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해진 수풀 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 그런 저녁이 있다_나희덕

2025-04-26T06:27:17Z

[그런 저녁에 있다]_나희덕저물 무렵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며하늘 한구석 뒤엉킨하루살이 떼의 마지막 혼돈이며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바람이 푸른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둑방의 꽃들이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나무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행복_유치환

2025-04-19T02:59:32Z

[행복]_유치환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세상의 고달픈

엄마가 만들어 준 쑥떡 - 입만 들고 가서 받은 사랑

2025-04-15T21:43:56Z

동네 정육점에서 한우 수육 전골 밀키트 행사를 했다. 간만에 효도 좀 해볼까, 포장해 들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얼마 만의 한우더냐, 더 사 왔어야 하는데 손 작은 나 반성해' 하며 우동 사리를 더해 2차전을 치르고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배부르고 등따신 토요일 오후, 낮잠 자기 딱 좋은 시간이군. 내 집에 가서 쉴까 싶네. "엄마, 이제 갈

그저, 다만 새 봄 한 아름 -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_유안진

2025-04-12T07:01:19Z

[춘천春川은 가을도 봄이지]_유안진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춘천이 그렇지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녹다만 눈 응달 발치에 두고마른 억새 께벗은 나뭇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담쟁이_도종환

2025-04-09T13:13:24Z

[담쟁이]_도종환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저

열보다 큰 아홉 - 가능성을 믿는 일

2025-04-09T13:33:17Z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열보다 큰 아홉’이라는 이문구 작가의 수필을 함께 읽었다. 보통은 ‘완전한 수’로 여겨지는 열을 더 사랑하는데,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하나 부족한 ‘아홉’을 더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홉을 더 사랑하는 이유는 나머지를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이어서, 어른들은 이미 꽉 찬 ‘열’이고, 청소년들은

실수로 얻은 자유 - 어설픈 나로 살아가는 마음

2025-04-06T09:54:56Z

놀이로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함께 연구하는 모임에 다녀왔다. 그날 함께한 활동 중 하나는 ‘집-잽-잡’. 동그랗게 둘러서서 손끝으로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집’, ‘잽’, ‘잡’을 외치는 놀이인데, 생각보다 꽤 긴장이 필요한 게임이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끝을 따라가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꼭 미어캣 같았다. (‘귀엽습니다’라고 하면 조금 실례일까?

언제고 다시 만날 걸 이제서 믿는 우리들 - 만남_신경림

2025-04-09T13:11:31Z

[만남]_신경림살구꽃 지고 복사꽃 피던 날미움과 노여움 속에서 헤어지면서이제 우리 다시 만날 일 없으리라 다짐했었지그러나 뜨거운 여름날 느닷없는 소낙비 피해처마 아래로 뛰어드는 이들 모두 낯이 익다이마에 패인 깊은 주름 손에 밴 기름때 한결같고묻지 말자 그동안 무얼 했느냐 묻지 말자손 놓고 비 멎은 거리로 흩어지는 우리들후즐근히 젖은 어깨

될 수 있을까 - 사랑하는 별 하나_이성선

2025-04-02T10:35:50Z

[사랑하는 별 하나]_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

잠자리에서 뛰어나온 아이들처럼 - 3월_오규원

2025-04-02T22:43:33Z

[3월]_오규원아침부터펑 펑봄눈이 내리더니점심 무렵에는산과들이눈부시게하얀 이불을 덮고잠이 들었다골짝을타고 내리는 물소리만나즉 나즉자장가처럼 들리던하루가 지나고다시 아침이 오고해가 떠오르더니,점심 무렵에는산과들에좌아악 깔린 이불을모조리걷어가버렸다이불이 걷힌그 자리에는잠자리에서 뛰어나온아이들처럼파

도망자가 된 기분이었다 - 쫓는 줄 알았더니, 다들 도망 중이었다

2025-04-03T10:44:22Z

수영은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이 서는 순서가 중요한 운동이다. 앞뒤 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속도가 너무 빨라 앞사람 발 터치를 하면 안 되고, 너무 느려 뒷사람이 멈춰 서게 해서도 안 된다. 속도가 매너를 만든다. 수영장 에티켓의 기본은 ‘알맞은 속도'이다. 말은 쉽지. 오늘은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일명 ‘접배평자’를 한

‘넵’부터 하던 사람에게 생긴 변화 - 좋은 사람 말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5-03-31T11:57:02Z

부장교사가 되었다는 건, 역할이 하나 더 붙는 것일 뿐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교무실에서의 내 모습은 그대로지만,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대하는 말과 태도는 은연중에 달라졌다. 표현은 조금 더 정중해졌고, 동시에 부탁은 더 구체적으로 들어왔다. 단순히 나를 믿어서라기보다는, 지금의 내 위치가 어떤 역할을 ‘맡기기 좋은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일지

엄마,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 - 어쩌다 북클럽(2) _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2025-03-23T02:04:16Z

엄마.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어떤 직업을 가질지, 무슨 일이 생길지는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야. 만약 노라가 자정의 도서관에 가기 전 이미 애쉬와 커피를 마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랬다면 자정의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행복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노라를 보면 한 번의 결정으로 행복한 삶

엄마랑 같이 하는 건 뭐든 좋아 - 어쩌다 북클럽(1)

2025-03-20T12:56:44Z

'어쩌다 북클럽', 출발합니다 3월의 책, <단둘이 북클럽>을 읽으며 책을 좋아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와 함께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책 읽는 아이, 책 읽는 엄마.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모녀 사이라니. 내 로망의 집합체잖아.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도 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를 대하

1학년 부장의 랜덤박스 개봉기 - 새학년의 문이 열리는 날

2025-03-26T13:51:05Z

3월 4일. 2025학년도가 시작되는 날이다. 각종 단톡방에서는 새 학년, 새 학기를 맞는 자녀들 이야기가 한창이다. "입학식에 가요? 말아요?", "오늘 몇 교시인가요?" "드디어 돌밥 해방입니다." 등등. 전국의 학부모 단톡방이 비슷한 이야기로 불이 날듯. 출근길, 기대에 찬 학부모들의 이야기 사이로 나는 또 다른 긴장감을 느낀다. 후-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단 하나, 용기 -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에필로그

2025-03-03T11:08:26Z

조승리 작가의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글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chill’한 태도로 자신의 아픔을 내뱉는 작가 조승리. 심각한 얘기를 '아, 밥이나 먹자'라는 태도로 툭 던지는 그에게 반해 이 책을 선택한 마음이 통한 듯하다. 인생의 큰 고민도 결국 '한 끼 해결'처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안도감

무지개 글쓰기 상담소

2025-02-22T15:33:03Z

슬초 브런치 3기 무지개 작가 모임.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모르는 사이였는데, 이제는 글을 핑계로 수다 떠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소설 속 다락방 같은 아기자기한 카페에 모인 다섯. 커피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무지개 작가님들. 감자 넝쿨 올라오듯 이야기가 주렁주렁 이어진다. 어쩜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글을 통해 서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 에필로그 : 나를 사랑하기 위한 작은 다짐

2025-02-20T07:00:37Z

워킹맘으로 살며 얻은 것, 잃은 것 내가 맡은 역할은 몇 가지나 될까? 무게에 따라 적어 본다. 엄마, 직장인, 학부모, 아내, 딸, 언니, 며느리, 친구... 몸이 하나인 것이 원통할 따름. 홍길동 분신술이 간절하다. 지난 10년 간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느라 아등바등했다.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했으나 엄마와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에 가장 집중

2025학년도를 기다리며 - 뒤늦은 에필로그

2025-02-17T10:35:45Z

<흑백중학생>은 저의 첫 번째 브런치북입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건 정말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원고 한 편만 달랑 서랍에 넣어놓고 연재를 시작했으니까요. 한창 바빴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마음으로 우는 날도 많았어요.(쟤네는 왜 맨날 소리를 지르는 거야? 오늘도 싸우고 난리 났네, 이놈들. 어린애들이 왜 이렇게 자주 아파? 교무실

감정 관리는 셀프예요. - 역할 모델 되는 연습

2025-02-21T16:07:36Z

엄마는 감정 해결사가 아니야 평화로운 주말, 닌텐도 게임을 하며 깔깔대던 아이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삐— 삐—! 둘째의 긴급 경보음이다. 감정 조절 실패 경고. ‘삐짐 폭탄’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삐- 삐- '. (둘째는 왜 이렇게 네 살 터울 누나가 자기보다 잘하는 걸 싫어하는 걸까? 동생만 있는 나는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하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