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는 말은 안 질려

2025-04-25T05:17:05Z

딸은 주제에 따라 짤막한 생각을 쓰는 글쓰기를 틈날 때마다 하고 있다. 어제의 질문은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말은?'이었다. 딸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사랑해’라는 말이야. 그건 엄마가 맨날 해주는데 하나도 안 질려. 아이의 언어는 이렇듯 무심하게 가슴을 데운다. 실제로 나는 '사랑해'라는 말이 헤픈 편이다. 야단을 쳐놓고도 금방 끌어안으며 그래도

좀 미루면 어때, 인생 긴데 - 오늘도 참 잘하고 있는 너에게

2025-04-24T08:20:51Z

어제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고 난 뒤 첫 학부모 상담에 다녀왔다. 학교에 가기 전 유튜브로 학부모 상담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몇 가지 찾아보니 아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라고 조언하기에 상담시간의 대부분은 내가 말하는데 썼다. 조용하고 얌전하고, 성실한 아이이기에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궁금증도 딱히 없었다. 어련히 잘하고 있으려니. 아이를 믿으니까

거울을 들여다보는 너를 보며

2025-04-19T02:43:53Z

아이가 요즘 부쩍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쓴다. 1학년때까지만 해도 매일 하던 양갈래머리는 2학년이 되자마자 거부를 선언했고, 요즘은 묶지도 않고 긴 머리를 풀고 다닌다. 아침마다 헤어밴드를 고르는 일은 딸에게 매우 진지한 일과가 되었다. 이것저것 바꿔가며 머리에 대보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다 마음에 드는 것을 마침내 골랐을 때,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이 나온다.

대체 불가능한 불행

2025-04-19T10:23:47Z

한 대학교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다. 북토크가 아니라 내 책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를 주제로 한 강연을 원한다고. 청중은 200명 정도로 예상된다고 했다. 아이에게 줄 등갈비찜을 열심히 졸이다가 출판사 대표님의 전화를 받던 그때,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저녁을 준비하다가 출판사 대표님의 전화를 받던 그때,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미쳤다!'

이기적인 추억에 대하여 - 세월호 참사 11주기

2025-04-18T11:31:59Z

매년 4월 16일이면 의무감처럼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내 인생의 어떤 시기가 떠오른다. 2017년, 임신 중이던 때였다. 뱃속에 든 작은 존재는 살기 위해 넘긴 새콤달콤 한 조각조차도 게워내야만 속이 시원하다는 듯 모든 음식이 들어가는 족족 쏟아내도록 내 몸뚱이를 조종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뱃멀미 같은 입덧의 고통에 시달리던 그 시기에 마침 세월호

요상한 엄지발가락과 염통꼬치

2025-04-17T20:17:25Z

"엄마, 이거 봐. 나 왼쪽 엄지발가락이랑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크기가 달라." "그런가? 만졌을 때 아파?" "응 누르면 살짝 아프고, 간지러워." "어디 찧었나? 조금 더 두고 보자." 그러고 이틀이 지났나. 목욕하고 나온 딸이 또 엄지발가락 이야기를 한다. 다시 자세히 보니 부은 부분이 조금 더 커진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쓰여 인터넷 검색을 시작

나는 도둑고양이가 좋아

2025-04-12T12:03:19Z

마트에서 견과류 1+1 행사를 하기에 간만에 그래놀라를 만들었다. 나는 단순하지만 손이 꽤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음식을 만들 때 마음이 안정된다. 그래서 생각이 많을 때는 일부러 묵을 쑤어 먹기도 하고, 방울토마토의 겉껍질을 일일이 벗겨내어 마리네이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순전히 견과류 할인 행사 때문에 그래놀라를 굽기로 했다. 브라질넛, 캐슈너

불행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나_2 -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북토크 후기

2025-04-12T12:00:40Z

내 안에 가득 차서 곪아 염증을 유발하는 불행을 기억들은 글로라도 쏟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억울함의 증거를 모아야 했다. 매일 밤 글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100편의 글이 모였을 때,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지독한 모녀관계의 굴레로부터 도망쳐 살아남은 처절한 기록이었다. 나 같은 모녀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세상에서

논란이 없는 인생

2025-04-10T22:46:38Z

아이는 요즘 하루 한 편씩 신문 읽기 문제집 풀이를 하고 있다. 짤막한 기사를 보고 난 뒤 모르는 단어를 알아보거나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형식인데 다 읽고 나면 관련 뉴스 영상도 볼 수 있어 흥미 있게 임하는 중이다. 오늘 새로 배운 단어는 '논란'이었다.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며 다투는 상황'이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는 '최근 네

언제까지 조잘조잘해줄까

2025-04-08T21:07:55Z

작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이야기해 주지 않던 아이가 달라졌다. 하교 후 집에 오면 가방을 벗어던지고, 간식을 먹으면서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한 편의 1인극처럼 재연해 준다. 밖에서는 새삼 부끄럼쟁이가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습고 또 기특하고 그렇다. 교실에 꼭 한 두 명쯤 있는 말썽꾸러기가 주요 인물로 자주

불행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나_1

2025-04-13T00:16:03Z

불행에도 효용이 있을까. 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스물셋, 1년 치 아르바이트비로 모은 등록금과 맞바꾼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내 가방엔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들어 있었다. 악명 높은 유럽 돌바닥에 인생처럼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다니다가 내리쬐는 햇볕에 마침내 부아가 치밀었을 때 가장 먼저 버린 건 그 책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건

'뽀뽀'로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 - <가르쳐 주세요(비룡소)>

2025-04-02T20:14:20Z

발달상 그런 시기인 걸까. 딸이 자신의 생식기에도 부쩍 관심을 갖고,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해 묻는다. 오늘은 목욕을 하고 나와서 물었다. - 엄마와 아빠가 뽀뽀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생길 수 없었어? - 뽀뽀로는 아기가 생기지 않아. 너도 알잖아. 책에서 보지 않았어? 아이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어른은 대체로 비겁하다

2025-04-01T01:20:18Z

제목에 나의 비겁함을 어른의 비겁함으로 확장시켜 표현한 데에 심심한 사과를.. 그러나 어른들은 정말로 그렇지 않은가? 나만 그런 것일까. 아이들보다 더 제멋대로다. 어른은 해야 할 일이 많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들은 대체로 어른의 뒷모습을 보는 일이 많을 테다. 어른은 키와 나이에서 오는 권위도 있고, 말발도 세다. 돈을 무기 삼아 장난감을 사주네 마네

코딱지는 몇 살까지 먹나요?

2025-03-28T17:30:58Z

태어나 얼마 안돼 꼬물거리던 아이가 자신의 손가락을 막 인지하기 시작했던 그 시절, 딸이 인생 처음으로 심취했던 건 '주먹고기'였다. 동죽조개만 한 자기 손이 짭쪼름하고 맛도 좋았는지 이도 없는 게 챱챱 맹렬히도 핥아댔더랬다. 그때 꼭 쥔 손 사이사이 숨어있는 콤콤한 냄새.. 으악! 했다가도 기어코 또 코에 가져다 대고 킁킁거릴 수밖에 없는... 아이의

사는 게 참 염치가 없다

2025-03-27T21:46:57Z

나 살아낼 궁리만 하기에도 벅찬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한고비 넘으면 또 한고비 매일이 챌린지 같다고,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받는다고.. 12.3 내란 사태 이후 종일 뉴스를 틀어두고 지냈더니 아이가 너무 불안함을 많이 느껴 윤의 체포 이후로는 한동안 뉴스를 멀리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주장들에 머리가 시끄러웠다. 일상의 에너지를 분노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이 뽑기 대소동

2025-03-27T13:07:38Z

딸은 이 뽑기에 의연한 편이었다. 엊그제까지는.. 치과에서 첫 앞니를 뺄 때도 울지 않고 씩씩했다. 그 후 4~5개의 이도 별로 요란스럽지 않게 빠졌다. 치실로 묶어 이마를 톡 쳐 뽑은 적도 있고, 두 번째 윗 앞니는 햄버거를 먹다가 꿀꺽 삼켜버리기도 했다. 마주 보며 햄버거를 먹다가 뭔가 이상하단 표정으로 갸우뚱거리던 녀석, 혀를 요리 저리 굴리더니 "엄

딸의 콤플렉스가 시작되는 나이

2025-03-25T13:41:16Z

임신 16주쯤 뱃속 아이의 성별을 알게 됐을 때 조금은 싱숭생숭했다. 내심 아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딸 바라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나처럼 살까 봐. 여자로서 살아낸 지난날이 참 지겨웠다.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강박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 엄마는 타고난 미인이었다. 어딜 가나 예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 초등학교 때

은니에 관한 주책바가지 고찰

2025-03-22T01:48:44Z

"충치가 있네요. 양쪽 윗어금니 사이가 썩었어요. 총 네 군데, 보이시죠?" 딸의 치아엑스레이를 보면서 마우스로 하얀 이 사이 시커먼 부분을 가리켰다. 딸은 현재 이갈이 중이다. 쌀알만 하던 이가 하나 둘 빠지고, 그보다 좀 더 누렇고 큰 새 이가 다시 자리를 잡고 있다. 위아래 앞니 네 개는 이미 새로 갈았고, 지금은 그 양 옆 이빨이 빠지고 올라오는 중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라고 말할 용기

2025-03-22T07:03:36Z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그동안 게을리했던 브런치북 두 개를 동시에 연재하며 2025년 봄을 시작을 알리고 있어요. 잘 읽고 계신가요? 출간 이후 저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쩐지 몸도 마음도 후련해지고요.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라는 책의 가치를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많이 생겨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연남동에 멋진 공연장 '연남스페이스'

<폭싹 속았수다>는 판타지다. -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2025-04-01T18:01:46Z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다. 내일이면 3막이 공개된다. 주인공 애순의 봄, 여름 다음으로 가을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테다. 처음에 1막 1화를 봤을 때 후회했다. 시작부터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이다. 눈물샘이 터졌을 때 두루마리 휴지로 감당이 안 돼서 결국 재생을 멈추고 가제 손수건을 들고 와야만 했다.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기보다는

김윤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