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빈센트 반 고흐『반고흐, 영혼의 편지』
“시엔이 너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궁금해진다. 그녀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그저 카지노 게임한 여자거든. 그렇게 카지노 게임한 사람이 숭고하게 보인다. 카지노 게임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p.70)
나 또한 특별할 게 없는 카지노 게임한 사람이다. 이런 내게 카지노 게임한 사람에 관한 반 고흐의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던 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고 난 뒤였다. 김장하 선생은 60년간 한약방을 운영하며 수익 대부분을 지역사회를 위해 환원했다.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었다며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환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려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는데 김장하 키즈라 불리는 장학생들은 지금 헌법재판소장, 교수, 의사 등이 되어 각계각층에서 김장하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은 1000명 모두가 특별한 인물이 될 수는 없었을 터. 그렇기에 선생이 명신고등학교 7회 졸업생 김종명씨에게 한말이 1,2부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종명씨는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라며 선생에게 미안해했다. 나 같아도 죄책감 내지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기에 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런 그에게 선생은 “나는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카지노 게임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함으로써 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었다. 달리 어른이 아니시다.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말이 김종명씨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카지노 게임한 내게 건네는 말 같았다. 나 같은 카지노 게임한 사람들의 존재를인정해 주는 응원가 같았다. “당신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됩니다.”
그리고 주말, 친한 언니와 동생 셋이 노지 캠핑을 다녀왔다. 캠핑 장비 대부분은 동생이 준비했다. 고기를 굽기 위해 휴대용 가스버너에 가스를 연결하면서 동생이 말했다. “가스가 별로 없긴 한데 저는 가스를 완전히 다 쓰고 버려야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구멍 뚫어 버릴 때 가스가 남아 있으면 죄책감이 들어요. 새 가스 안 써도 되죠?” 나머지 둘은 흔쾌히 찬성했고 불이 약해 고기가 더디 익어도 가스를 다 소진시키려는 일념 하나로 가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내 불이 꺼지고 이게 뭐라고 서로 “잘했네. 잘했어.”를 연발하며 소소한 기쁨을 나눴다. 나름 환경보호를 실천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렇게 환경을 보호하려면 애초에 캠핑을 가지 말았어야지. 쯧쯧) 이리 작은 가스 하나도 다 쓰고 버리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녀 같은 사람이야말로 선생의 말마따나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카지노 게임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같은 사람이 있어 그나마 세상이 나쁜 방향으로 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최대한 일회용품을 자제한 캠핑 용품들에게서도 그녀의 철학은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나 역시 일회용품을 쓰는데 죄책감을 느끼는 타입이라 일회용품 쓰는 걸 자제하는 편이다. 주방에 랩과 은박지가 사라진 지 오래고, 일회용 비닐 대신 다양한 용기들을 이용해 식재료를 수납하려 한다. 냉장고에 사놓은 식재료는 어떻게든 다 소진시키기 위해 남은 재료를 활용한 음식을 만들기도 하면서 ‘음식 쓰레기 최대한 만들지 않기’를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게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자투리 재료까지 다 활용해 냉장고를 비우게 되면 나름의 소소한 기쁨이 있다. 무언가를 다 써서 느끼는 통쾌함이랄까?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여러 개의 텀블러를 가방 여기저기에 넣어 카페나 운동할 때 사용한 지도 꽤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도 한 번씩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야식이라도 주문하는 날이면 어마무시하게 많은 플라스틱 용기들을 보곤 ‘나 혼자 이러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을 때가 있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가 하루에 쌓인 쓰레기양에 식겁해 쓰레기 더미 앞에서 무력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 하나 이렇게 한다고 뭐가 나아지겠어?’ 하는 순간이 있다. 부정적인 마음이 솟구쳐올라 비관적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럴 때 김장하 선생님 같은 분이 “우리 사회는 카지노 게임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을 해 주면 다시 한번 기운을 내게 된다. 그 말을 믿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
고흐나 김장하 선생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카지노 게임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세상에서 카지노 게임한 사람들이 숭고하게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 모르겠다. “이 세상의 빛이 말이나 글에 의해 유지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묘사해서 널리 알릴 권리와 의무가 있다."(p.185) 고흐나 김장하 선생은 그들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카지노 게임함의 숭고함은 그렇게 시대를 넘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카지노 게임함의 위대함을 자주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누군가는 계속해서말해주고 있다. 세상의 빛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