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누구를 환대해야 하는가 - [눈부신 안부] - 백수린

2025-03-13T13:53:49Z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눈부신 안부 / 백수린 / 문학동네 (색깔로 강조된 부분은 제가 표시했습니다.) 지난 24년, 6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며 일 년을 보냈다. 190일이라는 시간이 내 위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내 온 몸을 훑고 통과해 지나간 듯 느

혼자 본 퇴마록

2025-03-05T06:21:42Z

목요일 밤, 혼자 퇴마록을 보고 왔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극장에서는 금요일부터는 봉준호 신작 미키17이 시작하기 때문에 목요일까지만 퇴마록을 상영한다. 남편과 아들에게 권해봤지만 다들 별 관심을 안 보여서 나 혼자 극장을 찾았다. 거의 30년 전 PC통신에 연재를 시작했던 소설 퇴마록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다니. 이전에 만들어졌던 웹툰이나 영화의 조악함을

납의 맛,&카지노 게임;딸기의 맛, 목의 맛

2025-03-01T04:26:35Z

왜냐하면 목이란 무겁고 피로한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양한 것을 삼키려면 아무래도,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맛이 나지 않을까 싶고, 무겁고 피로하다면 납,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백의 그림자] 황정은/창비 황정은의 서늘하고 아름다운 [백의 그림자]를 읽다 저 구절을 발견하곤 순간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나는 하루종일 같은 말을 반복해야하고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2025-02-25T11:14:02Z

결국, 우리는 단편집이야.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문학동네(원제: The Storied Life Of A.J.Fikry) 소설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건이 있고 인물이 그 사건 속에서 고뇌하는 이야기들, 사건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때로 뛰어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들, 노력하고 노력하다 추락하거나, 더욱

남에게 보여주는 방학일기 - 봐달라고 조르는 일기라지요 -_-;;;;;;;

2025-02-19T01:00:07Z

20250118 어제 늦게 잔것도 있고해서 8시 알람을 끄고 더 잤다. 잠시 뒤 작은 아이가 침대로 들어왔다. 녀석도 거실에 둔 핸드폰 알람을 끄고 비몽사몽이었다. 둘이 꼭 껴안고 두 시간을 더 잤다. 몇 달 전까지만해도 나보다 작았는데 이젠 내가 아들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푹 자고 아들과 같이 일어났다. 포근한 늦잠이다. 20250124 경기가 어

기꺼이 감당한다는 것 - [희랍어 시간]-한강

2025-02-21T05:40:44Z

하지만 믿을 수 있겠니. 매일 밤 내가 절망하지 않은 채 불을 끈다는 걸. 동이 트기 전에 새로 눈을 떠야 하니까. 더듬더듬 커튼을 걷고 유ㅂ리창을 열고, 방충망 너머로 어두운 하늘을 봐야 하니까. 오직 상상 속에서 얇은 점퍼를 걸쳐입고 문밖으로 걸어나갈 테니까. 캄캄한 보도블록들을 한 발 한 발 디디며 나아갈 테니까. 어둠의 피륙이 낱낱의 파르스르한 실이

요망과 곰탱 - 개와 고양이, 혹은 돌쇠와 후궁?

2025-02-13T03:23:09Z

방학 중 내 지정석은 침대다.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침대에서 드라마를 본다. 먹는 것과 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곤 침대지박령이 아닌가 의심할 만큼 침대에 붙어 산다. 아들과의 대화도 주로 침대에서 이뤄진다. 시어머니와의 고부갈등을 사이다로 해소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인스타로 보고 있는데 큰아들이 옆에 와 바라당 드러누웠다.

제일 후회하는 한 가지 - [달에 울다] - 마루야마 겐지

2025-02-11T11:38:33Z

야에코 위로 폭염이 소용돌이쳤다. 그 위에는 타서 눌은 하늘이 있고, 조금 더 위에는 타다 문드러진 태양이 눌어붙어 있다. 이 산 저 산에서 요란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폭풍우 같은 매미 소리는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괴성을 지르던 야에코가 벌채된 나무처럼 무너지며 내 위를 덮쳤다. [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자음과모음) 70년대에 태어나 보

고흐전을 보고 와서

2025-02-07T08:04:45Z

연일 한파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게 따뜻해서 걱정했던 마음을 알아챈건지 갑자기 추워졌다. 체감온도 영하 22도라는 뉴스가 믿기지 않았다. 안그래도 집순이집돌이 가족인데 날씨마저 추우니 하루종일 잠옷을 입고 집안에서만 꼼지락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온가족이 아침부터 일어나 집을 나서야했으니, 얼리버드로 예매했던 고흐전 관람마감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

아들이 방학이라서&카지노 게임;

2025-02-06T08:16:38Z

쇼핑하는 날 사춘기 아들과 옷을 사는 일은 신속간단하지만 재미가 없다. 집근처에 스파브랜드 매장이 새로 오픈하며&카지노 게임;1+1행사를 했다.&카지노 게임;방학이라 교복말고 입고 나갈&카지노 게임;옷이 필요하니 귀찮아하는 아들들을 끌고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제 옷 사준다는데도 얼르고 달래며 비위맞추는데, 심지어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간다. 생각해보니&카지노 게임;억울하고 약오른다. 큰 아들은 도통

오십의 문장들 - 제로부터 시작하는 문장수집

2025-02-02T12:59:10Z

청춘에게는 청춘의 문장이 있다. 청춘에게 어울리는, 청춘이어서 어울리는, 청춘을 청춘이게 하는 문장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작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고,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도 생각난다. 젊은 날 한 번쯤에 다이어리 한 켠에&카지노 게임;사랑에 관한 달콤하고 두근거리는 아포리즘이나 싯구들을 적어본다거나, 따라서 다짐하게 하는&카지노 게임;명언이나 문장들을 책상앞에

아들과 털 1, 2, 3

2025-01-29T00:06:01Z

아들과 털 1 이번 겨울에 병역안내문도 받은 커다란 아들에겐 요상한 병이 하나 있다. 샤워하고나면 꼭 나한테 와서 한 번씩 치댄다. 그 무거운 몸을 굳이 내 침대에 던지면서 안아달란다. 왜 침대에 던지냐면, 내가 침대와 한 몸이니까.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으니까 그렇다. 그날도 냅다 안기는 아들을 부여잡고 여기저기 쓰다듬는데, 갓 말리고 온 머리카락에서 좋

쭈글쭈글하다

2025-02-05T02:33:09Z

쭈글쭈글은 불규칙하게 주름이 많이 잡힌 모양을 뜻하는 부사어고, 쭈글쭈글하다는 쭈그러지거나 구겨져서 고르지 않게 주름이 많이 잡혔다는 형용사다. 하지만 오늘 나의 쭈글쭈글은 주름잡혀 구겨진 모양을 말하는 게 아니다. 고르고 단정한 문장이 아니라서, 삐뚤빼뚤한 단어들의 배열이라서, 그러니까 못난 글이라서. 마음이 쭈'글'쭈'글'하다. 새삼스럽게 왠 자기비

책 읽고 모은 돈으로 기부하기

2024-12-18T02:33:01Z

지역 맘카페에 모집글을 올리면서 엄마들과 모여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꽉 찬 2년이 되어간다. 규칙도 이름도 없는 느슨한 모임이었지만 그간 멤버들도 많이 늘었고, 모임 이름도 정하면서 조금씩 모임이 단단해져갔다. 2주에 한 번씩 만나 2024년에도 스무 권의 책을 함께 읽었다. 올해 초, 완독을 위한 긍정적인 자극을 주며 동시에 의미를 더하는 방법을 생각하

소년이 왔다

2024-12-15T13:44:39Z

작가 한강은 1980년 광주의 오월을 다룬 소설에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소년이 오다도 아니고 왔다도 아닌 '온다'라고. 노벨상 수상 연설 '빛과 실'에서 말했듯이 죽은 자가 산자를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우리에게 그 날을 말하기 위해, 기억하고 잊지말라고 전하기 위해 현재진행형으로 소년이 오고 있다. 소년이, 온다. 지난 주 화요일, 12월

드문드문 11월 일기

2025-02-15T04:48:34Z

1. 열네 살 작은 아들 별명은 '요물'이다. 하도 엄마를 들었다놨다해서 내가 붙였다. 겨우 14년 산 주제에 어찌나 엄마를 심쿵하게 하는지, 매번 돌고래소리 비명을 지르게 한다. 살짝 무심한 모먼트에 다정한 멘트, 얘가 얘가 누굴 닮았나 싶어 한 번더 처다보게 된다. 아빠 피라고는 한 방울도 안 섞인게 분명하다. 아이의 말을 기록해놨으면 좋았을텐데 연구

전설의 흑역사, 졸업앨범 촬영기

2024-11-08T02:40:46Z

갑작스런 질문 하나. "당신이 기억하는 학창시절 최고의 이벤트는 무엇인가요?" 뭐니뭐니해도 수학여행이 첫 손 꼽히지 않을까싶다. 세대마다 지닌 추억은 다를지라도 친구들과 함께 낯선 여행지에서 숙박하는 경험은 지루한 학교생활에 분명 특별한 기억일것이다. 하지만 최근 교육현장에서는 코로나 여파와 안전사고등의 이유로 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 같은 숙박형 체험활동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이 있다

2024-10-28T06:39:59Z

20대 푸르른 청춘의 날에 나는 자취방 문을 잠그고 제니스 조플린을 들으며 울었다. 사랑도 연애도 무엇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른채로 방황만했다.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시간들이었다. 지금 같으면 병원을 찾아 도움을 받기라도 했을 텐데, 나는 그저 왜 마음이 힘든지, 왜 사람이 버거운지, 왜 사는게 괴로운지도 모르고 혼자 울면서 삭이고 버

드문드문 10월 일기

2025-02-15T04:49:19Z

1. 중국집에 혼자 들어가 짜장도 짬뽕도 아닌 우동 시켜 먹는 나란 사람, 단무지 한 접시 더 리필하고 국물까지 다 먹는 나란 사람, 음, 참 좋다. 2. 가을맞이 환경구성을 했다. 교실 뒤 게시판에 나뭇 가지 그림을 출력해 붙이고 칭찬의 말을 적은 가을나뭇잎을 붙인다. 아이들에게 나뭇잎을 나눠주면서 내 이름을 적은 나뭇잎도 슬쩍 내밀었다. 아이들은 귀찮아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 너라고 너

2024-10-24T10:21:57Z

또다. 또 당했다. 이번에는 인터넷 대전이란다.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줄여서 대전. 익명으로 뒷담화내용을 보내면 캡쳐해서 대신 게시물로 올려주는 인스타 계정이다. 처음 알았다. 4교시 수업 중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긴급한 전화가 왔다. "부장님, 죄송한데 긴급하게 6학년 담임선생님들 모였으면 합니다. 하교 전에 해결해야할 거 같아서." 인스타에서 우리 학교

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