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받아라

2025-05-02T16:11:17Z

읽는 이의 눈과 쓰는 이의 손을 가지려는 스스로에게 할 말은 무엇인가. 치사량의 낭만가, 철들지 않은 사상가, 한 줌 될 사나이 그 모두 내가 된다. 흙바닥에 유언을 적는다. 내일 비가 온다고. 파도가 들이친다고. 말들은 쓸려 내려갈 것이라고. 나는 여태 하루짜리 말들을 적었다고. 비운의 천재는 이른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말은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일 것

08. 나 여기 있소

2025-04-20T06:29:40Z

있잖아, 꿈에서 자꾸 누가 오만 원을 줬어. 처음엔 가족들이 줬고, 친구들이 줬고, 남들이 줬어. 나는 거기서 사양하는 척 자꾸 받았어. 오래 좋았어. 거기서 안심했어. 일 년 동안 벌지 못했어. 그중에 4개월은 퇴직금으로 버텼어. 이럴 줄 알았다면 그렇게 쓰지 말 걸. 나는 그만둔 것을 후회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후회스러웠어. 나는 기억을 잃은 듯 거기

어쩔 수 없는 모양으로 둔다

2025-04-19T07:21:44Z

“당신, 지금 무얼 하고 계세요? 제가 없는 가을은 쓸쓸하지 않나요? 슬프지 않나요? 전에 제가 달리는 차 속에서 당신께 불러드린 노래 기억하나요? 너무 바삐 이별하느라 못한 말 있어요. 사랑해요.” 사연 없는 사랑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린 시와 음악에도, 계절에도, 하다못해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을 때도 울 수도 있는 것이라고. 이 영상을 올린

07. 낯선 이는 말카지노 게임 사이트

2025-04-13T03:41:23Z

나는 어려서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참았고, 해야 할 말에 침묵했다. 낯선 이는 말했다. 부모가 애를 잘 못 봐주어서 그래. 낯선 이는 말했다. 애가 저리 답답하게 구는데 부모 처지도 이해돼. 낯선 이는 말했다. 저런 행동은 보통 부모의 학대로 나타나. 낯선 이는 말했다. 학교 폭력을 당한 걸지도 몰라. 낯선

사랑한다면 나를 놓아줘

2025-04-11T02:36:22Z

날지 못하도록 서로의 발을 맞잡고 추락하는 일종의 치킨 게임.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라고 불리는 이 행동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다툼’으로 수컷과 수컷 간에 먼저 발을 놓는 수리가 지는 꼴이다. 제아무리 맹금류래도 지면에 처박히면 죽어버리기 때문에 앞서 치킨 게임이란 말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른 하나는 전혀 반대의 경우인 ‘구애’다.

06. 자꾸 부는 바람에 드러난 배를 가린다

2025-04-10T23:49:04Z

작년에 이 길에서 그런 말을 했다. 봄의 기일이 오늘임을 기억하려 한다고. 붙어있는 벚꽃잎이 얼마 없을 정도로 이미 흐드러져 밟히고 있었다. 적는 오늘, 바닥이 깨끗한 만큼 만개한 벚꽃을 일찍 보았다. 나는 엄마한테 일회성 생활비 백만 원을 받는 대가로 몇천 걸음씩 매일 걷기로 했고, 요 며칠간 흐지부지 인증샷을 보내지 못해서. 그러니까, 마지못해서 적는다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2025-04-19T05:36:48Z

김창완은 23년간 진행하던 라디오를 마무리카지노 게임 사이트. “끝 곡은 이걸로 해야지 했어요. 이 곡이 몇 분이나 되는지나 알고 올 걸. 이별은 준비 없이 하는 거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끝 곡 띄워드리면서, 이게 어디서 마칠지 모르겠네요.” 구태여 말하자면 흐느껴 울기 시작한 것은 라디오가 비로소 끝나고 광고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05. 다림

2025-04-13T00:47:53Z

긁적, 긁적. 허망을 보는 눈빛을 본다. 빅-데이터 기반을 근거로 혐오의 시선을 씌운다. 평소와 다르게 어떤 가방, 무슨 옷, 저런 신발 너머를 노려본다. 이리 저리의 걸음걸이, 충동적인 몸짓, 예상할 수 없는 표정. 갑자기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무섭다고 한다. 윽, 이리 와. 긁적, 긁적. 킁, 킁. 제어하지 못하는 듯이 움직인다. 빤히

04. 사람 인

2025-04-13T00:47:35Z

경력직만 뽑으면 신입은 경력을 어디서 쌓나-라는 코미디를 본 거 같다. 꽤 오래전에 본 거 같은데, 아직도 그런 줄은 몰랐다.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금방이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 귀찮아 100개씩 보기를 누른다. 다음, 다음, 다음. 경력만 뽑네, 4년제만 뽑네, 난 자격증도 없네. 한 가지만 했던 사람은 그만두면 쉽게 골치가 아프다. 그래서

03. 호오(好惡)

2025-04-13T00:46:55Z

짧은 단발머리, 하얀 피부에 빨간 입술을 좋아하고 사랑하기 시작하면 몇 년을 오랫동안 빠지곤 합니다. 이렇게 글이나 편지를 적어주는 것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랑을 주려는 제 모습조차 좋아합니다. 이것은 훗날 큰 폐를 끼치게 됩니다. 국내로는 노고지리부터 노영심, 곽진언 같은 포크를, 해외로는 아타라시 각코부터 포플레이, 챗 베이커, 루터 밴드로스, 켄드릭

02. 성동구 최동준

2025-04-13T00:46:22Z

나는 장조림의 메추라기를 집어먹다가도 죽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물컵이라도 엎지른 날에는 집 안 모든 것이 축축해졌다. 나는 우연하게도 이상보다 오래 살았다. 결핵에 걸리지도, 걸렸더라도 나았을 것이다. 건축학도 물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행렬 같은 건 그저 디자인의 요소로 생각한다. 건강한 이상. 무지한 이상. 오바 요조보다는 조금의 자기혐오가

01. 지하철의 원심력

2025-04-13T00:45:59Z

아마도 그린데이 음악인 것 같다. 그 젊은이는 이어폰을 빼더니 정치에 대해 떠들고 있는 맞은 편의 불콰한 아저씨에게 조용히 좀 해달라고 타이른다. 전화가 끊긴 뒤, 무뢰의 펑크 스피릿과 중얼대는 폭탄 심지 그리고 관객이 남았다. 두 국기가 돌돌 말려있다. 그것은 위에서 보면 소용돌이, 나란히 보면 알 수 없는 나라가 된다. 태극이 서로를 향해 외곬으로 맞

적는 마음은 쓰는 마음

2025-02-18T10:05:11Z

기대하던 오늘이다. 형의 결혼기념일뿐이지만 그에 달린 일들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꽃집 사장님에게 편지를 드렸고, 택시 기사님과 한참을 떠들다가 같이 사진도 찍고 책을 선물했다. 형수님이 목살을 구워 주셨고 꽃과 화병을 드리고 짧은 편지를 읽어줬다. 지금은 2시간 뒤에 친구를 만나기 전에 얼른 기록해 놓는다. 꽃집 사장님은 자리에 안 계셨다. 형수님

어라, 나 괜찮네

2025-02-15T12:45:12Z

중학교 때 중고로 구매했던 아이패드가 이젠 먹통이라고 엄마가 그랬다. 좀 더 화면이 크고 연동하기 쉽게 갤럭시 탭을 알아본다. 그땐 당근이 뭐야, 중고나라에서 직거래 된다는 사람도 드물었다. '더 치트'로 알아봐도 당시엔 초범이 더 많았고. 12시에 이쪽 공영주차장으로 와 주신다길래 감사하다며 커피라도 사드리겠다고 했다. 자기가 커피는 안 마신다고 거절하셨

마음에는 그릇이 있어서

2025-02-13T09:11:04Z

알 수 없는 슬픔과 우울을 애지중지하고 있는 당신에게 씁니다. 사랑이란 말을 모르고, 영문도 모른 채 무엇이 식어버린 당신께. 가족들의 눈치가, 스스로의 불안과 우울이, 모든 말들이 칼날처럼 뾰족하게 다가오는 게 당신 스스로에게 어떤가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당신밖에 없어요. 당신도 남들처럼 바다로 가려고 했지만 어쩐지 뻘에 빠진 모습을 하고 있어

목화솜 연구소

2025-02-11T17:25:02Z

마지막 잠수는 *코튼랩스 팀원들로 마무리했다. 모두 따뜻한 말을 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한마디도 없이 차가운 바람을 내며 사라졌었다는 건 내 자신에게 서러운 일이다. 지금 아니면 또 모으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전시에 대한 여전히 소망은 아직 남아 있다. 여러 명이 내 작품을 보고 만지는 순간들을, 누군가에겐 금방 버려질 팜플렛을 디자인하는

사랑 차상위 계층

2025-02-08T06:49:06Z

성수동을 떠날 마음이 굳고 있다. 우울은 나의 힘이라며 노래를 불렀던 나는 이제 사랑 따위 같은 마음을 더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청주나 원주쯤이었으면 해서 한참을 찾아보다가 차상위계층 같은 것도 알아본다. 마침, 주택청약도 깨지 않았으니까. 소득이 없는 그동안은 퇴직금으로, 가족들의 용돈으로 겨우 살았다. 인터넷으로 차상위계층을 신청했더니 다음 날 주민

런

2025-02-06T07:32:48Z

친한 형님도, 교수님도 찾아뵈었고 밀린 연락도 모두 해결했다. 반갑고 서운했던 마음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느렸던 발걸음으로 맞이한 걸로 사과를 대신하길 바란 것이 미련했다면서 반성문의 마음으로 적는다. 형은 결국 식은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내부가 아닌 외부의 이유라는 것에 제일 속상한 사람은 형 본인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여전한 거 같다. 아빠도

6,300원짜리 글씨

2025-02-04T07:36:19Z

어젯밤도 저녁약 2일 치를 먹고 잤다. 오후 3시쯤 느지막이 일어났다. 그마저도 방 안이 너무 추웠고 밤사이 보일러가 얼었을까 봐 걱정이었다. 전기장판만큼은 내 삶의 유일한 물리적 따뜻함이라 항상 따뜻하게 둔다. 한 시간 정도를 미적대다가 간편 다이어트 도시락 두 개를 데워먹었고, 이젠 얼음 가득한 탄산음료를 해 먹기엔 너무 추워서 보리차 티백을 우려먹었다

고개를 휘적여본다

2025-02-01T09:57:11Z

어젯밤엔 이전에 있던 저녁약과 새로 받은 저녁약, 아침에 먹었어야 할 약들을 먹고 거의 10분 만에 잠에 든 거 같다. 먹지 않으면 그 밤 동안만큼은 가시덩굴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열몇 시간을 자다 깨다 하다가 멍한 기운으로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다. 불을 켜고, 화장실을 가고, 광고 연락 같은 걸 지우고, 배고프지 않아도 본능처럼 무얼 먹는다. 반쯤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