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혹은 삶의 리셋 - 본성이 드러나는, 『템페스트(The Tempest)』(2)

2025-04-28T02:56:52Z

폭풍우는 죽음 혹은 삶의 리셋을 가져다준다.『템페스트(The Tempest)』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살아남아 두 번째 경우다. 강한 허리케인이나 태풍이 쓸고 간 마을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모든 것이 스러져버린 황량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곤고함이 전해져 왔다.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이미 삶을 다시 시작한 적이 있다. 사람들에 대한 권위와 통제를

빛나는 시조의 기쁨 - 『우정의 날개로 시조, 대양을 건너』를 읽고

2025-04-26T10:44:27Z

시조시인, 화가, 수필가이신 이조경 선생님이 시조집을 또 내셨다. 이번에는 특별한 것이 미국인-로버트 깁슨 교수-에게 시조를 가르치고 공동으로 영문 번역과 함께 낸 시집이다. 산수(傘壽)를 넘긴 나이에도 늘 왕성한 창작을 하며, 시조의 세계화에 애쓰고 계셨는데, 이번에는 제자까지 길러 함께 공동작업의 열매를 선보인 것이다. 두 분의 작품이 영문과 한

템페스트의 연상(聯想)들 - 에리얼을 만나다, 『템페스트』(1)

2025-04-23T22:42:33Z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반가운 이름 에리얼(Ariel)을 여기서 또 만났다. 물론 전혀 다른 캐릭터에다 번역자의 한국어 표기도 아리엘이다. 주인공 프로스페로가 부리는 충실한 정령으로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한다. 이름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는데 색안경을 써서인지 만화 영화에 영감을 주었을만한 대사도 발견했다. 늘 노래에 흥이 겨운 공주 에리얼(Ar

『정물화 속 세계사』를 읽다 - 청소년 아닌 아줌마가 풍덩

2025-04-16T19:39:31Z

태지원 작가의 『정물화 속 세계사』를 읽게 된 배경은 좀 뜬금없다. 유랑선생 필명으로 발행한 [글쓰기 고민 해결소]를 구독했는데 그 귀중한 강의가 최근에 끝났다. 매주 수요일 정성껏 차려낸 정찬과 같은 글쓰기 코칭의 아쉬움을 달래려 작가님의 신간을 사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이 주 타깃이지만 역알못인 내게도 딱 좋을 듯싶었다. 기본적인 역사 상식이

쓸모없는 글쓰기 - 창의성을 위한 몸부림

2025-04-27T11:35:18Z

배대웅 작가님의 [연구소가 만든 역사] 매거진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가 나왔다. 그곳의 설립을 주도한 초대 소장 플렉스너의 교육 철학-인간의 창의성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온다-이 좋아서 벙긋거리며 저녁나절을 보냈다. 플렉스너는 1937년 발표한 에세이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들은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중년은 아름다워라 - 노련한 충격요법, 『겨울 이야기』

2025-04-15T00:15:08Z

『겨울 이야기』는 셰익스피어 원숙기 작품이라 기대가 컸다. 그런데 첫 부분에서부터 실망하는 마음이 몽실 피어올랐다. 극 구성에 억지스러운 면이 보이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이 주인공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은 수긍할만하다. [오델로]나 [리어왕]도 마음속에서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주인공 레온테스왕이 붙잡힌 질투와 의심의 감정이 무척 뜬금없다. 증거도 없고

역사와 상상의 틈새에서 - 런던탑의 미스터리, 『리처드 3세』

2025-04-05T04:52:43Z

셰익스피어의 영국 역사극을 처음 읽었다.『리처드 3세』는 인기와 상연 횟수에서 4대 비극과 맞먹는다고 한다. 장미 전쟁의 막바지에 요크 가문의 마지막 왕이 어떻게 왕위를 쟁탈하며 몰락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폭군을 실제보다 더욱 포악하게 그려서 극적인 효과를 잘 거두었기 때문에 유명한 줄 알았다. 그보다는 리처드 3세의 복합적인 모습-추악하게 생긴 그가

보통 남자의 사랑법 - 싱겁기 짝이 없는,『베로나의 두 신사』

2025-05-03T21:45:02Z

『베로나의 두 신사』주인공 발렌틴은 연애하는 친구 프로테우스를 한심해하며 견문을 넓히려 넓은 세상으로 떠난다. 하지만 자신도 곧장 그곳에서 공작의 딸 실비아에게 반해 버린다. 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모르는 - 사랑은 으레 그래야 하니 - 대사를 호응하며 좇다가 우리 집 사람들의 연애풍경이 떠올랐다. 이런 알록달록함과는 거리가 먼 차분하고 단조로운 스타일의.

몰매 맞지 않으려고 - 셰익스피어의 꾀,『말괄량이 길들이기』

2025-03-25T23:02:20Z

파도바의 갑부 집 딸 카타리나는 천하에 못된 말괄량이로 뭇 남성들의 기피대상이다. 동생을 두들겨 패주고 욕하는 언니와 반대로 차녀 비앙카는 양순하고 예뻐서 구혼자가 줄을 섰다. 큰딸이 노처녀로 늙어갈 것이 빤하니 아버지는 언니가 시집가기 전에 동생을 보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비앙카의 구혼자들은 카타리나를 데려갈 사람을 애타게 찾는데, 마침 베로나에서 온

3월의 눈 - 어른들의 동화

2025-04-22T03:37:40Z

소녀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단 한 번 만이라도 해후를 하고 싶었다. 3월이라는 녀석이 와서 바람을 넣을 때부터 소녀는 빠르게 나를 잊어갔다. 2월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입춘이니 어쩌니 했을 때도 소녀의 마음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봄이 오고 있다거나 얼음이 녹고 있다거나 해도 날 향한 마음이 변함없어 보였다. “난 겨울이 제일 좋아. 매서운

무조건적인 사랑을 얻은 자 - 리어왕의 행복,『리어왕』

2025-03-15T09:59:54Z

지금까지 리어왕은 내 마음속에 불행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재산과 권력을 몰아준 두 딸에게 배신당해 마침내 미치광이가 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이번에는 리어왕의 행복이 눈에 띄었다. 어떤 사람이고 온통 불행하거나 내내 행복할 수만은 없나 보다. 그는 고난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체험을 했고, 보석 같은 사람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 #

순애보(殉愛譜)도 알고 보면 - 로잘린드의 반박, 『좋으실 대로』에서

2025-03-11T02:57:57Z

셰익스피어를 이제야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부분은 여 주인공 캐릭터다. 하나같이 요즈음 여성처럼, 아니 21세기 보다 더 당당하다. 『좋으실 대로』에 나오는 로잘린드는 마치 엊그제 주말 드리마에 나옴직한 시니컬한 대화를 사촌 동생 실비아와 주고받는다. 이 중에서 남자들의 순애보를 믿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 내용과 비슷한 이야기를 듣거나 읽은 적

가난했던 조물주 - [불멸의 화가 반고흐] 展에서

2025-03-09T10:00:34Z

줄은 한산했다. 유명한 전시는 끝날 때 다되어 평일을 이용한다는 작전이 먹힌 것이다. 사람이 무척 많아서 포기해야 했던 초기 방문자와는 다르게 표를 구입하고 화장실 다녀오니 순서가 되었다. 서툴러 보이는 초기 데생 습작들이 많고, 가도 가도 고흐 특유의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욕구불만과 다독이는 두 마음이 싸우면서 흐름을 좇아갔다. ‘고흐 어머니,

『먼지처럼 흩날리는 별』에 마음 저리다 - 이세벽 작가님의 신작 소설

2025-03-18T07:34:42Z

사랑에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사랑 전문가이신 이세벽 작가님이 책을 내셨다 하여 재빨리 구입했다. 원래 목표는 일등으로 독후감을 쓰는 것인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이제야 올린다. 다양한 계층에 속한 여러 색깔의 러브 스토리가 담겨있다. 흡족하게 사랑의 명언을 받아 적다가 반전에 놀라고 결국 울고불고하며 책을 덮었다. 이 책에서도 역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프리미어 리그는 한참 멀어도 - 작가들의 리그, 『맥베스』를 읽고

2025-03-05T00:36:27Z

자객 1: 전하, 저희도 사냅니다. 맥베스: 암, 목록에선 너희도 사나이로 통하지. 사냥개, 회색빛 사냥개, 잡종개, 삽살개, 똥개, 털 개, 물개와 늑대 개를 한꺼번에 개라고 부르듯이. 하지만 감정서엔 빠른 놈, 느린 놈, 똑똑한 놈, 집개와 사냥개가 풍요로운 자연이 각자에게 넣어준 재능 따라 모두가 구별되어 적혀있어. 그래서 그 전체를 싸잡아 써 놓은

세모로이 - 부사의 탄생, 댓글 동화

2025-03-13T11:21:57Z

시대 미상 품사(品詞) 나라에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형용사 공주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재치와 유머가 뛰어나 주변을 항상 즐겁고 밝게 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세상이 점점 어둡고 팍팍해져 가므로, 공주와 결혼해서 그녀를 지키며 사는 것이 뭇 부사(副詞) 청년들의 꿈이 되었다. 그동안 허다한 귀족 젊은이들이 기웃거리고, 이웃 왕자

은하수를 만난다면 - 명작을 쓸 수 있으려나?

2025-02-25T07:36:39Z

그동안 은하수를 거의 잊고 지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몇 년 전 남쪽나라 밤하늘에서 조금 흘린 우유 자국 같은 것을 어렵사리 찾았던 때다. 쏟아지는 별들 가운데 도도히 흐르던 모습은 어렸을 적 시골의 한여름 밤에 두 번인가 본 기억이 있다. 요즈음엔 만날 일이 없으므로 일상에서 떠오르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얼마 전 신문에서 그 세 글자가 눈에 띄었다.『

사랑나라의 승자(勝者) -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읽고

2025-02-28T07:10:08Z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오를 패배시민 옥타비아누스는 2차 삼두정치의 막을 내리고 제 일 권력자로서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다. 로마 초대 황제로 이어지며. 역사는 승자(勝者)의 기록이기 때문에 기원전 31년의 안토니오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어떤 역사가는 이 바다 전투에서 그의 사내대장부로서의 삶은 끝났다고 적었다. 전쟁에서 패한 것도 억울한데 이런

추리소설의 여왕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을 읽고

2025-02-21T00:21:13Z

이 책은 자서전이지만 애거서 크리스티 주인공의 자전적 장편 소설 같다. 추리소설의 여왕답게 따분함이라고는 전혀 없고 박진감 있는 전개에 위트도 넘친다. 다채로운 그녀의 삶을 따라가므로 무척 입체적이다. 내가 가장 초점을 맞춘 부분은 작가의 탄생 과정이지만, 러브 스토리를 둘러싼 스릴과 심리학적인 전개,『작은 아씨들』못지않은 1900년 전후 영국 중상류 층

명작 속의 진짜 주인공 (2) - 『줄리어스 시저』의 브루투스

2025-02-17T06:12:38Z

셰익스피어가 아니었으면 내내 브루투스에 대해서 잘 몰랐을 것 같다.『줄리어스 시저』는 브루투스를 재발견하게 해 준 작품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권』 <줄리어스 시저> 편에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하여 셰익스피어를 못 마땅히 여기는 부분이 있다. “인간의 약점에 대해서는 그토록 깊이 통찰한 셰익스피어였건만, 율리우스 카이사르 같은 인물의 위

램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