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fx2v 먼 곳까지 걸어다니고, 발목이 아플 때까지 생각하면서 시와 산문을 씁니다. 시집으로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2020),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2018)이 있습니다. ko Fri, 02 May 2025 02:08:24 GMT Kakao Brunch 먼 곳까지 걸어다니고, 발목이 아플 때까지 생각하면서 시와 산문을 씁니다. 시집으로 "내가 먼저 빙하가 되겠습니다"(2020),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2018)이 있습니다. //img1.daumcdn.net/thumb/C100x100/?fname=http%3A%2F%2Ft1.daumcdn.net%2Fbrunch%2Fservice%2Fuser%2Ffx2v%2Fimage%2FntaBofyD9BxjXpNtp7e67brgSZ4.jpg /@@fx2v 100 100 벚꽃 하나의 무게로 - 금요일의 시창작 강의 part.3_ 제1장 지금 내가 쓰고 있는 /@@fx2v/152 제1장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벚꽃 하나의 무게로​ ​ ​ 아침에 일어나니 벚나무에 꽃이 피어 있다. 밤새 아무도 모르게 내린 폭설처럼, 마당 한 가운데 희고 간결한 백색이 쌓여 있는 것이다. 나는 벼락처럼 쏟아진 저 공백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약간의 초조함과 불안이 내 몸을 휘감는다. ‘백색’이란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어렵다. 가장 늦게 눈을 뜬 밤 Thu, 01 May 2025 15:00:17 GMT 박성현 /@@fx2v/152 다시 지도를 펴고 - 금요일의 시창작 강의 part.3_ 시와 아포리아 /@@fx2v/151 들어가며 다시 지도를 펴고 두꺼운 수면양말을 신어야 겨우 잠들 때가 많다. 특히 찬 이슬이 내리는 10월의 한로 무렵부터 발가락에 얼음도 같이 서리는 까닭에, 나는 발가락을 감싸고 보호할 일종의 외투를 덧씌워야 한다. 어디서 찾아오는지 모르지만, 얼음은 상당히 오래 내 곁을 서성거리다가 불현듯 스며든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못할 때는 욕조에 더운물을 Thu, 24 Apr 2025 15:00:03 GMT 박성현 /@@fx2v/151 차례 - 금요일의 시창작 노트 part.3_ 시와 아포리아 /@@fx2v/150 [들어가며] 다시 지도를 펴고 제1장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벚꽃 하나의 무게로 드물게 움직이고 대리석처럼 차가운 시가 온다, 오고 있다 언어가 대상에 닿는 순간 공백 만들기 시간, 기억, 순환 시는 세계의 위계를 해체한다 미학적 불편 새로운 언어-이미지의 빛, 포이에시스(poiesis) 의미와 반(反)-의미 사 Thu, 17 Apr 2025 15:00:08 GMT 박성현 /@@fx2v/150 당신을 걷는다 - 수요일의 시 /@@fx2v/149 당신을 걷는다 박성현 어느 날 새가 날아와 호흡을 지워버렸다 또 다른 날엔 볕이 뜨거워 혀와 말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당신의 손을 잡기도 전에 얼음으로 뒤덮였으니 나는 또 까마득히 물러나야 했다 당신은 내가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이름, 나는 나를 잃어버린 채 당신이라는 도시를 걸어야 했다 나는 당신을 걸었다 눈과 입이 없어 당신의 웃음과 발자국이 Tue, 03 Sep 2024 15:00:05 GMT 박성현 /@@fx2v/149 갈매나무에 뒤엉킨 - 수요일의 시 /@@fx2v/148 갈매나무에 뒤엉킨 박성현 당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 년 만이라 얼굴조차 가물었습니다 녹슨 현관 열어 두고서 옥상으로 난 초록 계단에 앉았습니다 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지워졌습니다 반쯤 지워진 달이 계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갈매나무에 뒤엉킨 바람을 풀고서는 꼭 멀리 가는 아버지 표정으로 나를 뒤척였습니다 혼자 비탈에 올랐습니다 가풀막이 심해 성긴 흙 Tue, 27 Aug 2024 15:00:02 GMT 박성현 /@@fx2v/148 유월의 요구 - 수요일의 시 /@@fx2v/147 유월의 요구 박성현 나는, 흰 파도가 가른 바다처럼 가파르게 갈라졌다 기억과 육체도 쪼개져 쓰레기처럼 떠밀려 다녔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는, 나는, 알고 있었을까 1인용 식탁에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 아내도 아내를 바라보던 나도 나와 아내가 묻었던 수줍은 강아지도 파도가 갈라놓은 흰 바다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 죽음을 중지하라는 유월의 요구가 Tue, 20 Aug 2024 15:00:05 GMT 박성현 /@@fx2v/147 손가락은, 없다 - 수요일의 시 /@@fx2v/146 손가락은, 없다 ​ 박성현 ​ ​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 커피를 마시는데 의자 깊숙이 몸을 구겨넣은 애인이 의자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나는, 그가 사라진 한 점의 바늘구멍에서 분명하게 흘러나오는 회색과 암흑을 보면서 두 눈을 잃어버린다 ​ 두 눈 없이 살다가 벌레를 밟으면 벌레의 불행이지, 라며 누군가 내게 철학적 관점과 태도를 알려 준다 그러 Tue, 13 Aug 2024 15:29:04 GMT 박성현 /@@fx2v/146 웃음, - 수요일의 시 /@@fx2v/145 웃음, 박성현 당신 얼굴에 슬픔이 가득합니다 내가 아프니 웃을 일도 없이 고요합니다 입맛 없다고 대충 때우지 말라 해도 고개만 끄덕일 뿐입니다 가물고 있습니다 말라서 흩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을 마중하는데 달이 수북한 저녁밥처럼 보였습니다 기울어도 다시 차오르는 달이 몹시 부러웠습니다 문득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몸에 심어둔 한송이 꽃이 떠올랐습니다 Wed, 31 Jul 2024 01:47:46 GMT 박성현 /@@fx2v/145 흰눈 - 수요일의 시 /@@fx2v/144 흰 눈 박성현 매일, 흰 눈이 내렸다 가장자리는 높고 안쪽은 따뜻했다 늦도록 기울어진 초승달과 새파란 별이 곁을 지켰다 언덕에 앉으면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앙상한 뼈에 달라붙은 옛날이 초록의 깊은 곳으로 물러났다 나는 울음을 꺼낼 수 없어 매일, 흰 눈을 뭉쳐 당신을 조각했다 바람이 등에 기대 휘파람을 부는 사월이나 피와 녹이 사납게 엉겨 붙는 Tue, 23 Jul 2024 15:14:41 GMT 박성현 /@@fx2v/144 속초 - 수요일의 시 /@@fx2v/143 속초 박성현 자고나면 초승달이 떠 있었네 며칠이고 웅크렸다가 깨어나도 초승달은 공중에 박혀 먼 바다를 꿰매고 있었네 눈 감아도 하염없고 눈을 떠도 마음 둘 곳 없었네 해무로 뒤덮인 물렁물렁한 고립이었네 속초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 몇 달을 기다렸네 하루에도 십 년이 흘러갔네 밥을 짓고 물 말아 먹었네 밥상 너머 당신이 걸려 있었네 심장을 꿰매는 소리가 Tue, 16 Jul 2024 15:24:52 GMT 박성현 /@@fx2v/143 북해 - 수요일의 시 /@@fx2v/142 북해 박성현 소년은 북해를 바라보았다 낡고 더럽고 희미한 해변도로 안쪽 폐허가 된 공장이 줄지었고 잔해를 덮은 검은 재와 메마른 바람만 불었다 죽어버린 소리들 속박된 언어들 피와 칼과 심장이 사라진 소년은 숨이 막혔다 광기가 그 거대한 뿌리를 일으켰다 —목마르지? ​ 수도꼭지를 돌리자 풍뎅이가 쏟아졌다 욕실의 끈적끈적한 거울과 벽과 샤워 부스를 뒤덮 Tue, 09 Jul 2024 15:26:22 GMT 박성현 /@@fx2v/142 사라진 - 수요일의 시 /@@fx2v/141 사라진 박성현 태어난 후 내가 움켜쥔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아무 일 없던 일생이 아무 일 없는 채 저 길 너머로 사라졌다 한밤에 집을 나서고 도시와 마을과 호수를 지나 아직 꽃 피지 않은 상수리나무 언덕에 앉아서 나는, 철로가 놓인 평원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일정한 속도로 분할되는 공간의 미세한 잔상들, 대낮에도 웅크려 있는 투명한 회색을 건져 Tue, 02 Jul 2024 23:06:28 GMT 박성현 /@@fx2v/141 모든 감각을 일으켜 세우고 - 수요일의 시 /@@fx2v/93 모든 감각을 일으켜 세우고 박성현 물결을 벗어버리고 흐름이 되자고, 당신이 말했네 그것은 중력을 밀어내고 구름 위로 단번에 솟는 기분일 거야 그때 나는, 뉴 헤이븐*으로 향하고 있었지 saddle the wind**를 들으며 황혼을 지나가는 까마귀 떼처럼 저녁 무렵 생선 파는 여인들이 장을 마치고 빵과 치즈를 계산하는데 카메라 쪽으로 조용히 걸어 Tue, 25 Jun 2024 15:46:09 GMT 박성현 /@@fx2v/93 슬픔조차 너무 먼 - 수요일의 시 /@@fx2v/94 슬픔조차 너무 먼 박성현 표지석도 없는 무덤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눈이 녹아 가풀막을 흘러내렸습니다 봄볕 몇 송이가 자박자박 고인 물을 뒤척였습니다 젖은 운동화에서 한 계절 묵은 바람이 새어나왔습니다 어디선가 소리를 잃은 울음이 들려왔습니다 발자국에 껍데기만 남은 벌레들이 잔뜩 박혀 있었습니다 기척도 없이 모여들었고 안쪽부터 말라 있었습니다 방향을 돌려 Tue, 18 Jun 2024 20:39:20 GMT 박성현 /@@fx2v/94 빛의, - 수요일의 시 /@@fx2v/140 빛의, 박성현 ​ 그 빛은, 숲을 덮은 검은 이끼에 머물렀다가 기지개를 켜듯 경직된 근육을 풀고 물기를 가득 덧칠한 바위로 이동했으며 풀숲에 웅크려 먹이를 기다리는 양서류 쪽으로 방향을 틀고서는 폴딱거리는 심장 고동을 지켜보고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가 집요하게 바라보는 한 무리의 날벌레로 옮겨갈 작정이었으나 시취(屍臭)에 민감한 날벌레의 습성을 쫓 Tue, 11 Jun 2024 15:21:32 GMT 박성현 /@@fx2v/140 염천(炎天) - 수요일의 시 /@@fx2v/139 염천(炎天) 박성현 #1 잠을 자두는 게 좋겠어, 내가 말했지 입술을 길게 찢었는데 혀 대신 촉수가 튀어나와 꿈틀거렸다네 숲속에 들어갔을 때 검은 성모가 그려진, 반쯤 붙에 타고 비에 얼룩진 성화를 들고 수녀들이 지나가고 있었지 (일렬로 정렬한 비슷한 표정, 비슷한 키와 냄새, 비슷한 보폭) 맨 끝에 뒤처진 수녀에게 물었더니 세체니교*를 건너 Tue, 04 Jun 2024 15:51:01 GMT 박성현 /@@fx2v/139 북해로 향하는 급행열차 - 남은 이야기들 /@@fx2v/138 북해로 향하는 급행열차 내가, 나의 육체로 더 이상 살 수 없을 때가 반드시 온다. 그것은 원근처럼 구체적이고 태양과 달이 낮과 밤을 분할하는 것만큼 분명하다. 나는 매일 메마르면서 심장과 호흡과 울음을 소진시키고 있다. 언젠가 텅 빈 주유구처럼 가솔린이 바닥날 것이다. 그것 또한 너무 사소해서 나는 해변을 걷다가 잠시 꿈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나는 Thu, 30 May 2024 15:16:47 GMT 박성현 /@@fx2v/138 그곳이 어디든 너무 멀리 가지 않기를 - 수요일의 시 /@@fx2v/137 그곳이 어디든 너무 멀리 가지 않기를 ​ 박성현 ​ ​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프지 않은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 그때의 나와 함께 걸을 수 있을까 긴 하루가 끝나는 언덕에 앉아 나는, 배를 설계하고 배를 띄우는 바다와 밤과 안개와 달을 그릴 수 있을까 항해를 시작해서 항해가 끝나는 곳에서 나는, 어디쯤 왔는지 돌아볼 틈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내 심 Tue, 28 May 2024 15:00:24 GMT 박성현 /@@fx2v/137 새가 날았다, 비가 그치고 있다 - 남은 이야기들 /@@fx2v/92 새가 날았다, 비가 그치고 있다 새가 날았다. 그 희고 창백한 날개로 공중을 휘저었다. 새의 입장에서 '난다'는 것은 생활이다. 날지 못하는 나는 그 생활이, 그 진화와 실존이 부럽다. 뼈만 남은 내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고, 그것이 하나의 깃털이 될 때까지 나는 태양의 모서리를 걸어야 한다. 언덕을 오르는 짐승들의 그림자를 파고들며, 또한 그 소름끼 Thu, 23 May 2024 15:17:56 GMT 박성현 /@@fx2v/92 눈꺼풀 아래 쓴맛, - 수요일의 시 /@@fx2v/136 눈꺼풀 아래 쓴맛, 박성현 애도 받지 못한 죽음에는 눈꺼풀이 없다 육체의 가장 무르고 가파른 곳이 무너졌으므로, 눈을 감지 못한 채 바람을 모으고 날벌레와 짐승을 불렀으므로 활동이 멈춘 분화구처럼 오래된 종탑의 소리는 멀리 가지 못했으므로 나는, 당신의 걸음에서 구부러진 발자국을 본다 모양을 상실한 호흡과 빛의 그림자와 짐승의 뱃가죽을 찢어 만든 Tue, 21 May 2024 15:08:49 GMT 박성현 /@@fx2v/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