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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an 25. 2025

인IV23 참으로 오묘한 인간관계(상)


#Scene 01: 1993년경


전문의 취득 후 대학병원 전임강사로 첫발을 내디딘 지 10년쯤 되던 해.

하루는 출근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응급실 쪽으로 가는데 응급실 앞 복도에서 타과 레지던트 둘이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그들은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 한 사람을 두고 서로 자기 과 소관이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나는 그들 앞을 지나가다 말고 돌아서서 낮은 목소리로 강하게 말했다.

“너희들 둘, 당장 내 방으로 와!”

당시 나는 레지던트들에겐 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들은 내 방에 들어오자 서로 싸울 때의 그 호기롭던 파이팅은 어디 가고,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주눅이 든 채 고개를 숙이고 섰다.


"이놈의 쉐끼들,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환자와 보호자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그래, 가운을 입은 채로 서로 삿대질까지 해 가며 씩씩대면 그들이 의사를 어떻게 보겠냐? 야 이놈들아, 정 기분 나쁘면 아무도 안 보는 골방에 들어가서 피 터지도록 서로 치고받으라우!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그런 추태 부리지 말고! 으잉?"


그들이 나가고 나자 바로 후회의 감정이 몰려왔다. 내가 너무 한 것이다. 그냥 조용히 타이를 것을! 왜 나까지 혈기를 참지 못하고 그렇게 모욕을 주었을까? 저리 하면 반성하기보다는 오히려 반감만 사지 않겠나? 그리하여 그날 일은 오늘까지도 생생히 기억에 남을 만큼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Scene 02: 2025년1월2일


각각 다른 발신자로부터 부재중 카지노 게임 추천가 두 통 와 있었다.

오후 2시 57분: 010-4521-

오후 4시 11분: 010-5194-


요즈음 워낙 보이스 피싱이 많다 보니 모르는 카지노 게임 추천는 잘 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카지노 게임 추천에 대한 콜백은 더더욱 안 한다. 하지만, 근 한 시간 간격으로 생면부지의 카지노 게임 추천가 두 통씩이나 온 경우는 처음인 데다, 마침 쿠팡에서 물건을 주문해 놓은 것이 있어 혹시 배달 기사로부터 온 카지노 게임 추천는 아닌가싶어 두 번째 번호로 카지노 게임 추천를 걸었다.


카지노 게임 추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을 박진갑 씨의 옛 직장동료라고 소개하며 진갑 씨가 암에 걸려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카지노 게임 추천했다고 한다.


환자 상태에 관한 한, 입을 하나씩 건널 때마다 정확한 팩트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에 본인이나 그를 돌보고 있는 보호자와 직접 대화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직접 카지노 게임 추천하지 않고 두 다리 건너 친구를 시켰다.

“왜 본인이나 가족이 직접 카지노 게임 추천하지 않고 친구분이 하셨나요?”

그러자 그는 딸이 먼저 카지노 게임 추천했는데 내가 받지 않아 자신이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즉각 처음 온 번호로 카지노 게임 추천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 진갑 씨는 부산에 있는 모 대학병원에서 폐암 4기로 진단받고 치료 중, 소뇌에 자그마한 전이가 발견되어 감마나이프 치료(국소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때 마침 그 병원 치료기가 고장 나 수리 및 점검을 다 마치려면 1월 25일이나 되어야 했다.

그러자주치의는 환자 상태가 아직 괜찮을 때, 그리고 전이 부위가 조금이라도 더 커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는 게 낫다고 하며 이 방면의 권위자인 부백병원 신경외과 김 교수 앞으로 의뢰서를 써주었다.

이에 그의 딸이 카지노 게임 추천로 진료 예약을 하였는데 그 날짜가 1월 25일이라 하지 않는가? 하루라도 빨리 치료받으라고 진료의뢰서까지 써주었는데 한 달 후라니!


그의 가족은조금이라도 치료 날짜를 당기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정작 본인은 나와연락을 주고받은 지 10년도 훨씬 더 지난 지라 입이 잘 안 떨어져머뭇거리게 되었고, 결국이를 보다 못한 딸과 친구가 나에게 카지노 게임 추천를 해온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난감했다.

레지던트들이 전부 떠난 요즈음 시국에, 안 그래도 지쳐 빠진 대학병원 교수에게 환자 부탁하는 것 만한 민폐 도 없다. 설령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 해도 밀려있는 환자들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고, 기껏해야 예약을 취소

하는 환자가 생기면 그 자리에 잽싸게 끼워 넣어주는 게 다다.


나는 그 딸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한 후, 내가 노력은 해 보겠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다소냉정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답을했다.


내가 그렇게 밖에 답할 수 없었던 데는 이런 현실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 김 교수란 사람은 바로 30년도 더 전에, 나한테 인격모욕에 가까운 욕을 들었던 그 두 사람의 레지던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야~ 이걸 어쩐다? 내게 부탁하는 사람은 30년 전에 내가 한 번 크게 신세진 사람이고, 내가 부탁해야 할 사람은 평생토록 마음에 짐을 진 사람인데...’

will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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