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음악은 왜 아름다울까요?"
최근 누군가에게 들은 질문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의 여지를 남기는 꽤나 울림이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자신에게 슬픈 일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묘하게도사람들은 돈을 지불해 가면서까지 슬픈 영화를 보고, 슬픈 음악을 찾는다.
그것이 나를 찾아오는 것은 싫지만 보고 듣고 하며 늘 가까이 두려 하다니. 카지노 게임이라는 것이 이런 모순적이면서도 기묘한 성질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나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지게 한다.
카지노 게임, 그 예술의 보고(寶庫)
카지노 게임의 증표로 삼을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 눈물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린다. 그 말은 카지노 게임은 상반된 다른 감정까지 품어내는 능력이 있는 감정이라는 뜻이 된다. 기쁘면서 분노하고, 행복하면서 증오하는 것은 쉽게 연상되지 않지만 슬프면서도 기쁜 'bittersweet'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본 감정일 것이다.
그 외의 다른 감정에도 카지노 게임이 관여하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하고 입체적인 각양각색의 감정들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감정들은 느끼는 본인들조차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말로는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디엔가 명확하게 선을 그어낼 수 없는 그 막연함을풀어내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겹쳐져 탄생한 수많은 이름 모를 그 감정들은 제각각 방대한 정보와 고유함을 갖게 되며 그것을함축하면 시가 되고 이미지로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소리로 은유하면 음악이 된다.
이만하면 카지노 게임은 모든 예술의 촉매제이자 예술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카지노 게임은 감정의 원석
그럼 이 예술적인 카지노 게임을 가까이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 자체가 되는 것은 왜 두려운 것일까? 세공된 다이아몬드는 몹시나 아름답다. 그러나그 원석이 탄생하기까지는 아득한 심연에서 극한의 온도와 압력을 견뎌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즉 카지노 게임을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과 카지노 게임의 생산자가 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이다. 카지노 게임이 탄생되는 순간에당사자가 느끼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닌심연의 온도와 압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카지노 게임을 예술로 승화시켜 즐긴다는 것은 한편으론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허구에서 온 것이든 현실에서 온 것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그 원석을 낳기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카지노 게임을 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카지노 게임이라는 것은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 기쁨과 분노 같은 모든 감정들이 드나드는 터널 그 자체이고 그 터널 안에 쌓인 침전물들이 모여 삶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지노 게임은 삶의 좋은 날, 나쁜 날, 잘한 것, 못한 것들이 망라되어 있는 자신만의 기록이기도 한 셈이다. 우리는 그 기록을 다시 읽어내기 위해 카지노 게임을 찾는다.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면 우리는 그것을 되돌아본 것이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