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돌봄이 필요해

2025-02-21T01:39:05Z

아팠다. 공기에서 느껴지는 열기 탓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몸은 으슬으슬 떨려왔다. 인중은 쉴 새 없이 흐르는 콧물로 마르지 않았고 그걸 닦아내고 흥흥 풀어내느라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결국엔 가누지 못하는 몸을 침대 속에 집어넣었다. 도미토리 방에 달린 에어컨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이층 침대가 2개 놓인 방을 쓰고 있었다. 한 공간에

여전히, 제2의 고향을 찾아서

2025-02-19T02:30:20Z

여전히 서울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다. 이 사실을 떠올릴 때면 내 인생은 좀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나갈 자신은 없다. 아직은 직장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고 고정 수입이 생긴다 해도 전세자금이나 월세가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니까. 예전 같지 않은 부모님도 목에 걸린 가시 같았다. 무시하고 그냥 다른 음식을 꿀꺽 삼키면 되는데, 자꾸 신

'나'를 돌보는 삶

2025-02-17T01:59:42Z

“9시간 자서 기분이 좋아요. 상쾌해요.”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9시간이나 잤으면 시간을 허비한 것이고, 그건 기분 나쁠 상황 아닌가. 애써 긍정 회로를 돌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 말을 뱉은 사람은 전혀 애쓰는 표정이 아니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주름 하나 없이 깊은 잠에서 막 건져 올린 말간 행복, 그 자체였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2025-02-14T04:43:04Z

유토피아. 책에서만 보던 그 단어를 낯선 곳에서 발견했다. 내가 머물던 공간의 방명록에서. 누군가에겐 그곳이 유토피아 같은 곳이었다고 했다. 유토피아라.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너무도 멋진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단어이기도 했다. 나도 처음에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어쩜 이렇게 따뜻한 곳이 있지? 그래서 다시는

모자라도 괜찮아

2025-02-12T23:58:19Z

어릴 때 내가 꿈꾸던 진짜 어른은 이런 모습이었다. 세미 정장 차림으로 능숙하게 운전해 출근하는 직장인, 회사에서 유능함을 마음껏 발휘하는 전문가, 저녁엔 향긋한 와인을 곁들인 맛있는 식사를, 주말엔 나른한 여행과 여가를 즐기는 문화인, 무엇보다 나만의 취향을 채운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여유를 즐기는 생활. 그게 진짜 어른의 삶이라 생각했다. 물론 현실

더 좋은 사람

2025-02-10T01:00:07Z

"쟨 보통내기가 아니야." '보통' 이상이라는 메시지였지만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저냥 넘어가도 될 일을 구태여 끄집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게 왜 잘못인지 머리론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음 깊이 깨닫고 있었다. 내게 문제가 있다고. 어릴 때부터 내가 배운 건 '정의로움'이었다. 잘못된 부분은 문제 제기를 하고, 법과 규칙, 상호 간 계약에 의해

따로 또 같이, 산뜻한 우리

2025-02-08T04:52:03Z

"C발 T야?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F야?” MBTI, 애니어그램, 사주... 온갖 성격 유형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참기 힘든 말들이다. 나는 F이지만 합리적인 상황 판단과 문제해결에 고심하고, P이지만 매일 계획을 세운다. 내가 성격 유형 테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나’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내게, 나와 다른 인간 유형이 있음을 알

내가 꿈꾸는 사이

2025-02-08T01:00:01Z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쪽 어깨 위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봤더니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 나를 향해 훈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연스레 흘러내린 티셔츠를 끌어올리면서. 슬쩍 보인 어깨끈은 요가복이라고, 남의 몸에 허락 없이 손대는 일이야말로 진짜 큰 문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바뀐 신호에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설령

낯선 곳에서 밥 벌어먹기

2025-02-06T02:36:21Z

지역의 인문환경을 알아보는 일은 자연환경을 알아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품이 든다. 자연은 상태를 확인하는데 비교적 짧은 시간이 들고, 오감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과 그들이 만들어낸 무형의 분위기는 복잡 미묘한 구석이 있어 단기간에 파악할 수 없을뿐더러 멀리서 바라보면 진짜 핵심을 놓치지 십상이다. 게다가 다섯 가지 감각으로는 도무지 닿을 수 없는

함께 즐겁게, 지역 이주 또래 찾기

2025-02-04T02:29:24Z

지역에 살고 있는 또래를 만나고 싶었다. 고향이 아닌 곳에 정착한 사람이라면 더욱 좋았다. 처음 방문한 곳은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는 개인 공간이었다. 낯선 지역에 저렴하게 머물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자기 집 한편을 내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연고 없는 동네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 사적인 공간에 타인을 들인다니. 그 선택 과정과 용기로 나아간

덜 무해한 사람

2025-02-02T09:32:09Z

출발점은 명료했다. 어느 지역에서 살 것인가. 하지만 여러 지역을 방문할수록 답이 명확해지기는커녕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조금 억울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투자해 정보를 쌓아가는데 왜 여전히 선택지를 고를 수 없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궁금했던 건 '나와 잘 맞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내가 수집하고 있는 정보는

[메일링 서비스] 어른들의 사회생활 - 교과서 밖으로 나온 당신을 위한 사회수업

2025-01-22T03:36:22Z

계엄 선포를 시작으로 탄핵 소추와 체포까지. 수많은 일이 쏟아지고, 우리는 뉴스 중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낯선 용어와 상황은 가뜩이나 쌓인 분노 게이지를 높일 뿐이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비루한 전공을 살려 기사 속 정치/법률 제도나 개념을 쉽게 풀어내는 사회 수업 한 편씩 띄웁니다. (전문 지식이 아니라 그걸 설명하는 방법을 공부했습니다)

'서울'이라는 생활방식 - 서울 캥거루의 독립운동기/ 제2의 고향을 찾아서

2025-01-21T03:46:02Z

처음 서울이 답이 아니란 생각을 한 이유는 순전히 비싼 집값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서울이어야만 하는 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서울에서 살고 싶니?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대답은 No! 였다. 내가 떠나고 싶은 건 단순한 ‘서울’이라는 지역이 아니라, ‘서울’로 대표되는 대도시의 생활방식이었다. 낯선 이와 부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 짓다' - 내향형인간을 위한 '온라인 에세이 클래스'

2025-01-22T01:26:18Z

매일 쓰는 습관을 키우기 위한 3주 평일 매일 글쓰기 '담아, 내다'를 진행했는데, 긴 호흡의 글을 완성하는 클래스에 대한 문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나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글쓰기, '담아, 짓다' 서울까지 움직이기 힘들었던 전국구 예비 작가님들, 글쓰기 모임은 가고 싶지만 극내향형으로 얼굴을 마주하기 부끄러웠던 I분들, 혼자 끄적이는

민폐녀가 되고 싶지 않아

2025-01-17T02:10:55Z

오전 6시 15분. 첫 번째 알람이 울린다. 알람을 끄고 잠시 눈을 다시 감는다. 6시 20분 두 번째 알람이 울린다. 이제 몸을 뒤척일 시간, 하지만 조금 더 이불을 끌어당긴다. 6시 25분, 마지막 알람이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 없이 핸드폰 화면을 몇 번 터치하다 보면 금세 또 5분이 지나있다. 6시 30분. 그제야

무기력의 이유 - 변명하고 싶어지는 날들

2025-01-10T14:14:58Z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뉴스를 살핀다. 오늘은 체포가 됐으려나. 그렇다고 엄청나게 무언가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무얼 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한 쪽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지친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뭘 하고 싶지도, 누굴 만나고 싶지도 않다. 무작정 누워만 있고 싶은데 막상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 화가 난다. 대체 왜 이러는

글을 쓰는 일 - 새해 다짐

2025-01-02T03:19:02Z

'네 글은 너무 바른 느낌이야. 그걸 깨야 돼.' 누군가가 말했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길에 내 글을 대입하고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 거라고,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모범생, 이름만으로도 지루한 학교 교사, 그 과거가 그에게 편견을 심어준 거라고 믿고 싶었다. 물론 그 사실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 말이 문득문득 떠오른 건

무거움을 이기는 명랑함에 대하여 - 나의 다짐

2024-12-19T09:23:39Z

"이 사람들은 세상을 구할 생각이 없더라고요." 누군가 뱉은 한 마디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역소멸'이라는 화두 앞에서 '관계 인구'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가 말한 '이 사람들'은 지역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화유니버스'와 그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협동조합 청풍'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대표는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

타조의 고백 -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2024-10-26T05:10:53Z

얼마 전 진행했던 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노트북에 붙은 노란 리본을 가리켰어. 이건 대체 왜 붙여놓은 거냐고 물었지. 불쾌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아서 떨어지지 않아 붙여 놨다며 우스갯소리를 던졌어. 돌아온 건 무뚝뚝한 표정이었어. 비슷한 사고는 많았다고, 그런 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물었지만 대답은 듣지

행복하냐고 묻는 너에게 -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