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center Apr 11. 2025

오랜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카지노 쿠폰 왔다.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워서

오늘, 오랜만에 오랜 친구로부터 카지노 쿠폰 왔다.


그녀와의 인연을 설명하자면 고릿 절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지만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 3년간 같은 서클활동 - 무려 컴퓨터부 - 을 하며 가까워졌다. 그러다 뺑뺑이(랜덤)로 같은 고등학교에 배정되어 고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비록 대학은 다른 곳으로 갔지만 우리는 같은 아파트 주민이었고, 그 덕에 20대에도 붙어 다닐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거의 20대 중반까지 단 일주일이라도 그녀와 내가 만나지 않은 적이 있을까. 나의 10대와 20대, 그 혼란했던 시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는 그녀와 나누었다.


삶의 궤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하던 즈음부터다. 대학원으로 진학한 나와 달리 카지노 쿠폰는 졸업과 동시에 장사로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의 뜻에 따라 도시에서 떨어진 바닷가 마을에 카페를 열었다. 카지노 쿠폰의 부모님은 자수성가하신 것 답게 어느 것 하나 수월하게 자식에게 내주시는 법이 없었다. 헐벗음과 임기응변, 절박함과 성실함으로 가게를 이끌도록 자식을 거의 맨바닥에 벌거벗겨 내놓다시피 하셨고 그렇게 카지노 쿠폰는 바닷가 마을의 온갖 텃세를 견디며 물 한잔 팔아본 적 없지만 부모님께 장사의 싹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매일 그 카페를 지켰다. 아니 분명 자기 사업을 하는 건데 너는 왜 쉴 수도 없냐를 몇 년간 의문스러워하던 시기가 지나자 마침내, 카지노 쿠폰의 장사는 궤도에 올랐다. 횟집 밖에 없던 횡뎅그렁한 바닷가 마을이었거늘 주변에 갑자기 리조트가 들어서고, 덩달아 전국적으로 대형 카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카지노 쿠폰의 카페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5년 여를 남동생과 둘이 지켜오던 카페에 직원도 들이고, 옆 건물까지 사들이며 가게를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카지노 쿠폰가 그렇게 온갖 세상의 풍파와 맞서며 10여 년, 어엿한 대형카페 두 채의 대표님이 되어가는 동안 나는 학교에 처박혀 있었다. 학위를 하고, 공공기관에서 VIP라 불리는 대통령이 콧바람을 한번 휘날리면 문서를 열두 번도 넘게 바꾸느라 영혼을 상실했다. 그 와중에 결혼도 하고 계획하지도 않은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보니 카지노 쿠폰는 골드미스 대표님, 나는 워킹맘 연구원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나 다른 궤적에도 그녀와 나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몰랐다.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었지만 우린 명절이면 반드시 만나고, 틈틈이 전화 통화를 하면 한 시간도 넘게 전화통을 붙들고 있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함께할 때 모습은 여전히 그 시절에 가까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녀와 함께 할 때 나는 유부녀, 애엄마, 연구원도 아닌 20살의 나였고 그녀 또한 아이디어가 번쩍번쩍 취향이 뛰어나던 20대 그녀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여전히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예민한 취향을 공유하고, 듣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유별난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에 집착했다. 그녀도 일하는 틈틈이 등단을 준비했고, 나 또한 글을 쓰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방구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공유하는 정서는 닳을 줄을 몰랐다.


그렇지만 그것도 결국 점점 더 크게 벌어지는 삶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간극을 메우기에는 부족했다.20대의 나의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고리 같았던 그녀와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 것은 곧 나이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 또한떠올리게 했다. 각자의 무리에서 소위 '꼰대'가 되어가는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정서는 확실히 전처럼 깊거나 다양할 수 없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의 관계가 과거에 너무 깊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미주알고주알, 가장 깊은 곳의 생각 까지도 공유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일상과 생각의 간극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대륙을 건너 있을 때도 멀어진 적 없던 그녀와 마지막 통화를 한 지가 6개월은 지난 것 같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은 결코 어떤 사건 때문도, 서운함 같은 감정의 변화도 아니었다. 완전히 끊어질리는 없다 믿었지만 당장은 이어질 수도 없는 인연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은 시간이 그렇게 하루하루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오늘 전화가 온 것이다. 그녀의 이름이 뜬 휴대전화를 보고는 무슨 큰일이 난 건 아닌가 겁부터 날 만큼 고작 그 짧은 기간 만에 어느새 나는 그녀를 낯설어하고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있는 차 안이었지만 황급히 전화를 받아 목소리를 살핀다. 어제 통화한 듯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건다. 놀란 가슴을 진정한 나는 이따 다시 걸겠노라며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한참 뒤, 일이 끝난 나는 다시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의 통화는 30분이 넘게 이어졌다. 연락 안 한 세월 따위가 존재한 적 없다는 듯, 자연스럽고도 자연스러운 통화. 고작 6개월이 바꿀 수 있는 건 20년의 우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안도가 내 안에서 비집고 나왔다. 그러나 한편, 짧은 통화가 그 긴 세월 차츰 멀어져 온 우리의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슬픔 또한 같이 고개를 들었다.


관계에 있어 세월이 흘러가는 것처럼,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어가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 그것이 더욱 깊은 관계였을수록. 하지만 잃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의 짧은 통화는 그렇게 작은 희망을 다시 싹틔웠다. 잃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잃지 않을 것이라고. 조만간 다시,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걸 것이라 다짐해 본다.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멀면 먼 대로, 그저 함께 흘러만 갈 수 있도록. 그 정도를 배워 보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