 격려하는 듯하지만 다시 일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을 보내라는 것을 알기에 썩 달갑지는 않다. 게다가 그와 너, 나를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

2025-02-26T11:06:08Z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급하게 연락받고 내려오는 중에 돌아가셨어.' 카톡방에서 친구가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두 달 전 어머님의 투병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언제나처럼 낯설고 또 슬펐다. 회사에 조퇴를 신청한 후 창원으로 가는 길, 김여환 님의 <천 번의 죽음이 내게 알려준 것들>이란 책을 읽었다. 호스피스 의사로 천

전하지 못한 말

2025-02-19T02:50:17Z

"너희 할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병원에 계실 때 나는 기다렸는데 결국 아무런 말씀 없이 가셨어." 가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소환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아버지는 듣지 못한, 그래서 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속에 깊은 공허로 남아있어 보였다. - 살다 보면 해야 하는 데 하지 못한 말, 하지 말아야 하는 데 내뱉은 말, 하고 싶은 데 하지 못한 말,

질병을 대하는 자세

2025-02-17T00:53:42Z

가슴이 뜨거워지며 조여 온다. 꽉 막힘은 명치로 퍼져가고목구멍은 타는 듯하다.통증 부위로는 심장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폐렴인가? 암일지도?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어질수록숨소리는 거칠어지고 흉부 압박은 심해진다. 홀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밤을 새웠다. 이른 아침 가족에게는 애써 태연한 척하였으나두려움을 가득 품고 병원을

고슴도치

2025-02-12T01:25:14Z

무뚝뚝한 아버지가 변한 것은 2008년이다. 암 진단 후 긴 수술을 받았을 때,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언제 멈출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만날 때면 어색하게 포옹을 하자시고, 간지럽게 "아들, 사랑한다."고도 말하신다. 가장 후회되는 것 중 하나가, '너희들이 어렸을 때 같이 놀러 다닌 추억이 없다는 것'이라시며 아버지의 아버지, 할

마지막 순간, 당신의 선택은?

2025-02-10T16:39:27Z

"산소호흡기 안 하기로 했다." 대뜸 어머니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을 보여주셨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니? 이는 사전에 연명의료를 하겠다는 의향서가 아니라 임종과정에 이르렀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향을 사전에 밝힌다는 증명서다. 연명의료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의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흰머리

2025-02-05T00:00:04Z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된장찌개를 기다리며,꼴깍꼴깍 침을 삼킨다. 테이블 위에 내려앉기도 전에,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허겁지겁 먹다가 입천장에 따가운 부상을 당했음에도, 매번 식기를 기다릴 마음은 금세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 덜컥 이물질이 나온다면?-추운 겨울 집 근처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다. 따끈한 국물에 공깃밥 반 그릇을 쓰윽

반려견 몽이

2025-02-03T06:31:37Z

반려견 몽이 /20250131 아버지는 회사 일에, 선후배, 친구, 동료와의 관계에 밤낮없이 충실했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며 가족을 돌보는데 전념했다. 한 공간에 살지만 눈만 뜨면 각자의 생활이 바쁜 날에서 아버지의 퇴직과 함께 공간도 시간도 더 많이 공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분의 일상에서 늘어난 것은 '더 깊은 고요함'이다. 일흔

아빠의 무관심 덕에

2025-01-29T02:48:07Z

아버지의 무관심 덕에 집에서 4km 떨어진 중학교에 다녔다. 왕복 8km. 토요일에도 학교를 갔으니, 1주일에 6번. 500m도 되지 않는 가까운 중학교를 두고 나는 왜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먼 곳을 선택했을까? 동네에 똑똑해 보이는 형이 있었다. 글씨체도 반듯했고 큰 인물이 될 것 같았다. 그 형이 다니는 학교에 가면 나도 그럴 수 있다고

moon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