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나는, 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 날카로운 관찰자였던 20대의 이야기

2025-04-30T02:58:51Z

오래전에 남겨둔 비밀 기록을 다시 열어봤다. 20대였던 내가 세상을 해부하듯 바라보던 시절.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이, 그 시절 그대로 글 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남몰래 쓴 일기를 들여다보니, 그 시절의 내가 얼마나 사람을 날카롭게 관찰했는지 알 수 있었다. "A를 알면 알수록 그것이 ‘난 대단한 사람이니까 나보다

모든 것이 가장 푸르러지는 순간 - 놓치더라도, 우리는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2025-04-29T04:29:36Z

4월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훔쳐간다. 영춘화가 피어나며 봄의 시작을 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개나리는 노란 물결을 이루고, 벚꽃은 폭죽처럼 터졌다가 바람에 흩날린다. 그 사이 철쭉이 얼굴을 내밀고, 겹벚꽃이 화려함을 뽐내다 사라지고, 라일락의 향기가 저녁 공기를 적신다. 뒷산 공원은 한 달 전만 해도 앙상한 가지들만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는데,

오래된 인연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순간들 - 변화를 두려워한 건 나만이 아니었다

2025-05-01T05:05:09Z

어릴 때는 오래된 친구가 최고라고 배웠다. "진짜 친구는 학창 시절 친구야." 누가 그랬더라. 아마 그때는 그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살다 보니 깨달았다. 오래된 관계는 오래된 옷 같아서, 자꾸 내 몸에 맞지 않기 시작한다. 입으면 답답하고, 버리자니 추억이 아깝고. 결국 옷장 안에 쑤셔 넣고 방치해 두는 수밖에 없다. 몇 달 전 사촌의 결혼식,

비 오는 날의 익명성 - 흐릿한 오후, 이름 없는 나로

2025-04-22T12:58:11Z

4월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햇살이 쨍하다가도 순식간에 하늘이 흐려지고 비가 내린다. 지난 2주간, 세차를 마친 차가 벚꽃잎과 흙탕물에 다시 얼룩지는 걸 몇 번이나 지켜봤다. 비는 때때로 짜증을 부르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뚫고 또 다른 생각을 끌어낸다. 그렇게 또 하루, 빗줄기가 거리를 적시던 날이었다. 흐릿한 오후였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

나는 그걸 예술이라 불렀고, 사실은 도피였다 - 예술병, 그 포장과 해체 사이에서

2025-04-17T01:48:06Z

갤러리의 흰 벽처럼 말없이 서 있던 작업실 한구석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춰놓았다. 오래전 봄, 졸업 전시를 마치고도 학교를 떠나지 못한 채 예술의 세계에 한 발을 담그고 있었다. 동기들은 하나둘 취업해 야근 사진을 SNS에 올리고,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는 예술이라는 보호구역 아래에서, 조금은 아픈 척을 하며 시간을 미

잠들지 않은 창문 하나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익명의 밤, 우리는 서로의 불빛이 된다

2025-05-01T18:09:24Z

늦은 귀가길, 머리 위로 흩뿌려진 별들 사이로 아파트의 창문 하나가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거리는 이미 잠들었고, 늦은 시간 홀로 걷는 발걸음만이 고요를 깨뜨렸다. 그 불빛은 마치 길을 잃은 밤을 향해 조용히 손짓하는 등대 같았다. 아무도 찾지 않아도 여전히 거기 있어주는 어떤 존재처럼. 낯선 창문 너머 누군가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무얼 하

아이를 낳지 않기로 다짐한 이유 - 나의 선택, 그리고 우리의 존중

2025-04-14T12:28:26Z

어릴 적부터 나는 삶이 근본적으로 힘들다고 느꼈다. 이것은 불행한 가정환경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부모님은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종종 세상에 태어난다는 게 정말 좋은 일인지 의문을 품곤 했다. 내가 살면서 경험한 기쁨과 슬픔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놓을 때마다, 그 균형은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사춘기 시절, 친구들이 미래의

디자이너가 아닌 오퍼레이터로 사는 것 - 수평적 협업이라는 환상 아래, 눌려 있던 말들에 대하여

2025-04-10T12:51:43Z

내가 디자이너인 건 맞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기획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나눠주는 일도 없다. 대신 전달되는 건 몇 개의 참고 이미지와 짧은 키워드,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는 한 마디뿐이었다. "이런 느낌으로 깔끔하게 부탁드려요." 느낌, 감각, 직관. 말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무언가를 손끝으로 구현해 달라

응원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 II - 15년의 기다림 끝에, 기적은 내게 응답했다

2025-04-10T01:08:43Z

변화의 시대: 갈림길, 희미해지는 열정 2014년의 기적이 끝난 후, LG 트윈스는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매년 가을야구를 경험했지만 플레이오프의 벽은 좀처럼 넘지 못했다. 항상 4~5위권을 맴돌며, 도약할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한 걸음이 부족했다. 그리고 팀은 세대교체라는 거대한 과제 앞에 서 있었다. 베테랑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마땅한

응원은 기다림의 다른 이름 I - LG 트윈스와 함께한 기다림의 기록

2025-04-09T16:43:14Z

사람은 참 오래도 기다릴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팀에게서 배웠다. 이건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의 기록이기도 하고, 내가 삶을 살아온 방식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늘 입춘을 전후로 나는 대청소를 한다.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가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얼마 전 엄마가 "다 네 짐이야" 라며 보내준 박스를 열었는데, 그 안에서

마음에도 물갈이가 필요해 - 감정도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2025-04-09T05:56:20Z

어릴 적, 잠깐 물고기를 키웠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처음엔 맑고 투명했던 어항 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어느 날부터인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맑아 보이는 물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유리창 너머로 희뿌연 기운이 서서히 번져가고 있었다. 나의 무심함 속에,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 물은 이미 조금씩 탁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항을 들여다

자기만족은 정말 '나'만을 위한 걸까 - 거울 앞의 나는 누구의 눈으로 만들어졌을까?

2025-04-19T16:12:18Z

날이 풀리면 어김없이 다이어트 얘기가 등장한다. 옷이 얇아지기 시작하면 겨우내 쌓아온 살과의 밀고 당기기가 시작되는 법이다. 얼마 전에도 친구와 점심을 먹으며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는 자연스레 바디 시술 얘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여름이 오기 전에 바디 필러를 맞을 거라고 했다. 겉보기에 전혀 필요 없어 보였기에, 나는 물었다. 왜 굳이 부작용 위험을

MZ로 묶였지만, 정작 나는 Z세대를 몰랐다 - 요즘 애들이라 부르던, 요즘 애들이라 불리던, 그 경계에 서서

2025-04-03T04:45:00Z

나는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한다. Z세대보다 조금 위, 기성세대보다는 아래. 애매한 경계에 선 나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늘 조용히 눈치를 보는 입장이었다. 재직 중이던 시절, 대표는 회의 시간마다 "요즘 MZ는 회사 충성도도 없고 자기만 알아."라며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몇몇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잠시 피어났다가 오래 남는 것들 - 머무를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것들

2025-04-04T22:20:29Z

작년 4월, 공원 산책로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마치 호수처럼 맑고 투명했다. 청명한 봄 하늘 아래, 문득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바람이 살짝 불어오자 벚꽃 가지들이 마치 오랜 짐을 내려놓듯 꽃잎들을 놓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성은 자연현상이라 말하지만, 감각은 다른 차원의 경험을 증명하고 있었다. "벚꽃 비다.” 사람들이 일

나는 나르시시스트와 대화 중이었다 - 착한 사람에게 지친다는 건 이상한 일일까

2025-04-02T02:49:51Z

겉보기엔 참 착한 사람이었다. 말투는 부드럽고, 감정도 자주 드러냈다. 타인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는 듯했고, ‘배려’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나면 늘 지쳤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지치게 하진 않는데, 대화 전체가 끝나고 나면 꼭 내 안의 에너지가 탈탈 털린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한 조각은 왜 부담스러울까? - 누군가는 용기 있게 가져가고, 누군가는 결국 남기고 떠난다

2025-03-31T02:44:44Z

테이블 위에 놓인 피자의 마지막 한 조각. 그 순간 갑자기 공기가 바뀐다. 방금까지 활발했던 대화가 잦아들고, 모두의 시선이 그 한 조각에 슬쩍 머물렀다가 재빨리 피해간다. 누구나 먹고 싶지만, 아무도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누가 가져가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대화는 다른 주제로 흘러간다. 그러나 그 한 조각은 여전히 거기 있다. 먹혀야만 한다. 결국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살아가는 중 - 희미한 빛줄기처럼 남아 있는 작은 이유들

2025-04-19T09:38:48Z

죽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살고 싶지도 않은 날들이 있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어떤 시기는 그렇다. 이 상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감정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우울하진 않은데,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는 — 그런 이상한 공백 상태. 마치 희미한 안개 속을 떠다니는 것처럼, 삶의 윤곽만 어렴풋이 보이는 상태. 살아있음과 죽음

여행이 내 삶을 바꾸지 못한 이유 - 행복이 아니라, 쾌락이었을지 모른다

2025-04-08T07:57:52Z

일상에 치여 살면서 점차 낭만이 사라져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면 유학과 여행에서의 추억을 곱씹어보곤 한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낯선 길을 걷는 것, 새로운 냄새와 처음 보는 풍경, 다른 눈동자 색의 사람들,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소리들... 나에겐 낯선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그 어떤 순간. 내가 없어

다시, 나를 설정하는 시간 - 6년 전의 내가, 퇴사 후 6개월 동안 한 일

2025-03-28T08:46:32Z

2019년 10월, 인스타그램에 남긴 글이 하나 있다. 그땐 그저 막막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적었지만, 지금 보니 꽤 정확한 자기 진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글의 말미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지금 이 시기를 멍때리며 보내기보다는 내 삶의 터닝포인트라 생각하고, 게으르지 않게, 생각은 좀 더 타이트하게,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

무의미한 세상에서 의미를 선택하는 일 - 부조리한 세상, 나만의 의미를 만드는 중입니다

2025-03-31T16:45:43Z

일회용 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기후 위기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물에 잠긴 도시들의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나는 문득 내 손에 들린 플라스틱 컵을 바라보았다. 겉면에는 이미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차가웠던 커피는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었다. 텀블러를 두고 온 스스로를 책망하려다 생각했다. ‘근데, 이

그냥 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