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음식 이야기 - 봄의 선물

2025-04-26T00:11:06Z

봄의 선물/ 수련 쑥과 냉이는 속삭인다. ‘어린 날의 향기로운 기억이요’ 뒤뜰 장독대 곁 머위 아기 주먹 같은 동그란 잎사귀 쓴맛으로 봄을 깨운다. 벚꽃의 속살을 바람은 들추고 연정처럼 부푼 앵두와 도화 말갛게 씻긴 하늘, 눈물 한 점 떨구면 땅에 붙은 민들레가 눈을 맞춘다. “나도 여기 있어요” 씀바귀와 엉겅퀴 고운 이야기를 쓴맛으로 감추고 강된장은

나를 돌보는 글쓰기 - 케렌시아(안식처, 피난처)

2025-04-19T08:50:33Z

케렌시아/ 수련 들어서는 순간물안개 같은 수증기몸은 어색하지만마음은 금세 편안하다.어릴 적 친구처럼아무 말 없어도 반가운 존재발끝부터 스며드는 따뜻한 위로아주머니들의 웃고 떠드는정겨운 소리지친 몸을 눕히자목 받침대를 건네주는 조용한 손길어떤 위로의 말보다더 깊은 온정이 느껴진다.너무 뜨겁지도차갑지도 않은적당한 온기가 있다.그곳에서우리는 조금씩 마음을

나를 돌보는 글쓰기 - 종점

2025-04-15T07:43:51Z

종점 /수련 연둣빛 아기 손 들풀 되어 자라고 푸른 잎은 바람에 흔들린다. 장밋빛 뜨거운 열정은 소나기에 휩쓸리고 초록이 익어가는 오색은 강물에 흩날리고 눈 내리는 세상은 잠이든 듯 고요하다. 하늘은 붉은빛 되어 서쪽으로 기울고 홀쭉한 종점이 소리 없이 스며든다. 별빛 같은 산수유는 피고 지고 내 안의 노란빛은 기약이 없다. 지나간 긴 자리는 이

나를 돌보는 글쓰기 - 속삭임

2025-04-11T03:32:55Z

속삭임 진갈색 마른나무 등줄기에 봄비 살며시 입 맞춘다. 갈라진 땅, 목마른 숨결 위로 핏줄 같은 물줄기 길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생명 너의 가녀린 손끝을 펼쳐라. 촉촉한 입맞춤을 받은 가지마다 파릇한 눈망울이 떠오른다. 봄 햇살 현기증 일으키고 컴컴한 밤 노란 등불이 봄날의 밤을 지핀다. 흙이 숨 쉬고, 바람이 노래하면 생명수 듬뿍 머금은

그리운 음식 이야기 - 금. 은. 동

2025-03-28T11:53:52Z

붉은 노을이 스며든 부사 한 알, 노란 햇살을 머금고 연둣빛 바람을 품는다. 아침에 한입 베어 물면, 금빛 설렘이 퍼지고 새콤한 바람이 입술을 적신다. 점심에 한 조각 베어 물면 은빛 강물이 흐르듯 고단한 하루를 부드럽게 감싼다. 저녁에 한 알 가만히 들여다보면 동 빛 달이 스며들고 기억의 향기가 서늘하게 번진다. 사과 한 알 속에 나의 하루가 있고 나의

나를 돌보는 글쓰기 - 글쓰기에도 봄이 왔으면.

2025-03-22T10:44:33Z

마른 가지 끝에 연둣빛 손짓이 인다. 겨울의 찬 바람을 견디고 비로소 빛을 머금은 새싹 하나, 바람은 살짝 볼을 스치고 햇살은 눈부시게 반짝이며 조용히 속삭인다. “봄이 왔노라”라고 고목이 품은 바람의 기억, 그 바싹 마른 상처 위로 어린잎의 약속이 피어난다. 부서질 듯 가녀린 몸짓으로 봄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려도 산수유 노란 꽃은

나를 돌보는 글쓰기 - 말, 바람에 실려 어디로 가는가?

2025-03-21T21:16:00Z

외로움을 많이 타던 이십 대 초반, 나는 고향을 떠나 서울로 취업했다. 대학생인 남동생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주말에 만나 밥을 같이 먹곤 했다. 낯선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집이 그리웠다. 일과를 마치면 콩나물전철을 타고 불빛이 없는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쓸쓸하고 외로웠다. 습관적으로 집 근처 놀이터 앞 공중전화를 본다. 어쩌다 줄이 짧은 날이면 얼른 뛰어갔

아날로그의 삶 - 벽시계

2025-03-17T09:54:18Z

집 안의 거실벽 한편, 늘 한 자리에서 묵묵히 시간을 지키던 시계가 멈추었다. 마치 모든 역할을 다하고 이제는 조용히 쉴 때가 되었다는 듯이. 26년을 함께한 그 벽시계는 인터폰 옆 벽에서 내려와 함께한 무수한 날들을 헤아려주었다. 배터리만 갈아주면 언제나처럼 다시 깨어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몇 번이고 손을 내밀었으나 시계는 끝내 침묵을

3월의 시작 - 그루터기와 봄의 인사

2025-03-13T11:18:49Z

‘아름드리나무들은 베어져 어디로 갔을까?’ 산속의 큰 소나무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휑하게 남은 건 군데군데 드러난 그루터기이다. 따스한 햇볕을 따라 오랜만에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이어져 있는 작은 동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계절 푸르른 그곳은 오래된 소나무와 아카시아, 산벚꽃,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 산딸기나무 등이 둘러싸고 있어 늘 푸근하다. 봄이면 직

3월의 시작 - 마음을 허기지게 하는 것

2025-03-09T04:33:51Z

며칠 봄을 시샘하는 영하의 날씨로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하지만 “우수”가 지나면서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한결 부드럽다. 따스한 햇볕이 그리운 계절,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지난해 5월 정년퇴직 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반복되는 날들이 마치 한없이 이어지는 수평선 같다. 고요하지만, 어딘가 고립된 느낌이다.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그 시작

3월의 시작 - 겨울잠을 깨우는 비

2025-03-11T01:39:09Z

겨울잠을 깨우는 비 수련 바짝 메마른 가지마다 눈물 자국 남기며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땅속 깊이 빗물이 조용히 스며드네 삭풍이 핥아간 언덕길 비좁은 길목마다 어루만지며 서러운 흙을 적시는 단비 찬바람으로 굳었던 2월의 뺨을 3월의 동풍이 사르르 어루만질 때 봄을 알리는 단비는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 씨앗들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비 내린 지름길,

잊지 못할 순간에 대하여 - 처음여권을 만들고!

2025-03-03T23:33:29Z

세월이 흐르면 많은 것이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한 줌 인연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도톰한 정이 되고, 그 정이 다시 한 땀 한 땀 시간의 바느질을 거쳐 단단한 관계가 되는 것. 26년째 복지관 무료급식 봉사 인연을 이어가는 한우리 봉사 모임이다. 2005년 2월, 봄방학중에 한우리 모임 10주년을 맞이하여 회원들은, 경비가 저렴

그리운 음식 이야기 - 호박지 김치

2025-02-24T14:19:37Z

초겨울 땅이 얼기 전, 아버지와 오빠는 조용히 땅을 팠다. 부엌 뒤뜰, 매년 반복되는 의식처럼 땅을 헤집고, 볏짚을 깔아 한 해 농사의 일부를 묻어 저장한다. 노란 대파는 움을 틔우고, 감자와 알밤, 무와 배추는 땅속에서 겨울을 견디며 때를 기다린다. 11월 중순, 월동 준비의 바람이 불어온다. 동치미를 시작으로 김장김치, 총각김치, 무청 김치를 담그고,

나를 취하게 하는 것 - 남도의 맛, 멋

2025-03-27T13:37:42Z

2001년 5월 20일 혀끝을 스치는 강렬한 기억 하나. 그것은 마치 세찬 바람처럼 다가와 내 미각을 흔들어 놓았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 숨은 깊은 향과 맛을 깨닫고 난 후, 나는 서서히 그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시골에서 자랐다. 주로 밭에서 키우는 채소와 산나물 등이 반찬으로 나왔고 지금은 흔한

그리운 음식 이야기 - 정월 세시풍속

2025-02-17T16:14:23Z

팥시루떡을 찌는 일은 정갈한 몸가짐과 정성을 요구했다. 어머니는 가마솥에 물이 끓으면 떡시루를 올리고,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시루 본을 매끄럽고 꼼꼼하게 붙였다. 시루 본이 떨어지면 떡이 설익는다는 속설이 있어, 어머니는 정성을 다하여 그 앞을 떠나지 않고 불조절을 하며 뜸을 들였다. 떡이 완성되면 떡시루를 통째로 들어다 뒤뜰 장독대에 두고 정화수를 떠놓고

잊을 수 없는 사람 - “밥은 먹었는가?”

2025-02-14T02:37:55Z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풀꽃 하나가 바람에 살랑이며 인사를 건넨다. 이름도 모를 그 작은 생명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별것 아니지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쪽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고교 시절 나의 룸메이트 그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말없이, 조용히, 그러나 깊은 울림을 남기는 풀꽃 같은 투박하지만 여리고 따

그리운 음식 이야기 - 어머니의 손두부

2025-02-11T17:02:00Z

가마솥에서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것은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숨을 내쉬는 안개 같다. 겨울은 아직 깊고, 바람은 살을 에는 듯하지만, 산밑의 작은 집 부엌은 콩물 끓이는 수증기로 집안 공기가 훈훈하다. 아궁이의 불꽃이 숨을 쉬고, 가마솥 속에서는 보글보글 콩물이 끓어오른다. 따뜻한 김이 천천히 퍼지면서 부엌 한쪽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이마에도,

나를 돌보는 글쓰기 - 나의 보석상자

2025-02-09T00:49:57Z

동네공원을 함께 산책하는 친구가 울컥하며 성토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꼬마가 "할머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난생처음 듣는 "할머니"라는 소리에 나 말고 뒤에 누가 있나 돌아보았으나 본인한테 인사하는 것을 알아채고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냐며 울먹인다. 그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나름대로 외

그리운 음식이야기 - 김장김치의 변신-김치쌈

2025-02-05T13:28:23Z

하늘공기는 팽팽하게 차갑고 하얀 비단을 풀어 땅 위에 눈 이불을 덮어 주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면 아버지와 오빠들은 고무래와 삽을 들고 무릎까지 쌓인 눈을 치우느라 분주했고, 우리는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작은 빗자루로 마당을 쓸며 함께 했다. 눈은 우리에게 장난감을 내어

고향으로 가는 길 - 대설경보 속 명절 연휴

2025-02-03T04:41:53Z

겨울의 한복판,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고향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그렇듯 마음 안에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그리움이란 눈처럼 천천히 내려앉아 세상을 덮고, 그 위를 걸어가야 하는 일이 귀향이다. 올해는 눈 소식까지 있어, 고속도로는 길이 아니라 은빛 강물처럼 출렁일 것만 같다. 창밖을 바라보며 쌓이는 눈발 속에 떠오르는 기억들은 어느새 길 위의 도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