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아카시아가 아니란다 - 다들 나를 아카시아라고 불러요

2025-04-29T14:28:58Z

문제의 발단은 우리 집 옆 공터에 핀 향기로운 꽃나무에서 시작되었다.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흰꽃이 주렁주렁 열리는데 그 옆을 지나가면 달콤하고 짙은 향에 세상의 시름이 다 잊힐만했다. 이 나무가 재작년에 송충이처럼 털이 복슬복슬하고 지네처럼 다리가 무지 많으며 몸통 가운데 노란 줄이 있는 꽤나 징그러운 벌레에 의해 완전히 토벌되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앙상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 마음만이 선명한 투명인간

2025-04-27T13:07:08Z

어떤 환대는 무뚝뚝하고,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게 환대였는지 적대였는지 누구나 알게 된다.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복복서가, p.29 가슴이 턱 막히는 문장이었다. ‘어떤 적대는 상냥하다.’ 친절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내가 적대감을 상냥함으로 포장해도 결국 드러나게 된다는 말. 심지어 누구에게나.

밥의 무게를 처음 잰 날 - 애호박은 가지보다 두 배로 무겁다

2025-04-25T13:29:30Z

이 또한 내가 아닌 거 같다. 내 안에 수많은 내가 들어있다지만 이렇게 일주일 안에 새로운 나를 연거푸 꺼내게 될 줄이야. 그제 챗지피티가 짜준 운동 일정에는 매주 화요일 배드민턴이 포함되지 않았기에 수정이 필요했다. 배드민턴 일정도 넣고 휴식은 모두 강아지 산책코스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이번에도 반영해서 일정을 잘 짜준다. 하는 김에 이번 주 목요일 저녁

열 명만 되어도 족한 나의 글 - 그저 감사하지

2025-04-28T10:07:12Z

굳이 프로젝트 중 선택미션으로 하루 한 편 글쓰기를 골랐다. 기록하는 게 너무 귀찮고 어려운 사람이다. 한 줄도 늘어나지 않는 다이어리를 매일 들고 다니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러다 말을 뱉었으니 뭐라도 해야 했고 몇 안 되는 동기분들이 얼마나 부지런한고 선한지. 매일 미션 성공으로 올라오는 글에 하트를 날리다 보면 하루하루 성장하는 것이 보인다.

달리기의 ㄷ을 시작하다 - 내 몸이 너무 무겁다

2025-04-25T20:25:09Z

5월 17일, 생애 첫 마라톤에 참가한다. 컬처런 2025 영종국제도시 마라톤 5km. 굳이 프로젝트를 하며 마라톤 이야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나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현호 작가님께서 줌강의를 하시면서 마라톤 온라인이란 사이트의 대회 일정을 보여주시며 얼마나 많은 곳에서 자주 하는 행사인지 쭉 읽어주셨다. 그렇게 몇 줄을 읽어내시는 중 귀에 쏙

발밑을 조심해! - 비 내린 아침이잖아

2025-04-21T03:43:27Z

주말인데 비가 내린다. 새벽에는 꽤나 굵은 비가 내렸는지 두두둑두두둑 창문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에 잠이 살짝 깼다. 아무래도 얕은 잠을 자고 있었나 보다. 커피 없이 지내자 알람도 없이 6시 초면 눈이 떠졌다. 비까지 내려 어둑한 데다 몸이 토요일인 걸 아는지 그대로 다시 잠들어 8시를 넘겨 일어났다. 시험을 앞둔 아들은 아침부터 학원에 가야 한다고 했

기껏 생각해서 고른 게 순댓국 - 결국은 추어탕을 먹었지만

2025-04-26T07:24:44Z

한 주가 끝났다. 퇴근시간을 넘겨 자리를 정리하고 나오는데 허기가 느껴졌다. 배고픔이자 마음의 허전함이다. 꽤나 바빴던 주이기도 하고 커피를 끊으면서 간식도 줄이니 저녁이 되면 공복이 느껴진다. 집에 가서 뭘 해 먹기는 싫고 그냥 나를 위한 맛있는 한 끼가 필요했다. 혼자 먹는 것에 대해선 아무 부담이 없기에 그저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만 고르면

찌찌뽕~! - 동질감

2025-04-19T04:04:14Z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은 약간 불특정 한 모임이다. 80여 명의 전체 인원이 매달 후보인 여섯 종의 책 중에서 원하는 책을 골라 같은 책을 고른 사람들끼리 함께 읽고 나눈다. 온라인 모임으로 3주 차까진 독서 일정에 따라 책을 읽고 단상을 카톡으로 나누다 4주 차 토요일 아침 6시에 줌에서 모인다. 내가 이 모임에 들어간 지 3개월 째다. 즉, 세

하루 하나씩 별 거 해보기 - 스쿼트 챌린지

2025-04-16T15:19:25Z

진득하니 꾸준히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꾸준함은 타고난 줄 알았다가 몇 년 전 끈기 프로젝트 두세 개를 하면서 훈련으로 얼마든지 길러진다는 걸 체험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훈련이란 것이 어느 정도 몸에 익기까진 지속되어야 했고 결국 습관까지는 못 갔다. 여전히 끈기가 부족하다는 걸 단점과 약점으로 생각한다. 위축되기에 앞서 자기 합리화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벚꽃놀이 사진에 담긴 다섯 가지 시선 - 사진에서 나를 찾다

2025-04-14T14:39:01Z

토요일 오전 7시, 줌 독서 모임 알람이 울렸다. 전 날 늦게 잠이 들었기에 눈이 떠지면 참여하고 아니면 말겠다는 어쩌면 속 편한 마음이었다. 다행인지 몸을 일으켜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줌 미팅에 참여했다. 비디오와 오디오 모두 연결하지 않은 채 일찍 들어가신 분들의 소리를 들으며 준비를 마친 후에 비디오를 켰다. 올해 새로 들어간 모임으로

님아 그 전화를 받지 마오 - 010-8**0-5231

2025-03-13T09:27:21Z

오후 12시 34분. 밥을 먹는 중이었다. 밥 먹는 중에는 웬만하면 끊지만 등기우편 때문에 연락이 왔다길래 받았다. 점심시간인데 식사도 못하고 꽤나 바쁘신 거 같아 보였다. "OO씨 맞으시죠?" "네." "등기우편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네." "내일 본인 앞으로 등기 발송되는데 몇 시에 수령 가능하세요?" "언제 오시는데요?" "9시부터 6시까진

너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느뇨 - 너는 내 거야만 했다

2025-03-12T15:00:49Z

고마워, 내 심장 투덜거리지도 않고 소란 피우지도 않으며 타고난 근면함에 대해 어떤 칭찬도 보상도 요구하지 않아서. 너는 1분에 70번의 공덕을 쌓고 있지. 너의 모든 수축과 이완은 세상을 두루 여행하라고 열린 바다로 조각배를 밀어 보내는 것과 같지. 일요일에 심장에게 中,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 도서대출일: 2025년 2월

눈꺼풀과 입술 - 코와 귀

2025-03-08T18:06:48Z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길 수 있다는 건. <희랍어 시간>, 한강, 문학동네, p.161 가끔 험하고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로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 아이가 있으면 전체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다. 입은 수도꼭지와 같아서 고장 난 것이

우리 안의 새 - 영혼에 대해 묻다

2025-03-11T14:14:49Z

새 같은 무엇인가가 문득 육체를 떠났고, 그 육체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그의 얼굴에서도 빛이 꺼진다. 따스한 새가 웅크리며 숨는다. <희랍어 시간>, 한강, 문학동네, p.145, 147, 148 우리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아레테 -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2025-03-08T18:08:28Z

고대 희랍인들에게 덕이란, 선량함이나 고귀함이 아니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하잖아. 생각해 봐.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언제 어느 곳에서든 죽음과 맞닥뜨릴 수 있는 사람…… 덕분에 언제나, 필사적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러니까 바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사유에 관한 한 최상의

어떤 색 상복을 입으십니까 - 서양과 우리나라 상복의 차이

2025-03-03T04:53:21Z

왜 일 년 동안 까만 옷만 입어야 돼?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는 대답했다. 마음이 밝아질까 봐 그런 거 아닐까. 마음이 밝아지면 안 돼? 죄스러우니까. <희랍어 시간>, 한강 이번 겨울에만 두 번, 몸을 가릴 수 있는 모든 것을 검게 하고 장례식에 다녀왔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다들 그게 예의라고 했으니까.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상주

죽음과 맞닥뜨린 카지노 가입 쿠폰의 삶 - 삶에 대한 사유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카지노 가입 쿠폰

2025-03-02T16:06:17Z

책읽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때 - 야금야금

2025-03-09T14:36:51Z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시던 아홉 살 무렵, 가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동생과 외할머니댁에 가서 앉은뱅이 탁자에 앉아 밥을 먹었다. 외할머니 김치찌개가 내게는 달았고, 어떤 반찬은 낯선 냄새를 풍겼다. 퍼 주신 밥을 숟가락의 반도 채우지 않고 조금씩 떠 오래오래 씹어 먹었다. "저, 깨작깨작 먹는 거 봐라. 동생처럼 이렇게 복스럽게 먹지 않고 그게 뭐하는 거야

아름다움의 또 다른 이름 - Καλεπά τα καλά

2025-02-25T12:19:23Z

Καλεπά τα καλά. 칼레파 타 칼라.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세 번역이 모두 그르지 않은 것은, 고대 희랍인들에게 아름다움과 어려움과 고결함이 아직 분절되지 않은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희랍어 시간>, 한강 Καλεπά τα καλά 칼레파 타 칼라 눈으로만 읽었어야 했다.

낭독 후 글쓰기는 처음입니다 - 낭독도 처음이에요

2025-02-20T15:45:25Z

소파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나 보다. 오른쪽 허리가 아파왔다. 눈을 가늘게 뜨고 휴대폰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57분.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작은 직사각형의 쿠션을 베개 삼아 소파에 누웠다. 허리가 펴지면서 척추뼈 하나하나가 자리 잡는 듯 바닥에 닿으니 엷은 숨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전등불빛에 눈이 부셨다. 안경을 벗고 왼팔을 얼굴에 올려 빛을 차단

고스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