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전부였다. 애쓰신 것은 잘 알고 그렇기 때문에 죄송하기도 하지만 소송은 취하해달라는 말이었다.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내가 만약 착수금으로 몇 백만 원을 받았다면 이렇게 쉽게 소송을 취하하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것보다 '나는 옳다고 느껴서 보수도 받지 않고 뛰어든 일인데 왜 당사자가 꼬리를 말고 도망을 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던 걸까? 사실 그것보다 더 충격이었던 것은 '이 사람은 2년 넘는 나의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주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돈을 주고받지 않은 사이의 가벼움, 알량한 정의감의 최후, 비대면적 관계 종료의 즉시성 같은 것들이 내 머리를 휘저었다. 그렇게 만 2년이 넘어간 나의 열정 정의(애초에 당사자 누구도 페이를 바라지 않았으니)는 취하서 한 장에 힘없이 사그라졌다. '하시는 일 다 잘 되시라'는 축원의 말도 곱게 귀에 박힐 리가 없었다.
어쩌면 문제는 나에게 있는지도 몰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사람들에게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가?
갑질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깊이가 있지도 않은 설익은 철학을 내세우면서, 빛나는 도덕적 갑옷을 휘두른 것을 뽐내고 싶은 어린아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존 롤스나 마이클 샌델 같은 자들의 책을 수십 번 반복하여 읽는 주제에 정의를 논하고 정의롭기 때문에 공익 소송을 한다니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가 말이다. 그러면서 의뢰인에게는 '기다리라,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라며 장인의 흉내까지 내고 있으니 한 가지만 하였어도 족할 것을 몇 가지나 하고 있나. 이게 갑질이 아니고 무엇일까?
내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자임을 들키기 두려운 마음일 수도 있다. 내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알만한 사람이 왜 그렇게 사는가?'라는 비난이 날아오면 언제든 그걸 막을 수 있는 방패 한둘쯤 마련하고 싶었던 것일까? 비난을 정면으로 받아내지도 못하고 논점을 흐려가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구역질 나는 가면 뒤의 모습이 나에게 있었던가?
우리는 같이 죽기로 무료 카지노 게임.
존재의 이유까지 성찰의 손이 닿으니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같이 죽기로 무료 카지노 게임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단세포는 영원히 사는 무료 카지노 게임이다. 개체 자체는 죽어서 없어질지언정 그는 분열로 그와 완벽하게 같은 무료 카지노 게임를 만들어낸다. 혼자서, 완벽하게 같은 형태로, 늙지 않고 영원히 산다.
반면 우리는 이런 단세포가 20억 년의 노력과 무료 카지노 게임 끝에 탄생한 존재다. 늙고,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심장 세포가 죽으면 신경 세포도 같이 따라서 죽는 필멸의 무료 카지노 게임까지 맺었다. 신장 하나가 망가지면 뇌까지 죽는, 간이 작동을 멈출 뿐인데 근육까지 같이 못 쓰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무료 카지노 게임을 체결했다. 단세포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멍청한 일일까? 옆의 세균이 죽는다고 따라 죽는 세균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대신 무료 카지노 게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세포 수준의 입장에서 단순히 유전 정보를 복제할 이유라면 같이 죽는 머저리 같은 무료 카지노 게임을 체결할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단세포들이 그런 무료 카지노 게임을 체결했다고 말한다면 지나치게 인간주의적인 망상이지만, 단세포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동거를 한 덕분에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타인을 사랑하고 또 미워하지도 못하면서, 자신만의 완벽함과 무결점성에 빠져 종말까지 사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불완전하지만 사랑하고 때론 미워하기도 하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때론 흠집 나기도 하면서 죽음이 올 때까지만 최선을 다하는 존재가 더 낫지 않나? 인간도 마찬가지다. 나는 세상에서 더 흠집 나고 상처받아도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 되고 싶다. 우리가 같이 사는 이유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리고 공익 소송을 하는 이유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