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 제3장. 삶.

2025-04-26T11:30:13Z

별 하나 없는 어둠이 뱉어낸 무심한 붉은 점 하나가 수많은 빛이 되어 하늘을 가를 수 있음을 당신들은 알고 있습니까. 날아가듯 떨어지는 빛을 따라 나무들의 노래가 흘렀는데 그게 왜 그리도 구슬픈지 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한 낮일까 한 밤일까 정체를 숨긴 시간 안에서 붉게 타오르는 산하의 축제를 당신들은 본 적이 있습니까. 비

(출간소식) 제 글을 읽어보려, 서점을 방문합니다. - 밥상을 차리다, 당신을 떠올리곤 해.

2025-04-20T01:57:47Z

그저 일하고, 농사짓고, 책 읽고, 글 쓰며 살아갑니다. 여전히 사는 일이 무엇인지, 저는 낯설기만 하고,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삶이 지나가다, 가끔 저의 뺨을 가차없이후려칠 때면, 그저 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이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여전히 저는 알지 못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두 번

(출간예정) 밥상을 차리다, 당신을 떠올리곤 해.

2025-04-12T07:39:39Z

겨울을 이겨낸 부추들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추앙하는 것만 같습니다. 자신의 몸을 베어내고, 또 베어내도 억척스레 자신을 다시 만들어내는 부추가 참으로 기특하기만 합니다. 상처 입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사랑은 어느 계절에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끊임없이 내어주고 상처받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우리는 그렇게 와서, 다시 그렇게 돌아간다. - 4부. 그럼에도 삶은 어김없이 이어지고.

2025-04-06T14:15:09Z

바닥까지 늘어진 회색빛 블라인드가 가볍게 햇살을 뱉으며 너울거렸다. 미세하게 열린 창을 넘어 투명한 바람은 수줍게 고개를 내밀었다. 눈꺼풀을 간지럽히는 햇살에 경복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평소와는 달리 하얀 천장과 벽면 사이로 실핏줄 같은 금빛이 가물거리며 일렁이고 있었다. 경복은 이상하다는 듯, 두어 번 팔을 가볍게 들었다, 놓았다. 이불을 젖히고

애 태우다. - 제3장. 삶.

2025-03-31T11:30:22Z

당신은 애태워 본 적이 있습니까. 애태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은 애태우다 보면 모든 게 다 타버리고 어떻게 되었든 끝이 날 것만 같아 애태우는 것입니다. 가슴 안에 불덩어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느껴본 적은 있습니까 두드리고 소리치고 바수어지며 그게 미친 짐승처럼 울부짖는데 그게 매일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제도 지금도 밥을 먹을

기다리는 자는, 기다리는 자를 알아보네. - 제1장. 사랑.

2025-03-24T13:32:02Z

당신은 기다리는 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모든 소란스러움을 반납하고 우물같은 퀭한 눈과 어린 나무 몇 그루와 읽다가 만 괴테 몇 권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누군가가 돌아올 자리에 어떤 초연한 믿음을 닮은 산수유 두 그루를 심었던 것입니다. 여전히 꽃을 피우지 못한 서러운 산수유를 서성이다 심장은 요란하고 가슴은 저며왔습니다

우리의 겨울은, 끝났다. - 제3장. 삶.

2025-03-17T01:35:29Z

당신이 떠난 부재의 자리에 까마득한 눈이 쏟아졌다. 하얀 눈이 당신인 듯 차가워 차마 눈을 밟지 못하고 그 계절을 방에서만 서성였다. 그래도 가끔씩은 고개만 내밀어 적막한 세상을 살피기도 했다. 눈 위에 당신만한 발자국이 있을까 실눈을 뜨고 남몰래 찾아보기도 했다 너무나 깨끗한 눈이 서러운 한 철이었다. 얼어붙은 눈이 마침내 녹았

먼지처럼 흩날리는 별. 이세벽 작가님의 소설 리뷰.

2025-03-10T04:48:11Z

하늘과 바람이 어제와 다른 명도를 보여준다. 다시 일어서는 계절. 그래. 봄이다. 브런치 스토리는 어쩌면 나에게 봄이라고 말해 준 곳이기도 하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과 새로운 인연들을 발밑으로 전해 준 곳이니까. 이세벽 작가님과는 꽤 오랜동안 서로의 글을 봄같은 이곳, 브런치 스토리에서 나누어 왔다. 언제나 다정한 말투로 나의 글을 응원해 주시던 작

우리는 그렇게 와서, 다시 그렇게 돌아간다. - 3부. 골짜기도 숨죽여서 울고.

2025-04-04T08:59:07Z

우리 어무이한테 얘기 좀 해도고. 여긴 너무 뜨겁다고. 또 너무 춥다고. 그니까 찾아오지 말라고, 꼭 좀 전해도고. 강이수는 박영혜와 경복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잠깐 잠에 빠져들었다가, 눈 언저리가 캄캄한 칠성의 모습에 퍼뜩 놀라 잠에서 깨었다. 몸을 땅에 바싹 붙이고, 배를 딱딱한 땅에 밀면서 기어오는 소리. 한 사람이. 아니 여러 사람의

우리는 그렇게 와서, 다시 그렇게 돌아간다. - 2부. 적막한 산골에도 꽃은 피고.

2025-02-23T06:53:01Z

내 새끼. 여기 있구나. 엄마도 여기 있어. 박영혜는 얼음물에 빠졌다가 나온 듯한 강이수를 위해 서둘러 밥상을 준비하고 씻을 물을 데웠다. 그러다 순간 묵직하게 아랫배를 짓누르는 뻐근함이 밀려와 짧은 신음을 뱉어냈다. 봉긋한 배에 손을 얹은 채, 허리를 수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경청하듯 떨림과 함께 서있었다. 밥상을 받기 위해 부엌으로 온 강이수는 견딜 수

하루. - 제1장. 사랑.

2025-02-17T03:28:19Z

깨끗한 이슬 같은 당신은 나의 아침이었다 투명한 바람을 닮은 당신은 나의 오전이었고 따스한 햇살 같은 당신은 나의 오후였으며 고요한 달빛을 닮은 당신은 나의 한밤이었다. 당신을 늘, 감사한다. 눈이부신 나의 하루는 당신이 전부이니까. 내가 매일을 살아가는 이유이니까. 덧. 출판사와 막바지 퇴고 작업으로 인해 부득이 지난 화에 이은 소설 2부를 다쓰

우리는 그렇게 와서, 다시 그렇게 돌아간다. - 1부. 깊은 산골에 하염없이 눈은 내리고.

2025-02-09T07:44:14Z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산골의 겨울은 재촉하듯 까만 밤을 불러왔다. 낮과 밤의 경계를 허물며 타오르던 적막은 마침내 온 산을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전란 중의 배고픔에 어린 나무들만이 가까스로 고개를 들던 산은, 겨울이 덮치면서 더욱 황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오늘 강이수는 운이 좋은 것인지, 산에 오르며 놓았던 덫에 회색빛 토끼 한 마리를 얻

나는, 수치스럽기를 소망한다. - 1월의 마지막 날.

2025-02-03T06:32:34Z

양반다리를 하고 반듯하게 정자세로 앉는다. 왠지모를 불편한 감정이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마알간 표정의 아이들과 조카가 그런 나를 마주보고 선다. 아이들은 병아리 같은 입술로 합창을 하고서, 고사리 같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큰절을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허투루 늘어나기만한 나이 탓에 새해 인사를 받을 뿐이다. 어른이라는 이름 뒤에

분노와 슬픔, 그리고 평온. - 1월 넷째주 금요일.

2025-01-26T10:08:29Z

발톱을 바짝 세운 고양이가 가슴을 할퀴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절이다. 이보다 더한 소식들에 솜털은 수시로 일어서고, 나의 동공은 흰자위를 덮을만큼 열리고야 마니까.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고, 매순간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은 손톱만한 죄의식조차 남아있지 않은 선동 앞에 그저 속절없이 나부

오한(惡寒)의 단상. - 1월 셋째주 금요일.

2025-02-25T14:06:28Z

눈이 뜨인다. 아직 어둠의 피륙은 걷히지 않았다. 적막 속에서 꿈은 이르게 깨어졌다. 조각난 꿈만큼이나 두통이 밀려온다. 희미하게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콜타르빛 벽지가 어렴풋이 다가온다. 깨어진 꿈을 붙잡으려 되뇌인다. '무슨 일 있나요. 어디 아픈가요. 밥은 잘 챙겨먹나요.' 그녀가 꿈에서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기습적인 통증

시간의 증명과 좌표의 이동. - 1월 둘째주 금요일.

2025-01-13T01:03:14Z

투명한 어둠 안에 놓인 하얀 좌표를 닮은 서재에 앉아있다. 찰나의 감정과 이어지는 사유를 끄적인다. 지금은 슬픔이라 적겠다. 감히 내가 웃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니까. 시계는 돌아가고 있으나, 시간은 이 좌표 안에서 동결되고야 만다. 얼어붙은 시간은 내 안의 어떠한 우연과 필연도 허용하지 않는다.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수줍게 적은 자그마한 편지. 나

나를, 울게 하소서. - 2025년 1월 첫째주 목요일.

2025-01-04T11:13:13Z

아이 엄마가 매주 시위에 다녀오더니 몸살이 난 듯하다. 그 사람 답다. 그래서 늦은 시간 아이의 학원 수업이 마칠 무렵,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기로 했다.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게 나온 아이. 지쳐보인다.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밖에는 없다. '고생했어. 딸.' '아빠... 울었어? 얼굴이 왜그래? 슬픈 일 있었어? '조금.

목 안의 검은 혹. - 2024년 12월의 마지막 일요일.

2025-01-02T12:48:24Z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의사는 모든게 좋다고 한다. 다만, 조심스레 덧붙인다. '지난번 검진 때 목 안에 조금 큰 혹이 있다고 전문병원에 가보시라 말씀드렸었는데... 조직 검사는 받으셨나요? 병원에서는 뭐라 하던가요?' '음...' 죽을 때까지 갖고서 살아가야 한다고. 니의 일부라 여기라고. 목 넘김이 불편할 때, 그때 제거를 생각해 보자고. 지금은

남아있는 나날. - 12월의 넷째주 목요일.

2024-12-28T10:40:04Z

출근길 차량이 줄었다. 사람도 줄었다. 어느새 겨울이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이다. 시간은 무참하다. 무참하게 흐르는 시간 앞에 다시 마음이 툭 꺾인다. 시간을 아끼려 아등바등 살았으나, 결국 텅 빈 시간만이 남았다. 시간은 빈 유리병이다. 빈 유리병은 머리로는 채울 수가 없다. 오직 가슴으로만 채울 수 있는 유리병. 머리로만 아등바등했으니 비어있

또 하나의 죽음. - 12월의 셋째주.

2024-12-24T00:11:28Z

사랑을 하게 되면 비록 희미한 빛일지라도, 그것을 붙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다가간다. 그것이 나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어느순간 나를 향해 다가오는 법을 잊어버린다. 두려움이 사랑했던 기억조차 지워버린 것인가. 시간이 뜨겁던 심장을 부식시킨 것인가. 자꾸만 일깨워 주려 애쓰지만, 손에 쥔 물처럼 새어나갈 뿐이다. 꽉 쥐려할수록 물은 급격히 사라진

시골서재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