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걷!쓰! - 읽고 걷고 쓰기에 관한 독백

2025-05-12T02:44:51Z

읽기, 걷기, 쓰기는 각각 독립된 활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맞물려있는 3개의 톱니바퀴처럼 어느 하나에 힘을 실어 돌리기 시작하면 나머지 2개가 돌아가는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톱니바퀴들을 모두 돌려내는 첫 번째 바퀴는 아마도 보통 읽기 바퀴일 것이다. 읽기는 그야말로 쓰기라는 생산 활동을 위해

아들은 왜 엄마에게 짜증을 내는가

2025-04-24T09:34:18Z

"아! 몰라! 됐다고!!" "아니 얘가 왜 이리 짜증을 내고 난리야? 네가 이렇게 하자며?" "아 그니까 됐다고!" "나 참 별꼴이네." 길 맞은편에서 오던 한 모자가 길거리에서 실랑이를 벌이며 걷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 엄마는 이제 자신 보다 훌쩍 커버린 학교 체육복 차림의 중학생 아들을 올려다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고 아들은 정말이지

거리를 듣다

2025-04-15T23:00:25Z

막상 나와보니 날씨가 아주 좋은 날이다. 그렇게 거리를 조금 걷다가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는다. 그 순간 애플 뮤직에서 '파올로 프레수(Paolo Fresu')의 새로운 음반이 나왔다며 알림을 보내온다. 고운 바람결과 춤추듯 흔들리는 나무들 그리고 부드러운 햇살.. 파올로 프레수를 듣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느다란 주전자로 뜨거운 물을 곱게 흘려보내는

그녀가 나를 보네 Part 4

2025-04-11T01:00:10Z

-본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내가 화장실에 있는 동안 문 앞에 좀 서있어요." "그리고 이 장갑도 좀 들고 있고." 그녀는 마치 아까와는 다른 사람처럼 여유 있고 당당해진 태도를 보이며 그날따라 신경 쓴 옷차림에 맞춘 듯 보이는 가죽 장갑을 나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가게에 돌아가서 할 일도 있고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나를 보네 Part 3

2025-04-05T01:04:27Z

-본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자는 주기적으로 가게에 나타나며 반갑지 않은 단골이 되어갔지만 이렇다 할 큰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기에 달리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여자는 방문할 때마다 언제나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로즈메리 티를 주문했다. 허브티를 추천해 달라고 하기에 로즈메리를 추천한 뒤로는 오로지 로즈메리만

그녀가 나를 보네 Part 2

2025-04-02T02:15:15Z

-본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점심시간을 맞아 바쁘던 카페는 어느덧 한산해졌지만 주방은 쌓인 잔들을 설거지하는 일로 다시 바빠진다. 잔들을 문지르는 이 단순한 행위의 반복은 뇌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다시 재생해 볼 여유를 주곤 한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될 것 같네요.) 어제 그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실은 누구라도 초면인 누군

그녀가 나를 보네 Part 1

2025-04-02T09:29:54Z

-본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습니다- 50대로 추정되는 이 중년 여성은 우리 가게의 단골이다. 이곳의 커피가 마음에 든다며 이 동네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들여 찾아주고 있다. 오늘도 흰색 그랜저가 가게 창가에 앞에 조용히 정차하는 모습이 나의 곁눈에 어렴풋이 느껴지며 그녀의 방문을 예고한다. "라테 진하고 맛있게 한잔 부탁해요."

'다락에서 찾은 엄마향기'를 읽고

2025-03-28T11:20:29Z

나는 사실 영화든 책이든 가족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의 서사는 끝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며 마무리되지만 실은 그것은 늘 슬픔과 아픔이라는 거름을 필수 양분으로 삼아 자라나는 희생의 만개(滿開)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이야기해 보려는 책인 '다락에서 찾은 엄마향기'는 말 그대로 다락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엄마 박순근 씨가

단차 - 행복과 불행의 오르내림

2025-03-22T00:45:08Z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 계단 하나를 딛고 오르면 "아~ 좀 더 높은 곳에 올랐으니 행복하다"라며 좋아하고 반대로 계단을 하나라도 내려가게 되면 "아~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라며 신세를 한탄하고 절망한다. 사람들은 모두가 그렇게 하나라도 높은 계단을 갈구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재미있게도 행복과 불행을 발생시키는 원인은

서울을 떠나며 [Leaving Seoul]

2025-03-13T23:43:42Z

글쎄.. 나는 서울이 그리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야 서울은 어느 동네를 가던지 느낌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역 주변은 겉보기 좋은 랜드마크들이 즐비하고 도로변의 상가 거리의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프랜차이즈 매장들의 나열이며 그 거리를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리고 조금 안으로 들어간 그늘

내 마음속 습자지

2025-03-02T03:48:08Z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저마다 종이가 한 장씩 들어섰다 누구는 거칠고 투박한 골판지 누구는 할 말로 빼곡한 신문지 누구는 진짠듯 가짠듯 합성수지 내 안에는 습자지 한 장이 놓였다 여리고 얇은 종이 위에는 예쁜 색 한 방울도 넓게 번져 나간다 그러나 때로는 빗물에 금세 젖어서 다시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 운명 여리고 얇은 종이 위에는 작은 노랫소

드럼 세탁기

2025-02-28T23:00:10Z

드럼 세탁기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그대를 스스로 데울 수 있었음을 나는 미처 몰랐네 그동안 빨래 삶을 수 있었던 것이 보일러 덕분이 아니었음을 이제 찾아갈 오래된 베란다 남루한 한켠에 세탁기 자리 냉수 줄기만 외로이 홀로 비쳤을 때 나의 빨래 얼어붙을까 노심초사했던 그 나날들은 다 부질없던 것이었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그대를 스스로 데울

내 몸은 LA의 지도 <라나 델 레이-Arcadia>

2025-02-26T09:55:07Z

내 귀는 마치 자성을 띤 것처럼 철학과 메시지의 함량이 높은 음악에 강한 이끌림을 감지하곤 한다. 나는 가급적 유행가로써 만들어진 노래보다는 두고두고 들으면서 세월과 함께 숙성시켜 갈 충분한 양분을 가진 음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해 볼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음악은 '몹시'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미국 뉴욕 북부의 작은 시골

인간은 자유라는 형벌을 받고 있다

2025-02-22T09:57:06Z

역사적으로 인류가 서로 전쟁을 하고 목숨을 바치는 희생으로 써 내려간 드라마의 중심에는 '자유'를 향한 갈구가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그토록 자유를 얻고 싶어 했을까? 자유로운 사람은 선택할 수 있고, 자유로운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자유로운 사람은 어디에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자유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최근에는 인간이

달은 가혹한 여왕 -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2025-01-24T10:50:11Z

1977년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지미 웹(Jimmy Webb)은 SF 소설 'The Moon Is a Harsh Mistress'의 영감을 받아 같은 제목을 채용한 이 노래를 발표한다. 사실 이 곡은 본인이 직접 부르기 앞서 74년 조 카커(Joe Cocker)에게 먼저 건넸던 곡이기도 하다. SF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나 곡 자체를 들어보면 공상과학

욕망의 궤적을 따라서 - 이 헤드폰이 니 헤드폰이냐?

2025-01-22T00:53:07Z

나는 얼마 전 오디오 페어 방문기 1등에 선정되어 고가의 무선 헤드폰을 상품으로 받은 적이 있다. 해당 헤드폰은 출시가격이 100만 원이 넘는 제품으로 가장 좋은 무선 헤드폰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음향기기 애호가들에게 꾸준한 사람을 받는 그런 제품이었다. 말 그대로 뜻밖의 선물이었다. 집으로 배송된 헤드폰 박스를 받아 들고 이게 웬 떡인가 하는 감

우리는 왜 슬픔을 찾는가

2025-01-20T10:57:06Z

"슬픈 음악은 왜 아름다울까요?" 최근 누군가에게 들은 질문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꽤나 울림이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슬픈 일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묘하게도 사람들은 돈을 지불해 가면서까지 슬픈 영화를 보고, 슬픈 음악을 찾는다. 그것이 나를 찾아오는 것은 싫지만 보고 듣고 하며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 공연을 다녀오다 - 2025/01/14

2025-01-24T19:24:11Z

예스 24 라이브홀에 일찌감치 도착한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분명 저렇게 빠른 번호를 예매할수록 입장 순서가 빨라진다고 쓰여있었고 나는 저 파란 점에 위치한 상당히 빠른 티켓을 예매했다. 데미안 라이스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들은 스태프의 안내는 황당했다. "아.. 먼저 오신 순서대로 입장하는 거라서요." 이게 무슨

음악도 후숙이 되나요?(사라 맥라클란 편)

2025-01-14T05:56:26Z

짧은 머리에 시원한 미소 그리고 나풀거리는 듯한 독특한 창법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사라 맥라클란'을 알게 된 것은 9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나에겐 '싱어송라이터'라는 수식어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말 그대로 노래도 하고 작곡도 직접 한다는 의미다. "노래도 하고 작곡도 직접 한다니 뭔가 다재다능한 것 같긴 한데... 그

고깃집의 소수자

2025-01-12T09:03:27Z

"이야~ 연초에 오랜만에 이렇게 모였는데 식사는 하고 가셔야죠?" "아우~ 좋죠. 다들 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경양식이요." "아니 오랜만에 이렇게 모였는데 무슨! 그러지 말고 이 근방에 잘하는 고깃집 있는데 거기로 가시죠." "갑시다!!(유사 만장일치)" 고깃집을 가자는데 환호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고깃집은 항상 최고의 선택지

아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