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퇴근 후 옷만 갈아입고 바로 무에타이에 갔는데 요즘은 안마의자에서 30분 정도 충전을 해야만 체육관에 갈 힘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는 거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확실히 많다. 급속 충전을 하느라 평소 다니던 5시 30분부에서 7시부로 옮기는 바람에 같은 무에타이 체육관에 다니는 우리 반 아이도 잘 못 만나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이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7시부는 관장님 대신에 사범님들이 시작하고 중간에 관장님이 들어오셔서 수련을 시킨다. 체육관 맨 윗층에 있는 곳에서 저녁을 드시고 오는 듯 하였다.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 맨몸 기초 체력 훈련은 7시부가 더 힘든 느낌도 살짝 있다.
내가 우리 체육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관장님의 인생관이나 운동에 관한 철학이 마음에 와닿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들은 관장님의 말씀이 많다고 싫어할 수도 있으나 중간중간 관장님의 말 한마디는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관장님이 설명하시고 말씀이 길어지실 때 덤으로 따라오는 짧은 휴식 시간은 매우 달콤하기도 하다.
관장님은 체육관에 들어서는 수련생들을 1,2초 만에 스캔하여 그날의 컨디션을 체크하신다. 얼굴 표정이나 상태를 보고 전반적인 기운을 읽으시는 듯하다. 운동하는 스타일만 보고도 그 사람의 성격도 단번에 파악하시는 게 정말 신기하다. 사범생활을 포함하여 30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셨을 테니 납득이 되지만 이는 대단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나 포함 수련생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느끼셨는지 오늘따라 말씀이 길어지신다. 같이 운동하는 초등학생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만한 시각이기도 하다. 나는 운동 중간중간 거친 숨을 내뿜으며 관장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운동하는 스타일을 보면 이 사람이 운동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한눈에 다 보입니다. 3인자는 운동을 가르치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도자가 설명할 때 잘 듣지 않고 자기가 멋대로 하면 결국에는 도움이 별로 되지 않습니다. 2인자는 지도자가 시키는 것만 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훌륭하지만 발전하는 가능성이 적습니다. 1인자는 지도자가 시키는 것을 제대로 하면서 여기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방식을 터득하며더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매우 어려운 과정이죠!"
고개를 끄덕이며 관장님의 말씀에 집중을 하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보았다. 관장님께서 지도해 주시는 부분을 그때그때 수용하고자 노력하며 따르려고 애쓰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가르쳐주시는 것도 제대로 못 따라 할 때도 많지만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운동에 있어서 완성은 없음을 잘 알고있기에 노력하려는 모습을 가진 나 자신이 기특하고 멋져 보일 때가 많다. 매번 수련이 끝나면 관장님께서 더 운동을 하고 가라고 권하시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을 하곤 한다.
"저한테는 체육관에 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본인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계십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오지만 실제로 체육관을 일주일에 무려 3번이나 오는 것은 나에게 아주 큰 일이다. 많은 걸 알았더라면 시작 못했을 무에타이라는 강도 높은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관에 발을 들이며 관장님의 지도에 잘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대단한 행동이다.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끌어내 주시려는 관장님의 마음씀에도 매우 감사하지만 욕심부리거나 다치지 않고 50대가 되어도 무에타이를 꾸준하게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2인자로 남아 카지노 게임이 수련 시간에 시키는 것을 잘 따라 하는것이 길고 가늘게 가는 법임을 이미 터득해 버렸다.
체육관에 가기 위해 현관에 있는 신발을 신을 때까지가 제일 힘들다. 1시간의 긴 수련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언제 끝나는지 시계를계속 들여다본다. 우리 체육관의 또 좋은 점은 정시에 시작해서 정시에 끝나 수련시간이 언제 끝나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힘이 들수록 시간을 보면 매우 더디게 흐르지만 그래도 끝은 항상 있는 법이다. 수련이 끝난 후 벌게진 내 얼굴을 보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작년 8월부터 시작한 무에타이를 아직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자부심이 생긴다. 살은 하나도 빠지지 않았으나 조금은 단단해진 다리를 보며 운동의 힘을 느끼고 있다. 근육이 잘 붙지 않는 나 같은 근육흙수저에게도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관장님의 말씀처럼 몸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 변화를 바로 느끼기도 힘들다. 하지만 묵묵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 기간은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이건 비교할 영역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1인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정말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3인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그냥 2인자가 되어 묵묵히 나만의 길을 나만의 속도로 가고 싶다.