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나무를 기억하는 봄 - 기억은 어딘가에 숨어있다

2025-04-24T02:38:10Z

기억은 참 이상하다. 사소한 일인데도 오래도록 또렷하게 남아 있는가 하면, 애써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아 아쉬울 때가 있다. 요즘 들어 어릴 시절 산골에서 마주했던 식물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고 싶은데,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아쉽고 더 그리워진다. 기억해 내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숲속에서 따먹었던 열매와 그때 함께 나눠 먹던 검게 그을린 코흘리개 친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서로에게 봄 - 너는 나의 봄

2025-04-22T14:11:00Z

네가 피면 나도 핀다. 겨울이 다 갔나 싶은 순간, 봄을 알리듯 생강나무에 노란 꽃이 피어난다. 꽃잎이 열리는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내 안에서도 잔잔한 설렘이 움튼다. 생강나무꽃이 피면 내게도 봄이다. 내게 봄의 시작을 알려주는 생강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로 높은 산지를 제외하고 산기슭이나 계곡 주변, 낮은 산길에서 흔하게 볼

작은 꽃들과 함께 오는 봄 - 눈을 낮추면 비로소 보이는 작은 생명들

2025-04-19T17:56:34Z

봄기운이 서서히 짙어지기 시작하면, 발걸음이 다시 숲으로 향한다. 겨우내 날카롭던 바람은 어느새 차가운 기운을 거두고,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도 온기가 가득하다. 부드러워진 바람과 햇살을 따라 연둣빛 새싹이 움트고 꽃봉오리는 붉게 짙어간다. 무엇보다 마음을 끄는 것은 땅 가까이에서 피어난 작고 여린 야생화들이다. 겨우내 차가운 시간을 견뎌내며 기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 다시 봄 - 식물, 움직일 수 없어도 쓰러지지 않는다

2025-04-13T06:20:06Z

읽은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산불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 문장이 떠오른다. “불이 휘몰아쳐 올 때, 도망도 가지 못하고 울부짖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다 드디어 불길에 갇혀 몸을 태워야만 했던 나무들의 비애가 몰려오는 듯하여 억한 감정이 목까지 차온다.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을까. 퍽퍽해 오는 가슴만을 칠 뿐 도리가 없다.”(「차윤정

올괴불나무가 맞이하는 봄 - 손길과 눈길이 없어도 늘 먼저 맞이하며 기다린다

2025-03-29T14:51:33Z

봄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기 시작한다. 찬바람이 포근하게 변하는 시기에 봄꽃 소식을 먼저 전해주는 나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두 나무만 꼽으라면 매화나무와 올괴불나무라 말하고 싶다. 매화나무는 겨울 끝자락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다. 올괴불나무는 누구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눈길을 받지 않아도 산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며 홀

너도바람꽃을 만나러 가 봄 - 앞장섰지만 실은 너도 햇살을 기다렸던 거야

2025-04-23T08:15:39Z

너도바람꽃 앞에 섰다. 참 오랜만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봄이 오면 숲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곳에서 희귀한 꽃들을 만났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보다 산 깊숙한 곳에서 피는 꽃을 더 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는 그 꽃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어디서 피든 모든 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는 것을. 최근 이삼

턱걸이를 다시 시작하다

2025-03-22T09:49:28Z

턱걸이 목표는 20개였다. 그렇게 마음먹고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목표에 다가가기는커녕 오히려 뒤로 한참 멀어졌다. 언제부턴지, 왜 그런지 이유도 분명치 않게 멀어졌다. 여름부터였을까? 정체기가 온 건가?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도 자주 가지 않게 되었고 집에 있는 턱걸이 기구도 가끔만 사용했다. 목표는 멀어지고 핑계는 가까웠다. 급기야 아내는 턱걸이

겨울에 만난 네발나비 - 오늘 너를 만나 햇살이 더 빛난다

2025-04-04T21:53:22Z

여전히 어깨라도 움츠려야 견뎌지는 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거기다가 밤사이 내린 눈이 얇게 쌓이고 아침에도 잠시 가루눈이 분분하게 날리기까지 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온이 오르면서 마치 봄이 멀지 않은 듯했고 절기상으로도 우수가 지난 상황에서 다시 추위가 찾아오니 눈이 반갑지만은 않다. 이런 날은 구름 사이로 작은 햇살이라도 비추면 반갑다. 아침이 지나

하얗게 빛나는 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 은사시나무의 이름을 불러주다

2025-03-18T16:05:09Z

이름이 궁금한 나무가 생겼다. 요즘 겨울눈과 나무껍질을 살피며 다니다가 눈여겨본 나무다. 산마루에 닿기 전, 8부 능선의 산비탈에 무리를 이룬 하얀 껍질의 나무들이 햇살에 빛나서 멀리서도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짙푸른 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흰 나무껍질이 겨울이 되자 드러난 것이다.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이고 등산로도 없을 듯해 머뭇거렸으나

나무에 새겨진 바람의 흔적 - 나무와 바람은 서로를 흔들며 서로에게 스며든다

2025-03-16T10:56:51Z

바람이 불면 떠오르는 글귀가 2개 있다. 하나는, “청명하고 볕발이 고른 날에도 대숲에서는 늘 그렇게 소소(蕭蕭)한 바람이 술렁이었다. 그것은 사르락 사르락 댓잎을 갈며 들릴 듯 말 듯 사운거리다가도, 솨아 한쪽으로 몰리면서 물소리를 내기도 하고, 잔잔해졌는가 하면 푸른 잎의 날을 세워 우우우 누구를 부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소설 「혼불」의 도입부로,

나무껍질, 이름을 품다 -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마침내 나무 이름이 되다

2025-03-25T09:41:09Z

나무껍질(樹皮)은 나무의 피부이자 옷이다. 가장 바깥층에서 나무를 감싸며, 내부의 수분 손실을 막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나무를 지킨다. 추위와 습기 같은 거친 날씨 변화에 맞서고, 보이지 않는 병원균과 해충의 침입을 막아내며, 뜻밖의 물리적 충격을 받아내며 나무를 보호한다. 또한 껍질에 난 숨구멍인 껍질눈으로 호흡을 한다.(「숲의 인문학을 위한 나무 문답」

삶의 흔적 잎자국을 찾아서 - 겨울나무를 즐기기 시작하다

2025-02-20T23:37:56Z

며칠째 잎자국을 찾아 관찰하고 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찾아 나서니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잎자국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겨울은 꽃과 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나무의 다른 부분을 들여다볼 좋은 계절이다. 작년 겨울에는 겨울눈을 관찰하면서도 바로 아래에 자리한 잎자국은 관심이 없어서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그 흔적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는 만

손녀와 눈사람 만드는 꿈을 꾼다 - 아~ 재밌겠다

2025-03-24T06:10:59Z

눈사람이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다. 설 쇠려 온 손녀가 이모와 삼촌을 졸라 만든다. 나뭇잎으로 눈을 붙이고, 장난감 삽이 손이 되고, 양동이 모자를 쓴 모습이 그럴듯하다. 창밖으로 보아도 제법 큰 눈사람이다. 작은 눈 뭉치를 굴려 머리가 되고 몸통이 될 만한 크기가 되기까지 수없이 굴렸을 것이다. 눈이 내리고 시간이 지나야 잘 뭉쳐지는데 눈이 내리는

감태나무, 겨울에 돋보이는 나무 - 마른 나뭇잎에 이는 겨울바람도 도드라지게 한다

2025-02-07T12:49:57Z

겨울은 감태나무가 돋보이는 계절이다. 감태나무는 낙엽이 지는 갈잎나무인데도 겨우내 누렇게 변한 잎을 떨구지 않고 새봄 새잎이 돋을 무렵까지 달고 있다. 날이 추워진 후로 발길이 뜸했던 뒷산에 오르다가 마른 잎을 달고 있는 나무를 본다. 감태나무라 직감된다. 가지에 마른 잎이 무성한 모습이 도감에서 본 것과 같다.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상수리나무나 갈참나무

나의 부엌칼 - 훗날 자식들은 요리하는 나를 어떻게 회상할까

2025-02-08T02:32:27Z

부엌칼이 손에 익어가고 있다. 그동안 여러 칼이 내 손을 거쳐 갔다. 처음 만난 칼은 연필을 깎는 문구용 칼일 테고, 보리나 벼를 베는 농사일을 돕기 위해 가끔 낫을 들었으며, 수염이 자란 청년 시절엔 면도칼을, 중년 이후로 본격적으로 부엌칼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문구 칼이나 낫은 쓸 일이 거의 없고 매일 출근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면도칼도 날마다 쓰지

어머니의 부엌칼 - 끝없는 사랑과 자부심이었다

2025-02-07T21:31:57Z

우연히 김애란 소설 「칼자국」을 읽었다. 국숫집을 하며 “오랜 세월 칼과 도마를 놓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어머니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라 뭉클하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마침 은퇴 후에 요리하느라 부엌칼을 드는 시간이 많아져 칼과 도마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던 참에 만난 소설이라 더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 속 부엌칼 관련 부분에 내

책방에서 일한 1년 동안 - 함께 즐기길 바란다

2025-01-08T15:09:41Z

책방에서 일하면서 1년이 지난다. 은퇴 전에 오랜 기간 했던 일과 아주 다른 일자리라 어색함도 있었으나 기대와 설렘이 더 컸다. 책을 가까이하는 즐거움과 놀지만 않고 일한다는 위안을 얻었으며 책방에 들어와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이런 감정이 ‘했다’가 아닌 ‘한다’는 현재진행형이라 더 좋다. 일하면서 겪는 상황이 대부분 처음이라

혼자라는 즐거움 - 그렇다고 함께하는 즐거움에서 멀어지진 말자

2025-01-06T12:40:08Z

은퇴 후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내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하고 싶거나 하기 싫은 것을 내키는 대로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평온한 휴식을 취한다거나, 생각 없이 멍 때리며 놀고먹을 수 있는 즐거운 순간이며, 때로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날이 갈수록 혼자

새알의 다양한 색깔, 무늬, 모양 - 그래서 1억 년 이상 적응하고 생존하고 있다

2024-12-19T00:08:16Z

달걀 색깔은 대부분 흰색과 갈색이며, 갈색은 짙고 옅음에 차이가 있다. 요즘엔 푸르스름한 청색 달걀도 간혹 보인다. 메추리알의 색상은 연한 회갈색 바탕에 진한 갈색 얼룩이 있다. 얼룩은 복잡하고 규칙성 없이 갖가지 모양이다. 어릴 적에 보았던 제비알은 메추리알과 비슷하고 뱁새라 부르던 붉은머리오목눈이알은 푸른 빛깔로 기억된다. 알을 낳은 동물은 조류뿐 아

책방 다녀오는 길 - 햇살이 달콤하다

2024-12-30T14:45:28Z

오늘은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바람은 차갑고 햇살은 따뜻하다. 이런 날 햇살은 달콤하다. 햇살 덕분에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부드럽게 느껴지고 같은 풍경이라도 더 뚜렷하다. 매번 자전거를 타고 가지만 오늘은 걷기로 한다. 정류장까지 걷는 10분이 행복하다. 버스 기다리는 마음도 느긋하다. 넉넉하게 나오기도 했고 일부러 해가 비치는 곳을 찾아 서있으니 여유롭다

이른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