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싸던그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 빠꾸는 없다 5화
“급식이 뭐야? 우리는 도시락 3개 싸고 다녔는데!”
오늘 초등학교 점심 모니터링을 다녀왔습니다.
정성껏 지어진 ‘밥 조각콩’,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쇠고기 미역국은 깊은 맛이 있어 배워가고 싶은 맛이었고,
뼈 없는 조기살은 아이들에게 참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숙주잡채는 잡채와 숙주가 조화롭게 어우러졌고,
깍두기는 맛있어서 더 먹고 싶었을 정도였습니다.
후식으로 나온 참외는 달고 시원해 완벽한 마무리였지요.
정성 가득한 식사를 준비해주신 영양사 선생님과
애써주신 여사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점심을 먹고 나오며 엄마들과 나눈 이야기—
“라떼는 말이야, 급식이 뭐야. 우리는 도시락 3개 싸고 다녔는데!”
맞아요. 저는 수능 세대가 아닌,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입니다.
고등학생 큰딸 교복을 처음 입어보며,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죠.
그때 우리 엄마들은 아침마다 도시락을 어떻게 그렇게 정성껏 싸주셨을까요?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많게는 남학생들은 세 개씩이나 들고 다녔으니까요.
정말이지, 우리네 부모님들은 ‘특수교육’을 받으신 게 분명합니다.
그 특수교육의 이름은 ‘가난’이었을까요.
새마을운동, 별보기 운동, 아나바다 운동, 금모으기 운동...
이런 운동들은 몸의 근육보다는 얼굴의 주름을 더 많이 만들었을 겁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무릎 연골이 닳아 인공무릎 수술을 많이 받으시죠.
그 무릎엔 도시락을 싸느라 새벽부터 움직이신 세월이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락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각자의 엄마의 노고와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햄 하나, 계란말이 하나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이지요.
직장을 다니시며 새벽에 일어나
오빠 도시락 3개, 제 도시락 2개를 싸주시고
아침밥상까지 차리신 엄마.
정작 본인은 밥 한 숟가락 뜨고 서둘러 출근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상 치우고 학교 가”라는 말이 짜증 났던 철없던 딸이 바로 저였습니다.
도시락 반찬이 마음에 안 든다고 투정 부리거나,
아예 안 가져가고 친구들 반찬 하나씩 빼먹으며 즐거워했던 그 시절.
그 땐 몰랐죠. 도시락을 안 가져간 날,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을지.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과거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했습니다.
도시락 반찬 투정보다, 그 도시락을 준비하던 엄마의 마음이 더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아마, 제가 이제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겠죠.
모니터링을 마치고 학교를 나오며,
함께 급식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들과 나눴던 도시락 세대의 추억.
그 순간, 우리는 다시 고등학생 여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를 마주했던, 짧지만 따뜻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