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려다 배우게 되는 것들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5-04T22:00:08Z

하루 대부분을 모발과 관련된 일을 하며 보낸다. 머리카락이라는 작지만 복잡한 세계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많아진다. 더 잘 알고 싶고, 더 잘 설명하고 싶다. 그래서 배우고, 정리하고, 남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 반복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뭔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길은 그것을 남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이 말을 믿는다. 실제

제 사투리, 티 나나요?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5-01T23:59:36Z

얼마 전 내원하신 제주도 환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 핫하다는 '폭싹 속았수다' 이야기가 나왔다. "제주도 사투리는 자막이 있어도 잘 못 알아듣겠더라고요"라고 하니, 환자분이 웃으며 말했다. 관식이 할머니 역을 맡은 분(아이유한테 팥 뿌렸던), 그리고 아이유 부부에게 츤데레처럼 쌀을 몰래 챙겨주던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만 진짜 제주도 사투리를

일구이무? 일모이무(一毛二無).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5-01T22:00:10Z

야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무리 투수가 위기의 순간에 글러브에 손을 넣고,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으며 숨을 고르는 그 순간이다. 긴장이 극대화되는 바로 그 순간. 응원가 소리도, 관중의 함성도 그때만큼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공 하나를 두고 흐르는 긴장, 공 하나에 혼을 몰아넣는 투수의 눈빛. 그 모습은 오래전 김성근 감독님이 남긴 말, “공

재능이 없어서, 꾸준히 합니다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5-01T15:17:59Z

꾸준함은 예전부터 나의 작은 자부심이자 위안이었다. 나는 머리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머리 좋은 친구들이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낼 때면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쪽의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신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끈기였다. 친구들이 세 시간을 공부하면 나는 여섯 시간을 앉아 있어야 겨우 비슷한 수

아직도 그 약인가요?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29T22:00:07Z

그 환자분과의 상담은 익숙한 말로 시작됐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거울 한번 보시고요." 그는 10년 넘게 머리가 빠졌다고 했다. 약은 싫고, 병원도 자주 오기 어렵단다. 어깨 수술 후 재활도 한창이라고 했다. 탈모약을 10년 전에 한 달 정도 먹다가 말았다고 한다. 다시 약을 먹는 게 좋겠다고 하면서 탈모약을 추천했다. “이 약, 10년 전에 잠깐 먹었던

드라마 속 천재 의사를 보고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27T22:00:07Z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보며 처음 박은빈 배우의 팬이 되었다. 그녀가 맡은 프로야구팀 운영 팀장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줬다. 이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무인도의 디바'까지 그녀의 작품이라면 빠짐없이 챙겨보게 되었다. 최근 방영된 『하이퍼나이프』에서 그녀는 신경외과 의사 정세옥으로 등장했다. 역시나 또 천재였다. 드라마 속 정세옥은 어린

지하철 출근, 제일 난처한 순간은?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25T01:48:00Z

2년 전부터 자가용 대신 지하철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예상외로 좋은 점이 많았다. 걷는 시간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운동이 되었고, 운전을 하지 않아 생긴 여유 시간에는 유튜브로 영어 공부를 하거나 전자책을 읽을 수 있었다.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삶이 오히려 더 풍성해졌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면서 느끼는 작은 어려움이 하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22T23:00:08Z

출근길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강남역 사거리로 쏟아지는 인파 속에 몸을 맡겼다. 차가운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스마트폰 화면 속 오늘의 예약 환자 명단이 눈앞을 채운다. 그런데, 그 순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물 벽면을 덮은 대형 전광판에 익숙한 얼굴이 떴다. 흰 재킷, 조명 아래의 땀, 그리고 비트에 맞춘 칼군무. 내가 수술했던 가수였다.

과한 겸손은 실례다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20T23:00:09Z

"발표 내용 너무 좋았어요." "쓰신 책 보고 많이 배웠어요." 이런 칭찬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손사래를 친다. "아유 아닙니다, 별 내용 없는걸요."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까지 겸손해야만 할까? 정말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내가 열심히 준비했고 그 결과가 좋았던 걸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낮추는 데 너무도 익숙한 사람이다.

알고리즘이 당신을 지배한다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18T01:08:11Z

내 진료실 한구석에는 작은 선인장이 하나 있다.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며 무심히 지나치는 그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는 이 선인장은 이름도 없고 존재감도 크지 않다. 그러나 내게 이 선인장은 유튜브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실제로 유튜브를 키우는 건 아니지만, 마치 선인장처럼 스스로 알아서 자라나고, 어느새 진료실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 존재감이 묘하게 닮아 있

눈을 보고 말해요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16T14:32:18Z

유학 중인 중학생 딸이 봄방학을 맞아 귀국했다. 한국을 떠난 지 1년 반쯤 되었고, 그 사이 키는 훌쩍 자랐으며 말투엔 외국식 억양이 스며들어 있었다. 공항에서 만난 딸은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안아줄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 아이는 먼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아빠, 한국 공기… 왜 이래? 생각보다 안 좋아." 환승대기실을 벗어난 지 10분도 안 된

드디어 샀는데, 절대 안 쓴다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14T00:42:33Z

최근에 노트북을 하나 샀다. 일반형도 아닌 무려 최신형 플래그십 노트북이다. 터치도 되고, 화면을 뒤로 접으면 태블릿처럼 쓸 수도 있다. 사람들은 어딘가 커피 냄새가 날 것 같은 도서관이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이걸로 근사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구입하기 전부터 고민은 많았다. 학회에 가보면 발표 자료를 현장에서 수정

샴푸는 거들뿐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12T00:32:37Z

며칠 전,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형, 탈모샴푸 뭐 써야 해요? 추천 좀 해주세요.” 이제는 너무 익숙한 질문이다. 예전에는 성분 이야기부터 꺼내며 진지하게 설명했다. “카페인, 징크피리치온, 살리실산, 셀레늄 같은 성분이 들어간 제품들이 있어. 이게 그래도 효과가 어느 정도는 있다고 연구들이 있긴 한데, 샴푸라는 제형에서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는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아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09T00:11:11Z

요즘 들어 환자들한테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이 약… 평생 먹어야 하나요?” 그럴 때면 나는 약간의 연기력을 발휘해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영화 속에서 결정을 앞둔 주인공처럼. "그렇게 비장하게 생각하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머금고 말을 덧붙인다. “그냥 머리카락에 신경 안 쓸 때까지만 먹는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저도

수천만 원짜리 머리카락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07T23:00:18Z

엘비스 프레슬리의 머리카락이 경매에 나와 1만 7천 달러에 낙찰됐다는 뉴스를 우연히 클릭해서 보게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단골 이발사에게 잘리고 남겨진 머리카락을, 누군가가 조용히 모아두었다가 병에 담아 보관해 뒀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병은 경매장에 등장했다. 머리카락 한 병. 2천만 원. “이게 진짜야?”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

가마, 도대체 왜 있는 거야?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03T23:00:05Z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가마’다. 머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는 이 작은 부분은 마치 태풍의 눈과 같다. 최근 나도 정수리 부분의 머리카락이 줄어들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특히 가마 부분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아 거울을 볼 때마다 괜히 한숨이 나온다. 예전부터 ‘가마가 두 개면 장

응급환자, 무조건 수용?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4-01T23:00:04Z

나는 성형외과 전문의다. 많은 사람들은 성형외과라 하면 눈, 코, 얼굴 라인을 떠올리지만, 사실 성형외과는 외상과 재건을 다루는 외과다. 대학병원에서 전공의(레지던트)로 근무할 당시, 나는 매일같이 응급실을 드나들었다. 단순한 열상 봉합부터 시작해, 교통사고로 얼굴뼈가 부서진 환자, 손가락이 절단된 채 들어온 노동자, 뜨거운 물에 덴 아이까지. 그 모두가

남편 머리카락을 늘 품에 지니고 다닌 여인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3-30T23:00:04Z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 공을 평생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냐면, 남편이 요절한 뒤 그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정성스럽게 모아 하트 모양의 펜던트, 그러니까 작은 목걸이 안에 넣어 가슴에 지니고 다녔다. 그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애도의 표현이자 끝나지 않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이 머리카락은 그 사람의 일부다'라는 생각

착한 척이라도 해라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3-28T00:40:46Z

가끔 생각한다. ‘내가 정말 착한 사람인가?’ 아닌 것 같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친절한 말을 하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고, 시술을 하고, 수술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이 환자 너무 예민하네...' '이 환자 질문이 너무 많은데...' 그런데도 나는 늘 웃으며 인사도 하고 답변도 건넨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잘 지내

유튜브와 책, 그 사이에서 - 아무튼, 머리카락

2025-03-26T00:52:56Z

며칠 전 만난 분하고 대화를 나누던 중에 내가 그분께 요즘 어떤 유튜브 채널 좋아하시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쇼킹했다.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있던 그분의 부인도, 그분의 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시간을 내서 뭘 하냐고 물었더니, 책을 본다고 했다. ‘아차.’ 그 순간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요즘 책을 멀리하고 유튜브, 넷플릭스를 많이

김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