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고 yjball 10년째 별거중, 두 아이의 엄마, 직장인, 일본거주, enfp... /@@64id 2018-07-03T09:32:37Z 별거 10년째(20) - 일본에서 영주권 받고 집 사기 /@@64id/30 2025-03-28T01:34:57Z 2024-08-30T04:21:37Z 폭풍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끈기 있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도중에 글을 계속 쓰지 않을 확률이 높고, 한국에 계신 담당변호사님께 구구절절 말씀드리기가 뭐해서 브런치를 이용하기 위함이며, 현재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하지만 소장을 받은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곧 폭풍우가 휘몰아칠 것임으로 그전에 정리를 해 두려는 속셈이다. 나는 2020년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sS2FdhZxxDzQcB_SoEBqzg84dgU.JPG" width="500" / 별거 10년째(번외 편2) - 첫째가 스무 살이 되었어요... /@@64id/29 2024-09-11T13:31:53Z 2024-08-30T02:59:30Z 별거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딸이 스무 살이 되었다. 일본에선 18세 , 한국에선 19세가 법적 성인이 되는 나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 제한이 있기도 하니... 아이가 스무 살이 되기를 나는 정말 기다려왔다. 아이들과 조촐하게 와인과 케이크로 축하했지만 내 마음속은 축제가 열렸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의 일본에서의 추억을 앨범으로 만들어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HoyaA2gsi3gV-_Yw9ad89HvvAsY.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9) - 그가 협의이혼 안 해주는 이유... /@@64id/28 2024-09-08T13:53:42Z 2024-08-29T15:43:15Z 별거한 지 8년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몇 명의 변호사를 만났고, 인터넷을 이용해서 이혼에 대해 틈틈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목사님과 친구들, 신앙의 선배들에게 이혼에 대해 상의를 드리고 조언을 구했다. 이혼은 협의 이혼, 조정 이혼, 재판 이혼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UjSQi55szHFf0P1Guqu2b5Yw9ew.png" width="500" / 별거 10년째(5-2) - 별거의 서막...그의 이야기 /@@64id/27 2024-08-29T16:28:04Z 2024-08-28T07:37:19Z 남편은 우리가 일본으로 온 후 전세금을 빼서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본으로 온 지 1년 6개월 만에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생활비를 받지 못했다. 나는 대기업에서 2년 동안 받은 월 15만 엔의 장학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남편의 학비지원은 두 번밖에 없었고 생활비는 별거 때까지 월평균 100만원남짓밖에 받지 못했다.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PFguTpG6aRX9O1KPPFBXeHeJLuE.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8) - 본격적인 이혼준비... /@@64id/26 2024-08-29T16:13:53Z 2024-08-28T03:49:40Z 남편의 대화거부로 나의 이혼이야기는 또 속절없이 보류되었다. 그 사이 나는 대학교에서 준교수로 승진하였고 일은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점점 자라서 어느 정도 육아시간과 내용에 조절이 가능해졌고 일과 환경이 안정되니까 확실히 몸과 정신이 건강해져서 남편과의 관계, 이혼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성경안에서 이혼에 대해 어떻게 이<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Nsu5JIpVQKZxMuF3W82tFdpoPiI.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7) - 드디어 그에게 이혼을 말하다... /@@64id/25 2024-08-29T16:11:20Z 2024-08-28T03:13:25Z 나는 별거 후 5년 넘는 시간 동안 이혼하자는 말은커녕 별거를 결정한 날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원망한다던지 나 홀로 육아하고 힘든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던지 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그가 보내주는 월 100만 원이 너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딸이 사립고등학교 들어간 후 나는 돈을 더 많이 보내주기를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u9eULdw-qTNkoOD4-7czVbH7cvg.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6) - 박사님의 은밀한 사생활 /@@64id/24 2025-01-26T10:22:07Z 2024-08-23T05:12:11Z 아이들과 함께 일본에 온 지 10년 만에 남편과 별거한 지 5년 만에 코로나시기였던 2020년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 1년 동안 나는 오랜 시간 기다리게 했던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쏟았다. 매일 아이들이 좋아할 요리를 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이 싫다 싫다 싫다 싫다 ㅋ) 매일 아이들을 상냥하게 배웅하고 반갑게 맞았다. 매일밤 아<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GnxhNQDfW0YHcMtGZRUTkIW2nrc.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5) - 별거 5년 후,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다 /@@64id/23 2025-01-26T10:20:00Z 2024-08-22T15:31:21Z 내게 B사립대학 교수로 부임한 2019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행운 가득한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지만 끝없는 긴장과 불안으로,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를 경험한 시간이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150명의 학생들 앞에서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전문적인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 내가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몇 백개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V2FXHEVDw0NByGDzUJnF76p0rCw.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4)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64id/22 2025-01-26T10:17:57Z 2024-08-22T14:35:18Z 출애굽기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2019년 4월, 별거한 지 4년이 채 되지 않아 나와 아이들이 꼭 살고 싶어 하던 도시로 돌아왔다. 그것도 유명 사립대학 정규직 교수(직위는 전임강사)가 되어서 말이다. 나는 매일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바로 가까운 곳, 내 직장인 B대학<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CTB_iqd8Tp45S8Turf7Qh_FHAqw.png" width="500" / 별거 10년 째(13) -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64id/21 2024-08-29T12:30:42Z 2024-08-22T13:51:17Z 민수기 (Numbers) 14:7~9a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Bc9V-Ng5UueanIMPDzgxMzTff48.png" width="500" / 별거 10년째(번외편) - &lt;가족이라면... 사랑한다면...&gt;이라는 강박 /@@64id/5 2024-08-24T00:10:12Z 2024-08-22T11:58:40Z 딸을 낳았을 때의 일이다. 분만실에 같이 있던 그에게 딸인지 아들인지 묻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lt;〇△(이름)다.&gt; 나는 &lt;응?&gt;하고 반문했지만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되었다. 출산 전 그와 &lt;아기 이름은 뭐로 할까?&gt;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그는 그의 이름의 한 글자와 내 이름의 한 글자를 따서 아이의 이름을 짓고 싶어 했다. 아들일 경우에<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aPbm2Z9vlGmsCTDV_X7WZ72E0Kc.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2) - 언감생심? /@@64id/20 2024-08-21T07:43:46Z 2024-08-20T02:02:45Z 2018년 별거 3년째... 대학교수로 취직 한 지 2년째... 일하면서 얻는 성장과 월급 ㅋ, 아이들이 적응하여 잘 자라는 모습이 나를 힘내게 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아서 다른 조건이 좋은 대학으로 옮기는 것이 나의 다음 목표였다. 일본에서 박사논문을 내고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은 학교와 지도교수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다. 내가 다녔던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P1UqLmA_IK_MgjNc5YExafMwFok.JPG" width="500" / 별거 10년째(11) - 빛 좋은 개살구 /@@64id/16 2024-08-30T04:33:16Z 2024-08-20T01:10:30Z 별거한 후 3년 만에 정규직 대학교수가 되는 거야? 시영아파트에서 살며 수중에 백 몇십만 원 있었던 시간강사 경력도 없었던 대학원생이었던 내가 정말??? 이제 두 번 다시 자격운운하며 아이들을 내놓으라 할 수 없겠지. 나는 감격했고 감사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정규직 전환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정규직 전환 후 세금 공제 후의 월급이 26만 엔<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CVx1yUmRjdnUwutThskqi4P_8ME.png" width="500" / 별거 10년째(10) - 일생일대의 기회와 또 다른 기회 /@@64id/14 2024-08-30T04:30:49Z 2024-08-20T00:37:12Z 분명히 지방 소도시의 A사립대학, 1년 계약직 교수 모집공고에는&nbsp;교수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있었다. 그런데 학과장이 내게 반드시 교수회의에 참석했으면 좋겠 다고 하는 것이다. 업무를 잘 파악하라는 건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참석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학과장으로부터 1년 후에 그만 둘 선생님이 계시니&nbsp;내게 1년 후에도 계속 일해주었으면 좋겠다는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7YVYf53DqlN0wzT5D-qOTGwRN9o.png" width="500" / 별거 10년째(9) - 1년 계약직 신세 /@@64id/13 2024-08-29T12:21:21Z 2024-08-19T23:23:13Z 남편과 별거 후 가족들과 친구들의 지원을 받으며 죽도록 국가자격증을 따고 취직에 필요한 연수를 받고 전국 곳곳에 구직원서를 낸 나는 1년쯤 되는 시점에 1년 계약직으로 지방의 작은 사립대학에 취직할 수 있었다. 나는 1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언정 이 1년을 디딤돌 삼아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열정이 넘쳤다. 지금까지 대학원생이었을 때는 엄청 공부하고 발<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b-nW-Cp4HKlJVaQZk2IDDC1oELY.JPG" width="500" / 별거 10년째(8) - 일본에서 대학에 취직하기 /@@64id/12 2024-08-26T03:44:54Z 2024-08-19T14:40:50Z 매일 같이 원서를 넣을 수 있는 대학이 있나 구직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내가 살고 있던 도시에서 2시간 떨어진 작은 도시의 작은 사립 대학에서 1년 계약직으로 풀타임 강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출산과 육아휴직을 하는 교수님을 대신해서 정말 딱 1년만 와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계약 갱신은 불가하며, 당장 2달 후에 시작하는 가을학기부<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QuukpQXI_ac1ce1afnYeApFpqnU.JPG" width="500" / 별거 10년째(7) - 노선 변경, 일본에 남다... /@@64id/11 2024-08-26T03:43:53Z 2024-08-19T14:05:43Z 내가 귀국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그는 3개월 동안 십원도 보내주지 않았다. 일본에 있는 동안에 나는 꾸준히 장학금을 받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석사학위도 받고 무사히 박사과정에도 진학했지만 내 통장에는 백만 원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돈을 보내지 않는 그에 대한 원망보다 나이 서른 중반<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aZPP6pPmPVBaEhbwvu9570azMSY.JPG" width="500" / 별거 10년째(6) - 별거를 결정한 날...누가 누구의 노예라는 거지? /@@64id/9 2024-08-30T12:22:32Z 2024-08-19T13:48:19Z 시간이 흘러...나와 아이들이 한국으로 귀국하기 한 달 전이 되었다. 나는 짐도 부치고 아이들의 학교에도 귀국을 알리며&nbsp;이곳저곳에 인사를 드릴 때였다. 남편이 일본생활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하자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로 놀러 왔다. 사실 우리는 몇 개월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귀국 후의 생활에 대해...어디서 살지, 무슨 일을 할지, 아이들의 교육은 <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pWBoNhDtwYPF4cxHHaizDNKXk2s.JPG" width="500" / 별거 10년째(5-1) - 별거의 서막...나의 이야기 /@@64id/8 2024-08-28T07:27:38Z 2024-08-19T13:02:17Z 나와 아이들의 일본에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점이 일 년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4년이 지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무사히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여 2년 차가 되었다. 박사 1년 차에는 논문테마와 방향을 잡지 못해서 정말 막막하고 우울해서 긴긴 터널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주위에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인주부들이 꽤 있었<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_exmwi1bshJcqe1V6UPscvJVWtk.png" width="500" / 별거 10년째(4) - 일본 대학원 시절... /@@64id/7 2024-08-23T05:14:25Z 2024-08-19T08:35:20Z 서른 중반에 시작한 일본 지방 국립대 대학원 석사과정은 상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수업은 많지 않았지만 전공을 살짝 바꾸었더니 수업의 내용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고 내가 준비해야 할 발표내용과 리포트의 포인트조차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연구생까지 했는데도 전공책을 한 장 읽고 페이지를 넘기면 앞 페이지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img src= "https://img1.카지노 게임.net/thumb/R1280x0.fjpg/?fname=http%3A%2F%2Ft1.카지노 게임.net%2Fbrunch%2Fservice%2Fuser%2F64id%2Fimage%2FGppcjTyyQzhxWsialawZDzoW5PY.JPG" width="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