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과 울음으로 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관심과 사랑
“둘째는 사랑이야. 둘째는 뭘해도 예쁘기만 해“
내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그 말을 한치의 의심없이 부적처럼 믿고 나는 임신기간 내내 행복했고 그토록 염원하던 딸이라 출산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하지만 예외란 존재하는 법.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통하는 공식은 수학공식 뿐이다. “우리”의 둘째는, 둘째에 대한 정형화 된 위의 공식을 아주 가뿐히 벗어났다.
낯가림이 심한 탓에 아빠에게 떼놓을라치면 온몸이 빨개지도록 울어버려 나홀로 외출은 언감생심이었고, 이유식을 먹는 시기엔 주는 족족 뱉어버려 몇 달째 몸무게 정체기라 찾아간 소아과에서 원장님이 영양실조가 의심된다고 말해 엄마의 애간장을 녹였었다.(그 당시 밥알 한톨이라도 먹이겠다고 손으로 밥을 먹여주느라 손에 건선이 심하게 왔었다) 그뿐이랴. 3살 무렵엔 매일 아침마다 달라지는 그녀의 컨디션. 옷 안입는다 밥 안먹는다 머리가 마음에 안든다를 달래지지 않는 울음과 짜증으로 일관했고, 이렇듯 끝도 없는 생떼를 부리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덕에 아침마다 나와 남편은 진땀을 빼며 매일 무거운 출근길에 올랐었다.
그때에 비해 훌쩍 커 갓 5살된 지금은 조금이라도 자신을 불편하게 하거나 오빠가 자기 소유의 물건이나 간식을 건드리면 앙칼지게 고성을 지르고 귀청이 찢어지게 우는 바람에 여전히 나머지 세 사람은 늘 둘째의 비위를 맞추느라 안간힘을 쓰곤 한다. 오죽하면 첫째가 엄마아빠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로 꼽는 것이
“00이 울면 시끄러우니가 네가 양보해줘”였을까.
그리하여 우리에겐 둘째가 예쁘다는 공식은 일치감치 개나줘버려의 심정이었으나, 걔 중 딱 하나는 둘째에게 들어맞는 공식이 있었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 신경이 덜 쓰여. 좀 아파도 다쳐도 첫째보단 무덤덤하고 가슴이 덜 아려”
무릎은 탁 칠 만큼 맞는 말이었다. 첫째가 둘째 나이땐 조금만 열이 올라도 손발을 떨며 아이를 근처 소아과에 헐레벌떡 달려가고 입원도 자주 시켰더랬다. 돌 전엔 문화센터 키즈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려 아기띠를 메고 부지런히 다닌 건 또 어떻고. 또 첫째가 어린이집을 처음 갈땐 세상이 무너진 듯 어린이집 앞에서 눈물바람을 했었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열이 오르면 첫째때 경험을 상기하며 해열제를 먹이며 지켜보고 문화센터는 귀찮아서 건너띄었으며 어린이집을 보낸 첫날엔 전 날부터 다른 의미로 잠을 설쳤다.(드디어 둘째의 끝없는 생떼에서 놓여나는 구나 라는 해방감으로 말이다)
그렇게 아이는 나의 덜?관심 속에 나름대로 무럭무럭 자랐고 원하는 것이 생기면 앙칼진 고성을 곁들인 울음이라는 자신만의 필살기로 끝끝내 얻어내고야 마는 5살 아이로 굳건히 성장했다. 물론 간간이 해사한 눈웃음으로 그 난동을 무마할 만큼 우리를 무장해제 시키기도 하지만. 갓 5살이 된 둘째 아이는 순둥한 첫째와는 달리 조금만 아파도, 조금만 불편하고 속이 상해도 그 필살기를 장소불문 시시때때로 끄집어냈다. 어쩔 땐 마른 수건에서 물을 쥐어짜내듯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 방울을 억지로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첫째때 통하던 육아공식이 전혀 들어맞지 않는 고난이도의 문제에 봉착한 우리는 요즘 둘째 아이를 사이에 두고 자주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늘 골칫거리인 둘째, 나를 늘 시험에 들게 만들어 생각만해도 한숨이 쉬어지는 둘째. 그러던 어느 아침, 여느때처럼 등원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매서운 칼바람이 들이쳐 마스크를 씌우려는 내 손을 온힘을 다해 밀어내 마스크 끈이 끊여졌다. 순간 얼굴이 붉어진 내가화를 내자 급기야는 어린이집을 안간다며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침 기상 순간부터 화르륵 불꽃이 이는 것을 겨우 얼러 하나씩 눌러끄던 나. 아이의 앙칼진 떼부림에 그만, 마지막 불꽃은 결단코 눌러내지 못하고 등을 세게 팍 밀고야 말았다. 나의 힘을 버티지 못한 딸은 바닥으로 풀썩 넘어진다. 미안한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지만 그러니까 엄마 말 잘들었어야지 라는 못난 말로 딸을 채근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9시. 오늘 어린이집에서 체험을 간다며 9시 10분까지는 꼭 오라고 신신당부하시던 어린이집 원장님 생각이 났다. 급히 아이를 태우고 속력을 내다 신호과속 카메라를 뒤늦게 인지하고 빨간불에 급정거를 했다. 그 순간 투둑 뒷좌석에서 둔탁한 소리가 나고 뒤이어 둘째의 앙칼진 그 울음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아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와 실랑이를 하며 정신없이 태우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사실이 번개처럼 내 의식을 깨웠다. 급정거의 충격으로 차바닥에 모로 누운 딸. 갓길에 정차해 재빨리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일으켜 세우고 우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안아 다독였다. 다행히 금방 멎은 울음. 속도도 크게 내며 가던 것이 아니라 큰 충격이 아니었을거란 생각에 조금 안도했고 구석구석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몸상태를 확인 후 큰 외상은 없어보여 어린이집으로 들여보냈다. 어린이집 가기 전엔 온갖생떼에 나를 지치게 해도 어린이집에 당도해서는 늘 밝은 표정으로 내게 인사하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날따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표정은 어두워보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웃으며 다녀오겠다고 하는 날엔 출근을 해서도 내 본분에 집중하느라 잠시 잊고 지내는데, 저렇게 힘없는 표정을 지어보이거나 안간다고 떼기장을 부리는 날엔 일을 하면서도 내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모습을 허공위에 시시각각 그리게 된다.
그 날도 그랬다. 집에 돌아와 한바탕 폐허가 된 거실과 안방을 치우면서도 둘째 아이 생각을 내내 했다. 아침에 피웠던 난동에 현명하게 대처못한 못난 엄마. 게다가 안전벨트를 안한 치명적인 실수. 급정거로 어린 애를 다칠 뻔 하게 만들다니. 걸레질을 하면서도 나는 내 머리를 툭툭 쥐어박았다. 그러다 갑자기 걸려온 원장님의 전화에 나는 눈 앞이 새하얘졌다.
“00이 무슨 일 있었나요? 등원해서 보니 정수리에 핏자국이 있고 상처가 있어서요 소독하고 후시딘을 발라줬어요 다행히 살짝 까진것 같아요. 간식 잘먹고 놀고 있어요“
피라는 말이 귀전을 세게 때려오고 심장이 발밑으로 떨어졌다. 재빨리 주차장으로 내려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다친 뒷좌석으로 향한다. 차 운전자 시트 뒤에 묻은 선명한 핏자욱. 그리고 차바닥시트 작은 구멍 하나에 고인 빨간색 액체. 맙소사 딸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피였다. 자세히 보니 차 바닥에 운전자 좌석의 위치를 조절하는 철 부분에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내 속에 모아둔 큰 샘이 한 번에 터져 좁은 자동차 내부를 울려댔다. 내 부주의에 아이가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었을거란 생각에 돌연 눈 앞이 캄캄해져왔다. 겨우 울음을 삼키고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온갖 실체없는 공포가 내 온몸을 휘감는다. 둘째에게 못한 일들만 떠오른다. 아침에 등을 밀어 넘어지게 한 것. 어른답게 달래지 못하고 같이 화를 낸 것 등등. 다시 눈물이 눈앞을 가린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고, 놀란 눈으로 나를 맞이하신 원장님께 아침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으며 엄마의 잘못이라고 목놓아 울어버렸다. 눈물 범벅이 된 엄마를 딸은 특유의 해사한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나는 그런 딸을 꼭 끌어안으며 엄마가 미안해만 연신 거듭했다.
헐레벌떡 뛰어간 병원에서는 다행히 살짝 까임정도만 있고 소독만 잘 해주라고 하셨다. 그제서야 발밑으로 떨어진 심장이 제자리를 찾았다. 약국을 나오며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다른 한손으로는 좋아하는 티니핑젤리를 든 딸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웃음은 겨울 추위도 녹일 듯 눈부셨다.
미안한 마음에 집에 와서 두시간을 붙어 놀았다. 티니핑 인형놀이부터 시작해서 창문에 입김불어 그림그리끼까지. 온전히 둘째 아이에게 내 에너지를 쏟아주었다. 한 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매일 짜증 떼부림 울음이 없이 지나간 적이 하루도 없었는데 이 순간엔 정말 다른 아이같았다. 앙칼진 고성대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하는 아이. 내 시선을 맞추며 웃음을 짓는 아이. 갑자기 뇌리를 빠르게 스치고 가는 생각.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그간 내게 하고 싶은 다음의 말을 고성과 울음을 통해 강렬히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나도 아파, 나도 속상해, 나도 좀 관심 가지고 놀아주세요”
이제와 곰곰 생각해보니 이제 갓 5살난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겐, 늘 자동반사적으로 첫째에게 맞춰진 부모의 관심을 돌리려면 그 방법 밖엔 없었으리라.
돌아보니 우리 집 시계는 늘 첫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반찬도,그림책도,외출장소도 첫째 맞춤이었다. 그러다보니 둘째의 취향은 늘 무시되기 마련이었고. 우리는 그런 점을 간과해왔다. 첫째 공부봐주느라 둘째는 방치되는 경우도 많았고 엄마와 단둘이 외출도 늘 첫째 차지였다. 그리고 오늘처럼 온전히 아이와 놀아준 시간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이와 오롯이 두시간을 놀아주다보니 이토록 순한 아이가 없었다. 그랬다. 아이는 엄마와 오롯이 보내며 엄마의 관심을 받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제서야 인지한 나는 그것도 모르고 둘째를 그저 힘든아이라는 프레임에 가둔 지난 날을 책망했다.
망연한 표정으로 창을 응시하던 내 팔을 흔들어 대며 책을 읽어달라고 재잘거렸다. 얼마전 첫째와 둘이 서점을 갔다가 책 표지가 예뻐서 사온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오늘,너에게가 문득 떠올랐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무릎앞에 앉히고 나직이 읽어주었다.
그림책의 내용은 아이가 태어나서 밥을 먹고 응가를 싸고 놀고 하는 것 하나하나가 다 감사하고 대견하다고 응원하는 포근한 내용. 지금의 내가 둘째에게 하고 싶은 말과 어찌 그리 꼭 같은지. 아이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며 이 따스한 문구들이 아이의 마음에도 스미게 더 꾹꾹 힘주어 읽어주었다.
그리고 어느 장에서 만난 마음을 울린 인생 문장
네가 운다. 천둥처럼.
몰라준다고, 아프다고,안아 달라고....
언제나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너는 참 용기 있어.
딸아, 너는 그렇게 용기내어 엄마한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던 거구나. 그간 몰라주어 미안해. 오빠만큼이나 네 마음도 알아주려고 노력하는 엄마가 될게.
우리집 둘째에게 들어맞지 않는 공식인
“둘째는 사랑이야, 뭘해도 예쁘기만 해“
을 둘째에게 맞게 조금 수정을 해야 겠다.
“둘째도 첫째만큼 관심을 주어야 사랑이야, 그 마음을 들어주려 노력하면 뭘해도 예쁘게 행동할거야“
그리고 덧,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안전벨트 해주는 일은 결코 간과하지 말기. 명심 또 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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