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김훈 『자전거 여행 1』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러운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지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매화는 질 때, 꽂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꽂이 다 이와 같다.
선암산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끊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꽂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무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카지노 게임 추천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카지노 게임 추천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간 것이다."
이토록 봄을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글 카지노 게임 추천을 마음 한 켠에 담아둔 채 꽃이 피기를 이렇듯 고대한 적이 있었던가? 2월 토론 도서인 최재천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통해 김훈의 글을 만났다. 그의 글은 세상에 나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겠지만 내게 도착한 건 2월 말이었다. 어떤 글은 무심코 지나치던 풍경을 새롭게 감각하게 한다. 꽃들의 피고 짐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는 이렇게 묻는 듯하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 봄아, 빨리 와라. 그의 눈으로 봄을 느끼고 싶었다. 봄이 어서 왔으면 했다.
이러한 소망이 언제 있었나 싶게 일상은 부산하게 흘러간다. 딱히 바쁜 일도 없는데 마음은 언제나 조급함으로 가득하고 이렇다고 할 만한 걸 한 것 같지 않은데 하루하루는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아파트 앞 1층 출입구 비번을 누르고 있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조금씩 피어나고 있는 산수유가 보였다. (모습이 비슷한 생강나무일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자연은 자연의 일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카지노 게임 추천 왔네!’ 반가웠지만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글을 꺼내 산수유를 바라보기엔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바로 집으로 들어와 버렸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잠시 멈춰 산수유 하나를 바라볼 틈이 나질 않았다. 일상에 파묻혀 마음 줄 시간이 없었다.
그 사이 동백, 매화, 산수유, 목련이 동시다발적으로 피기 시작했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누가 먼저 피었을지 모를 꽃들이 봄을 알리고 있었다. 그렇게도 고대하던 봄이 왔건만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필사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하는 기질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 필사와 생각을 번갈아 하느라 진이 빠져 있기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때문에 필사 속도가 붙질 않아 2주째 끙끙거리고 있었다. 문득 이렇게 심하게 책에 빠져 있다간 봄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어영부영하다 봄이 다 가고 말겠는데? 위기감이 몰려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밀린 숙제 하듯 1층으로 내려갔다.
우선 ‘휴!’하고 숨을 한번 크게 내쉬었다. 그리곤 핸드폰 메모장을 연 후, 산수유를 쳐다보았다. 한 번은 김훈이 묘사한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번져 있다.’라는 부분을 눈으로 읽고, 한 번은 ‘정말 그런가?’ 산수유를 빤히 쳐다보았다. 글 한 번, 산수유 한 번, 이러기를 반복했다.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끊는다’라는 건 도대체 뭐지? 의문을 갖기도 했다. 그의 눈으로 봄꽃을 바라보고 싶다는 바람을 드디어 이룬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마냥 흘러가는 일상의 틈 속에서 이런 시간을 냈다는 게 나름 만족스러웠다. 일상에 무언가를 하나 들인다는 건 결심이라는 걸 하지 않으면 원래의 패턴대로 반복되기 십상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매일을 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감각 하나가 몸 어딘가에 각인되겠지? 그러나 한 편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마저 글을 통해 보려는 내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의 눈으로 봄을 바라보자니 봄꽃 하나하나가 개별자로서 감각된다. 내가 생각하는 이 글의 압권은 ‘풍장’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벚꽃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흩날리는 벚꽃을 제일 좋아해 “와! 예쁘다.” 연신 감탄하던 내게 그는 “벚꽃의 죽음은 풍장이다.”라고 말한다. 벚꽃의 입장에서라면 그럴 수 있겠다. 그럼 나는 죽어가는 벚꽃의 풍장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했던 건가?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다.
카지노 게임 추천도 마찬가지였다. 카지노 게임 추천꽃이 지저분하게 지는 걸 보며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아이고, 카지노 게임 추천은 질 때 너무 안 예쁘지 않아? 정말 추하다. 우린 저렇게 나이들지말자.”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들이 나무를 둘러싼 바닥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걸 볼 때면 마치 못 볼 걸 본 것처럼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런데 그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라고 말한다. 목련이야말로 우리 삶과 가장 많이 닮아 있는 듯한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목련을 탓하기만 했었다. 지는 모습까지 아름다워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다. 내게도 똑같이 적용되고 강요될 말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다. 최재천은 목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오랜 병상에 있는 노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겹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사랑과 결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장기간 병상에 누워 계신 분을 보면 ‘저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 대신 목련이 생각날 것 같다.
동백꽃처럼, 매화처럼, 산수유처럼, 목련처럼 살다 죽는 걸 상상해 본다. 어떤 꽃의 삶과 죽음이 마음에 와닿는지 누군가 물어온다면 목련이라고 답할 것 같다.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아는 반백의 나이라목련의 삶과 죽음이 와닿는 것이리라. 하루가 다르게 노화가 진행되고 여기저기 아파 성치 않은 몸, 고장 난 몸으로 매일의 일상을 열심히 살고 있는 친정엄마가 문득 목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지금 엄마의 생로병사를 치러내고 있는 중이겠지? 1층에 내려오길, 김훈의 눈으로 봄을 보길 잘했다. 오십 둘의 봄과 오십 셋의 봄은 확연히 달라졌다. 어떤 글은 사물을 넘어 세상을 달리 보이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