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말 - 연재소설

2025-04-28T01:18:55Z

"여보세요?" "무슨 일 있니?" 먼저 전화한 기억이 별로 없는 K 전화에 반갑다는 표현 대신 가족처럼 안부를 물었다. 일이 있어 의정부에 왔다는 말에 나는 의정부역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함께 점심을 먹었다. "커피 마실래?" "이따 기철이랑 애들 보기로 했는데 서울 갈래?" 카페 대신 서울행 지하철을 탔다. K는 의정부에 온 이유는 말하지 않고 그동

E와 I의 만남 - 연재소설

2025-04-23T01:30:31Z

깜짝 입맞춤하고 우산을 사겠다고 달아나는 그의 뒷모습이 귀여웠다. 봄비도 그를 소리 없이 따라갔다. 수채화로 남기고 싶은 풍경이다. 가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장난스럽게 행동하는 표정이 진지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려는 남자들보다 편했다. 손을 잡고 가다 내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는 행동에 내가 발끈해서 손을 빼려면 그 모습을 즐기듯 내 손을 더 세게

4월 14일을 기억하는 사람들

2025-04-15T01:12:36Z

"우영아 생일 축하해. 보고 싶다." 자기를 톡에서 삭제하지 않고 안부를 남기는 사람들이 올해도 있어. 오늘이 자기 생일이네. 어제, 오늘 비바람에 진눈깨비까지 내렸어. 날씨가 점점 이상해. 그래도 지난가을, 마당에 심은 튤립이 예쁘게 피었어. 아이들은 각자 위치에서 잘 지내고 있어. 둘째는 일병이 됐고 후임도 들어왔대. 요즘은 휴대폰 사용이 자유로워 손

잘못된 만남 - 연재소설

2025-04-21T01:46:45Z

끌어안고 잠들기에 크기는 작았고, 부드러운 털도 없는 돼지 인형은 내 책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출근할 때는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퇴근하면 잘 다녀왔냐고 묻는 것 같았다. 가끔 베개 대신 내 머릿밑에 있었지만, 동거인이 되었다. 새로운 동거인을 발견한 정은이는 저렇게 못생긴 인형을 왜 샀냐고 물었다. 나는 귀엽지 않냐? 돼 물었다. 그는 바빴다. 매주

고백

2025-04-08T13:27:28Z

인생은 아픔이더라 삶은 허무하더라 내 몸은 살을 에는 듯한 바람에 흔들리고 내 마음은 허공을 떠도는 구름 나를 찾아 헤매다 찾아온 그대 품 괴롭고 외로워 울다 지쳐 찾은 그대 앞 그대는 따스한 바람이 되어 속삭입니다 괜찮다 괜찮다 쉬어가라 쉬어가라 그대는 포근한 눈빛으로 말합니다 좋다 좋다 울어도 된다 울어도 된다 아무도 모르는 내 마음 누구도 모

틈

2025-04-13T07:59:51Z

길을 걷다 마주한 민들레가 터덜터덜 나에 걸음을 멈추게 한다. 보라고 여기 보라고 노란빛을 흔든다. 새들의 입을 피하고 공공근로 할머니들의 눈을 피해 꽃을 피웠다고 잘난척한다.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틈. 그 틈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힘을 보라고 나를 불러 세웠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나도 답답한 틈을 비집고 꽃을 피우리라.

바람이 바람이 되지 않기를

2025-04-07T23:16:33Z

바라고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덜 바라고 바라서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가사를 믿지 않기로 한 지 꽤 된 것처럼 아무리 바라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말에 무게를 둬야 할까? 3월 13일 아침, 딸 생일상을 간단하게 차렸다. 딸은 외식 대신 집에서 고기를 구워 달라고 했다. 그러기로 약속하고 법원으로 출발했다.

다시 사랑한다면 - 연재소설

2025-04-14T10:30:20Z

방으로 들어와 안경을 찾았다. 다시 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동생한테 있었던 사건이 생각났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동생을 남자 고등학생이 따라온 것이다. 자췻집 방문까지 두드리는 일이 있었다. 자취방은 여러 학생이 살다 보니 대문도 방문도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잠금장치를 했지만 한동안 잠을 못 자겠다고 불안해했다. 그 후로 사고는 없었지만, 안

회상 - 연재소설

2025-04-07T23:09:06Z

"내가 중매쟁이나 마찬가지인데 잘 살아라." 영현이는 상현이 자취방에 김치를 퍼 나르며 사랑을 키웠다. 교육 경력도 없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 보습학원을 차린 이유는 오직 상현이 곁에 있기 위해서였다. 학원에서 숙식하며 군대 간 애인을 뒷바라지하던 친구는 행복해 보였다. 복학과 졸업, 취업까지 기다리며 드디어 부부라는 공식적 입장을 밝히는 결혼식을

타이밍과 용기 - 연재소설

2025-03-17T22:00:30Z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봤다. "아이, 깜짝이야." 팔짱을 낀 정은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지? 저 용팔이는?"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표정을 짓고 뒷걸음으로 내 방까지 따라왔다. "이 선생 술 먹었어?" 송아지처럼 커다란 눈을 내 얼굴에 들이댔다. 작은 내 눈까지 커졌다. "언덕 올라오느라 더워서 그래." "그렇다 치고." 술이 중요한

검정고무신 이우영 2주기

2025-03-13T13:57:47Z

매년 오늘이 되면 잊고 싶었던 그날의 감정으로 역주행한다. 덤덤해지는 날이 올까? 어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딸아이 아침을 챙겼다. 딸이 밥을 먹는 동안 나도 출근 준비를 했다. 옷장을 열고 잠시 서 있었다. 검은색과 회색으로 옷을 맞춰 입었다. 딸을 학교에 내려주고 나도 일과를 시작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는 차량 운행이 끝나고 바로 퇴근했다.

오랜만에 봄을 기다린다.

2025-03-13T13:59:44Z

새 학기 첫날 눈이 내렸다. 다행히 눈은 쌓이지 않았고 오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0년 전인가? 입학식 당일에 폭설이 와서 임시 휴원을 했던 기억이 났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힘들게 출근해 눈을 쓸고 나니 해가 반짝, 눈과 함께 겨울이 사라졌다. 올해가 바로 그해 같았다. 이렇게 시작한 3월은 조금씩 봄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상기온, 꽃쌤추위,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2025-04-07T23:04:26Z

지난가을부터 결혼식이 많았다. 결혼식의 모습도 세상 모습처럼 다양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주례사가 사라졌다. 주례사는 신랑 신부를 가장 잘 알고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하는 부모님이 대신하는 것으로 변했다. 지인들의 축가뿐만 아니라 댄스공연, 신랑신부가 직접 고백송이나 춤을 선보이는 축제장으로 변했다. 예식 장소는 궁궐 입구 같은 커다랗고 높은 문을 통과

손을 잡았으니 키스해야지?

2025-02-28T00:04:05Z

한동안 손을 잡고 걸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탔지만,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란히 서서 지하철 손잡이에 의지해 중심을 잡았다. "팔도 짧은데 나를 잡아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재미가 가득했다. "손 내려. 무거워." 내 어깨 위에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는 내가 메고 있는 가방을 받아 자기 어깨에 걸었다. 달리

참 잘했어요.

2025-03-02T12:03:21Z

유치원에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고 새벽에 눈을 떴다. 요즘은 날씨에 따라 생기는 변수에 민첩하게 움직여야 실수가 없다. 생각해 보니 같은 일을 실수 하거나 고민한 적이 별로 없다. 나름 잘 대처하며 살고 있는 걸까? 일어나자마자 전날 일기예보가 맞는지 밖을 봤다. 일기예보가 맞았다. 눈이 쌓여있다. 어제도 야근을 하고 걸어왔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 모양은 어떨까?

2025-02-05T19:30:31Z

예상하지 못한 큰 사건들로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국민이 흔들리고 나도 불안하다. 미래를 보고 발을 디딜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더 이상,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매일 반복되는 법원, 재판, 판사 얘기를 들으며 눈을 뜨고 잠이 든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반 국민과 다르게 나는 또 다른 공포에 악몽을 꾼다. 지난 1

남자 친구 있어요? - 연재소설

2025-02-14T08:00:29Z

허기도 채우고 레몬소주도 있는 주점을 찾았다. "너는 술도 못 마시는데 요즘 유행하는 레몬소주를 어떻게 알아?" 영우가 제안한 레몬소주 맛을 상상하며 주점 문을 열었다. 어두운 듯 어둡지 않은 조명,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는 하나의 덩어리였지만 내 코는 각각의 안주를 추출해 낼 수 있었다. 코는 킁킁, 입안에 침은 벌써 활동을 시작했다. "술 마시기 딱 좋

눈꽃 말고 봄꽃을 기다린다.

2025-02-02T01:27:13Z

출근하는 날은 알람보다 일찍 눈을 뜬다. 연휴가 끝나고 오늘부터 출근이다. 새벽에 눈을 떠 간밤에 물이 얼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밖을 내다봤다. 밖이 훤했다. 문을 열어보니 데크 위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마당 가득, 연휴에 내린 눈도 녹지 않았는데 눈이 또 오고 있다. "큰일 났다." 누웠던 자리로 돌아와 시간을 확인했다. 5시 52분. 우리 집은

엄마가 되는 제자에게

2025-02-01T05:13:22Z

나는 스믈 두 살 너는 여섯 살 너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지. 반짝이는 네 눈동자와 마주칠 때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초보선생을 기꺼이 선생님이라 불러줬던 야무진 네가 있어 나는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내 결혼식에서 부르던 네 노래가 생생하고 대학 합격, 취업 소식은 나에 자랑이었다. 남들이 보면 쉽게 쉽게 얻은 것 같겠지

복 짓고 복 받는 새해가 되길

2025-01-28T06:30:50Z

월요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고 사실상 토요일부터 설날 연휴에 들어갔다. 방학 동안 쉬지 않고 출근했던 이유도 설날 연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휴 내내 늦잠을 자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 늦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아이들은 일어날 시간이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루틴, 고구마를 씻어 요술 프라이팬에 굽기 시작했다. "청소부터 할까?" 물을 한

앞니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