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데이트 - 민권사님, 출발합니다.

2025-05-05T00:51:53Z

우리 엄마, 민 권사님은 아버지가 두 분이다.돌아가신 민대규 할아버지와,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엄마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간은 교회에 가는 시간이다. 민 집사였던 시절엔 맞벌이를 하면서도 예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셨다.하지만 권사 20년 차인 지금,엄마의 다리는 권사님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교회 가방을 들고 현관에 서 계신 엄마에게“데려다

망고 왔습니다. - 큰언니의 마음은 노랑색일까?

2025-05-03T10:11:51Z

문밖에 망고 상자가 보인다.보낸 사람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다.얼마나 달콤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고, 하나씩 살짝 눌러본다.앞의 두 개는 오늘, 나머지는 며칠 더 후숙을 해야 달콤함이 더할 것 같다.망고의 진한 노란색만큼, 내 마음에도 빛이 들어온다. 망고를 소중하게 정리한 후, 큰언니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낸다.엄마가 2년 전 병원에서

사고 난 날

2025-05-02T22:24:50Z

오늘은 내 작은 자동차가 사고를 당했다.하루 종일 서 있었던 나의 발.아니, 정확히 말하자면—늘 서 있기만 하던 우리 차. 달리라고 샀는데, 주차장이 집이고 정차가 특기다.그래도 그동안 별말 없이 잘 버텨준 걸 보면 참 착한 친구다.그래서일까.오늘은 결국, 지나가던 초보운전의 아가씨가 살짝 긁고 갔다. 사진을 문자로 받았다.볼일 마무리하고 부리나

베란다에 생긴 작은 농장 - 이 대로 삼겹살 가능할까?

2025-05-05T02:18:46Z

베란다에 텃밭이 생겼다. 동생이 부모님 소일거리로 신청했는데, 엄마는 처음에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다. 흙이 지저분하고 귀찮다고 하셨다. 동생은 평소 이런 것엔 관심도 없던 사람인데 이번엔 본인이 시작한 일이라 그런지 묘하게 진지하다. 모종도 사고, 구청에서 운영하는 텃밭도 신청했다. 씨앗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사 먹는 것보다 비싸 보였다. 엄마

아빠는 오늘도 냉장고 점검 중

2025-04-30T13:40:16Z

아빠는 80대가 되도록 병원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 입원도, 응급실도 한 번 없이—그 흔한 링거 한 방 맞아본 적이 없다. 매일 술과 담배를 ‘조금씩’ 하셨는데, 그 ‘조금’이 어느 날은 조금 많기도 했다.그래도 그게 아빠의 낙이었고,나는 그걸 굳이 막을 만큼 냉정한 딸은 아니었다.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퇴직하던 날, 78세의 아빠는 직접 운전

김치로 싸우고 김치로 화해한 날

2025-04-29T21:42:31Z

언니들이 집에 오기로 한 날, 엄마는 아침부터 김치 담글 채비를 한다. "그냥 반찬 몇 개만 하지, 뭘 김치까지…" 딸이 말려보지만, 엄마는 이미 양념을 섞고 있다. "김치뿐이야. 금방 끝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부엌엔 무채 써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딸은 속으로 한숨을 쉰다. 여든이 넘은 엄마가 김치를 담근다니 걱정이 앞선다. "엄마, 그냥

어느 일요일 오후 - 이모, 삼촌, 조카의 시장 나들이

2025-04-27T20:58:21Z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동생과 조카를 끌고 재래시장 나들이에 나섰다.버스를 타고 느릿느릿 이동하는 길, 창밖 햇살은 따뜻했고 사람들 표정은 평화로웠다.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활기가 느껴졌다.칼국수 맛집부터 찾았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칼국수 한 그릇에, 굳어 있던 어깨가 스르르 풀렸다.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시장 골목을 다시 걸었다.전복이 싱싱

반가운 봄 손님 - 쑥, 달래향과 함께 온 모자

2025-04-26T13:30:35Z

토요일 아침, 우리 집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여든셋 이모와 쉰을 훌쩍 넘긴 사촌오빠. "야, 우리도 다 늙었네!" 문을 열자마자 이모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는 양손 가득 봄을 들고 왔다. 한 손엔 쑥, 한 손엔 달래. "이모가 직접 뜯은 거야. 봄내음 제대로지?" 진짜였다. 쑥과 달래 냄새가 집 안을 초록으로 가득 채웠다. 이모는 앉자마자

감자 삶는 날 - 만원의 봄날

2025-04-25T14:21:41Z

아빠가 퇴원 후 처음으로 혼자 시장에 다녀왔다. 감자 한 봉지, 참외 하나, 토마토 하나. 딱히 뭘 해 먹겠다는 계획은 없어 보였다. 그냥 걷고 싶었던 것 같다. 언덕 위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여전히 벅차서 나는 차를 몰고 마중 나갔다. “수고했어” 하며 만 원을 건넨다. 안 받겠다고 세 번 말했는데 아빠는 네 번째에 만 원을 손에 쥐어줬다. 그쯤 되면

봄날, 집 안의 베란다

2025-04-27T15:08:41Z

봄날, 집 안의 베란다 햇빛이 드는 베란다. 80대 엄마는 고무대야를 받쳐두고 메주를 손질한다. 짚냄새가 은근히 배어 나오고, 손끝은 바쁘지만 익숙하다. 항아리 옆, 물기로 반짝이는 타일 바닥까지 햇살이 기어 들어온다. 그 옆엔 직접 키운 상추와 화분들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물 먹은 흙 위로 상추 잎이 싱그러워 엄마의 손끝처럼 정직해 보인다. 부엌

4대의 봄날 - 웃음, 걱정, 그리고 커피 한 잔

2025-04-25T01:49:33Z

조카와 봄날의 하루 오랜만에 조카와 함께 긴 시간을 보냈다. 목적지는 할머니 산소. 논산으로 향하는 길, 벚꽃이 만개한 시골 도로는 평소보다 더 조용하고 화창했다. 운전은 조카가 맡았다. 회사 계약이 곧 끝난다며, 다음 일을 고민 중이라는 말에 슬쩍 눈치를 보게 된다.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그냥 창밖을 보며 호두과자를 건넸다. 말보다는 시간이 더 필요

시장길 천천히 걷는 법

2025-04-24T14:39:11Z

엄마는 올해 여든넷이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계단은 무섭다. 그래도 장 보러 나갈 땐 다르다. "오늘은 시장 간다"는 말 한마디에 거실에 있던 사람처럼 안방에서 벌떡 일어난다. 장을 보러 가면, 나는 신속하다. 장바구니 들고, 카드 챙기고, 빨리 사고 돌아오면 끝이다. 하지만 엄마는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무, 배추, 두부 하나 사려다 가게 아줌마와 사십

Ta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