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범퍼카 타임!

2025-05-01T03:20:39Z

나는 주말 낮잠을 때때로 ‘젤리범퍼카’라 부른다. 오후의 햇빛은 살짝 기울어 이불 위에 노란 사각형을 그리고, 방 안의 공기는 느리고 조용하게 흐른다. 나는 별다른 계획 없이 침대에 눕는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현실감을 잃은 채 희미하게 떠돈다. 모든 것이 잠시 멈춘 듯한 시간. 그 속에서 눈을 감는다.

3층, 동편, 음악실 창문

2025-04-28T03:38:13Z

"야, 농구나 하자." 체육 선생은 강당 구석 테이블의 서류 더미 위에 팔꿈치를 댄 채,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통제력을 상실한 수업은 각자의 무의미한 활동으로 대체되었다. 강당 바닥에 농구공 부딪히는 소리는 여러 갈래의 고함과 뒤섞였다. 운동화 밑창이 마룻바닥에 마찰하며 내는, 신경을 긁는 소음이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강당 조명은 왁스 칠이

나의 집은 107번 버스였다

2025-04-26T07:21:15Z

나는 집이 싫었다. 아직 내 나이가 두 자리가 되기도 전에, 우리 가족은 경상도에서 ‘잘 산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부유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한순간 폭죽처럼 터졌고, 그 덕분에 우리는 신도시 아파트 22층에 살았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4학년쯤 되었을 무렵, 도어 록이었던 현관문은 열쇠로 바뀌었다. 우리는 추락했다. 새로 내려앉은 곳은 ‘석

동일한 메커니즘

2025-04-22T01:40:45Z

다음 날 점심시간, 나는 다시 다목적실 구석으로 향했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단편적인 정보와 불쾌한 감각, 그리고 겹쳐 보였던 두 개의 손. 어젯밤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그 장면들 속에 어떤 패턴이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다목적실 중앙, 원형 벤치에는 여전히 기태의 무리가 있었다. 천장의 길고 노란 형광등은 플라스틱 같은 빛을 쏟아냈지만,

매일 치우고도 다시 보는 것들

2025-04-16T23:40:27Z

하루의 의식 끝에 어김없이 마주하는 장면이 있다. 욕실 바닥, 차갑고 반질거리는 금속 배수구. 그리고 그 위에, 혹은 그 구멍 틈새에 걸려 있는 축축한 머리카락들이다. 마른 바닥에 흩어진 한두 올쯤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배수구라는 특정 장소, 거기에 모여 엉킨 머리카락들은 이상하게 다르다. 불쾌함을 넘어, 무언가가 더 깊은 곳을 건드린다. 존재

살아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2025-04-19T14:15:02Z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다목적실 구석을 찾았다. 실내에는 천장의 길고 노란 형광등이 뿜어내는, 어딘가 플라스틱 같은 질감을 지닌 빛과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는 정오의 짧고 날카로운 가을 햇살이 바닥 위에서 서로 영역을 다투듯 뒤섞여 있었다. 두꺼운 소설책을 펼쳤지만, 눈길은 활자에 머물지 못했다. 내 관심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선우, 그 친구였다

엘리베이터 속 고래 한 마리

2025-04-12T05:40:14Z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좁고 텁텁한 공기가 몸을 눌렀다. 옆 사람이 낮고 긴 숨을 내쉬었다. 희미했지만 나는 들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올라온 숨결이었다. 타인에게 내 글을 처음 내보이는 일이 꼭 이와 같았다. 나 혼자 쉬던 익숙한 공기가 아닌, 다른 밀도와 온도의 공기를 마주하는 일. 그 낯섦과 무게감이 마음 한구석을 지그시 눌렀다. "백일장

아버지의 규칙

2025-04-06T04:49:33Z

이유는 몰랐지만,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창밖은 여전히 푸른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나는 소리 없이 침대에서 빠져나와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열었다. 바깥공기는 차갑고 축축했으며, 가을 특유의 냄새가 희미하게 감돌았다. 젖은 낙엽과 흙, 그리고 저 멀리 은행나무가 있을 법한 방향에서 풍겨 오는 쿰쿰한 냄새였다. 텅 빈 거리에는 가로등 불빛만이 젖은 아

별을 따다 줄 수 없다면

2025-04-02T13:42:14Z

사마귀풀이 도랑가에 흔들리는 여름밤. 작은 벌레들이 전봇대 불빛 아래 모여들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풀잎이 무릎에 들러붙었다. 내게는 시골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처음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열 살쯤, 명절마다 외할머니 댁 마당을 사이에 두고 이웃집에서 친구가 나타났다. 친구는 마땅한 신발이 없어 할머니의 고무신을 끌고 다녔다.

어쩌면 어제, 선우가 죽었다.

2025-03-30T08:46:15Z

누군가가 말했다. 선우가 3층에서 뛰어내렸다고. 정오였다. 10월의 햇빛은 날카롭게 교실 바닥에서 길게 누워 있었다. 그 빛 속에서 먼지가 느릿하게 부유했다. 대부분의 친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말은 공기 중에 잠시 떠돌다 흩어졌다. 몇몇은 고개를 들었지만, 교실은 금세 원래의 소음과 무관심으로 돌아갔다. 과자 봉지가 터지는 소리와 낮은 웃음

조용한 노랑의 온도

2025-03-30T03:11:17Z

어린 시절, 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는 펑퍼짐한 살구색 반바지를 즐겨 입으시고, 시력이 좋지 않아 두꺼운 안경을 직접 개조해 쓰셨다. 안경알이 두 겹이었지만, 그 너머로 아버지의 눈빛은 언제나 쨍하고 뾰족했다. 가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실에서 TV를 보시다 눈을 감으면, 나는 아버지가 주무신다고 생각해 조심스럽게 리모컨을 집

상실을 피할 수 있을까요?

2025-03-23T07:49:27Z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집니다. 저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당신도,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실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피하고자 영원을 만들어 냅니다. 영원은 불안을 진정시키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마치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매달려요. 사라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역설적으로 사라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듭니다. 삶의 본질은 덧없

빙봉, 유년기의 달콤한 작별 인사

2025-03-21T11:08:11Z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비밀 친구’를 만든다. 종이컵에 비밀을 담아 속삭이고, 혼자만 아는 이름을 불러 주던 그런 친구 말이다. 디즈니·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솜사탕 같은 분홍색 털, 코끼리 코에 고양이 꼬리를 달고, 달나라로 가길 꿈꾸던 상상의 친구 ‘빙봉’. 귀엽고 엉뚱한 그의 모습은 미소를 짓게 하지만,

남들의 시선이 두렵나요?

2025-03-19T11:07:49Z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어느 오후, 창가로 기울어진 햇살이 유리컵을 타고 테이블 위로 번졌습니다. 맞은편 천장을 올려다보니 CCTV가 조용히 회전하고 있었어요. 검은 렌즈는 둥근 몸체 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였고, 흐릿한 실내 풍경이 표면에 반사되었으며, 붉은 점멸등이 규칙적으로 깜빡였어요. 렌즈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신경이 쓰였습니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

어떤 하늘이 가장 좋은가요?

2025-03-16T06:48:36Z

어릴 때, 저는 종종 새벽에 깨어 있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녹이 슨 창틀 너머로 바람 소리가 들리면, 저는 조용히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그때마다 마주한 것은 새벽하늘이었습니다. 도시의 불빛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하늘은 늘 맑고 투명했어요. 밤과 낮의 경계에 잠시 멈춘 세상. 그 틈에 선 저

요새 어떤 걸 갖고 싶나요?

2025-03-12T10:41:32Z

출판된 책 두 권을 갖고 싶습니다. 에세이와 소설, 이 두 장르로 제만의 이야기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는 것이 목표예요. 중학생 시절, 저는 공책에 하루의 감정을 적었습니다. 수업 내용을 베끼는 대신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과 느낌을 기록으로 남겼어요. 그때의 글은 미숙하고 어설펐습니다. 그러나 펜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 의미가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오늘 밤 꾸고 싶은 꿈이 있나요? - 상상이 이루어지는 마법 같은 세계를 여행하는 꿈입니다.

2025-03-09T13:01:06Z

"썩 꺼지지 못해! 공상가에게 줄 것은 자기혐오뿐이야!" "싫어요. 목적에 부합하는 편견은 진실로 인정받아요." 회사 메일함을 열 때마다 심장이 빨라집니다. 사수가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내가 실수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요. 마지막으로 보낸 메일의 맞춤법을 다시 확인하고, 오늘 나눈 대화를 되새깁니다.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목줄을 찬 강아지처럼 종일 나를 따라

힘들고 지칠 때 무엇을 찾나요? - 음악을 찾습니다.

2025-03-08T21:35:24Z

종말 361일째,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녹슨 트램이 오후 햇살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빛났다. 깨진 창문 사이로 손을 뻗어 먼지 쌓인 야생화를 만져 보았다. 차가운 철제 프레임에 등을 기대니 금속의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번졌다. 습한 숲 공기와 쇳내가 코끝을 자극하는 이곳에서 나는 울었다. 하염없이 울었다. 이 세계는 음악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이어폰을 귀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있나요? - 네가 어떻게 변해도, 너는 언제나 나의 영원한 기쁨이야.

2025-03-03T06:08:18Z

'띠링, 누구누구 님이 라이킷했습니다.' 아침마다 브런치 앱을 열어서 좋아요 개수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네. 좋아요 28개와 12개의 차이가 왜 그리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지. 처음 글을 쓸 때의 순수한 기쁨은 어디로 갔을까. 브런치 작가가 된 후에도 더 많은 인정이 필요해졌고, 그 욕심은 멈추지 않는구나. 그래도 자책하지 마. 행복은 흐른다고 했던 네 글

공복 렌즈 - 배고픔은 내게 특별한 렌즈를 선물했다.

2025-03-01T06:30:28Z

분자생물학자는 200nm 광학 현미경으로 단백질의 미세한 움직임을 관찰하며 질병의 원인을 찾아낸다. 나는 그저 배를 비우고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포만감이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면, 공복은 내 시선을 예리하게 만든다. 글쓰기 모임이 있는 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 때 나는 물 한 잔만 마시고 자연스럽게 냉장고 앞을 지나친다. 키

에투알 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