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또 카지노 게임을 남겼다
주부 12년 차, 여전히 냉장고를 열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카지노 게임은 왜 항상 내 몫일까?"
각자 뱃속 사정이 다르다 보니 밥 두 숟가락, 반 찬 몇 점. 국 한 그릇 등 이런 남은 카지노 게임들이 매번 고민거리였다. 버리기엔 아깝고,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이럴 때는 주로 나와 남편이 숟가락 젓가락을 들어 마무리를 했다.
'건강한 삶을 위해 한 숟가락 덜어내라.'
'배가 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내려놔라.'
미즈노 남보쿠의 <결코, 배불리 먹지 말 것 에서 만난 이 문장은 우리 집 식문화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남은 음식을 먹는 일이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금씩 남은 음식들은 결국 냉장고 속에 들어갔고, 냉장고는 늘 자잘한 잔반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혼자 먹는 식사 시간은 늘 고민스러웠다. 가족들의 끼니는 금방 만든 걸로 따끈따끈할 때 대접했는데 굳이 나를 위해 싱크대에 서서 요리는 한다는 것이 사치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장고 속 차갑게 식은 반찬을 꺼내 대충 끼니를 때우곤 했다. 정말 배가 고플 때는 그럭저럭 먹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먹어냈다는 의무감. 주부로서 내 일을 해냈다는 느낌. 딱 그 정도였다. 냉장고 속 잔반처리는 나의 업무 중 하나였던 거다.
이런 생활이 10년 넘게 지속되면서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언제까지 잔반처리반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이게 주부의 삶인가?'
어떤 날은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빵을 먹거나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던 날들도 있었다. 이런 나쁜 습관은 다음 끼니에 폭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마음을 돌아보다가 새롭게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이건 누가 먹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도 아니지. 주부라고 해서 내가 꼭 잔반을 처리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남은 음식은 나를 짓누르는 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굴레였을 뿐.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냉장고 속 음식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한 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손질과 요리 과정이 이미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의 음식이라니, 이렇게 유용한 재료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날 냉장고에는 전 날 먹고 카지노 게임 홍합탕이 있었다.
'오늘은 날도 으슬으슬 추운데, 이걸 활용해서 어떤 요리를 만들어볼까?'
생각을 바꾸자 즐거운 고민이 시작됐다.
국물이 있으니 매운맛이 더해지면 좋겠고, 적절하게 씹는 맛도 필요했다.
냉동실에 있던 새우 몇 마리가 생각났다. 토마토홀과 청경채 한 줌도.
마침 몇 숟가락 카지노 게임 렌틸콩밥까지. 아주 훌륭했다. 이 조합이라면 5분도 안되어 근사한 한 끼가 완성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홍합은 건져내고 국물에 약간의 생수를 넣어 끓였다. 끓어오를 때 냉동 새우를 넣고, 새우가 반쯤 익었을 때 익었을 때 홀토마토를 더했다. 딱딱하게 굳은 렌틸밥을 넣어 데우듯이 볶고 이때 페페론치노를 부숴 넣자,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향이 주방에 퍼졌다. 건져놓았던 홍합과 청경채를 올려 살짝 데우니 근사한 요리가 뚝딱 완성됐다. 뭉근히 졸인 해산물 토마토 리조또는 감칠맛이 가득했다.
완성된 요리를 좋아하는 그릇에 담아냈다. 사진도 찍고 잠시 감상을 했다. 붉은 바탕에 초록 청경채, 먹음직스러운 해산물이 침샘을 자극했다. 냉장고 잔반 정리반에서 냉장고 크리에이터로 거듭난 기분이 들었다.
찔끔찔끔 남은 카지노 게임들은 더 이상 처리해야 할 의무사항이 아니다. 나를 위해 남겨진 선물이다.
혼자 먹는 한 끼를 잘 차려 먹는 시간은 나를 위한 창작의 순간이 되었고, 무엇보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