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가르쳐준 삶 - 루이의 시간(13)

2025-04-17T15:59:11Z

나의 반려견이었던 루이에 관한 연재를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몰라 미루고 또 미뤘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러한 결심은 방금 전 꿈에서 만난 루이의 모습 때문이다. 꿈속의 루이는 생전의 마지막 모습처럼 힘없고 텅 빈 눈으로 힘겨워했다. 그 여름, 마지막 며칠 동안 그랬듯이 내 품에 안겨 힘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여

디지털 시대의 낭만, 감각적 경험

2025-03-21T06:17:35Z

디지털 시대의 역설 한때 패션 산업의 미래는 완벽하게 비물질적인 세계로 이동할 것처럼 보였다. AI 스타일링이 개인의 취향을 분석하고, 메타버스 속 아바타가 디지털패션을 착용하고, 런웨이 마저 가상공간에서 펼쳐지는 시대.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더욱 정교해질수록, 패션 소비자들은 역설적으로 촉각적 경험을 더 갈망하고 있다. 스크린 속 렌더링 된 완벽하게 구현

메타버스는 거품일까? - 패션 산업에서 바라본 기회와 한계

2025-03-19T12:18:07Z

2020년,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을 때 패션 업계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문을 닫았고, 패션위크는 디지털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 메타버스는 패션 산업이 생존하고 확장할 수 있는 대안처럼 보였다. 디지털 컬렉션이 런웨이를 대체했고, NFT 기반의 한정판 아이템이 새로운 형태의 소비를 만들어냈다. 브랜드들은 앞다투어 가상 피팅룸과

우리는 왜 개를 사랑하는가 - 루이의 시간 (12)

2025-03-05T01:57:09Z

"너, 펫로스 증후군이 심한 것 같아. 병원에서 치료받는 게 어때?" 오랜 친구들의 권유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어느새 우울과 무기력은 나의 기본 값이 되었다. 마치 죄수가 형벌을 받는 것처럼, 반려견을 잃은 인간은 마땅히 마음의 고통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몹시 슬프니까, 일상을 챙기거나 소소한 기쁨을 찾아내는 것 따위는 놓아 버려도 된다고 여겼

디지털 테크네: 새로운 창조의 시대 - 기술은 자기 존재의 '드러냄'을 위한 촉매제

2025-02-22T04:37:40Z

2024년 12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AI 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2026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AI법률을 제정한 셈이며, 이로써 한국은 AI의 활용 방식에 대한 규범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법안은 단순한 기술적 규제를

AI 이미지, 내 것처럼 써도 될까? - AI 이미지의 경계: 창작, 표절, 그리고 소유권의 딜레마

2025-02-11T09:57:21Z

클릭만 하면 완성되는 AI 이미지가 패션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룩북부터 광고 캠페인, 가상 모델 제작까지, AI 기술은 창작의 속도와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이 혁신은 단순한 편리함 이상의 문제를 동반한다. AI가 창작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상업적으로 활용 가능한가? 그리고 이를 도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 패션과 AI의 경계에

애도할 권리 - 루이의 시간(11)

2025-02-04T22:20:32Z

반려견 루이를 떠나보내고 이틀 뒤, 나는 예정된 수업을 진행했다.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초조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졸업작품 제작에 임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수업을 연기할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강의실 문 앞에서 애써 멈추고, 모자와 안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수업을 진행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보통의 상태인 것처럼. 감정을 억누르며 연기해 냈

AI 창작의 시대, ‘인간다움’을 묻다 - 생성형 AI - 창작의 파트너인가, 경쟁자인가?

2025-02-03T17:17:45Z

창의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슬기로운 줄타기를 해야 하는 패션디자이너에게 생성형 AI는 꽤 쓸모가 크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 수백 가지 디자인 옵션을 생성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트렌드를 예측하며, 심지어 생생한 시뮬레이션까지 가능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해 주는 AI는 분명 창작의 파트너로서 매력적이다. 차기 시즌을 위한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현 시

서툰 어른들을 위한 동화 - 웨스 앤더슨의 세계와 힙스터리즘

2025-01-24T14:22:53Z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이 있다면, 그곳은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세상일 것이다.나는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독특한 색감과 정밀하게 계산된 미장센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물론이고, 삐뚜름한 성향의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강하게 끌린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은 때로 어른스럽지 못하거나 다소 이기적이다. 하지

단식 광대 - 반항하는 인간 (1) : 번아웃에 대한 생각

2025-02-02T15:20:08Z

인간은 끊임없이 인정받기를 원한다. 직장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고 이제는 화면 너머로 누군가의 '좋아요'를 받기 위해 끝없이 애쓴다. 자신이 선택한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배우처럼 우리는 미소 짓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현대인의 번아웃 신드롬은 그 시작점이 명확하

남겨진 인간의 슬픔 - 루이의 시간 (10)

2024-07-19T05:27:47Z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지 미처 배우지 못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의 반려견 루이 이전에는 그런 경험이 없었다. 천천히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수년간 곁에서 지켜본 적이 없었고,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 하나의 존재가 사물이 되는 순간을 목도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허망함,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에서 비롯한 여러 가지

이별의 감각 - 루이의 시간((9)

2024-07-16T01:04:30Z

아주 아주 뜨거웠던 여름날 루이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작은 유골함에 담긴 루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기억력이 매우 좋은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루이를 떠나보낸 그날과, 장례 직후 며칠 동안의 일은 아득한 기억처럼 멀게 느껴진다. 마치 아주 슬픈 꿈을 꾼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무렵의 기억이 이상하리만치 희미한 것에 비해, 몇몇 감각 경험은

루이의 마지막 인사 - 루이의 시간 (8)

2024-07-10T00:27:05Z

지난여름, 루이가 떠났다. 이제 루이가 이곳에 없다는 것을 글로 적기까지나는 무척 긴 시간이 필요했다. 루이의 부재를. 죽음을. 차마 글로 새길 수 없었다. 그것은 여전히 조각도로 나의 심장을 파내는 것처럼. 아프다. 눈 뜰 힘도 없이 축 늘여져 있는 루이에게 매일 수액 주사 바늘을 찌를 때 혀가 괴사 되어 음식을 거부하는 루이에게 유동식을 강제로

봄날은 간다 - 루이의 시간(7)

2024-07-10T00:26:50Z

2023년 2월. 루이는 급성 신부전으로 2차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신장수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동안 최선을 다해 집중치료해 보자 제안했다. 그렇지만 위급상황을 넘긴다 해도 루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을 거라 했다. 각오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나는 매일 울었다. 날마다 바보같이 훌쩍거리면서.. 루이를

거스를 수 없는 단 한 가지 - 루이의 시간 (6)

2025-02-04T18:24:16Z

나의 반려견 루이는 2016년부터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다.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심장약을 먹기 시작한 개들은 보통 3년 정도 후에 위중한 때가 온다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 루이에게 약 3년이라는 시한부를 선고한 것이다. 이첨판폐쇄부전증은 사실 소형 반려들에게 매우 흔한 병이지만, 국내 수술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금으로선 심장 기능을 보조하는 약물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라 - 루이의 시간 (5)

2024-07-10T00:26:06Z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반려견의 시간은 나의 것보다 빠르게 흘러가버려, 나는 루이를 떠나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상상만으로도 괴로운 그 시간 속을 나는 결국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젊은 날의 대부분을 불안과 걱정으로 적셨던 습관성 회의주의자답게, 나는 루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온전히 만끽하지 못했다. 가장 좋아야 할 순간에도 저 끝에 기다리고 있을 이별의

가족이라는 것 - 루이의 시간 (4)

2025-02-04T06:02:25Z

임시보호 명목으로 처음 루이를 집으로 데려온 날, 루이는 마치 얌전하고 의젓한 멍멍이처럼 굴었다. 나는 거실 소파 옆에 극세사 이불로 루이 잠자리를 만들어주었는데, 루이는 제 것이 아닌 방석이나 카펫 위에서 함부로 까불지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사람 음식은 전혀 탐하지 않았고, 허락 없이 방 안으로 들어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밤 루

덤으로 주어진 삶 - 루이의 시간 (3)

2024-07-10T00:25:29Z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건, 2012년 늦봄 장미꽃이 만발해 있던 때였다. 경기도 양주시의 한 동물보호소에서, 관리직원의 품에 안겨 나오며 나를 발견한 그 아이가 어찌나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대던지. 마치 영혼의 단짝을 만난 듯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녀석을 내려놓으며 관리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얘네들이 이래요.자기 살리러 온 사람은 기가 막히게 알아봐요.

살아야 하는 이유 - 루이의 시간 (2)

2025-04-03T16:40:48Z

다들 그런 생각하잖아..딱히 죽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어.그래서 갑자기 스위치 꺼지듯 사라져도 나는 크게 아쉽지 않아. 내가 내뱉은 말에, 나의 오랜 친구들은 흠칫 놀라며 반문했다. '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나는 오래전부터 그랬다. 십 대 후반. 사춘기였던 탓인지 나는 인간 존재가 한없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다. 나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 루이의 시간 (1)

2024-07-10T00:24:54Z

지난 주말 남편이 사다 준 꽃다발의 상태는 영 시원치 않았다. 꽃병에 옮길 때부터 작은 꽃잎들은 후드득 떨어졌고, 유칼립투스는 바짝 메말라 있었다. 눈썰미도 없고 본인이 호구 잡혀도 모르는 남편을 탓하며, 그래서 나는 꽃들을 더 각별히 관리했다. 매일 아침 꽃병의 물을 갈아 주며 더 이상 회생 불가한 꽃을 골라내었는데 이제는 목이 아래로 꺾인 장미 두 송이

야간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