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을 지키는 일

2025-04-28T12:02:55Z

중환자실은 서늘하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되지 않는 조명 아래에서 가족들은 환자의 이름을 여러 번 부른다. 환자는 눈을 감고 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바닷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호흡하고, 각종 약물로 생명을 이어간다. 의사와 내가 뇌파검사나 MRI 검사의 경과를 설명한다. 환자의 미세한 반응에도 보호자들은 크게 반응한다

알 턱 없는 마음을 받은 날

2025-04-27T19:09:45Z

근 1년 만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새로 생긴 대경선을 타러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추적추적 떨어졌다. 얼른 지하철에 올라탔다. 세량뿐인 지하철은 아담했다. 서서 밖을 구경했다. 창문을 스치는 비와 머리카락 없는 민둥산들이 처량했다. 추적츠적 비 내리는 소리 괜히 우울해졌다. 에어팟으로 듣고 있는 음악을 바꿨다. N이 지하철 도착 시간인 6시에 맞춰

가만히 있는 게 어색한 우리

2025-04-23T00:32:59Z

‘우리는 왜 가만히 있는 걸 어려워할까.' 중환자실은 늘 긴장 속에서 돌아간다. 조금의 정적마저도 불길한 예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늘 뭔가를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잠깐의 여유에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할 일이 없어도 괜히 무엇을 만지고 있다. 환자도 안정적이고, 알람음도 잠잠한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와줄 일 없어요?” 하고 묻는다

옷장 정리와 잊는 것의 상관성

2025-04-15T11:50:47Z

옷장을 정리했다. 마구잡이로 예뻐 보이는 옷을 사다 보니 옷장이 가득 찼다. 예전에 유행하던 스타일의 맨투맨 티셔츠, 인플루언서들의 픽이었던 셔츠, 과감히 시도한 샛노란 색의 바람막이 등이 내 앞에 쌓여있다. 내 몸의 선과 맞지 않아서, 재질이 나풀나풀거려서, 너무 쨍한 색깔이라서 한두 번 입고 말았었다. 이런 옷을 왜 좋아했지 싶기도 한 것들도 있다. 옷

중카지노 게임 추천실 훑기

2025-04-14T06:37:52Z

중환자실은 영어로 ICU(intensive care unit)다. 단어만큼이나 환자의 전반적인 안녕, 집중적인 치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환자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짧게 해보려고 한다. 1. 환자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침상목욕을 한다. 샤워를 할 수는 없으니 수건으로 몸을 닦고, 소변줄을 소독

혹시 사람에게 물려보셨나요?

2025-04-09T13:10:39Z

"집에 좀 보내줘! 나 집에 가야 해~" "너희 날 죽이려 하지? 경찰 불러 경찰!" "OO아, 거기 있지? 나 물 좀 떠다 줘. 나 배고파. 먹을 것도 좀 줘" 의도치 않게 눌려진 전기 스위치처럼 찾아온다. 서서히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징조도 나타나지 않으며, 일단 등장하면 끝장을 보고야 만다. 예방하기 어렵고 환자마다 증상이 달라 치료하기 어려운 그

“손이 너무 차가워요..”

2025-04-06T01:17:42Z

코로나 때문에 중단됐던 중환자실 면회가 재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중환자실 특성상 보호자들의 상주가 금지되어 있어 면회는 가족들에게 각별하다. 환자의 손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성통곡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울면서 그동안 힘내줬다고, 잘해왔다고 내뱉는 말들은 내 마음도 미어지게 만든다. 나조차도 면회시간 30분이 짧다고 느껴지는데 보호자분들은 오죽할

야식을 참을 수 있나요?

2025-03-24T08:26:48Z

그 시간이 왔다. 10시. 나이트 번 간호사와 교대 30분 전이다. 배가 살살 고파온다. 저녁에 직원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야무지게 먹었는데. 샐러드도 리필해서 와그작와그작 씹었는데. 심지어 간식으로 들어온 과자도 입 안에 가져다 넣었는데. 어김없이 이브닝 퇴근 전에는 출출함이 쏟아진다. 밀물과 썰물의 작용처럼 허기가 파도처럼 배에 몰려온다. 시간이 되면 항구

알람, 저예요

2025-03-21T05:27:34Z

'삐비빅, 삐빅. 띵띵띵. 빠바밤빠밤. 웅웅웅. “ 중환자실에서 받은 첫 느낌은 시끄럽다는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람소리, 기계마다 다른 경고음들은 나에게 두려움을 심어줬다. 어쩌면 아침 핸드폰의 기상음악보다 더 날카롭다. 기상음악은 끄고 침대에서 일어나면 그만이지만 중환자실의 알람음은 당장 무언가를 해결해야만 한다. 환자의 활력 징후가 불안

오늘은 카지노 게임 추천가 별로 없네요?

2025-03-11T07:36:14Z

평화로운 이브닝 와중,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병동의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아차,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응급실 파워텔에 알림이 울린다. 응급실 소생실 레벨원입니다. 전공의와 주치의 선생님들이 앉은자리에서 반사적으로 뛰쳐나가고, 내가 아는 모든 눈동자가 사나운 눈빛으로 나를 곁눈질한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모든, 두려운 처음 하는 일

2025-03-10T08:35:25Z

최근에 신규 간호사 선생님이 입사자 교육 후 병동에 견학 겸 인사를 하러 왔다. 중카지노 게임 추천실을 처음 본모습에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손은 약간 떨고 있었다. 이제 큰일 났다는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곳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를 셈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그랬다. 나도 중카지노 게임 추천실에 들어섰던 날이 생생

불편함 즐기기

2025-03-07T07:06:17Z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인터넷으로 장을 좀 봤다. 집에서 이마트 배달을 시킬 수 있는 세상. 냉동식품과 냉장 제품이 얼음팩이 곁에 있어 차가운 채로 도착했다. 유리병으로 된 올리브 유는 파손 방지가 되어서 오고, 손톱깎이 같은 생필품도 시킬 수 있다. 요즘 세상은 너무 편리해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금방 마트가 망할 것만 같았는데 주말에 이마트 트레이더스

'생각 보다' Day.

2025-02-28T10:19:25Z

생각보다 날씨가 추웠다. 이쯤 되면 날씨가 풀릴 거라 예상하고 참가한 마라톤 대회였는데, 영하 5도였다. 찬 기운에 아침에 일어나면서 비척비척 눈을 떴다. 커튼을 걷으면서 찬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와 기침이 나왔다. 무슨 뜻이 있어서 이 차가운 날 마라톤 대회를 나가나.. 참가를 취소할까, 생각이 들었지만 지인과 참여하는 대회라 그럴 수 없었다. 주섬주섬

칼국수와 막걸리는 거들뿐

2025-02-25T05:13:31Z

어제 혼자 5km를 뛰었다. 집 밖으로 나갈 땐 야심 차게 ‘오늘은 10km를 뛰겠다!' 했지만 실패했다. 솔직히 좀 더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1km 내지 2km 정도는 그렇다. 혼자 뛸 때면 빨리 포기하게 된다. 날씨가 추워서 얼른 달리고 집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얼어가는 손을 휘적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잡고 헉헉대며 뛴다. 조금 누그러진 가

기필코 지켜내야 했던 것은. - '소년이 온다'를 읽고

2025-02-17T03:44:45Z

이번 독서 모임 책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모임은 1월 중순이었지만 여운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책 줄거리와 리뷰를 잠시 옆으로 밀어놓고, 나에게 이 소설은 의미가 있다. 처음으로 책을 읽으면서 끅끅 울어 버린 책이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훌쩍거리면서 콧물을 들이켜고 일부러 기침을 했다. 몸의 들썩임을 숨기려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옆 자리 사

나를 차갑게 해주는 사람

2025-02-15T23:37:26Z

그와 만날 때면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터무니없게 시비를 걸어오는 그의 말투에 악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세상 모든 것에 호의적이지 않은, 정확하게는 회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 장난으로 쓸 데가 없는 거라 하지 않겠다. 내 말투에 단정적인 느낌을 받았다면 나는 그를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 같

"내 옆에 있는 사람" - 독서모임지기들에게

2025-02-09T07:07:43Z

독서모임에 내가 고른 책을 읽을 때면 부담스러워요. 이번에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산문집 같은 이상한 책을 좋아하지 않아서 일 것이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라서 그렇습니다. 근데 다시 읽어보니 이 책이 그 정도인가? 싶어요.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사랑에 실패했을 때

겨울이라는 계절

2025-02-04T09:34:11Z

날씨가 춥다. 춥다고 말한 지 3달이 되었는데 계절이 바뀌지 않는다. 겨울이 가기 전에 따듯한 차를 내어 준 것이 화근인지, 떠나지 않는다. 옷을 계속 껴입으면 된다고 말하며 겨울이 여름보다 낫다고 재차 말하던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도시가스비용 영수증을 받아 든다. 지난달보다 두 배가 더 나왔다. 집이 그렇게 따뜻하지도 않았는데, 불평하며 요금을 납부한다.

늘 여전했으면.

2025-01-30T12:26:41Z

어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명절 당일 저녁에 만나자는 약속 아닌 약속을 10년째 지키고 있다. 수 없이 마주한 얼굴. 살이 더 쪘다, 피부가 엉망이다, 아직도 살아있냐 같은 날 선 질문들을 물렁하게 받아내는 우리들. 마치 잘 짜여진 콩트 같다. 반응을 예상하고 꼬아서 질문하거나 조금 진심이 들어가 있는 걱정에도 툴툴거리며 대답하곤 한다. 자존심을 지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2025-01-26T09:58:21Z

휴대폰 갤러리에 들어가 보곤 놀랍니다. 근 2주 동안 사진을 찍은 일이 없다는 사실에요. 평소에도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달의 반을 '찰칵' 소리 없이 살았다니요. 사진을 찍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것을 보면 사진을 찍고 싶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맛있게 마신 카페의 커피 한 잔과 카페

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