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 Apr 03. 2025

23‘우리가 안다는 것’을 아는 것: 반 무료 카지노 게임 10년

(필사의 말들) 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끼고 아는 존재』

“알게 되고 의식이 있으려면 우리는 사물과 과정을 우리 유기체와 '연결' '또는 '연관' 지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라는 유기체를 사물과 과정을 살펴보는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p.175)

가끔 학술 논문 같은 책을 만나는데 이번 달 전국구 줌토론 모임의 책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책 『느끼고 아는 존재』가 그랬다. 존재(being)에서 느낌(feeling)으로, 느낌에서 앎(knowing)으로 가는 한 신경과학자의 학문적 여정이라는데 신경과학에 관해 기본적인 지식이 1도 없는 내겐 용어조차 낯설었다. ‘좀 더 쉬운 신경과학책부터 읽었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책 읽는 방법론에 대한 회의마저 들었다. 분명 눈은 글을 따라가고 있는데 어떤 문장도 머릿속에서 제자리를 찾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리되지 않은 용어들이 아니 정리하려고 마음먹지 않은 용어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공부하듯 필사하며 치열하게 읽었다.”라는 한 선생님말에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잠깐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이건 대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연구자들을 위한 책이야.'라며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뒤였다.

좋아하는 분야인 사회과학이나 문학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포기했을까? 이렇듯 쉽게 ‘이건 내가 읽을 책이 아니’라며 빠르게 선긋기를 했을까? 좋아하는 분야였다면 힘들어도 낑낑대며 끈질기게 붙들고 뭔가를 알아내려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한데 말이다. 좋아하지 않는 분야인 데다 난해하기까지 하니 본능적으로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인상적인 문장을 나누는 시간이 있어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찾아야 했다. 어렵게 찾은 하나의 문장. “알게 되고 의식이 있으려면 우리는 사물과 과정을 우리 유기체와 '연결' '또는 '연관' 지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라는 유기체를 사물과 과정을 살펴보는 존재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p.175) 저자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안다는 건 결국 끊임없이 우리라는 유기체를 사물과 과정을 지켜보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로 나는 이해했다. 결론적으로 이 문장 하나만이 내 머릿속에 온전히 남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지 한 문장인데도 그 문장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마음에 들러붙어 스며들더니 정확히 이틀 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토요일 밤 토론 후 이틀 뒤인 화요일, 대전 시립 미술관에서 열린 <불멸의 화가 반 무료 카지노 게임 전시회를 볼 때 이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라는 유기체가 무료 카지노 게임의 그림과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가는지 살펴보는 존재로 감각되었다. 그의 그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는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씨 뿌리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그림의 정면과 측면에서 보기도 하고, 그림에 얼굴을 최대한 들이밀고 보다가 점점 더 멀리 거리를 넗혀 가며 보기도 했다. 그를 알고 그의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한 유기체가 전시장 안에서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알게 되고 의식이 있으려면 우리는 사물과 과정을 우리 유기체와 '연결' '또는 '연관' 지어야 한다.”라는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말 또한 마음 한편에서 작동되고 있었나 보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나를 대작가인 무료 카지노 게임와 ‘연결’ 또는 ‘연관’ 지으며 그림을보기 시작했다. 무료 카지노 게임에 대해 뭘 알고 있었던 걸까? 솔직히 ‘정신이 이상해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라는 피상적인 사실만 알고 있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사람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는 게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27세의 늦은 나이에 화가에 되어 10년 동안 그림그리고 37세에 생을 마감했다는 것, 그 짧은 10년 동안 9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 심지어 생레미 시기에는 이틀에 3점의 그림을 그리는 하드워커였다는 것 등은 이번에 알았다. 이틀에 3점을 그리는 그를 상상하노라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캔버스를 붙들고 있었는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수 있다. 낑낑대며 일주일에 글 한 편 쓰는 것도 버거운 내게 이틀에 3점을 그렸다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작품량은 실로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아마 하루의 모든 시간이 모든 마음이 그림으로 향해 있었으리라. 그 어느 것에도 마음을 나누어 주지 않고 오로지 그림에 마음 전부를 내어준 한 인간의 열정이 왜 지금에서야 이렇게 와닿는 걸까? 읽고 쓰는 삶을 산다고 마음먹었으면서도 글 쓰는데 마음 전부를 주지 못하는 내가 찔려서였을까? 마음을 이리저리 쪼개 살고 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전시를 보러 가기 전 책꽂이 한에서 18년 전 서울 시립 미술관(2007.11.24.-2008.3.16.)에서 열린 똑같은 이름의 전시인 <불멸의 화가 반무료 카지노 게임 전시회 도록을 찾았다. 아! 그때가 언제였던가? 그때 나는 뭘 보았던 걸까? 도록만 남아 있을 뿐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없다. 나라는 유기체를 무료 카지노 게임와 ‘연결’ 또는 ‘연관’ 짖지 않아 기억에 남아 지 않은 건가? 그 당시 전시되었던 그림도 몇 있고 다른 그림도 있지만 무료 카지노 게임의 예술적 여정을 시기별로 쫓아가는 기획의도는 그때와 같았다. 네덜란드 시기, 파리 시기, 아를 시기, 생레미 시기, 오베르 시기로 나뉘어 전시된 무료 카지노 게임의 그림을 따라가보니 무료 카지노 게임 심리 상태와 그의 그림스타일이 어떻게 변해갔는지한눈에 들어왔다. 막 화가가 되어 “나도 무언가될 수 있다”라며 데생을 열심히 연습하던 네덜란드 시기, 빛을 발견한 파리 시기, 색채를 발견한 아를 시기, 자연으로 돌아간 생레미 시기, 생의 마지막 70일을 보낸 오베르 시기. 무료 카지노 게임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무료 카지노 게임와 일체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각각의 시기들 그림들을 훑어보면서 ‘이 시기에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 어땠을까? 저 시기에는 정말 힘들었겠지?’ 생각해 잠겼다.

오십이 넘어서일까? 아니면 글을 쓰기 시작해서일까? ‘무료 카지노 게임의 10년’이라는 시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무료 카지노 게임는 이 짧은 10년이라는 시간에 자신의 화풍을 완성시키고, 거기서 더 발전시킨 데다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다.10년 만에 이게 가능한 일인가? 어찌 보면 자신의 화풍 만들기에도 짧은 시기일 수 있는 10년이라는 시간에 무료 카지노 게임라는 사람은 그 모든 걸 해냈구나! 이러한 사실은 이미 지식으로 알고 있었을 텐데도 마음으로 감각되는 건 처음이었다. 글쓰기 4년 차인 나는 무료 카지노 게임의 시기를 빗대어 본다면 미친 듯이 데생 연습을 하는 네덜란드 시기라 할 수 있겠다. 내 스타일이 뭔지도 모른 채 일주일에 한 편, 필사한 문장을 일상에 녹이는 글을 쓰고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10년을 보면 ‘나의 10년은 어떠할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나라는 유기체를 무료 카지노 게임와 ‘연결’시키고 무료 카지노 게임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나와 ‘연관’ 지었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리라. 결국 안다는 건 끊임없이 우리라는 유기체를 사물과 과정을 지켜보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는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말이 맞았다. 안다는 것을 안다는 건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되나 보다. 느끼고 아는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