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의 귀환

2025-04-27T10:54:27Z

장주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道가 미소 짓고 있었다. 無와 有의 경계에 흩뿌려진 시간, 그 틈에서 타인의 얼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껍질, 분노라는 근육의 떨림, 슬픔이라는 물방울의 무게, 기쁨이라는 눈동자의 반짝임. 모든 감정은 이름이 없었으나, 동시에 이름뿐이었다. 道가 말했다. “네가 이것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네가

空

2025-04-27T01:08:22Z

푹푹푹

2025-04-27T06:26:34Z

물은 숨을 쉬고 바람은 이름이 없으며 빛은 경전을 읽지 않는다 하늘이 텅 빈 날엔 나는 나를 들고 나간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흙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잎사귀 웃음소리가 흐릿하게 젖는 냇가 거기 마음이 푹 두 번째 푹 바람에 실려 세 번째 푹 사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분별없이 웃는 이여 당신은 지금 깨달았다 그 누구도 모르게 道는 뿌리도 없이 피어나고

노자는 늘 수건을 쥐고 있었다

2025-04-26T02:25:15Z

도덕경을 읊던 시절부터 노형은 언제나 수요 없는 청소부를 자처했다. 내가 툇마루 위에서 썩은 수박껍질을 관찰하며 “이 세상은 참으로 부드럽게 썩어간다”고 중얼거리던 바로 그날. 노형은 검은색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 수건엔 총무과라고 적혀 있었고, 노형은 그걸로 여기저기 문지르고 닦았다. “노형, 그건 무얼 위한 수건이오?” 노형은 잠시 멈칫하더니,

나는 너에게 닿고 싶다

2025-04-24T09:33:08Z

도로는 땅을 가른다. 철도는 산허리를 베어낸다. 항로는 바다의 평온을 갈기갈기 찢는다. 위성의 궤도는 하늘의 적막을 흉터처럼 감돈다. 우리는 말한다. 이것이 소통이다. 너와 나 사이에 닿을 길이 필요하다고. 너와 나, 우리와 너희, 여기와 저기 사이에 닿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그것은 늘 하나의 절단으로 시작했다. 산을 베고, 강을 끊고, 바다를 긋고,

거울나라에서 도망친 아이

2025-04-24T09:33:23Z

어느 나라든 한때는 완벽을 꿈꾼다. 이 나라 역시 그랬다. 오랜 전쟁과 실업과 기후변화로 피로에 찌든 이들은 어느 날 ‘거울나라 계획’이라는 전 국민 교육프로그램을 통과시켰다. 이 계획은 모든 아이들을 하나의 거울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울처럼 투명하고, 반사율이 높으며, 잡티 없는 아이를 양산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완벽한 인간이

무지개의 사막에서

2025-04-24T09:33:37Z

습관처럼 전쟁의 먼지가 눈앞까지 내려온다. 누군가는 먼지를 고향이라 불렀고, 어떤 이는 먼지의 틈에서 붉은 신발을 신고 춤췄다. 그 틈에서 나는 시간과 공간을 관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너라고 불리던 이름은 먼지 속에서 다시 흙이 되었고 나라는 말은 그 위에 핀 한 떨기 환영이 되었다. 우리는 한때 나와 너를 믿었다. 나는 나였고, 너는 너였다. 그 둘

무릎 꿇은 산

2025-04-24T22:47:57Z

먼 옛날, 세상의 중심엔 ‘산’이 하나 있었다. 이 산은 태어나면서부터 늘 곧추서 있었고, 한 치의 굽힘 없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믿어졌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 산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좌표를 삼았다. 그리하여 누구는 말하기를 “저 산의 등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진실에 이를 것이다.” 또 누구는 말하기를, “저 산을 오르는 자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

성인의 잔혹함에 대하여

2025-04-24T09:34:07Z

돌이켜본다. 동서고금의 성인들이 남긴 유언처럼 남아 있는 그들의 실패를. 왜 그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잔혹했는가. 공자는 세상을 유랑하며 장광설을 일삼았지만 고난과 실패, 좌절 속에 죽었다. 맹자는 천하의 골목을 떠돌며 유세했지만 아무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붓다는 수십 년 법좌를 폈으나 붓다의 생전 석가족은 몰살당하고 그의 왕국은 무너졌다. 예수는

Let’s Be Chickens

2025-04-24T09:34:24Z

부끄러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굴욕을 당하고도 칼을 뽑지 못하는 자의 기색이 아니다. 칼을 뽑고도 이기지 못하는 자의 무력함도 아니다. 상대의 칼에 베여 쓰러졌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논쟁을 피해 펜을 들지 않는 것, 혹은 펜을 들어 논쟁에서 패배한 것조차 부끄러움이 아니다. 진정한 부끄러움은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장

가는 것과 오는 것

2025-04-24T09:35:55Z

생로병사가 어찌 슬퍼할 일이랴? 이미 저 멀리 전국시대 때부터 나는 이를 외쳤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슬퍼한다. 그러나 그것이 슬퍼할 일이라면, 이 세상은 오직 슬픔의 바다여야만 한다. 오고 가는 모든 것은 결국 道 위에서 춤추는 순간의 물결일 따름인데, 어찌 물결의 춤사위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매달리는가? 세상사 모두가 그러하다.

해우소

2025-04-24T09:36:09Z

당신은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주행하는 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 제어장치와 브레이크 오류로 속도를 줄일 수도, 차를 멈출 수도 없다. 뒷좌석에는 영유아 아이들이 타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도를 아십니까? 복수하셨군요

2025-04-24T09:36:24Z

삶은 감정으로 가득 채운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다. 나를 포위한 감정들은 모두 뜨거웠다가 이내 식는다. 물과 같이. 분노가 일었다가 식는다. 쾌락이 싹텄다가 시든다. 호기심이 움텄다가 시시해진다. 자쿠지의 감정들이 모두 차갑게 식으면, 내 몸에서 새로이 뜨거운 감정들이 즙을 짜듯 리필된다. 그러곤 다시 식는다. 인간의 정신활동은 이 감정의 자

무아를 버리고 자아를 취하라

2025-04-24T09:36:38Z

바야흐로 행복의 시간이 왔다. 오늘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진정한 자아(自我)를 찾는 게 가능해서다. 하지만 정작 우리 하루하루는 힘겹고 고되다.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가 다른 점은 물질과 정신의 균형이다. 먹고 살기 급급했던 과거엔 가짜 자아가 강했다. 빙하기와 기근, 전염병, 천재지변이 일상이었던 선사시대. 흑사병과 봉건제

팡파르 울렸으면

2025-04-24T09:36:53Z

팡파르 울렸으면 이제 돌아가야지 떠나간 이의 추억과 떠나간 이와 추억과 남겨진 이의 회한과 남겨진 이와 회한과 못다한 것의 후회와 다했던 것의 후회와 다했던 것에 미소와 못다한 것에 미소와 붙잡는 손 뿌리치고 보내야지, 보내야지 뿌리친 손 거둬놓고 남아야지, 남아야지 주인 잃은 신발 안고 주인 찾는 마음 품고 코 끝 체취 옅어질까 손 끝 온기

조삼모사 후일담

2025-04-24T09:37:08Z

전국시대 제물론(齊物論)에 남긴 조삼모사 일화의 후일담을 특기하고자 한다. 세상에 남기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였으나, 오늘날 선남자선여인들이 경계로 삼을 수 있을까 하여. 옛날 송나라 저공(狙公)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이제부터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이를 듣고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저공은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오늘

2025-04-24T09:37:23Z

시계는 돌고 나는 돌지 않았네 오늘이 길다

당신의 추악함을 사랑하라

2025-04-24T09:37:38Z

깨달은 이를 멀리하라. 깨친 이를 가까이 둬선 안 된다. 지독하게 재미가 없는 사람일 테니. 심지어 큰 해악을 끼친다. 붓다나 예수 같은 이가 예배당이나 사찰 목조상이 아닌 바로 당신 옆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상상해보라. 벽창호인 데다 끊임없이 당신의 부족함만 비출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투명한 거울이다. 그저 언제나 눈앞의 존재를 비출 뿐이다. 그 해

세 가지 큰 소리에 대해

2025-04-24T09:37:55Z

세상에서 세 번째로 큰 소리는 자연의 소리다. 역설적으로 오늘날 자연의 소리를 가장 크게 들을 수 있는 곳은 번듯한 도심 번화가의 오페라하우스다. 동서양 관현악단이 연주하는 클래식은 모두 자연의 소리를 응축한 잡음 하나 없는 청아한 소리다. 최초 동물의 뼈에 자연을 담았던 동서양의 악기들은 이후 나무로, 다시 황동에 자연을 담았다. 자연의 소리는 빈 공

행복의 묘약

2025-04-24T09:38:09Z

◎ 준비물 자아 1kg 욕심 반 스푼 비겁함 조금 우물쭈물 1큰술 나르시시즘 한 꼬집 1. 자아를 간단하게 헹군다. 헹군 자아를 욕심 반 스푼과 나르시시즘 한 꼬집을 희석해 해감한다. 양심과 영혼을 모두 빼려면 7년 이상의 해감이 필요하다. 양심과 영혼이 남으면 텁텁하고 껄끄러운 맛이 날 수 있으니 유의하자. 2. 해감한 자아를 여무지게 문대서 양심과 영

아련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