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삼일장 - 해피엔딩

2025-05-12T03:39:49Z

First snow now drifts, though it has already fallen It is still falling, never fallen before A wind never blowing remembers a swirling stain not ever existing The wind that has already disappeare

문을 여니 서늘한 부끄러움에 - 이별의 색깔

2025-05-10T22:46:03Z

빗줄기를 따라 헤어짐을 흩뿌린다. 오전 내내 쿱쿱한 골목의 끝을 달려 그 말을 전하고 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네가 어떤 이유로 내게 이런 말을 듣고 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던 미래가 지금이 된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내가 처음 밀려났던 그때. 내가 어떤 쓸모쯤으로 치워졌을 때. 오래 기다리며 다른 색깔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이 많았지만 결국

곰이 날아간 자리에는 - [엽편소설]

2025-05-09T23:08:29Z

문지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현관 옆 붙박이 신발장에 들어있던 삼단 우산을 챙겼다. 비가 오는 소리가 났다. 우산을 들고 현관문을 열다가 다시 들어와 장화로 갈아 신었다. 언젠가는 꼭 신어야지 넣어만 두고 비 오는 날에는 정작 잊어버려서 한 번도 신지 못한 하얀 장화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서둘러 비를 쏟는 하늘 아래로 한 발 디뎠다. 두두둑 툭

훔쳐가는 마음 - 표절

2025-05-07T03:39:34Z

공모전에 낸 글이 표절당했다는 어느 작가의 글을 읽었다. 가슴속이 까매졌다. 글 쓰는 사람들을 믿는다. 글 쓰는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라 생각한다. 글을 쓸 때는 고심하는 간격들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의 글을 자신의 것으로 이름을 바꿔 다는 순간 평생 스스로를 '훔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전혀 모른다 해도 자신만 아는 불변의

바비의 10달러 -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by 션 베이커 감독, 2017

2025-05-05T19:05:59Z

그 10달러마저 절박함을 해결하지 못한다. 바비를 좌절하게 하는 믿었던 이웃의 위선마저 찰나다. 감독은 세상 곳곳의 바비를 그린다. 사람들은 살아간다. 바라보며 나눈다. 자신의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을 위한 최선을 다한 시간들은, 그것이 사회적 통념으로 어떻게 자리 잡혔든 간에 귀하다. 빈대가 끓는 현실의 매직캐슬과 판타지의 화려한 디즈니랜드 매직캐슬

토크 사이사이 - 책 & 영화

2025-05-03T05:37:08Z

오늘 북토크의 책은 한 문학평론가가 '허구를 빌미로 비현실적으로 과감해지려는 방탕한 객기'가 없다며 추천한 소설들의 묶음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내가 심하게 멈칫거렸기 때문에 오늘 북토크에 더욱 기대가 크다. 나는 허구를 빌미로 비현실적인 글을 쓴다. 비현실을 빌미로 과감해지려는 과장을 몸짓을 쓴다. 과감의 극으로 가면서 방탕한 글을 쓰기도 한다. 결국

결별

2025-05-07T03:29:41Z

차가 망가지거나 두 눈이 길을 잃어 세상을 가리면 종종 새벽 버스를 탄다. 진한 회색 안개가 짙은 이른 도시로 들어가는 길은 항상 두려워 마음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건다. 그가 있는 그 도시가 마냥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넓은 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와 고속도로가 만나는 그곳 커다란 전광판에 '잘 지내니?'라는 걸 읽자마자 새벽부터 가슴이 시리다. 다 지

후원을 걸으며 잔잔하게

2025-05-07T03:30:50Z

모르는 전화번호가 지인의 뒷번호와 비슷해서 받아 버렸다. 예쁜 목소리가 긴장을 잔뜩 해서 바쁘다. 지난 후원에 감사한다 현재도 재정이 어려워서... 이런 전화, 얼마나 어려울까. 저쪽 편에서 전화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뒷걸음의 쪼그라지는 마음도 있었겠지. 할 수 있는 말을 다 하도록 두고 전화 후 문자를 열었다. 후원자의 세세한 개인 정보를 입력하라는데

분홍 장미꽃잎 같은 첫 - [엽편소설]

2025-05-11T19:42:41Z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또 시작이구나 한다. 그 첫 순간이 그랬어. 네가 그랬지. 내가 하자 그런 건 아니야. 게임 규칙이 그런 거니까 난 그냥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네가... 그때 산은 결이 백 미터쯤 멀어져 가는 걸 느꼈다. 그 작은 공간을 날아 벽을 투명하게 뚫고서 아득하게. 산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몰랐다. 포실하

그곳엔 다 있다 - 떠남

2025-05-07T03:31:06Z

한 번도 막히지 않았던 지난밤 도로를 다시 거꾸로 걷는다. 거기엔 나가는 문 들어오는 길이 가지런했다. 사는 게 누군가 뚫어 포장해 둔 곳을 그냥 가는 것이라면 벌써 지루해 몸부림칠 거다. 끝까지 불어 하늘거리는 풍선 같은 위태로운 욕망을 안고 모두들 조심조심 사랑하며 산다. 나도. 밤늦은 할인이 그 안에 들어있는 다 쭈굴 해진 오렌지 껍질을 내밀며 측은

편린

2025-04-25T00:01:33Z

내 다리 길이도 안 되는 아이가 하늘을 보며 말한다. 하늘은 왜 파랗지? 네 마음이 파란색이라 그래. 그럼 땅은 왜 노란색이야? 그건 사람들이 만들어낸 노란색 이야기들이 밤새 가라앉아 누워 쉬느라 그래. 그럼 이야기는 언제 일어나? 사람들이 걸어갈 때 꾹 눌리면 그게 사랑인 줄 알고 얼른 붙잡고 기대는 거야. 그럼 그건 그 사람의 하루가 되는 거야? 응,

어떤 단어는 톱니가 있어

2025-05-07T03:31:19Z

하나의 단어는 항상 나쁜 뜻만 가지지 않고 항상 좋은 의미로만 쓰이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포위의 말이 달려갔다가 그 의미를 톱질하는 통증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는 게 좋다. 괜히 팔을 뻗었다가 살에 톱니가 박혀 떨고 있을 수도 있다. 찢어진 톱이 운다. 방어하다 더 아플 텐데. 슬픈 단어가 날아오면 그건 내 의미가

흐르는 저 끝에 달린 것들 - 동행

2025-05-07T03:31:32Z

하루 종일 비가 온다. 말없이 흔들리는 빗줄기 위에 마음을 얹어 보낸다. 투명한 것의 의미가 퇴색된 날에 그저 먼지를 말아 내리며 소리를 내는 창, 타고 흐르는 불협화음에 고개를 들고 희적 거리며 내려가는 저 비 끝까지 따라가 본다. 흔적마저 제 마음대로 여기저기 유리에 끈적이며 남은 방울의 서성거리는 그 끝에 매달려 조용히, 잠시 멈추고 살아가는

부아 난 벌 - [엽편소설]

2025-05-09T23:07:38Z

쏘아대는 건 어른이 아니라 생각한다. 마음이 쓰리거나 아파도 지근하게 울렁이는 통증을 참는 게 철든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안다. 형주는 그럼에도 쏘아주고 싶고 어른이 되기 싫고 철들기도 싫은 이상한 변덕을 부리며 꾸준히 마음을 아파한다. 그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옆에서 보며 내심 짐작한 지 오래다. 설령 그런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의도

찰나의 희열에 기대어 - 순간살이

2025-05-07T03:31:43Z

순간을, 기쁨에 어쩔 줄 몰라 사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그럴 때는 항상 있다. 느끼려고 하지 않아서 맞아들이기에는 다른 욕망이 차 있어서 가슴에 온전히 안지 못할 뿐이다. 하루살이도 아니고 순간살이, 순전히 그 사이사이를 채워 산다는 말로 가슴에 심는다. 심장이 뛸 때마다 같이 자라날 수 있도록 연둣빛의 연약한 희망을 살아간다. 가장 바쁜 시기에 새로

영화 폭풍 상상 땅! 땅! 땅!

2025-04-18T11:27:44Z

이상한 방식인지 뇌 기능의 이상인지 알 길은 없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이나 감독이나 배우들이 누군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기록과 사실로 사회적 대화를 해야 한다면 바보에 가깝다. 바보인 나의 존재가 기특하다. 여전히 살아 있다! 내 삶이니 내 마음대로 퍼즐을 맞춘다. 제목에 끌려 들어가 예매 전 감독이나 배우, 시놉시스를 확인하기보다 첫 마주치는

이 정도면 좋은 날

2025-05-07T03:31:53Z

여행지의 바람을 확인하는 편이다. 기상청에서 알려주는 풍속이 4 이상이면 떠나는 마음의 살랑거림까지 합해서 요란해지는 거다. 그래서 온몸에 힘을 꽉 주며 안 날려갈 준비를 하고 온 거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내린다. 애피타이저처럼 먼저 와서 촉촉하구나 그랬다. 비를 좋아하니 다행이다. 빗방울의 무게는 다양하게 놀라게 한다. 넓적한 돌에 촵!하고

5 - [석주]

2025-05-06T22:48:05Z

그렇게 인터뷰 회기가 한 번씩 끝날 때마다 혜주는 보드카를 그의 옷장 안에서 꺼내 온 작은 잔에 따라 주었다. 그 한잔에 석주는 죽음의 문턱을 후회 없이 더 행복하게 넘을 수 있겠다며 너털웃음을 짓곤 했다. "미국에선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재즈바를 정리하고 바로요. 뭔가 제 몸에 중요한 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을 때 마음이 편해졌어

봄이 더 시린 날 - [봄]

2025-04-10T23:00:58Z

철푸덕! 철푸덕! 목련 꽃잎이 냅다 엎어진다. 구석구석 멍들고 아픈 듯 커다란 이파리가 몸부림치듯 풀썩인다. 둥글게 몸을 말고서 사이로 끼어오는 바람에 한들거리며 드디어 평안이다 숨을 돌린다. 이제는 차분히 돌아가면 될 것을, 잎이 떨어져 내려온 그 끝에 안녕을 달아둔다. 집 앞 목련꽃이 필 때마다 떨어지는 진한 황갈색의 변주, 그 무성한 아우성에 귀를

그냥 그렇게 있어도 된다고 말해줘 - 거기

2025-05-07T03:32:05Z

자신감이 필요하대서 온종일 궁리했지. 네게 그걸 주려면 내가 어디쯤 서성거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시시콜콜 하고 싶은 건 참 많은데 고개에 숨겨진 관절만 움직이며 판타지만 바라보니 우물쭈물하던 나는 되돌아가야 할까. 하고 싶어 가고 싶어 따고 싶어 갖고 싶어 쫓고 싶어 싶어라는 나라에는 실체가 없고 '고'라는 건 가라는 거잖아. 하고 가고 따고 갖고 쫓고

서희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