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혜

눈이 소금처럼 내린다

화혜 — Thu, 30 Jan 2025 23:36:04 GMT

눈이 소금처럼 내린다 톡톡톡 메밀색 나뭇가지 위에 톡톡톡 웨하스 같은 아파트 위에 소금을 많이 뿌리면 안 돼 내 맘도 몰라주고 소복히 쌓인 눈 세상이 소금 범벅이 돼버렸어 삐죽삐죽 울상 짓다가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한발짝 뽀드득 소리에 살짝쿵 풀린 마음 앗 차가 얼굴에 와닿은 하얀 눈 나한테도 소금을 뿌리네 손 내밀어 담아본다 생선뼈처

지는 해가 아쉬운가 - 찰나의 찬란함

화혜 — Thu, 19 Sep 2024 10:04:04 GMT

지는 해가 아쉬운가 산 너머 사라지는 저 붉은 해가 조금 더 머물러주길 바라는가 못내 바래보아도 이내 아니될 일임을 안다 해가 지는 이유는 해가 떠나는 탓이 아니라 지구가 제 길을 가고 있음이기에 저 해를 더 품고 싶다 해도 결코 멈춰설 수는 없으므로

그런 친구 있으세요? - 상처를 주는 친구

화혜 — Tue, 05 Dec 2023 20:16:01 GMT

수업을 하던 중 아이가 문득 얘기를 꺼냈다. "선생님, 오늘 우리 반에 두 명이 전학 갔어요." 말하는 얼굴이 못내 아쉬운 표정인 듯 했다. "그래? 친했던 친구야? 두 명이나 전학 가서 아쉬웠겠다." "좀 아쉬웠어요. 근데 한 명은 원래 저한테 짜증내던 친구에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혹시 아이를 괴롭히던 친구였나 싶어서 좀 더 물어보았다.

행복

화혜 — Tue, 31 Oct 2023 02:58:17 GMT

행복의 다른 말은 내가 사랑한 나의 모습이다.

인생이란 마라톤

화혜 — Sat, 28 Oct 2023 15:08:29 GMT

오래 뛰기 위해서는 숨을 들이쉬는 것보다 내쉬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인생이란 마라톤에서도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잘 해야 합니다.

그냥 너

화혜 — Fri, 27 Oct 2023 11:31:05 GMT

너는 누군가의 기쁨도 슬픔도 아니야. 너는 그냥 너야.

당신도 배워야 할 대화의 기술 -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

화혜 — Sun, 22 Oct 2023 14:34:32 GMT

"선생님 말 들었어?" 사회성 그룹치료 중에 한 아이에게 질문을 했다. 사실 내 질문은 답정너였다. 옆 친구에게 말을 거느라 내 말을 못 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우는 평소에도 다른 사람 말을 주의 깊게 듣기 어려워하는 아이다. "수업 중에는 선생님 보고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아이가 잡담을 멈추고 바른 자세로 고쳐 앉자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나 사용법 - 당근은 못 참지

화혜 — Sun, 22 Oct 2023 10:13:53 GMT

별안간 아이 울음소리로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닫힌 창문마저 뚫고 들어왔다.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는데 신경이 쓰였다. '누가 저렇게 우는 거지?' 문득 등골이 서늘한 촉이 왔다. '설마 우리 아이일까? 지금 치료에 오는 아이일까? 설마...'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 문이 열리며 딸랑이는 방울 소리가 났을 때 설마는 사실이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까먹는다 - 얄궂은 망각이여

화혜 — Sun, 22 Oct 2023 08:06:41 GMT

오늘 치료의 목표는 이중모음을 정확히 발음하는 거다. 도로를 준비하고 자동차를 출발선에 올려 놓았다. 출발점은 '오', 도착점은 '애'다. 오---------애오------애오---애오-애오애왜! 역시 자동차 덕택인가. 아이가 적극적으로 연습하고 이중모음을 잘 따라 해서 다행이라 여겼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이중모음을 못해서 열심히

서로 어떻게 다른지 말해보자 - 너와 나의 연결고리

화혜 — Sun, 22 Oct 2023 05:06:18 GMT

"꼬까께. 꼬까께." 아이들이 발달하면서 꼭 하는 놀이가 있다. 바로 똑같은 걸 찾는 놀이다. 가장 흔하게는 똑같은 색깔을 찾거나 똑같은 모양을 찾는다. '똑같애'라는 말을 아직 정확히 발음하기도 어렵지만, 같은 것끼리 기가 막히게 잘 모으고 다른 것을 기가 막히게 잘 골라낸다. 아마도 서로 같고 다름을 찾는 것은 본능인 것 같다. 다만 어디가

이 사람 몸이 어때 보여? - 주입식 단어, 주입된 생각

화혜 — Sat, 21 Oct 2023 15:08:06 GMT

오늘은 어휘력 검사를 하는 날이다. '어휘'에는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가리키는 '수용 어휘'와 스스로 말하고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인 '표현 어휘'가 있다. 검사는 표현 어휘부터 시작한다. 검사 방식은 간단하다. 그림을 보고 연상되는 단어를 말하면 된다. 아이와 마주보고 앉아 그림 책자를 사이에 두고 검사를 시작했다. 아이는 대부분의 단어를 곧잘

바람이 불어

화혜 — Sat, 21 Oct 2023 07:10:51 GMT

바람에 꺾이지 않으려 오래 고단했다. 그저 불어대는 바람을 오래 원망했다. 버티다 버티다 못해 못내 밀려나 보니. 이곳은 바다요, 나는 파도였더라.

인생의 가을녘

화혜 — Thu, 19 Oct 2023 04:00:26 GMT

나뭇잎이 저마다 다름은 가을이 되어야 티가 난다.

포옹 - 체온의 전도

화혜 — Thu, 19 Oct 2023 03:57:11 GMT

당신은 나로 인해 데워지고선 날 품에 안고 내가 시원하다 하시네

하얀 마스크

화혜 — Thu, 19 Oct 2023 03:42:02 GMT

네 얼굴 가리던 하얀 조개 껍데기 줍고 난 자리에 파란 웃음의 파도

쓰레기통 속 연금술의 돌 - 복숭아 한 알

화혜 — Thu, 19 Oct 2023 03:18:58 GMT

"와, 복숭아다!" 아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문장 만들기 미션을 완수하고 쟁취한 장난감 통에서 복숭아가 나온 것이다. 핑크색 쫄바지와 티셔츠에 핑크색 가방을 차고 핑크색 머리핀을 꽂은 희연이는 연분홍빛 복숭아를 손에 들고 발그레 웃고 있었다. 희연이는 복숭아를 집어 들고 똑 떼어 반으로 갈랐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으레 그러듯 복숭아를 잘라서 먹으

그게 하고 싶어요? 그럼 하세요! - 나의 꿈

화혜 — Sun, 15 Oct 2023 19:07:05 GMT

새 학기가 밝았다. 언어치료에 오는 아이들도 새 학년이 되어 새로운 교실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할 것이다. 새 학기에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 있다. 바로 자기소개다. 학기 초반에 잘 적응하고 친구와 대화도 틀 수 있게 자기소개를 연습하기로 했다.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써넣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과 어려운 것 등을 말해보았다. 자기소개

그 사람이 그렇게 소중해? - 아직은 보낼 수가 없어

화혜 — Sat, 07 Oct 2023 01:36:54 GMT

"투어. 투어." 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한 첫 마디였다. "추워?" "투어. 투어." 아이는 신발을 채 벗기도 전에 몇 번이고 반복했다. "춥다고? 서준이 추워요?" "아이~ 투어!!!" '추워'라는 말이 아니란 건 알겠는데,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아이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잘 벗겨지지 않는 신발을 벗으며 계속 같은 말을 했다. "투어. 투어.

가장 좋은 것을 받는 법 - 진짜 초콜렛과 가짜 초콜렛

화혜 — Fri, 06 Oct 2023 11:55:40 GMT

"으아아앙!!" 오늘도 언어치료실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렛을 주려다 말이다. "초코. 그래, 초코야. 초코." 초콜렛을 내밀었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으아아앙!!" 내가 입만 떼도 소리를 지르고,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경기를 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렛을 주려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공든 탑은 왜 무너져야만 했나 - 낡은 성공과 새로운 실패

화혜 — Thu, 05 Oct 2023 11:01:49 GMT

"왜 그래, 조심해! 무너질 것 같애!" 아이는 이미 손을 허공에 높이 들어올렸다. 방금 전까지 열심히 쌓은 탑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려는 찰나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겨우 쌓아올린 탑인데. 나는 급히 아이를 말려보려 했다. "열심히 만들어 놓고 왜 그래. 잠깐만, 잠까..." 와르르 와르르 꽝. 공들여 쌓은 탑은 한 순간에 사라졌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