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해 볼까

2025-04-29T22:00:06Z

아픈지 몰라서가 아냐 너무 아파서 잃어버린 것뿐이야 진통제를 맞아 통증을 가리듯 아픈 것을 망각한 것뿐이겠지 의식적으로는 모르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다 알고 있는 거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외면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누군가는 아픈 이유를 찾을 거고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인걸 만약 너무 아프다면 너도 잠시 잊어버려 그리고

간지르르 봄바람

2025-04-28T01:31:40Z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이래이래 걷습니다 참나무 태워 구워내는 통닭 한 마리 지나 가로수 사이로 걸린 봄의 햇살을 맞으면서 보금자리를 향해 걷습니다 주머니 속 꼬깃꼬깃 마스크는 꼬릿꼬릿 할 거 같아도 다행히 필터를 뚫고 들어오는 봄날의 상쾌함을 이길 수는 없나 봅니다 평일 저녁은 어김없이 이 길을 걸어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이 길

누렁이는 미워할 줄을 모릅니다

2025-04-28T03:41:09Z

시뻘건 불길이 나를 잡아먹기 위해 코앞까지 닥쳐옵니다 철그덩 쇠목줄은 저 화마보다 더 질기고 잔인한 놈입니다 이미 잔털은 불에 그을려 다 타버리고 뜨거운 바람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울리던 사이렌 소리와 부산한 사람들의 손에는 한가득 소중한 것들을 이고 지고 이 불구덩이를 떠나갈 동안에도 그나마 덜 소중한 나는 이곳에 갇혀 당신만을 기다립니다

마법입니다

2025-04-26T06:31:22Z

이것은 마법입니다 절대 꽉 막힌 마음이 가슴이 눈물이 무슨 짓을 해도 안될 것 같은 때에도 괜찮다는 한마디에 그냥 그렇게 괜찮아지는 건 그건 마법입니다 마법은 당신이 마음을 열었을 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괜찮다고 그냥 그렇게 오늘은 괜찮아질지도 잠깐만 울고 나면 가벼워질지도 그냥 한마디면 될지도 진짜 괜찮다고 우연히 지나다 만난 말이 기

콘클라베

2025-04-24T02:47:46Z

내가 몇 번째 콘클라베를 보는 건지는 모르겠다 세어보지 않았으므로 난 천주교인이 아니므로 그래도 세상사 세계를 하나로 집중시키는 일이 있다는 건 참 멋지고 귀한일인 듯 한 사람이 이렇게 우주 같은데 한 사람으로 이렇게 세상이 변하고 움직인다니 어쩌면이라고 항상 생각한다 가까이서 보면 서툰 인간들의 손길이지만 멀리서 보면은 어쩌면 신의 손짓일지도 그 앞에

아파요

2025-04-22T13:11:01Z

내가 조금 아파요 한 움큼 움켜쥐고 먹은 약 때문인지 세상이 어지럽고 빙빙 돌아요 내가 아프다는 건 알았지만 몸까지 아플 줄은 몰랐나 봐요 만약 당신이 아프단 걸 알았다면 누군가는 달려와줄까요? 한소끔 삼킨 기억들이 얹혀서 오늘도 나는 아파옵니다 아 이번에는 마음이요

피고 지는 꽃처럼 1029

2025-04-20T21:11:57Z

한 살을 더 먹어갈수록 꽃이 좋아지는 것은 아마 때 되면 피어나는 그들처럼 나도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는 아직은 어린 마음 때문이리라 저기 피고 지어서 푸르른 새순을 티우는 벚꽃나무처럼 10월의 젊음도 잊히지 않고 다시 피기를 아련하게 바라본다 가을에는 졌지만 봄에는 다시 피어나리라 어른이 되고 보니 나무가 좋아지는 것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그곳

여기로 와서 우리 함 봅시다

2025-04-24T16:08:07Z

붉디붉은 꽃이 겨울의 끝자락과 함께 지고 새하얀 꽃이 피었다 합니다 산바람 맞아가며 설레던 마음 이끌고 동네 목욕탕을 찾아서 한숨 푹 담그고 나니 발그레 얼굴에 뽀얀 꽃이 물들었습니다 자 이제 우리 함 봅시다 몸도 마음도 모두 가볍게 비워내 서로 이고지고 우리 꽃놀이 갑시다 다 지나간 시간이야 다 저문 세월이고 그냥 가게 내버려 두어 옷깃 한번 훌훌

오른손잡이지만 왼손 쓰기를 연습합니다

2025-04-06T23:08:58Z

우연하게도 오른손잡이로 태어나 한 번도 왼손으로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다수에 속해 한 번도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은 왼손잡이가 되어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 한 사람 건사하기도 힘들다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고 싶다가도 생각 없는 나는 왼손 쓰기를 연습한다 우리가 서있는 세상은

우리의 봄

2025-04-20T09:55:18Z

오늘도 여느 때처럼 밖을 나섰지만은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봄이었습니다 겨우내 그렇게 기다리던 점이 선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기괴한 세상과 사람들이라 해도 결국 언제나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이리라 나는 그러나 우리로써 믿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봄을 지켜냈습니다 그것은 각자의 바람이 모여 이루어낸 역사의 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

우리가 나가되어 울어봅니다

2025-04-24T16:07:39Z

비를 기다리며 하늘을 봅니다 엉망진창인 세상이지만 여기저기 무서운 화마가 씩씩대며 다 잡아 삼킬 듯 몰려다니지만 고생하는 손길하나 보태고 어우르는 마음 한 톨 더해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지만은 그래도 인간의 마음만으로는 이제 슬슬 지쳐가는 이때에 반갑게 대지를 적시는 차가운 눈비 그 한방울 한송이에 너의 눈물도 같이 내리고 우리의 바람도 같이 불

벚꽃이 만개하기를 기다리며

2025-04-24T16:07:18Z

여기에도 저기에도 불꽃이 피었습니다 복잡한 도심을 지나는 차들에도 잔뜩 인상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시아린 열꽃이 피었습니다 겨울이 길어지고 기다리던 봄이 더디어지자 지친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화로 만개했습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희망을 기다립니다 늦어지는 이 봄에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잔인한 이겨울이 순리대로 지나가고 곧

봄, 호흡 그리고 희망

2025-04-24T16:06:51Z

봄이 와서 좋은 이유는 길어진 해 덕분에 퇴근길이 아련하게 밝아온다는 것 더 이상 어두운 골목을 지친 발걸음으로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 봄이 오면은 하나둘씩 두꺼운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고 곧 흐드러지게 필 벚꽃을 기다리며 설렌다는 것 이미 다가온 봄의 향기에 찬바람 속을 걸어도 따스함을 본다는 것 두그둥 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어두운 지하를 거닐 때에

평범한 돌을 왼손에 꼭 쥐고 걸어봅니다

2025-04-24T16:06:11Z

평범한 조약돌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 발로 살살 굴려보기도 하고 손으로 한껏 잡아 돌려보기도 하고 언뜻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해서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냥 돌일 뿐인지라 한 세월 어르고 달래도 보고 평범한 돌이라 설득도 해보고 여기저기 감정도 받아보았더니 언제나 돌아오는 답은 평범한 돌이라 하여서 가만히 둘러보아라 저기 저 이쁘게 튀어나온 수석이면은

이름을 지우고 나를 그려봅니다

2025-03-06T09:08:34Z

몸이 아파 지은 약봉투에서 프린트된 이름을 지웁니다 이름은 나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저려 이것저것 구입한 영수증의 카드번호를 도려내봅니다 나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기 때문입니다 내 기억 속 부끄러운 생각도 이렇게 지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나의 흔적을 지우고 이렇게 나의 이름을 지워봅니다 지저분한 이면지에 내

벗어버린 신을 그제야 고쳐 신는다

2025-03-22T08:50:09Z

바람이 지나간 자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느낀 이는 그 난 자리를 기억합니다 매일 신던 신도 벗어버리고 맨발로 맨땅을 걸어갑니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는 살아있음의 증거입니다 끊었던 술도 죽은 이 앞에서는 이별의 선물인뿐 한잔 들이켜니 꺼진 줄 알았던 불씨가 피어납니다 다 알고 있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건 우리는 매일 마지막을 향해

정수는 이미 전해지고 닿아있다

2025-04-20T09:55:42Z

인간은 수많은 고민을 거듭했고 그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여태껏 정수의 정수를 거듭했다 그것은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영상으로 수없이 전해져 오고 그것을 보고자란 우리는 그것에 이미 흠뻑 젖어있는지도 삶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고민하고 전쟁을 말하고 평화를 갈망하고 왜 그래야 하는가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가 현실에 막혀 함부로 던질 수 없었던 수많은 질

총을 드는 어렸던 나와 지금의 너에게

2025-02-18T03:26:24Z

처음엔 다른 세상인 것 같았다 여기는 내 조국이 아닌 것 같았다 하루가 한 달 같았다 내가 언제 몇 번 화장실에 가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비밀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내밀한 수치심까지 공유하며 웃었다 나도 한껏 발가벗겨졌다 태어나서 처음 통곡하며 울었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살인을 배우는 곳에서는 새로운 규범이 용인되었고 모두가 당연히 받

아는 것이 그리울 때

2025-02-20T18:00:27Z

아는 것이 항상 그리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모르는 게 없는 것은 아닌듯싶습니다. 누가 봐도 난 모르는 것 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그리울까요? 아는 것이라고 믿지만 아는 게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모두 알았다고 믿었을 때 그것이 아님을 알아갑니다. 한 살을 더 먹을수록, 일 년을 더 살아갈수록 나는 아는 것이

내 안의 하루가 남는다

2025-03-22T23:58:02Z

효율의 시대에 존재조차 부정된 아이가 산다 아이의 불안 그 속에서 피어난 물음이 선다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나버려 그 속에서 자라난 의문이 핀다 반복된 질문에 외면이 운다 그것은 그것대로 하루가 파생한 일상이 온다 시간에 순응하면 순간으로 간다 하루는 어쩌면 인생의 축소판인 듯 지금을 본다 오늘의 여기는 누구의 어디인가 묵묵히 나

가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