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아, 우리 화요일 개학이잖아. 우리 그때는 학원 안 가도 된다~ 그날 같이 놀 거야? 너 방학 동안 못 놀았잖아."
차분한 몸짓으로 아파트 티하우스에 들어와 앉은 안경 쓴 소년이 휴대폰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말했다. 왼손으로 휴대폰을 받치고 있는 소년의 오른손에는 펜슬이 들려있었다. 녀석은 크지 않은 말투로 통화를 하면서도 연신 문제지를 끄적거렸다.
우리 아파트 티하우스는 화장실이 딸린 한쪽만 콘크리트로 벽면을 세워두었고, 나머지 세 면은 모두 유리창으로 설계되어 개방감을 주었다. 티하우스 주변으로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을 조성해 놓아서 값비싼 커피집 못지않은 뷰를 갖추고 있다.
티하우스 앞쪽에 놓여있는 2인용 그네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던 작은 여자 아이 둘이, 그네에서 폴짝 뛰어내리고는 티하우스 마당을 빙글빙글 돌며 깔깔거렸다. 아이들은 똑같이 양갈래로 머리를 땋아서 다시 그걸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있었는데, 언뜻 보면 커다란 링귀고리가 꼬마들의 머리에서 달랑거리고 있는 것도 같았다. 멀리서 보기에도 얼굴이 영 다르게 생긴 모습이 자매 같아 보이진 않았다.
여자 아이 둘이 마당을 뱅글거리며 뛰어다니고 있는 사이, 제법 키가 큰 사내아이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티하우스로 들어서며 무심하게 안경 쓴 소년의 앞자리에 가방을 툭 내려놓았다. 녀석들은 제법 매너 있게 적당히 낮은 목소리로 저들만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슬쩍슬쩍 웃음을 섞었다.
노란색 승합차들이 티하우스 맞은편에서 잠깐씩 정차하면서 하나 둘 아이들을 실어갔다. 아이들이 익숙한 동작과 표정으로 승합차를 타고 떠나간 곳에는, 조경으로 심어놓은 억새들이 한쪽으로 머리를 숙여가며 몸을 흔들었다.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진 공간에서, 오륙십 대 아주머니들의 둔탁하고 걸쭉한 웃음소리가 아직은 차가운 2월의 바람 소리와 섞여 들려왔다. 유치원에서 돌아올 누나를 기다리는 한 살배기 어린 남동생은 젊은 엄마의 가슴팍에서 자꾸만 칭얼거렸다. 티하우스 테이블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엊그제 토요일 오전 병원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손수 요리해서 차려준 푸짐한 식탁이 떠올랐다. 그녀는김치를담가서주는 건 예사고, 치아가 부실한 나의 부모님 드실 음식도 직접 만들어 건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뻔뻔스럽게도 그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나보다 더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 외에 해주는 게 없다.
캐나다로 아들들 밥상을 차려주려고 석 달간 한국을 떠나 있는 다른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얼굴도 떠올랐다. 옛날로 치면 작은 고을의 원님에 버금가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체력만 되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을 위해 저녁 만찬을 멋들어지게 준비해 주는 면장(面長)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얼굴도 떠올랐다.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서 담근 김치를 나누어주는 교수 카지노 게임 사이트도 내겐 있다.
유유상종이란 말이 있지만, 나는 그녀들이 갖고 있는 음식솜씨 중에 어느 하나도 내 것으로 하지 못했다. 나 역시 삼십 년 주부로 살아오긴 했어도 신이 내겐 그런 재주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들은 잘 알고 있다. 신은 나에게 딱 가족들 굶겨죽이지않을 만큼의 밥 짓기 능력만 부여하였다.
그래서 나는 염치없지만 주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해준 음식을 얻어다 먹는 편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집을 방문할 때 커다란 장바구니에 빈 반찬통을 여러 개 넣어 들고 가도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내게 몇 명 있다.
그럼 "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물으신다면, 글쎄다, 딱히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 내게 있는 능력은 단지 그거 하나뿐인 것 같다. 나누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나를 여전히 "카지노 게임 사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인지, 나는 그것 하나만은 너무도 확실하게 알고 있다.
학원차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보호자들의 또 다른 대기소 역할로 쓰이고도 있어서, 티하우스는 시끌벅적한 대합실 느낌이 나는 것도 같았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주체가 되어 아파트 관리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티하우스에선 여느 카페처럼 음악도 흐르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로 까치가 차가운 허공을 가르며 빈 나무 위로 내려앉고, 모두가 떠나간 티하우스 안에 천오백 원짜리 캡슐커피의 향이 제법 가득해졌다. 티하우스 옆에 딸린 데크길에선 걸어가는 행인의 걸음소리가 그대로 들려왔다.
정치 경제 사회 철학 예술그런 거 저런 거 아무것도 몰라도,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도리를 알면서함께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고 거짓 없이 내 마음 네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만 있어도 다시 행복한 나이가 된 것 같다. 천진하게 웃고 떠들며 "같이 놀래?"라고 물을 수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나만 있어도 행복한 나이가 다시 시작된 느낌이다. 늙으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게 맞나 보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동네 산책을 하다가, 티하우스에 앉아 캡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카지노 게임 사이트들을그리워해본다. 얘들아, 오래오래 건강하게 만나서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