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 /@@ehdz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순간들을 글로 담아냅니다. ko Mon, 28 Apr 2025 16:46:23 GMT Kakao Brunch 반짝반짝 빛나는 삶의 순간들을 글로 담아냅니다. //img1.daumcdn.net/thumb/C100x100.fjpg/?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hdz%2Fimage%2FqAoCtIJGq82SyCnnlChib_Bi4go /@@ehdz 100 100 낡은 것들을 위하여 /@@ehdz/46 소파에서 벽까지의 거리가 2m가 채 되지 않는 엄마 집 거실에 85인치 TV가 들어섰다. 혼자 사는 좁은 집에 85인치 TV가 웬 말이냐는 나와 동생의 타박에도 엄마는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았다. &ldquo;눈도 잘 안 보이는데 작은 테레비로 보기 싫다.&rdquo; 육십여 년을 쓴 엄마의 낡은 눈은 신문물을 원한다. 낡은 것이 오히려 새로운 것을 더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Tue, 01 Apr 2025 04:59:11 GMT 임유진 /@@ehdz/46 봄바람처럼 스치는 - 눈치 없는 봄눈 /@@ehdz/45 두꺼운 코트가 따분하고 두툼한 패딩에 싫증이 날 때쯤 새 연인처럼 봄이 온다. 캐시미어 100% 니트 위에 양모 60%, 캐시미어 40%의 울 코트를 겹쳐 입어 만들어낸 포근함이 아닌, 따사로운 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 진짜 포근함이 오는 것이다. 내게 봄의 시작은 입춘도 경칩도 아닌, 목련이다. 상앗빛의 목련이 한껏 피어날 때,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처럼 Thu, 20 Mar 2025 12:07:18 GMT 임유진 /@@ehdz/45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hdz/44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떤 경로로든 예감이 발현되면, 그 후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어김없이 그쪽으로 흘러든다. 여러 물줄기가 종내에는 한곳으로 모여드는 것처럼. 그날도 그랬다. 곰솥에 받아 든 물이 조금 많았다. 생닭을 넣자, 냄비 솥 물은 힘껏 넘실댔다. 물을 살짝 따라낼지 망설이다 그대로 하이라이트 위에 냄비를 올리고 뚜껑을 닫은 뒤 냄비 손 Thu, 13 Mar 2025 05:44:01 GMT 임유진 /@@ehdz/44 꼬불꼬불 나선으로 이어진 것들 /@@ehdz/43 &ldquo;라면 먹을래.&rdquo; 중학생이 된 아이의 저녁 전 간식이 라면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학교와 학원 사이, 그 틈을 영양이 충족된 간식으로 채워주고 싶은 마음은 라면 앞에서 언제나 지고 만다. &ldquo;라면 따위를 매일 먹어서 어쩌자는 거야?&rdquo; 볼멘소리는 재채기처럼 참지 못하고 기어코 입 밖으로 방출된다. 오늘은 학교에서부터 집에 오면 바로 라면 먹을 생각만 했다는 Tue, 18 Feb 2025 10:12:05 GMT 임유진 /@@ehdz/43 인생의 강을 건너는 법 - 사춘기와 강 /@@ehdz/42 &lsquo;넓고 길게 흐르는 큰 물줄기&rsquo;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조카는 20개월 차 인생의 강을 건너고 있다. 아기는 흘러드는 물줄기를 너르게 품어내는 자신의 이름을 &lsquo;앙이&rsquo;라고 발음한다. 아직 단련되지 않은 순한 혀는 기역처럼 각진 발음보다 이응처럼 둥근 발음이 더 쉽기 때문일 것이다. &lsquo;앙이&rsquo;의 입에서는 사과와 수박이 &lsquo;아과&rsquo;와 &lsquo;우박&rsquo;이 되어 오물거린다. 연한 Thu, 13 Feb 2025 10:12:45 GMT 임유진 /@@ehdz/42 껍데기는 가라 - 제36회 신라문학대상 수필 부문 당선작 /@@ehdz/41 귤은 겨울을 데리고 온다. 과일가게 앞에 놓인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탑처럼 쌓아 올려진 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겨울이 온 것을 눈치챈다. 귤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전언이다. 귤은 이른 도착을 망설이는 겨울의 수줍음을 모르는 척 계절을 재촉한다. 빙수 얼음 같은 눈이 날릴 때는, 이미 겨울은 현재완료 진행형이다. 주황색 타원구를 조심스레 돌려가며 Thu, 26 Dec 2024 12:09:09 GMT 임유진 /@@ehdz/41 보호 좌회전 - 비보호 좌회전 /@@ehdz/38 도로를 달리다 보면 (차를 달리게 하는 쪽은 남편이고, 나는 항상 조수석에 있다) 신호등 위에 달린 파란색 표지판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왼쪽으로 꺾인 화살표와 그 아래 쓰인 &lsquo;비보호&rsquo; 표지판. 도로 위의 질서와 안전을 책임지는 신호등의 본분과 정면충돌하는 세 글자. 신호등이 왜 좌회전 차를 보호해 주지 않는 거야? 나의 근원적 물음에 남편은 좌회전 신호를 Wed, 25 Oct 2023 05:03:38 GMT 임유진 /@@ehdz/38 목욕탕 이벤트 - 저울에 올라가면 /@@ehdz/37 호텔 침구를 덮으면 거위의 가슴 털에 휩싸인 것 같다. &lsquo;솜털 95%&rsquo; 태그가 달렸을 것만 같다. 이불 안에서 양수 속을 유영하는 태아처럼 누운 나에게 큰딸 아이가 말을 걸어온다. &ldquo;엄마, 목욕탕 가자.&rdquo; 목욕탕이라니, 어제저녁으로 홍게 무한리필 가게에서 전쟁을 치른 후였다. &ldquo;네가 어제 엄마한테 산후조리원에 있는 사람 같다고 했잖아. 그래서 목욕탕 가기 Wed, 04 Oct 2023 13:05:23 GMT 임유진 /@@ehdz/37 오지 않는 우산 /@@ehdz/36 &lsquo;극한 호우&rsquo;라는 생경한 낱말이 뉴스를 통해 연일 흘러나온다. 산이 흘러내리고 땅이 팰 것만 같은 세찬 비가 쉼 없이 창문을 때린다. 아침에도 폭력배처럼 땅을 두들겨 패던 비는 오후가 되어서도 그 기세가 여전하다. 아이들의 하교가 걱정이다. 아이들이 들고 간 장우산이 뒤집힐 만큼 바람이 불지는 않지만, 빗물의 강도가 무자비하다.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 아이 Fri, 11 Aug 2023 06:00:18 GMT 임유진 /@@ehdz/36 노란 무을의 노래 - 수다사 은행나무 /@@ehdz/35 십여 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이방의 도시, 구미. &lsquo;구미에는 가볼 만한 곳이 없다&rsquo;라는 생각이 이 도시의 이방인들 머릿속에는 공기처럼 부유한다. 몇 년 전 가을, 구미에서 갈 만한 은행나무 명소를 찾던 중 검색 끝에 어렵게 &lsquo;수다사&rsquo;의 이름을 알게 됐다. 춤추는 새, 무을. 생경하지만 언뜻 세련된 구석이 물든 이름의 마을에는 25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품은 <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hdz%2Fimage%2Fzks5O5WKvmqcdZEvK__Fp1qA0Zg.jpg" width="500" /> Tue, 18 Jul 2023 09:42:46 GMT 임유진 /@@ehdz/35 날아라, 플라밍고 /@@ehdz/34 &ldquo;플라밍고입니다.&rdquo; 다홍을 품은 자줏빛 원피스를 입은 나를 보고 놀란 사람들에게 태연자약한 얼굴로 건넨 말이다. &ldquo;나풀거리는 자홍색 치맛자락이 마치 날개를 펼친 홍학 같지요?&rdquo; 연이어 입을 놀린다. 눈앞의 형상에 이미 놀란 사람들이 무구하게 날아오는 번드레한 말에 결국 경악하고 만다. 천연덕스럽게 자찬하는 나를 사람들은 헛웃음으로 대처한다. 풍선 바람이 빠 Sun, 09 Jul 2023 07:56:34 GMT 임유진 /@@ehdz/34 달의 뒷모습 - 김연수, &lt;진주의 결말&gt;을 읽고 /@@ehdz/33 한 명의 인간 안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중 어떤 생각에 줄을 긋고, 어떤 이야기를 엮어갈지는 자기 몫으로 주어진 선택의 문제다. 줄을 긋지 않고 남긴 그 선택의 방향과 속도가 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든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속 단편 &lt;진주의 결말&gt;에서 주인공 유진주는 타인이 줄을 그어 지운 생각과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Sat, 17 Jun 2023 06:01:57 GMT 임유진 /@@ehdz/33 흩날린 결말 - 아버지의 무덤 /@@ehdz/32 아버지, 당신의 무덤이 파헤쳐졌습니다. 3월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ldquo;네 아빠 무덤 파냈단다. 네 할아버지가 윤달 되면 산소 정리한다고 전부터 얘기는 했었는데&hellip; 3월 되고 지금이 윤달이잖아. 지금이 윤달이거든&hellip;. 그래서 지금 이장한다고 다들 예약이 꽉 찼다고 하는데&hellip;.&rdquo; 엄마는 토씨 하나하나에 휴지를 두며 유 Mon, 22 May 2023 14:01:45 GMT 임유진 /@@ehdz/32 속도위반 딱지 - 당신과 나 사이의 속도 /@@ehdz/31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은 탈이 나고 만다. 내 삶의 항로에서 이 말은 언제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제대로 거절하지 못하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에 억지로 품을 들이다 늘 탈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집사다. 신앙보다는 시가에 대한 의무로 일요일마다 교회에 간 지 십여 년이 지났다. 믿음의 가정인 시가에서 교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무조건의 영역이다. 당연하게 Mon, 08 May 2023 12:17:45 GMT 임유진 /@@ehdz/31 창문을 열어 주세요 - 온실 속 화초 /@@ehdz/30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는 동네 꽃집에 애니시다가 들어왔다. 가늘고 낭창한 줄기에 해바라기 씨앗을 닮은 작은 초록색 이파리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줄기 끝 꽃대 부분에는 샛노란 꽃이 쌀 튀밥 뭉치처럼 대롱대롱 터져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연두, 초록, 은빛 초록, 짙은 초록, 카키색의 거실 화단에 비비드한 색깔을 집어넣을 봄이 왔다. 관엽식물들이 장악한 녹음 Thu, 13 Apr 2023 05:15:27 GMT 임유진 /@@ehdz/30 숟가락의 교양 /@@ehdz/29 압력솥에 달린 추에서 김이 솟아오른다. 집안은 사과즙을 머금은 돼지고기 냄새로 가득하다. 고깃덩어리 위에 사과 한 알을 쪼개 올린 뒤 통후추를 열다섯 알쯤 뿌리고 된장 한 숟가락을 풀었다. 대파 두 쪽을 잘라 이불처럼 덮었더니 월계수 잎이 빠진 것치고 다행히 누린내는 돌지 않는다. 찬장에서 손님용 수저 두 벌을 꺼내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장미 모양이 Sat, 18 Mar 2023 05:45:50 GMT 임유진 /@@ehdz/29 추억은 방울방울 /@@ehdz/28 2월 중순, 평일 오후 두 시의 놀이공원은 적당함이 흐른다. 춥지 않은 적당한 날씨와 많지 않은 적당한 인파.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섞여 하루치 추억을 쌓기에 적당한 장소다. 오늘은 놀이공원의 연간회원권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날이다. 지난겨울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우리 가족의 여행 추억을 한 칸 더 채우는 날이었지만, 이제 막 열세 Thu, 02 Mar 2023 12:24:29 GMT 임유진 /@@ehdz/28 십 분의 미학 - 쫄림에 대하여 /@@ehdz/27 결국 맥주병을 땄다. 목도리를 두르듯 왼손으로 맥주병 입구를 감싸고 오른손에 든 숟가락을 병뚜껑의 톱니 사이에 끼웠다. 어느 톱니가 숟가락을 받아줄지 섬세하게 살폈다. 톱니와 숟가락이 빈틈없이 맞물렸다는 느낌이 왔을 때, 가차없이 파고들었다. &ldquo;뻥!&rdquo; 갇혀있던 탄산이 분출했다. 동시에 오븐의 타이머도 &lsquo;땡&rsquo;하고 울린다. 이것이 사람의 귀에 가장 기분 좋게 <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hdz%2Fimage%2FOJR1b8aE9fTr6l2baB4P174opwQ" width="500" /> Mon, 09 Jan 2023 07:19:32 GMT 임유진 /@@ehdz/27 천마지문 /@@ehdz/26 나 도착. 핸드폰에 메시지를 입력하며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답장을 확인하는데 계단 끝에서 웬 아저씨가 인사를 건넨다. &ldquo;여어~.&rdquo; 점퍼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대충 던지는 인사말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코로나 기간 2년, 그전에도 자주 본 적은 없으니 어쩌면 3년 이상. 오랜만에 만난 것치고 인사가 담백하다. &ldquo;아이고, <img src= "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fjpg/?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ehdz%2Fimage%2FZJq3Myde_r8-UsrkTSHA6intbYg" width="500" /> Thu, 15 Dec 2022 06:59:34 GMT 임유진 /@@ehdz/26 만추는 탕웨이니까 /@@ehdz/25 창틀에 한 발을 겨우 걸치던 햇살이 어느덧 거실 안쪽까지 무자비하게 들이닥친다. 어느새 가을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창틀 앞 올리브는 기다렸다는 듯 키를 높인다. 동그란 수형을 지키려고 가지치기할 곳을 들여다보는데 눈이 부시다. 집 안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계절이 돌아왔다. 가을의 집 안은 한여름 바깥의 뙤약볕 아래처럼 위험하다.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 Sat, 19 Nov 2022 11:10:50 GMT 임유진 /@@ehdz/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