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습니다 - 하동 박경리 문학관에서

2025-04-22T14:08:39Z

지리산 자락 아래, 평사리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그날 내가 걸은 곳은 박경리의 문장 속이 아니라 문장을 빚어낸 숨결 속이었다. “삶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런 존재들의 동반자가 작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큰 기대 없이 둘러보던 박경리 문학관. 내 발걸음을 붙잡

고요도 취향입니다 - 하동의 오후, 매암차문화박물관에서.

2025-04-15T12:36:42Z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우수 웰니스 관광지 88선’을 발표했다. 기존 77곳에 11곳이 새로 이름을 올렸는데, 얼마 전 다녀온 트리비움도 그 안에 포함돼 있었다. 우연히 찾았던 공간이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올해는 이 리스트 속 웰니스 관광지들을 조금 더 마음에 담아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https://brunch.co

멍 때림 성공기: 트리비움에서 작은 실험

2025-04-09T16:14:36Z

평택 진위면의 한적한 동막마을에 복합문화공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섰다. 3월 내내 도도하게 애만 태우던 봄은, 이날만큼은 나긋이 마음을 풀고 다가왔다. 조경건축가 남편과 아로마테라피스트 아내가 진정한 쉼을 꿈꾸며 지었다는 공간. 휴식, 비움, 고요, 건축... 좋아하는 단어들이 총총히 박힌 소개글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곳에 닿아

에필로그: 쓰고 나니 보이는 것들

2025-03-13T03:35:07Z

어느덧 20화의 여정이 끝났습니다. 처음 이 글을 시작한 날이 작년 10월 16일이니, 5개월을 연재했네요. 인내심이 썩 강한 편이 아님에도, 한 회 한 회 성실히 써왔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작은 토닥임을 보냅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혜의 확장’이라는 제목을 다시 쓰라고 하면 못할 거 같아요. 어떻게 호기롭게 이런 제목을 선택했을까요. 이 글들이 정말 제

안 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

2025-03-05T13:11:49Z

"저는 안 하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이 단 한마디가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무력해 보이는 이 거부가 사무실을 뒤흔들고, 고용주를 혼란에 빠뜨린다. 동정하는 사람도, 분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도 바틀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거부는 사회적 질서에 균열을 내는 동시에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허먼 멜빌의 단편 <

인상파, 불완전한 순간을 사랑하다 -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 전시회

2025-03-02T00:45:46Z

인상주의는 가장 사랑받는 미술 사조 중 하나다. 인상주의를 주제로 한 전시는 언제나 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이 만들어내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데 집중했다. 따뜻한 햇살이 스며드는 오후, 물결 위로 반짝이는 빛, 공원에서 춤추는 연인의 실루엣 같은 장면을. 인상주의가 붙잡고자 한 것은 ‘here and now’, 바로 지금 이

LAT,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다

2025-02-20T08:44:14Z

사랑하는 사람과 꼭 한집에 살아야 할까? 결혼하면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한 이불을 덮고 잠드는 것이 당연한 걸까? 우리는 오랫동안 사랑하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결혼하면 함께 살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이제, 그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Living Apart Together(LAT), ‘함께하지만 따로 사는’ 관계가

수레바퀴 아래 깔리지 않기를 - 부모필독서, <수레바퀴 아래서>

2025-03-05T15:22:30Z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선정한 ‘청소년 권장도서’이지만, 이 책이야말로 청소년보다 부모들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어릴 적 읽었던 헤세의 작품들,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완독 하지 못했던 <싯다르타>까지, 그때는 알지 못했던 의미들이 이제야 선명하게 다가온다. 헤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거장이지만,

가성비 vs. 가심비, 나다운 소비는?

2025-02-12T12:31:26Z

무엇을 살 것인가. 가격과 만족 사이에서 망설이는 일은 익숙하지만, 소비는 더 이상 계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제는 ‘이게 내 라이프스타일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만들어 줄까?’가 중요한 질문이 됐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보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가 소비의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이유이다. 사실 가심비라는 개념은 새롭진 않다. 나는 우리 지

한국의 대표정원이 될 사유원

2025-03-14T13:29:00Z

정원은 자연을 담지만, 때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유가 된다. 대구 근교 군위, 넓고 고즈넉한 땅 위에 자리한 사유원(思惟園)은 ‘깊이 생각하고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뜻을 실현한 곳이다. 이곳은 단순한 수목원이 아니라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철학적인 정원, 그리고 내안의 나를 마주할 사색의 공간이다. 사유원은 2025년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떠오르는 생각, 전부 진짜일까? - 불쾌하고 강박적인 생각에 대하여

2025-02-05T13:07:18Z

어떤 날이 있다. 이상한 생각이 달라붙어 마음이 무너지는 날. 어둡고 무거운 생각이 물처럼 스며들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더욱 단단히 달라붙는 날. 마치 젖은 옷처럼 몸에 들러붙어, 벗어던지려 할수록 더 깊이 밀착되는 그런 순간. 책 <자꾸 이상한 생각이 달라붙어요>는 말한다. "당신에게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칠가이 열풍을 아십니까? - just like Chill guy

2025-01-29T11:23:00Z

SNS를 즐겨하는 분이라면 강아지 얼굴에 회색 스웨터, 청바지, 빨간 스니커즈를 신은 캐릭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대세 중에 대세 '칠가이(Chill Guy)'다. 이 캐릭터를 알고 있으면 Z세대와 대화가 한결 재밌어질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건 작년 11월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계엄 상황과 대형 사고가 연이어 터지며 글

횃대 위의 새에게 - '작별하지 않는다'가 건넨 위로

2025-01-26T15:00:15Z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위태롭게 횃대 위에 서 있는 새를 떠올렸다. 위로란 의도하지 않고 스며들 듯 다가올 때 마음까지 닿는다. 이 책이 그랬다. 살짝 열린 틈으로 들어와 얼어있는 마음을 두드린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티팟과 코모레비, 그 퍼펙트함에 대하여 - 영화 <다가오는 것들>과 <퍼펙트 데이즈>

2025-01-24T01:08:36Z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이 상태는 자체로서 충족된다.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할 게 없는 자에게 화 있으라. 그는 가진 것을 모두 잃는다. 원하던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알랭의 행복론 중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마지막 장면에

금지된 마음의 숲에서

2025-01-18T13:09:43Z

“지금부터 절대 흰곰을 떠올리지 마세요.” 똑딱똑딱,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희미한 그림자가 스며드는 건 왜일까? 잊으려 애쓸수록 더 선명해지고, 밀어내려 할수록 더 깊이 새겨지는 것. 사람의 심리는 참 신기하다. 프랑스 철학자 샤를 페팽의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에서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글과 대니얼 웨그너의 실험이 떠오른다

비엔나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인간 실격 - 클림트, 에곤 실레, 다자이 오사무

2025-03-14T05:22:08Z

비엔나에도 없는 '비엔나커피'가 한국 커피숍의 인기 메뉴였던 시절이 있었다. 현지에서는 ‘아인슈페너’로 불리는 비엔나커피는 19세기말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카페 문화에서 유래했다. 당시 비엔나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모여 토론하고 영감을 나누던 창조적 교류의 중심지였다. 알고 보면 이 '비엔나커피'는 그 시대의

친하다는 슬픈 말

2025-01-11T05:24:42Z

"어머니는 아이와 친하다고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이가 힘든데도 말을 안 해서요. 친하면 속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요.” 의사의 질문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눈물을 삼키고 있던 나의 울먹임을 터트렸다. "친하냐"는 그 짧은 물음이 꺼이꺼이 울게 하는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얼마 후, 딸이

당신의 인생에 컨택트 하다 - 테드 창의 시간과 죽음에 대한 발상전환

2025-01-08T03:00:55Z

삶은 갑작스럽게 변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진다.저녁을 먹으려던 순간, 우리가 아는 세상이 돌연 멈추었다. ― 조앤 디디온, <상실>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평범했던 일상의 균열을 넘어, 수많은 삶을 돌이킬 수 없게 뒤바꾸었다. 사랑하는

고요를 건너다

2025-04-25T05:55:58Z

언어에도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주파수가 따로 있는 걸까. 나의 언어는 아이에게 닿지 못했고, 그의 말은 나에게 해석되지 않았다. 진심조차 뛰어넘지 못한 벽이 우리 사이에 있었다. 물론, 병의 장벽으로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싶었다. 딸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생각의 언저리에는 무엇이 자리하

이번 주 <지혜의 확장>은 쉽니다

2024-12-31T12:54:09Z

제주항공 사고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글을 쉬고 애도를 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송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